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621
00624 624화
같은 의사지만 수술을 바라보는 시선은 달랐다.
마취의로서 출혈은 언제나 예민한 일이다. 그저 태수가 느낄 부담감을 조금이라도 줄여 주기 위한 말일 뿐이었다.
태수도 그 말의 속뜻을 알았기에 조금은 부담을 덜어 냈다. 그러나 폐에 박힌 갈비뼈를 걷어 내는 건 그리 쉽지 않았다.
지금까지 여러 번 경험한 상황이라 해도 똑같은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제발 별 탈 없길.’
태수는 속으로 빌며 손을 움직였다.
우선 갈비뼈가 박힌 곳을 중심으로 좌우로 조금 더 상처를 냈다.
겉에서 보기에는 짧지만 속이 깊은 상처다.
쭈욱!
폐 조직이 갈라지며 출혈이 조금씩 늘어났다.
이선정 간호사는 또 다른 썩션을 이용해 피를 빨아들였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는 디버를 이용해서 태수가 낸 상처를 조금 더 벌렸다.
이선정 간호사의 손이 바빴기에 수술 도구는 태수가 직접 교체해야 했다.
이미 이런 상황을 예감했는지 의료 카트는 두 사람 사이에 놓여 있었다.
끝이 기다란 인터네셔널 포셉을 쥔 태수는 상처 낸 폐 속으로 깊숙이 집어넣었다.
살살 좌우로 움직이자 조각난 갈비뼈도 약간의 유격이 생겼다.
그때였다.
삑삑!
ECG(심전도 모니터)가 격하게 울렸다.
마취의의 다급한 목소리도 들려왔다.
“최 선생, 스톱!”
“수술 도구 뺍니까?”
“아니, 잠깐만. 이게 이렇게 되면 안 되는데,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마취의는 경험하지 못한 상황인지 살짝 당황했다.
산소 밸브도 좀 더 열어 보고, 마그네슘도 추가했다.
하지만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마취의가 얼른 태수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수술 도구를 빼야 될 거 같은데.”
“뭐가 문제인지는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은 거죠?”
“그건 그렇지.”
마취의의 목소리가 조금 작아졌다.
전신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마취의는 기가 죽기 마련이었다.
반면, 태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여러 곳에 상처가 있기에 꼭 폐의 문제라고 장담할 수 없었다.
원인을 파악한 건 상당히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서 시간이 너무 지체되는 것도 환자에게 좋지 않았다.
심장엔 상처가 없다.
오른쪽 폐는 거의 정상적인 상태다.
왼쪽 폐를 더욱 강도 높게 수술해도 생명과는 문제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던 태수의 머릿속에 문득 생각이 떠올랐다.
갈비뼈에 유격이 생긴 후에 생긴 변화다.
아예 뽑아 버리면 어떻게 될까.
수술에서 예측은 상당히 위험하다.
그러나 원인이 정확하지 않을 때는 집도의의 역량에 따라 예측을 해야 할 때도 있다.
지금이 그때다.
태수는 조홍찬의 얼굴을 바라봤다.
‘살겠다고 생각하고 계시죠?’
마음속으로 물었다.
그리고 대답은 이미 마취하기 전에 들었다.
그는 태수의 말대로 살고 싶다는 희망을 계속 마음속에 품고 있을 터였다.
태수는 그걸 믿었다.
“갑니다.”
“네?”
이선정 간호사가 움찔할 때였다.
태수는 수술 도구를 놓고 갈비뼈를 그대로 뽑아 버렸다.
쑤욱!
갈비뼈가 뽑혀 나오며 폐 조직의 일부도 딸려 나왔다. 그리고 그 틈으로 피가 더욱 많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예상하지 못한 이선정 간호사가 움찔거리자 태수가 바로 말했다.
“빨아들여 주세요.”
“네.”
정신을 차린 이선정 간호사가 얼른 썩션으로 피를 흡입하기 시작했다.
탈칵.
태수가 뽑아낸 갈비뼈를 밧드에 내려놓을 때였다.
마취의의 화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걸 그냥 뽑아 버리면 어떻게 해!”
“…….”
“최소한 말이라도 해 주고 뽑아야 할 거 아니냐고.”
투덜거리는 마취의는 새로운 혈액팩을 빠르게 추가시켰다.
그러나 태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사이 ECG의 날카로운 기계음이 사라졌다.
그 소리에 예민해졌던 마취의 표정이 멍하니 변해 갔다.
“갑자기 왜 조용해진 거야?”
그때 피를 빨아들이고 있던 이선정 간호사가 의아한 얼굴로 태수를 불렀다.
“선생님, 이상해요. 피가 좀 검붉은 거 같은데요. 여기 정맥이 흐르나요?”
“아니요.”
“그럼 이게 무슨 일이죠? 폐 아래쪽도 좀 작아진 거 같고요.”
“우선 좀 살펴보겠습니다.”
이선정 간호사의 말을 들으며 태수는 좀 더 자세하게 살폈다.
그러던 그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역시 그랬네요.”
“알아내셨어요?”
“갈비뼈 때문에 흐르지 못한 죽은피가 응축되어 있던 거 같습니다. 폐도 그 때문에 부풀어 있었고요.”
태수가 말하자 이선정 간호사가 흘깃거리며 물었다.
“알고 계셨어요?”
“예상만 했습니다.”
“만약에 틀렸다면요?”
“…….”
태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게 가장 현명한 대처일지도 몰랐다.
이선정 간호사도 더 이상은 묻지 않았다.
예측이라 해도 어느 정도 확신이 없으면 태수가 움직이지 않았을 거란 확신이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태수가 옳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마취의도 할 말이 없었다.
“일단 바이탈은 다시 끌어올리고 있어. 별문제 없을 거야.”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됐으니까 다음에는 이야기나 좀 해 줘. 최 선생도 간담 서늘했겠지만 나, 오한이 다 들었다고.”
마취의는 괜히 엄살을 부리며 계속 전신관리에 신경 썼다.
그 이후, 폐 수술은 커다란 문제가 나타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자 오른쪽 폐 수술을 마친 김준혁이 태수를 보조했다.
김준혁의 합세로 수술은 조금 더 속도를 냈다.
그래도 원체 상처가 깊었던 왼쪽 폐였기에 마무리하는 데까지 2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그 후로도 좀 더 시간이 흘렀다.
태수가 봉합사로 왼쪽 폐를 봉합하며 다시 한가해진 조서영에게 말했다.
“조 선생, 환자 두발 좀 정리해 줘.”
“두발을요?”
“거기 바리캉하고 면도기 있잖아. 싹 다 밀어 버리라고.”
“아, 네.”
조서영은 얼떨떨하게 대답하고 몸을 움직였다.
왜라는 질문은 하지 않았다.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어도 태수의 지시이기에 반사적으로 행동했다.
위이잉!
곧 바리캉 소리가 수술실을 울렸다.
그 소리에도 태수는 봉합을 이어 갔다.
태수가 갑자기 이발하라는 오더를 내리자 수술실은 묘한 분위기가 흘렀다.
그사이였다.
바리캉 소리에 연연하지 않고 봉합을 마무리 지은 태수가 선언했다.
“폐 수술 종료합니다. 이어서 복부로 이동하겠습니다.”
“이동합니다.”
김준혁이 바로 대답하고 움직였지만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서영에게는 머리를 깎으라고 하고 막상 태수는 아래로 내려간 게 아무래도 이상하게 느껴졌다.
태수는 개의치 않고 산에서 임시로 봉합해 놓은 부위에 도착했다.
“scissors(가위).”
턱.
수술용 가위가 잡히자 태수는 봉합사를 끊었다.
당겨졌던 피부가 좌우로 갈라졌다.
그리고 그 속에서 피로 가득 물든 거즈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냈다.
다들 처음 보는 광경에 헛숨을 들이켰다.
“헉!”
“이, 이게 왜 여기에…….”
태수는 침착하게 이야기했다.
“내가 넣었어.”
“그러셨…… 습니까.”
“설명은 나중에. 일단 거즈부터 걷어 내자.”
태수가 빠르게 말하자 김준혁은 얼떨떨한 얼굴로 손을 움직였다.
이내 거즈를 하나씩 빼내기 시작했다.
피에 절어 묵직해진 거즈를 꺼내는 일이 그렇게 유쾌하진 않았다.
그렇게 하나둘씩 거즈를 꺼내던 김준혁의 얼굴이 점점 경악으로 물들어 갔다.
이미 10여 개가 넘는 거즈를 꺼냈는데도 아직도 남았다.
“도대체…….”
“속도부터 올려.”
“알겠습니다.”
얼른 대답한 김준혁은 살짝 떨리는 손끝으로 거즈를 계속 빼냈다.
그렇게 꺼낸 거즈는 20개가 넘었다.
이젠 놀랄 기운도 없는지 허탈한 표정이었다.
태수는 그런 김준혁의 기분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벌려.”
“네!”
김준혁이 리트렉터로 상처를 더 벌렸다.
너무도 제한된 시야였지만 태수는 그 틈으로 최대한 내부를 살피려 노력했다.
다행스러운 건 감염이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거즈가 피를 흡수한지라 복강 내에 출혈이 많이 보이지도 않았다.
살피기에 최적의 조건이다.
조금씩 피가 채워지고는 있었지만 태수는 그사이에 빠르게 눈을 굴렸다.
“duodenal(십이지장) 파열, 그리고…….”
태수가 이어서 살피던 중이었다. 조서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배님, 두발 정리 다 됐어요.”
“오케이. 김 선생, 이 속 좀 확인해서 알려 줘.”
태수가 부탁하자 김준혁이 움찔했다.
“제, 제가요?”
“그럼 누가 해.”
“선생님이 하셔야죠.”
“올라가 봐야 해. 좀 부탁할게.”
태수는 그렇게 말하고 이선정 간호사와 머리 쪽으로 이동했다.
복강 내부도 중요했지만 머리를 살피는 게 우선이었다.
심장이나 다른 장기는 이식 수술로 대체할 수 있지만, 뇌는 이식이 불가능했다.
조홍찬을 처음 봤을 때 뒷머리가 크게 부풀어 오를 정도로 피가 고여 있었다. 그리고 수술에 앞서 마취하기 전에 눈이 침침하고 소리가 잘 안 들린다고도 했다.
그건 모두 머리와 관련된 증상들이다.
태수는 그 증상을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었기에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건 심장과 폐, 그리고 머리, 그다음이 복부다.
그 순서에 맞게 수술을 진행하고 있을 뿐이었다.
곧 도착한 태수는 곧 조홍찬의 머리를 내려다봤다.
잠깐 사이였지만 조서영은 꽤 깔끔하게 이발했다. 면도기 사용법은 어떻게 알았는지 몰라도 조홍찬의 머리가 반들반들하게 변한 상태였다.
태수는 조서영을 칭찬했다.
“수고했어.”
“아니에요. 그럼.”
“어디 가?”
“네?”
조서영이 멈칫하자 태수가 말했다.
“이번에는 내 보조야.”
“제가…….”
“충분히 할 수 있어.”
태수가 딱 잘라 말하자 조서영은 침묵했다.
태수가 그렇다고 한다면 그런 것이기에 조서영은 아무런 토를 달지 않았다.
반들반들한 머리 곳곳에 피딱지가 보였다.
태수가 주삿바늘로 피를 뽑았던 자리다. 그 덕분에 뇌압이 줄어들어 잠깐씩 깨어난 조홍찬과 대화할 수 있었다.
만약에 부푼 채로 놔뒀다면 사고력이나 기억력에 문제가 생겼을지도 몰랐다.
지금 그걸 이야기할 때가 아니기에 수술에 다시 집중했다. 아무리 태수가 여러 의과를 경험했더라도 머리는 함부로 열 수 없었다.
몇 년에 걸쳐 숙련된 전문의도 조심스러워하는 부분인 탓이다.
물론 태수가 두개골을 열려는 건 아니었다. 두피와 두개골 사이에 생성되어 있을 혈전을 제거하려는 것뿐이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머리가 부풀 정도로 피가 몰려 있었다.
모든 피를 뽑아낼 수 없었으니 당연히 혈전이 만들어졌을 터였다.
그리고 두개골이 함몰되었다면 이미 겉으로 표가 나야 한다.
그렇지 않다는 것만으로도 두개골과 뇌는 무사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 판단을 하는 이유도 분명히 있었다.
이건 제임스가 여러 번 경험한 일들이다. 일기 형식으로 기록해 놓은 노트에도 적혀 있는 내용이었다.
카프레네와 오버랩되는 환자인 만큼 태수는 자그마한 것 하나까지도 허투루 넘기지 않았다.
그는 반들반들한 조홍찬의 머리를 양손으로 아주 세심하게 쓸었다.
눈까지 감고 미묘하게 달라진 부분을 신중하게 찾아갔다.
그런 태수를 바라보는 마취의는 할 말을 잃었다.
외과 의사가 흉부외과 수술까지 집도하는 것도 이례적인 일이다.
그런데 머리 수술까지 한다는 건 듣도 보도 못했다.
만약 이 모습을 누군가에게 전해 들었다면 욕부터 했을지도 모른다.
분명한 건 자신의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생생한 현실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이걸 누가 믿어.’
태수가 삼척종합병원에서도 인정받는 외과 의사라는 건 알지만 이건 침묵해야 했다.
그게 자신이 거짓말쟁이라 비난받지 않을 유일한 방법이었다.
태수는 손끝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계속 이상 부위를 찾았다.
그러나 이쪽으로는 경험이 부족했기에 바로 찾아낼 순 없었다.
계속 살피고 또 살필 뿐이었다.
그러자 조금씩 감각이 다른 곳이 손가락 끝에 느껴졌다.
딱딱한 느낌.
혈전이 확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