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651
00654 654화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과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궁금함이 짙어져 갔다.
주말을 이용해 대전에 다녀올 결심까지 했다.
이젠 자가용이 있기에 언제든지 출발할 수 있었다.
가서 보자.
이렇게 자신을 궁금하게 한 정민수에게 작은 분노가 떠올랐다.
태수가 그렇게 주말을 기다리던 어느 날이었다.
이선정 간호사가 진료실로 들어와 태수에게 말했다.
“손님이 찾아오셨는데요.”
“삼척에서요?”
“아니요. 좀 이상한 데서요.”
이선정 간호사의 말에 태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어딥니까?”
“직접 들어 보시는 게 나을 거 같아요.”
“알겠습니다. 들어오라고 하세요.”
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선정 간호사는 바로 몸을 돌리지 않고 태수에게 조용히 말했다.
“떠나시면 안 돼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니에요. 들어오시라고 할게요.”
이선정 간호사가 얼른 진료실을 나갔다.
떠나면 안 된다.
그 말에 태수는 의아함이 커져 갔다.
“가긴 어딜 간다고.”
대체복무 중이라 어디 갈 수도 없다.
알면서도 그렇게 이야기하는 게 신경 쓰일 무렵이었다.
끼익.
진료실 문이 열리더니 중년 남자 2명이 들어왔다.
생전 처음 보는 얼굴들이다.
그런데 자신을 찾아왔다니.
그리고 떠나지 말라니.
더더욱 태수는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사이 두 남자가 태수 앞에 다가왔다.
어느새 자리에 선 태수가 먼저 자신을 소개하며 궁금증을 내보였다.
“최태수입니다. 절 보러 오셨다고요?”
“반갑습니다. 국방부에서 온 서명주입니다.”
“보건복지부에서 나온 박성택입니다.”
두 사람의 이야기에 태수의 눈이 살짝 크게 떠졌다.
국방부, 그리고 보건복지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자신을 찾아온 두 사람을 태수는 멍하니 바라봤다.
반듯한 인상의 서명주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많이 놀라셨나 봅니다.”
“네. 심장이 뒤집어지는 거 같습니다.”
“하하.”
서명주와 박성택이 가볍게 웃었다.
그러나 태수는 진심이었다.
“이 외진 마을 보건소까지 찾아오기도 힘드셨을 텐데요.”
“찾아뵈어야 할 분이라면 당연히 와야죠.”
“국방부와 보건복지부에서 찾아올 정도라. 전 제가 성실하게 대체복무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닌가 봅니다.”
태수의 수더분한 목소리 속에 작은 경계심이 담겨 있었다.
그러자 체격이 좋은 박성택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아주 잘해 주고 계시지요. 삼척 보건소를 통해 그동안 하신 일들을 모두 들었습니다.”
“뭐 대단한 일이라고요.”
“대단한 일이지요.”
박성택의 말에 서명주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태수는 그런 두 사람을 향해 빙긋 미소를 지었다.
“일단 앉아서 말씀하시죠. 협소하고 불편하지만 앉지 못할 정도는 아니니까요.”
태수가 자리를 권하자 서명주가 말했다.
“보건소보다는 좀 더 탁 트인 곳에서 이야기하시는 게 어떨까 싶은데요.”
“아직 진료 시간이라서요.”
태수가 부드럽게 대답했지만 의미는 확실히 전했다.
서명주와 박성택이 잠깐 시선을 마주하더니 이내 태수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생각이 조금 짧았던 거 같습니다.”
“일단 앉도록 하지요.”
그렇게 두 사람이 자리하고야 태수도 자기 자리에 앉았다.
세 사람은 가볍게 서로 안부부터 물었다.
그런 소소한 이야기가 어느 정도 진행된 후였다. 이선정 간호사가 조심스레 들어와 각자의 앞에 차를 내려놓았다.
손님이 올 경우 이선정 간호사가 이따금 차를 준비해 주곤 했는데 오늘도 다르지 않았다.
“말씀 나누세요.”
이선정 간호사가 살짝 태수를 흘겨봤다.
이래저래 복잡한 눈빛이다.
태수는 영문을 몰라 어색한 미소만 지어 보일 뿐이었다.
이선정 간호사가 끝까지 째려보며 다시 진료실을 나갔다.
탁.
문이 닫힌 소리가 들리고 난 후였다. 태수가 두 사람에게 차를 권했다.
“오미자 차인데 맛이 좋습니다.”
“냄새부터 훌륭하네요.”
“감사합니다. 그럼 들면서 이야기하시죠. 저를 왜 찾아오셨는지 솔직히 너무 궁금합니다.”
태수가 부드럽게 대화를 이끌자 박성택이 물었다.
“차 한 모금 마실 시간도 안 주십니까?”
“실례했습니다. 제가 성격이 좀 급해서요.”
“아닙니다. 차향이 너무 좋아서 그런 겁니다.”
박성택이 찻잔을 들며 빙긋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박성택이 차를 한 모금 입으로 가져갈 때였다.
가만히 있던 서명주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럼 제가 먼저 이야기하지요. 우선 최 선생님께 일전의 일부터 감사드려야겠습니다.”
“제가 인사받을 일을 한 적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삼척시에 폭설이 내린 날 말입니다.”
서명주가 슬쩍 돌려서 말했다.
무슨 뜻인지 태수는 바로 알아들었지만 여전히 표정은 시큰둥했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
“무슨 말씀 하시는지 진짜 모르겠습니다.”
태수가 아예 선을 그어 버리자 서명주가 자그마한 미소를 지었다.
내심 만족한 듯 목소리 톤 자체가 호의적으로 변했다.
“그러시군요.”
“그런데 진짜 무슨 일이십니까? 솔직히 두 기관에서 같이 나오셨다는 게 전 이해가 되지 않아서요.”
태수의 질문을 들은 서명주가 묘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선생님은 참 독특하신 거 같습니다. 이력이 특이하셔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요.”
“참 정상적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보통 저희들이 찾아오면 긴장한 내색이라도 하시던데요.”
서명주가 표정을 딱딱하게 굳히며 말했다.
태수는 그런 모습에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좋은 일로 찾아오셨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가 봅니다.”
“그건 받아들이시기에 따라 다르겠지요.”
“어떤 일로 오셨는지 제가 감이 영 안 잡힙니다.”
태수는 넉살 좋게 말을 돌렸다.
여전히 미소 짓고 있는 태수를 향해 서명주가 가볍게 사과했다.
“분위기 흩트려서 죄송합니다. 소문으로만 들은 최 선생님이 어떤 분인지 궁금했거든요.”
“…….”
“격전지에서 오래 계셨다더니 그 말이 사실인가 봅니다.”
서명주의 뒷말을 들은 태수의 표정이 떨떠름하게 변했다.
“이젠 동네방네 다 알고 있나 보네요.”
“훌륭한 일을 하셨는데 숨길 이유가 없죠.”
“시골 보건의가 뭐 그렇게 대단했겠습니까. 간신히 목숨만 부지했던 거죠.”
태수는 그 일에 있어서는 최대한 말을 자제했다.
태수가 숨기려 하니 서명주가 더 파고들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대화가 끊어져 잠시 침묵이 흐를 때였다.
가만히 대화를 듣고 있던 박성택이 차분한 얼굴로 말했다.
“좋은 일로 찾아왔는데 분위기가 조금 이상해진 거 같습니다.”
“그러네요. 아직 절 찾아오신 이유도 모르고요.”
“실은 이번에 보건복지부와 국방부에서 힘을 합쳐서 기획한 일이 하나 있습니다.”
박성택의 말에 태수는 덤덤하게 바라봤다.
“어떤 일입니까?”
“의료의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에게 온정을 베푸는 일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을까요?”
태수가 관심을 보이자 박성택의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아시겠지만 우리나라에 여러 가지 이유로 어린 나이에 가장이 된 아이들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하더군요.”
“그 아이들은 경제적인 여건이 받쳐 주지 않아 병원을 찾지 못하고 있고요.”
“아무래도 그렇겠죠.”
썩 마음 편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런지 태수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박성택은 개의치 않고 이어서 말했다.
“물론 여러 정책으로 소년 소녀 가장들에게 의료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긴 합니다. 하지만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겠죠.”
“그럼 저희 보건소로 소년 소녀 가장들을 보내 주신다는 겁니까? 저는 좋은데 여러 가지 여건이 좋지 않은데요.”
“그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예산 문제도 있고 마을에서 수용할 수 있는 인원도 한계가 있을 겁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좀 더 전문적이고 체계화된 계획을 수립했습니다.”
“궁금하네요.”
태수가 진지하게 바라보자 박성택이 이어서 말했다.
“소년 소녀 가장들 중에 난치병을 앓고 있는 아이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들을 선별해서 수술 및 치료를 해 주는 일을 계획하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그런 멋진 일을 제안해 주신 건 감사한데,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거 같습니다.”
“물론 저희도 최 선생님에게 모든 부담을 드릴 생각은 없습니다. 그래서 공중보건의 몇몇 분들을 직접 찾아가 의향을 여쭙는 중이고요.”
“그럼 지역별로 지정 병원을 만드시겠다는 겁니까? 그것도 좀 어려운데요. 보시다시피 여건과 환경이 영 좋지 않은 보건소라서요.”
“저희도 그 점을 고려해서 군에 도움을 청하게 되었습니다.”
박성택의 말이 끝나자 서명주가 대화를 이어 받았다.
“저희 군에서는 이번 합동 계획을 전적으로 지원하기로 했고, 의무사령부에서도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그럼 군병원에서 수술을 한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저희는 이미 수술실 및 수술 인력, 그리고 병실까지 모두 확보한 상태입니다.”
서명주가 말을 마치자 박성택이 이어서 말했다.
“저희 보건복지부에서는 각 지역 병원과 연계해 난치병을 앓고 있는 아이들을 다시 한 번 선별하는 중이고요.”
“이거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엄청 큰일인 거 같습니다.”
“하지만 부담 가지실 일은 아닙니다. 공중보건의들 중에서 각 의과별로 뛰어난 분들과 함께하실 테니까요.”
“제가 그분들에게 방해가 되진 않을까요?”
태수의 물음에 박성택이 고개를 저었다.
“저희도 다방면으로 검토한 후에 최 선생님을 찾아왔습니다. 저희 일에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봐주신다니 감사합니다.”
“그보다 좋은 취지로 하는 일인데, 한 손 보태 주실 의향이 있으십니까?”
박성택이 진지하게 물어 왔다.
태수는 그런 박성택에게 말했다.
“너무 서두르시는 거 같습니다.”
“시간 끌 일은 아니잖습니까.”
“그건 그렇습니다만, 구두로만 전해 들으니까 머릿속이 복잡하네요. 혹시 계획서 같은 거라도 있습니까?”
태수가 묻자 서명주가 서류를 하나 꺼내 내밀었다.
“먼저 드려야 했는데 좀 늦었습니다.”
“아닙니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태수는 계획서를 받아 바로 차분하게 확인하기 시작했다.
방금 나눴던 대화들이 좀 더 자세하게 정리되어 있는 계획서였다.
역시 주요 골자는 난치병을 앓고 있는 소년 소녀 가장을 수술하는 일이다.
군병원에서 수술과 회복을 하는 것이고, 태수와 몇몇 보건의들이 그 수술을 진행할 의사들로 선별된다는 내용이다.
물론 가끔 명망있는 의사들도 자원봉사하기로 확약된 내용이다.
솔직히 솔깃하지 않다면 의사가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이 아니면 이런 일에 참여하기도 힘들 것 같았다.
복무 기간이 끝난 후에는 사회로 돌아간다. 병원이 환자를 치료하는 의료 기관이라고 해도 영리를 무시할 순 없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병원 홍보용 외에는 이런 일을 계획하기 힘들다.
반대로 정부와 군이 힘을 합쳐 준비하는 일이라면 영리에 대한 생각은 접어 둬도 좋았다.
‘쓸모 있는 일도 하네.’
태수는 정권이니 정치니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이런 의료 복지 사업은 쌍수를 들고 환영이었다.
마음은 이미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훅 치미는 감정으로 승낙하기에는 이성적인 생각이 발목을 잡았다.
차분하게 끝까지 살핀 후 태수가 말했다.
“우선 잘 봤습니다.”
“그래서, 결정은 내리셨는지요?”
“몇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그거부터 여쭤도 되겠습니까?”
태수가 대화의 진행 속도를 조절하자 두 사람도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하시지요.”
“가장 먼저 환자에 대한 정보를 받아 볼 수 있을까요?”
“계속 선별 중이라서 아직 몇 명 없습니다만.”
박성택의 난처함에도 태수는 개의치 않고 말했다.
“한 명이라도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는지부터 확인하고 싶습니다. 제 역량에 벗어난 일이라면 저도 빨리 말씀드려야 괜히 시간만 낭비하지 않으실 테니까요.”
“그럴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일단 준비해 온 게 있으니까 보시죠.”
이번에는 박성택이 서류를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