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slayer's Class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40
140화
지크는 우로보로스 산에서 내려와서 곧장 사막 지대로 향했다.
그의 행보에 롬 제국과 사막 지대 사이에서 임무를 수행 중이던 보리스가 합류했다.
문제는 지크가 사막 지대로 내려가는 동안 신성 왕국과 롬 제국, 스콜피온 클랜과 살막 모두가 지크의 뒤를 쫓는다는 점이었다.
지크는 보리스의 첩보를 통해 사막 지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미리 알 수 있었다.
고민하던 지크는 보리스에게 살막의 본거지로 찾아가자고 말했다.
살막이 어떤 곳인지 알고 있는 보리스는 펄쩍 뛰며 지크를 말리려 했지만 이미 결정된 사항을 바꿀 수는 없었다.
그렇게 모래사막을 헤맨 지 3일 만에 둘은 살막의 본거지에 접근할 수 있었다.
물론 손과 발이 묶인 채 살막의 살수들에게 끌려서 말이다.
“……도대체 어쩌시려고 그러십니까, 보스.”
보리스는 살막 살수들의 말에 연결된 밧줄에 묶인 채 끌려가면서, 그 옆에 마찬가지로 함께 끌려가는 지크를 보며 말했다.
살막의 본거지로 잡혀가는 데도 지크의 표정은 태평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지크는 끝없이 펼쳐진 모래사막을 바라봤다.
겉으로 평화로워 보였지만 사실 이곳은 모래 늪으로 이루어진 유사 지대였다.
한 번 빠지면 자력으로 나오기 어려운 곳이라 사막 지대에 사는 원주민들도 절대 다가오지 않는 지역이었다.
하지만 살막의 살수들은 모래 늪에 빠지지 않고 구불구불 돌아가며 제대로 길을 걷고 있었다.
대륙 곳곳에는 이렇게 외지인의 접근을 막기 위한 고대 마법의 장소가 있었다.
금역인 잊혀진 자들의 숲도 이와 비슷했다.
끝없이 펼쳐진 수해에 잘못 발을 디디면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었다.
살막은 그런 고대 마법의 장소에 일부러 본거지를 두고 외부인이 오는 것을 수백 년 동안 막아 온 것이 틀림없었다.
살수들을 따라 유사 지대를 통과하니 모래 언덕 위에 갑자기 보이지 않던 성이 하나 나타났다.
끌려가던 보리스는 말로만 듣던 살막의 본거지를 보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대륙 공적에 롬 제국 정보부 출신인 그라도 살막은 두려운 존재였다.
살막의 살수들은 지크와 보리스를 끌고 성안으로 들어갔다.
쿠구구구구!
언제 지어졌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된 성이었다.
지크는 용안으로 성의 곳곳을 훑어봤다.
낡은 외관과 달리 성벽 곳곳에 마법의 힘이 깃들어 있었다.
성에 들어오자 지크가 그를 끌고 온 살수에게 말했다.
“산상노인을 만나고 싶다.”
그 말에 터번을 둘러쓴 살수가 지크를 힐긋 내려다보고는 칼을 뽑아 들고 말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그가 지크의 목에 칼을 들이밀었다.
순간 지크가 금력을 일으켜 자신을 묶고 있던 밧줄을 툭 끊고 살수의 칼을 맨손으로 잡아 구부려 버렸다.
살수는 놀라서 뒤로 물러서며 그를 향해 암기를 뿌렸다.
지크가 손을 휘둘러 암기를 죄다 튕겨 냈다.
순간 성 곳곳에 숨어 있던 살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촤아악!
훈련받은 수백 명의 살수가 순식간에 지크와 보리스를 둘러싸며 각자 무기를 꺼내 겨누었다.
모두 하나같이 얼굴에 복면을 쓰고 있었는데 복면에는 삼각형 안에 외눈알 모양의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보리스 역시 손목을 비틀어 밧줄을 풀고 긴장한 표정으로 검을 뽑아 들었다.
지크가 살수들을 향해 외쳤다.
“내 이름은 지크 드레이커다! 산상 노인에게 전할 말이 있다!”
살수들은 지크의 말에도 전혀 움직이지 않고 무기를 겨눈 채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지크 일행과 살수들은 서로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대치했다.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지크나 살수들의 움직임은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다.
중간에 낀 보리스만 죽을 맛이었다.
‘젠장 내 팔자야.’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안에서 복면을 쓰고 흑의를 두른 인영 하나가 나왔다.
복면에는 다른 살수들과 마찬가지로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그가 지크를 향해 따라 들어오라는 듯 손짓을 했다.
그러자 무기를 겨누고 있던 살수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모습을 감추고 사라졌다.
살수들이 사라진 성은 마치 완전히 비어 있는 것처럼 인기척 하나 없이 조용했다.
보리스는 그 모습을 보고 소름이 끼쳐 잠시 움직이지 못했다.
지크가 그런 보리스에게 손짓했다.
“보리스, 들어가자.”
그렇게 지크와 보리스는 흑의를 입은 살막의 살수를 따라 성 안쪽으로 들어갔다.
성의 안쪽은 미로처럼 좁고 구불구불했으며 어두웠다.
마치 저주가 풀리기 전의 아가멤논 성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만약 적들이 유사 지대를 통과해 이곳을 습격한다고 해도 이 안에서 길을 잃을 것 같았다.
‘일부러 이렇게 만들어 놓은 것 같은데.’
지크는 좁은 길 곳곳에 살수들이 기척을 죽인 채 숨어 있는 것을 느꼈다.
야수의 감각을 가진 지크였기에 그들의 기척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지만 웬만한 기사들은 살수들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할 것 같았다.
지크와 보리스는 미로 같은 길을 통과하고 몇 개의 방을 지나서야 겨우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흑의인이 문을 열고 손짓했다.
안쪽으로 들어가자 커다란 옥좌 위에 금과 보석으로 치장한 한 노인이 앉아 있었다.
작은 체구에 검은 피부를 가진 노인은 열 손가락에 전부 반지를 끼고 있었다.
노인이 지크를 보며 말했다.
“그래, 나를 보자고 했다고.”
살막의 살수들을 키우고 그들을 지배하는 살수들의 왕인 산상노인이었다.
정체를 아는 이가 대륙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힌다는 산상노인을 지크와 보리스가 마주하고 있었다.
지크는 산상노인을 보며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
그러자 어둠 속에 숨어 있던 흑의를 입은 살수들이 튀어나와 지크의 목에 칼을 댔다.
“됐다. 물러가라.”
산상노인의 말에 살수들이 다시 모습을 감추고 사라졌다.
산상노인이 지크를 보며 입을 열었다.
“지크 드레이커. 대륙 곳곳에서 이름이 자주 들려오더군.”
지크는 산상노인을 보며 말했다.
“쓸데없는 인사치레할 것 없이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고 싶군.”
그 말에 산상노인이 미간을 찡그렸다.
“드레이커는 예의를 가르치지 않는 건가.”
“예의를 지키지 않은 자 앞에서는 굳이 예의를 지킬 필요가 없지.”
“오만하기 그지없구나. 드레이커의 순혈이라 해서 내가 너를 죽이지 못할 거라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네 아비인 아서 드레이커라 할지라도 살막의 칼날은 피할 수 없을 거다.”
그 말에 지크가 씨익 웃었다.
“그 얘기, 아서 드레이커 앞에서 직접 할 수 있겠나.”
그러자 산상노인의 표정이 굳었다.
그가 손을 들어 올렸다.
동시에 어둠 속에서 살수들이 튀어나와 사방에서 지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보스!”
보리스가 급하게 다가가려 하자 뒤에 서 있던 길 안내를 한 살수가 검을 뽑아 그를 막아섰다.
촤아아악!
지크를 향해 휘둘러진 검이 목표물을 잃은 채 허공을 베고 지나갔다.
그때였다.
“으음.”
지크가 어느새 옥좌 쪽으로 다가가 산상노인의 목에 단검을 들이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보리스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식은땀을 흘렸다.
‘설마 보스, 저럴 목적으로 여기까지 온 건가?’
살막의 우두머리를 인질로 잡는다는 선택지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보스는 그 일을 행하고 있었다.
그때, 산상노인의 목에 칼을 댄 지크가 고개를 돌렸다.
그는 보리스와 칼을 맞대고 있는 살수를 향해 말했다.
“탐색전은 이 정도 하는 게 어떤가.”
그러자 흑의를 입은 살수가 뒤로 물러서더니 다른 살수들을 향해 손짓을 했다.
그가 천천히 복면을 벗었다.
피부가 까무잡잡한 사막 지대 특유의 인상을 가진 중년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지크에게 말했다.
“지크 드레이커. 놀랍군.”
지크가 단검을 치우니 옥좌에 앉아 있던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옆으로 섰다.
지크가 원래 자리로 내려오고 복면을 벗은 중년인이 옥좌로 올라가 앉았다.
지크가 옥좌에 앉은 사내를 향해 입을 열었다.
“산상노인.”
보리스는 그때서야 자신들에게 길을 안내해 준 살수가 진짜 산상노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옥좌에 앉은 산상노인이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지크를 바라봤다.
“내가 진짜라는 건 어떻게 안 건가.”
“비밀이라 말해 줄 수 없다.”
그 말에 산상노인이 손뼉을 치며 웃었다.
“대단하군, 지크 드레이커. 그래, 비밀이라니 더 묻지 않지. 그런데 자네가 우리 척살 지정 명단에 올라가 있는 건 알고 있나.”
“사막에 들어서면서부터 끈덕지게 따라붙는 걸 보고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
“그런데도 직접 이곳에 찾아오다니 배짱 하나는 알아줘야겠군.”
지크가 산상노인을 보며 말했다.
“단순한 배짱이 아니다. 그쪽도 알 텐데.”
산상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롬 제국에, 신성 왕국에, 스콜피온 놈들까지 한 명을 쫓아다니는 게 보통 있는 일은 아니니 말이야.”
“아벨이 살막에는 무슨 일인지 말을 안 해 주고 척살 의뢰만 했나 보군.”
그 말에 산상노인이 옥좌에 몸을 기댔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밑으로 착 가라앉은 느낌이었다.
보리스는 살얼음판을 걷는 듯 아슬아슬한 분위기에 심장이 떨렸다.
잠시 후, 지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살막과 거래를 하고 싶다.”
그 말에 산상노인이 다시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거래라. 굳이 왜 내가 자네와 거래를 해야 하지.”
“나를 이쪽까지 불러왔다는 건 얘기를 들어볼 의향이 있어서라고 생각하는데 맞나.”
이제 열여덟 살이 된 신입 기사에게 살수들의 왕이라 불리는 산상노인이 말려들고 있었다.
지크가 산상노인에게 이어서 말했다.
“아가멤논 성의 저주와 그레이엄 공작가의 영애가 걸린 저주를 내가 풀었다는 소문은 이미 들어 알겠지.”
산상노인은 잠자코 지크의 말을 듣고 있었다.
지크가 이어서 입을 열었다.
“거래의 대가로 막내 제자의 저주를 풀어 준다면 어떤가.”
그 말에 산상 노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살수의 왕답지 않은 태도였다.
그가 일어난 채 지크를 노려보다가, 한참 뒤에야 흥분을 가라앉히고 지크에게 물었다.
“……그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냐.”
“아까도 말했지만, 비밀이라 말해 줄 수 없다.”
여유롭던 산상노인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었다.
그 역시 지크의 능력을 알고 있었기에 척살 전 생포를 한 뒤 막내 제자의 저주를 풀도록 덫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그런데 지크가 이렇게 정면으로 치고 나올 줄은 몰랐다.
더군다가 기밀 중의 기밀인 막내 제자의 상황까지 정확히 알고 있었기에 산상노인으로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지크가 그에게 말했다.
“막내 제자의 저주를 풀어 주지. 거래 내용은 그 뒤에 같이 논의하는 걸로 하자고.”
본래 절박한 상황에 놓인 사람이 더욱 급한 법이었다.
지크는 그런 산상노인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시기가 맞아서 운이 좋았군.’
산상노인의 막내 제자가 저주로 죽었다는 사실은 전생의 임무를 수행하다가 알게 된 사실이었다.
전생에서 산상노인은 자신의 제자들에게 배신을 당해서 목숨에 위협까지 받았었다.
제국 측과 손을 잡은 그의 제자들이 산상노인을 몰아내고 살막을 차지한 것이었다.
북부 진영에 있던 지크는 이 산상노인을 구출하고 살막의 주요 정보를 빼내는 임무를 맡았었다.
갖은 고생을 해서 산상노인을 구해 내기는 했지만, 그는 거의 숨이 끊어지기 직전이었다.
죽기 전 산상노인은 지크에게 자신이 살면서 가장 후회했던 일을 넋두리하듯 이야기했었다.
가장 사랑했고, 아끼던 막내 제자가 저주에 걸려 죽어 갔을 때 아무것도 해 주지 못했던 게 가장 후회된다고 말이다.
그 누구보다 재능이 뛰어났던 제자였기에 가장 애정을 쏟았지만 결국 막내 제자는 저주를 이겨 내지 못했다. 그 이후로 그는 크게 상심하며 살막에서 거의 손을 떼고 제자들에게 맡겼다가 결국 배신을 당하고 말았다.
지크는 최후의 순간 산상노인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때 막내 제자의 치료를 위해서라면 뭐든 했지만, 결국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지. 더 해 볼 수도 있었을 텐데…… 지크 머레이. 내 손을 잡아 주시오. 마지막 순간만큼은 외롭고 싶지 않소…… 만약 그 아이가 살아 있었다면 반드시 내 손을 잡아 줬을…….’
그 말을 남기고 산상노인은 숨이 끊어졌었다.
살수의 왕이 맞이한 최후치고는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노쇠하고 나약했던 그의 모습과 지금 산상노인의 모습이 겹쳐서 보였다.
그때 산상노인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좋다. 네 제안을 받아들이겠다. 지크 드레이커.”
그가 옥좌에서 내려오며 손짓했다.
“따라와라. 제자가 있는 쪽으로 안내해 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