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slayer's Class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504
504화
후우웅! 훙!
선임 기사는 부하가 가져온 방패와 검을 들고 위협적으로 이리저리 휘두르다가 릭 앞에 섰다.
솔마 가문의 기사들은 중앙대륙 내에서도 자존심이 세기로 유명했다.
전통이 깊은 테베아 출신 기사들 대부분이 그러했지만 솔마 기사단의 기사들은 유달리 자신들의 실력에 자부심이 강했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고된 훈련과 시험을 모두 통과해야 겨우 기사로 임관하는 것이 가능했기에 일반적인 기사들과 다르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특히나 선임 기사 정도가 되기 위해서는 기사 임관 후에도 많은 임무를 수행해 훌륭한 실적을 내야 했기에 실전 경험도 풍부한 상태였다.
릭은 아까와 마찬가지로 검을 들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선임 기사와 마주 섰다.
서로 짧게 인사를 나눈 뒤, 선임 기사가 방패를 앞으로 내밀고 릭을 향해 달려 나갔다.
“하아아앗!”
테베아 왕국의 검술은 신성왕국의 팔라딘 검술과 비슷했다.
묵직한 방패로 상대방을 몰아붙이고 그 빈틈을 검으로 노리는 것이다.
실제로 테베아 출신 대륙 최강자 중 한 명인 오왕 피콜드 사브랑은 테베아 검술의 팔 할은 방패에 있다고 말할 정도였다.
쿠우웅!
선임 기사가 릭을 향해 묵직한 방패를 휘두르자 둔탁한 소리가 났다.
‘걸렸다.’
선임 기사는 그 충격으로 비틀거릴 릭을 향해 검을 휘두르려 했다.
그런데 방패가 움직이지를 않았다.
‘뭐, 뭐야?’
릭이 어깨로 선임 기사의 방패를 누르고 전혀 밀리지 않는 것이었다.
파렐과 함께 근력 운동에 힘을 써 온 릭은 예전의 릭이 아니었다.
흑검 기사단 내에서도 발군의 체력과 근력을 보여 주는 그였다.
릭은 오러를 쓰지 않고도 오러를 쓴 기사들을 몇 명씩 상대하고 전혀 지치지 않는 괴물 같은 면모를 보여 주기도 했던 것이다.
뒤에서 이를 지켜보던 아슬란이 놀란 듯 릭을 바라봤다.
‘옛날 생각이 나는군. 삼십 년 전에는 지금처럼 세련된 오러 훈련보다는 체력 훈련을 더 많이 했었지.’
아무리 오러를 열심히 훈련해도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근간이 흔들리기 마련이었다.
실제 전장 상황에서는 오러를 잘 쓰는 것보다 체력으로 버티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릭은 기사로서 가장 중요한 기본을 갖춘 셈이었다.
릭이 하체에 힘을 주고 어깨로 방패를 밀어붙였다.
“하아아앗!”
방패를 쥐고 있던 선임 기사가 릭의 힘에 밀려서 뒤로 물러났다.
“크으윽!”
어떻게든 버티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다리에 힘이 풀린 선임 기사는 균형을 잃고 넘어지고 말았다.
쿵!
무거운 방패가 선임 기사의 몸을 덮듯 위로 떨어졌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릭이 쓰러진 선임 기사의 가슴팍에 올라가 무릎으로 압박을 가하고는 그의 목에 검 끝을 들이밀었다.
“근력에 비해 방패의 무게가 너무 무거운 것 같습니다. 균형에 맞지 않는 무구는 오히려 전투에 방해가 되니 몸에 맞는 것을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흑검 기사단에서 온갖 전투를 겪으며 실제로 느낀 바를 조언해 준 릭이었다.
하지만 선임 기사는 그런 릭의 말을 모욕으로 받아들였다.
그가 오러를 일으키며 자신의 위에 올라탄 릭을 밀어 냈다.
쿵!
선임 기사가 비틀거리며 서자 뒤에 있던 다른 기사들이 달려와 그를 부축했다.
그는 릭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명예로운 기사의 대련에서 속임수를 쓰다니! 부끄러움을 모르는 건가!”
선임 기사의 말에 릭이 미간을 그러모으며 말했다.
“나는 속임수를 쓴 적 없습니다.”
“하! 그렇다면 오러를 쓰지 않고도 강철검을 검을 베고, 맨몸으로 방패를 밀어붙였다는 뜻인가! 전설 속 용맹의 기사도 그렇게는 못 할 것이다!”
그는 제프릭의 근력을 오러라고 착각한 것이었다.
선임 기사의 말에 다른 기사들의 표정이 사나워졌다.
속임수를 써서 기사의 명예를 더럽힌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만행이었기 때문이다.
릭이 그들을 보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오러를 쓰지 않았습니다.”
“흑검 기사단에서 거짓말만 배워 온 것인가!”
그런데 그때였다.
“이게 무슨 소란이냐!”
연무장으로 가주 대행인 조나단 솔마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그가 대치하고 있는 릭과 솔마 기사단원들을 한 번씩 노려보더니 목소리를 높였다.
“조렌.”
조나단의 부름에 선임 기사가 앞으로 나섰다.
“어찌 된 일인지 설명하라.”
조렌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조나단에게 말했다.
“흑검 기사단 측에서 정식으로 대련을 요청해 왔습니다. 대련을 거절할 경우 기사단의 명예에 흠결이 가기에…… 대련을 진행한 것인데 중간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습니다.”
그의 말에 조나단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불미스러운 일이란 게 무엇이냐.”
조렌이 릭을 가리키며 말했다.
“명예로운 대결 중 속임수를 썼습니다. 대련 중에는 오러를 쓰면 안 된다는 규칙을 어기고 몰래 오러를 쓰고서는 저희를 농락한 것입니다.”
그 말에 조나단이 릭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 말이 사실인가.”
그러자 릭이 고개를 내저었다.
“사실이 아닙니다. 저는 오러를 쓰지 않았습니다.”
조나단은 릭과 조렌 쪽을 번갈아 봤다.
사실 조나단은 멀리서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가 판단했을 때 릭이 오러를 사용해 속임수를 쓴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릭이 이전과 다르게 성장한 모습을 보여 놀라고 있던 차였다.
‘괜히 더 일을 크게 만들 필요 없다.’
그가 적당히 이를 수습하려 할 때였다.
“불미스러운 일이라.”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조나단이 고개를 돌렸다.
지크가 아린과 함께 연무장 쪽으로 나온 것이었다.
어느새 릭 옆에 선 지크가 아슬란을 보며 말했다.
“아슬란 경께서도 제프릭이 몰래 오러를 사용해 대련을 했다 판단하십니까.”
그 말에 아슬란이 코웃음 치며 말했다.
“오러는 무슨, 제프릭은 그야말로 순수한 근력으로만 대련에 임하였소. 오랜만에 보는 진짜배기 기사다운 모습이었지.”
아슬란의 말에 선임 기사인 조렌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지크는 아슬란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슬란 경께서 이리 말씀하셨다면 제프릭은 속임수를 쓴 것이 아니로군.”
순간 그의 눈빛이 날카로워지며 온몸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쿠구구구―
순식간에 연무장 전체를 압박하는 지크의 기운에 조렌은 물론 솔마 기사단 전체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지크가 그들을 보며 말했다.
“솔마의 기사들은 드레이커의 기사가 우스워 보이나 보군. 정당한 승부를 속임수라 우기며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걸 보면 말이야.”
지크가 내뿜는 엄청난 기세에 조나단 솔마는 그 압박감을 억지로 밀어내며 앞으로 나서서 입을 열었다.
“지크 경, 저희 가문의 기사가 저지른 무례에 대해 사과드리겠습니다.”
조나단 솔마가 사과하자 연무장을 꽉 채웠던 압박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지크가 조나단을 보며 말했다.
“소가주께서 사과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제프릭은 물론 그가 속한 흑검 기사단의 명예가 더럽혀지는 것은 참을 수 없습니다.”
그가 뒤의 솔마 기사단을 한 번 훑어보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소가주께서 제프릭의 실력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을 만한 기사를 골라 대련을 진행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저와 소가주가 함께 참관 한다면 지금과 같은 오해는 없을 것입니다.”
조나단은 기사단의 명예를 내세우는 지크의 제안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지크 경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어떤 기사를 내보내시겠습니까.”
그 말에 조나단이 고개를 내저었다.
“따로 내보낼 기사를 고를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직접 나서겠습니다.”
뒤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던 릭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혀, 형님께서 직접 말입니까?”
그런 릭의 반응에 조나단이 무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내가 나서면 안 될 일이라도 있는 것이냐.”
그 말에 릭이 다급히 고개를 내저었다.
“아닙니다. 형님과 다시 검을 맞댈 수 있을 거라 생각지 못하여…… 영광입니다.”
조나단은 그런 릭을 보다가 고개를 돌려 호위 기사들에게 말했다.
“내 검과 방패를 가지고 와라.”
그때 상황을 지켜보던 지크가 조나단에게 말했다.
“기왕이면 갑옷도 장착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정식 대련이니 말입니다.”
지크의 말에 조나단이 순간 울컥한 듯 움찔하다, 이내 평정을 찾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곧 호위 기사가 조나단의 검과 방패, 갑옷을 챙겨 왔다.
조나단은 묵직한 배갑을 장착한 뒤 오러를 주입해 헤르시온을 작동시켰다.
촤자자장!
갑옷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조나단의 몸을 휘감았다.
솔마 가문에서 주요 인사에게만 내리는 헤르시온이었다.
구형이기는 했지만 헤르시온 자체가 워낙 귀한 물건이라 이것만으로도 작은 성 하나를 살 정도였다.
조나단은 무구를 모두 챙겨 입은 뒤 릭 앞에 섰다.
그가 검만 들고 있는 릭을 보며 말했다.
“갑옷을 입지 않고 나를 상대할 셈이더냐.”
그 말에 릭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대답과 함께 릭이 흑령대의 헤르시온을 작동시켰다.
촤라라락!
철컥!
순식간에 배갑이 몸을 감싸더니 풀 플레이트 아머의 형태를 갖추었다.
이를 본 조나단의 눈빛에 이채가 어렸다.
헤르시온을 유지하려면 적어도 자색 기사 이상의 경지에 올라야 했다.
오랫동안 자색 기사의 경지를 넘어서지 못했던 릭이 자연스럽게 헤르시온을 발동시키는 걸 보고 그의 경지가 자색 기사 이상이라는 것을 알아챈 것이었다.
‘아까의 대련이 요행은 아니라는 뜻이로군.’
흑령대의 헤르시온을 장착한 릭과 솔마 가문의 헤르시온을 장착한 조나단이 서로를 마주하며 섰다.
지크가 가운데서 시작 신호를 보냈다.
“대련 시작!”
동시에 조나단이 묵직한 방패를 내세우고 앞으로 나아갔다.
선임 기사인 조렌과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깨끗하고 강맹한 정석적인 돌진이었다.
후우우웅!
갑옷의 무게와 방패의 무게가 합쳐져 엄청난 힘이 실린 공격이 릭을 덮쳤다.
휘이익―
릭이 재빨리 방패를 피해 사각으로 돌아섰다.
하지만 조나단은 이미 예상했다는 듯 능숙하게 대응했다.
그가 몸을 틀어 사각으로 파고든 릭을 향해 묵직한 검을 휘둘렀다.
후우우웅!
검이 대기를 가르며 릭의 허리 쪽으로 파고들었다.
파칭!
하지만 릭 역시 그냥 당하지는 않는다는 듯 검으로 조나단의 검을 쳐 냈다.
어찌나 강한 힘이 실렸는지 조나단의 검이 튕겨 나가고 손목이 시큰거릴 정도였다.
“큭!”
조나단이 뒤로 물러서며 다시 자세를 잡았다.
쿵!
그가 앞으로 무게 중심을 두고 방패를 쥔 채 돌진을 했다.
쿠구구구―
곧장 균형을 잡고 튀어 오르듯 돌진한 조나단의 공격은 테베아 기사 방패술의 정석이었다.
그에 릭은 어깨를 앞으로 내밀어 조나단의 방패 공격에 정면으로 부딪쳤다.
콰쾅!
엄청난 소리와 함께 먼지가 피어올랐다.
“허어……!”
이를 지켜보고 있던 아슬란이 탄식을 터트렸다.
먼지구름이 가라앉자 릭과 조나단이 서로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는 모습이 드러났다.
쿠구구구―
조나단은 자신의 방패 너머로 느끼지는 단단한 힘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오러를 쓰지 않은 단순 근력이라고?’
마치 뿌리가 깊게 박혀 있는 나무나 거대한 바위를 밀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쿠드드득―
조나단은 자세를 바로잡으면서 방패 너머의 릭을 보며 소리쳤다.
“미련한 놈. 기사의 대결에서 오로지 힘으로만 밀어붙이는 것은 능사가 아니다!”
오래전 릭을 직접 지도하던 때의 버릇이 나왔다.
순간 조나단이 방패를 비스듬하게 들고서는 방향을 바꿔서 옆으로 휙 돌았다.
그러고는 방패를 흔들어 이를 밀고 있는 릭의 균형을 흐트러뜨렸다.
조렌과 달리 묵직한 방패를 자신의 수족처럼 다룰 수 있었기에 보일 수 있는 기예였다.
조나단은 릭이 균형을 잃고 바닥을 굴렀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큰 착각이었다.
휘이익!
릭은 곧장 힘의 방향을 바꿔서 방패를 붙잡고 조나단의 옆쪽으로 돌아갔다.
그러고는 조나단의 대퇴부를 향해 다리를 힘껏 휘둘렀다.
콰쾅!
예상치 못한 하단 차기를 맞은 조나단이 오히려 균형을 잃고 휘청거렸다.
그가 방패를 놓고 뒤로 빠르게 물러났다.
“후욱. 후욱.”
조나단이 숨을 몰아쉬며 검을 쥐고 릭을 노려봤다.
뒤에 있던 솔마 측 기사들이 언성을 높였다.
“명예로운 기사의 대결 중에 박투술이라니!”
“비겁하기 짝이 없다!”
조나단은 기사들의 야유는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앞에 선 릭을 살폈다. 그는 릭이 확실히 이전과 달라졌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디 한 번 네가 원하던 대로 실력을 모두 보여 봐라.’
조나단은 양손으로 검을 잡고서 자세를 고쳐 잡았다.
솔마 가문의 비기인 오광검술의 기수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