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slayer's Class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571
571화
바토리 바사라브.
그녀는 다름 아닌 적왕 블라드 바사라브 백작의 딸이었다.
바토리가 지크를 노려보며 도끼를 꽉 쥐었다.
“……지크 드레이커. 네놈…….”
“다시 묻지. 왜 이 전쟁에 끼어든 건가. 진짜 적왕의 지시가 있었나.”
지크가 낮은 목소리로 말하며 바토리를 향해 한 걸음 더 다가가려 했다.
그러자 뒤에서 용언에 의해 묶여 있는 기사들이 기를 쓰며 앞으로 나서려 했다.
“으으윽! 백작 각하를 지켜야 한다!”
“각하! 저희가 가겠습니다!”
자신들의 몸이 부서지는 것은 전혀 생각지 않고 그녀를 위해 억지로 용언에서 벗어나려 애쓰는 것이었다.
이를 본 지크가 혀를 내둘렀다.
“기사들의 충성심이 대단하군. 우리 기사단에도 본받으라고 보여 주고 싶을 정도야.”
지크의 말에 바토리가 붉은 입술을 꾹 깨물더니 이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드레이커의 더러운 족속아. 나를 욕보이고 죽일 셈이겠지만 네 뜻대로는 안 될 것이다.”
그녀의 손목에서 날카로운 칼날이 튀어나왔다.
바토리는 증오와 환멸에 찬 눈빛으로 지크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지옥에서도 너를 저주하겠다, 지크 드레이커!”
그와 동시에 그녀가 칼날로 자신의 목을 찌르려 했다.
채앵!
그런데 칼날이 목에 닿기 전에 지크가 일으킨 그림자가 그녀의 목과 팔을 휘감았다.
그림자의 힘 때문에 바토리는 자신의 목을 찌를 수가 없었다.
“크으으윽.”
팔목에서 튀어나온 검날이 그림자에게 먹히더니 서서히 분해되어 사라져 버렸다.
이를 본 바토리가 절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죽음조차 허락하지 않고 나를 능욕하겠다는 것이냐.”
지크는 그런 바토리의 말을 듣고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아까부터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군.”
적들에게 자비를 베푼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무고한 이들을 참살하거나 다른 이들을 욕보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바토리는 지크를 세상 둘도 없는 악귀처럼 대하고 있었다.
그녀가 그림자에게 구속당한 채 소리를 내질렀다.
“여태껏 드레이커가 저질러 온 악행이 평생 숨겨질 것 같으냐! 네놈은 아버지를 죽이고 가문의 수호룡을 납치한 것도 모자라 죄 없는 백성들까지 죽였다! 그리고는 드레이커의 권력으로 이 사실 자체를 지워 버렸다!”
지크는 바토리의 말에 미간을 그러모았다.
“이봐, 미안하지만 나는 그런 적이 없다. 내가 뭣 때문에 바사라브 영지를 침공하고 적왕을 죽인단 말인가. 거기에 수호룡? 바사라브 영지에 아직 살아 있는 용이 있었다는 건가.”
바토리의 입에서 쏟아져 나온 말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들이었다.
지크의 황당하다는 듯한 반응에 바토리가 지크를 노려보며 사나운 목소리로 말했다.
“더러운 드레이커 놈. 네 녀석이 아버지의 심장에 검을 꽂고, 수호룡의 목에 족쇄를 채운 것을 내가 두 눈으로 봤는데 부정한다고? 발뺌한다고 하여 그 사실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지크는 바토리의 선명한 분노를 느끼며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설마?’
그가 손짓하자 바토리를 붙잡은 그림자들이 그녀를 구속한 채 지크의 앞으로 스르륵 움직였다.
바토리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지크를 보며 몸부림쳤다.
“아무리 나를 욕보인다 해도! 바사라브의 혼은! 드라큘 기사단의 혼은 결코 굴복시킬 수 없을 것이다!”
“누가 들으면 오해할 법한 소리를 하는군. 가만히 있어 봐라.”
지크가 장갑을 벗고 바토리의 이마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이를 본 드라큘 기사단이 피눈물을 흘리며 소리쳤다.
“악마 같은 드레이커가 각하께 사악한 힘을 펼치려 한다!”
“놈을 막아야 한다!”
“각하! 조금만 버티십시오! 저희가 어떻게든……!”
절절한 드라큘 기사단의 목소리를 들으니 지크는 자신이 진짜 악당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속으로 혀를 찼다.
‘일단 어떻게 된 건지를 먼저 알아봐야겠군.’
지크는 불쾌한 감정을 뒤로하고 용의 지혜를 펼쳐 바토리의 기억을 살펴봤다.
우우우우웅!
그의 머릿속에 바토리의 기억이 흘러들어왔다.
“아버지!”
바토리의 앞에 검에 심장이 꿰뚫린 적왕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검을 든 자가 고개를 돌려 바토리를 바라봤다.
그는 다름 아닌 용안을 빛내고 있는 지크였다.
“적왕의 핏줄인가.”
지크가 바토리를 응시하며 손에 쥐고 있던 쇠사슬을 잡아당기자 뒤에 쓰러져 있던 붉은 머리의 소녀가 끌려 나왔다.
바토리가 그녀를 보며 소리쳤다.
“에오스 님!”
그녀가 바로 바사라브 가문의 수호룡, 에오스였다.
에오스는 목에 사슬이 감긴 채 바토리에게 말했다.
“바토리…… 도망, 도망가거라!”
그런 둘을 바라보고 있던 지크가 사슬에 전격을 흘려 넣었다.
파지지직!
에오스가 그 힘을 버티지 못하고 신음을 흘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지크가 고개를 돌려 차가운 눈으로 바토리에게 말했다.
“바토리 바사라브. 내 이름은 지크 드레이커다. 오늘을 잘 기억해라. 그리고 이 힘을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지크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솟구치더니 수호룡인 에오스에게 스며들었다.
에오스의 눈동자가 검게 물들더니 몸이 변하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
강력한 용의 기운을 내뿜으며 에오스가 본신으로 돌아왔다.
크라라라라라라!
용의 본체로 돌아간 에오스의 목에는 여전히 지크가 감아 둔 사슬이 묶여 있었다.
그가 에오스의 몸에 올라타자 바토리가 악을 쓰며 외쳤다.
“지크 드레이커, 네 놈에게 반드시 복수할 것이다!”
“재밌군. 그날이 오길 기다리도록 하지.”
지크의 비웃음과 함께 에오스가 입을 쩍 벌리고 강력한 브레스를 뿜어내 성벽을 날려 버렸다.
쿠구구구구!
지크는 용을 타고 유유히 사라졌으며 그렇게 그가 지나간 자리는 마치 재앙이 일어난 듯했다. 그날로 바사라브 백성들의 터전은 모조리 파괴되었다.
지크는 바토리의 기억을 읽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누군가가 기억을 조작한 것인가.’
그는 바토리의 기억을 면밀하게 살폈다.
그러고는 미세하지만, 기억 안에 뭔가가 끼어 들어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곧장 시스템에게 말했다.
‘시스템, 이 기억에 덧씌워진 것을 분석해 줘.’
[사용자의 요청에 따라 해석을 진행합니다.]곧 시스템이 분석을 마치고 지크의 눈앞에 메시지를 띄웠다.
[분석을 완료했습니다. 기억의 오염 지점을 찾았습니다. 이를 정화하시겠습니까?]지크는 곧장 해주를 통해 정화를 명했다.
[정화의 권능으로 오염을 정화해 기억을 정상화하겠습니다.]우우우우웅!
지크의 몸에서 대정화의 오오라가 흘러나왔다.
황금빛 파동이 퍼져 나와 그의 앞에 있던 바토리는 물론 뒤에서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드라큘 기사단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츠츠츠츠츠―
황금빛 빛무리가 바토리와 드라큘 기사단을 정화하고 지나가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이건?”
바토리의 기억이 빠르게 다시 재생됐다.
적왕의 심장을 꿰뚫은 검을 든 자.
지크의 얼굴이 덧씌워져 있던 기억이 서서히 바뀌었다.
드레이커의 복장을 한 채 지크와 비슷한 검은 색 검을 들고 있는 사내.
지크 역시 바토리의 새로운 기억을 되돌려 보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아서 드레이커.’
죽었다고 알려진 아서 드레이커가 적왕의 심장에 검을 꽂아 넣고 바사라브의 수호룡을 납치한 뒤 무자비한 학살을 감행한 것이었다.
동시에 자신이 저지른 참혹한 악행을 지크에게 뒤집어씌워 바토리의 분노가 그에게 향하도록 조작을 했다.
지크는 아서 드레이커가 여태껏 어떻게 드레이커 가문의 권력을 유지해 왔는지 잘 알고 있었음에도 그의 비열함에 치를 떨었다.
그때, 정화의 힘으로 제대로 된 기억을 찾은 바토리가 퍼뜩 놀라며 눈을 떴다.
“어, 어떻게 이런……?”
갑자기 돌아온 정상적인 기억에 그녀는 물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지크는 바토리를 붙잡고 있던 그림자를 해제한 뒤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백작, 아무래도 함께 얘기할 것이 좀 있을 것 같군.”
* * *
지크는 협곡 안쪽에 마련해 둔 드라큘 기사단의 진지 쪽으로 들어왔다.
막사 안에 앉아 바토리가 들어오기를 기다리던 지크는 곳곳에 붙어 있는 철저한 계획표와 전도들을 보며 감탄했다.
‘나를 붙잡기 위해 이 모든 것들을 다 준비했다는 건가.’
적왕으로 알려진 블라드 백작과 영지를 지켜주던 수호룡이 사라진 상황.
드라큘 기사단이 중앙대륙에서도 손꼽히는 이들이기는 하나 흑색 기사인 적왕 없이 그들만으로 자치 도시인 바사라브를 지키기는 무리가 있었다.
폐허가 된 도시를 수습하는 것만 해도 힘겨웠기에, 더 혼란을 가중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바토리는 적왕의 죽음을 숨기고 용의 힘이 깃들어 있는 헤르시온을 이용해 적왕을 흉내 내며 영지를 지키는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방법은 어느 정도 먹혀들어 갔지.’
지크 역시 직접 그녀와 맞부딪치기 전까지는 적왕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전혀 못 했으니 말이다.
용의 힘을 십분 활용하는 바토리의 힘은 실제로 매우 강력했기에 다른 이들은 구분하지 못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지크는 엘더 드래곤의 심장을 가졌기에 이를 눈치챌 수 있었다.
‘바토리가 입고 있던 헤르시온, 그 정도 위력의 아티팩트를 만들 능력이라면 해방전쟁에서 살아남은 용일 가능성이 크다.’
하데스와 비슷하거나 그보다 더 나이가 많은 용일 듯싶었다.
그런 용을 아서 드레이커가 붙잡아 갔다는 것은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적왕은 죽였지만, 용은 살려서 데리고 갔다. 어디 다른 곳에 쓸 데가 있다는 뜻인데.’
지멘스의 미궁에서 지크를 습격한 호문쿨루스에서도 아서 드레이커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영웅왕의 호문쿨루스에, 엘더 드래곤의 심장, 살아 있는 수호룡까지.
아서 드레이커가 무슨 일을 벌이려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결코 대륙에 이로운 방향은 아닐 듯했다.
골치 아픈 상황에 한숨을 쉬며 생각을 정리하는 그때 막사 안으로 바토리가 들어왔다.
지크의 공격에 부서졌던 헤르시온은 시간이 흐르며 다시 재생된 듯 원래의 모습대로 돌아와 있었다.
바토리는 기억이 돌아오기는 했지만, 지크를 완벽히 믿을 수는 없다는 듯 경계하는 표정으로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녀가 지크를 보며 말했다.
“나는 여전히 드레이커 족속 자체를 믿을 수 없다.”
그 말에 지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니 반갑군.”
지크 역시 드레이커의 혈족을 쉽게 믿을 수 없다는 점에 동의했기에 아무렇지 않게 대꾸했다.
그의 서슴없는 대답에 바토리가 살짝 당황한 듯 멈칫하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지크 드레이커, 네가 내 기억을 다시 조작한 게 아니라면 아버지를 살해하고 수호룡을 납치한 뒤 바사라브의 백성들을 학살한 자는 아서 드레이커라는 것이겠지.”
“그래, 나는 오염된 기억을 정화했을 뿐 뭔가 조작한 것은 전혀 없다.”
지크로서는 진실을 알려 준 것이었지만, 바토리로서는 이 역시 쉽게 믿기 어려웠다.
그는 아서 드레이커가 뿌린 불신의 씨앗에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고서 본론을 꺼냈다.
“아서 드레이커가 왜 적왕을 죽이고 수호룡을 납치한 것이냐.”
그 말에 바토리가 미간을 그러모으며 대답했다.
“그건 오히려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아버지께서는 언제나 중립을 표방하셨고 영지의 자치권만 존중해 준다면 그 어느 곳에도 개입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셨었다. 우리로서도 드레이커 쪽이 먼저 암습을 한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다. 네놈들이 뭔가 꿍꿍이를 가지고 사람들의 눈을 속이는 것 아니냐?”
바토리의 말에 지크가 고개를 저었다.
“알겠지만 아서 드레이커는 공식적으로 죽은 자다. 현 드레이커의 가주인 칼리 드레이커께서는 과거의 드레이커가 저지른 잘못을 바로잡고자 하시지.”
그의 말에 바토리가 영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칼리 드레이커가 가주가 되고 나서 처음 한 일이 연합군을 규합해 쥬피터를 공격한 것이었다. 아서 드레이커와 다른 양상이기는 하지만 여태껏 드레이커가 해 왔던 것과 비슷한 일이지. 정복하고 굴복시키는 것.”
지크는 그런 바토리의 말에 순간적으로 반박하기가 어려웠다.
여러 가지 사정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는 했지만, 표면적으로는 바토리의 말이 맞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말하니 할 말이 없긴 하군. 하지만 롬의 전대 황제와 지멘스가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는 건 부정할 수 없을 거다. 어쨌든 우리로서는 최악의 결과를 막기 위해 차악을 선택한 것이라 이해해 주길 바라지.”
바토리가 지크를 보며 말했다.
“차악을 선택한 것이라. 정복자들의 좋은 핑곗거리지.”
헛웃음 섞인 그 말에 지크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놈들을 막지 않으면 더 무서운 정복자들이 아래에서 치고 올라올 거다.”
그의 말에 바토리가 인상을 썼다.
“그게 무슨 말이냐.”
“마왕. 마계의 군주들이 마왕을 부활시키려 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마계와 현상계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겠지. 그리고…….”
지크가 바토리의 눈동자를 마주 보며 말했다.
“그 끔찍한 전쟁을 일으키려는 자가 바로 아서 드레이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