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100
0099 이상한 나라의 소은이(1)
“수환아, 애들 간식은 다 챙겼어?”
“응. 아, 페엥이 먹을 거 안챙겼다.”
나는 다급히 냉장고로 달려가, 미리 진공포장을 해두었던 정어리 몇 마리를 챙겼다.
다시 한 번 혹시라도 빠진 게 있나 싶어 확인을 해본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트렁크에 커다란 박스를 집어넣었다. 동물들이 먹을 간식들이 담긴 박스였다.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분주히 움직이며 준비를 하는 것은, 오랜만에 펩드라마의 촬영 계획이 잡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카페에서 간단하게 찍는 형태가 아니라, 완전히 스튜디오 하나를 빌려서 찍어야 하는 펩드라마였다. 나름대로 스케일이 크다고 할 수 있었다.
아무튼 기본적인 준비를 마친 나는 차 옆에 서있던 소은이에게 다가갔다.
“소은아, 준비 됐지?”
“웅! 준비!”
내 물음에 소은이가 두 다리를 어깨넓이 만큼 벌리더니, 앙증맞게 쥔 주먹을 가슴께로 들어올렸다.
너무 귀여워 찰칵찰칵, 소리를 내며 사진을 찍은 나는 곧바로 소은이를 카시트에 앉혔다.
“누나도 준비 됐지?”
“준비라고 할게 있어? 우리는 사실 그냥 자면 되는 거잖아.”
“그건 그렇지.”
펩드라마의 내용에 따르면 우리 두 사람의 출연장면도 있었다. 물론, 자는 장면이 전부였지만 말이다.
“압빠, 출발! 출발!”
“그래, 가자.”
나는 카시트에 앉아 발을 동동거리며 출발을 요구하는 소은이의 외침에 피식 웃음을 지었다. 동물들을 모두 차에 올린 나는, 곧장 차를 몰아 해운대를 향해 이동했다.
해운대의 요트경기장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촬영 스튜디오가 오늘의 목적지였다.
이른 아침부터 출발했기 때문인지, 다행스럽게도 차가 막히는 일은 없었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도착하니 촬영 스태프들이 주차장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아, 제가 늦었나요?”
“아뇨, 일찍 오셨어요. 저희가 더 일찍왔을 뿐이죠. 짐 내리는 데 시간이 좀 걸리거든요.”
바닥에 있는 끌차에 짐들이 가득 실려 있는 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인 나는 차에서 내려, 짐과 동물들을 내린 다음 소은이도 내려주었다.
“소은아 안녕!”
“안넝!”
차에서 내려 바닥에 내려주니, 소은이는 몇 번 봤다고 익숙해진 촬영 스태프들을 보며 손을 붕붕 흔들었다.
그 모습에 피식 웃은 나는 곧바로 스튜디오 내부로 들어갔다. 미리 예약도 해둔 상태였기에, 입장에 문제는 하나도 없었다.
“오……. 초대형 크로마키.”
커다란 스튜디오로 들어가니,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크로마키(Chorma-Key)에 쓰이는 푸른색의 벽이었다. 한쪽 벽면 전체가 초록색 패널이 가득 붙어 있는 것이었다.
간간히 영상을 찍을 때나 방송을 할 때 사용하는 스튜디오인 카페 3층에도 크로마키 패널이 있긴 한데,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크기였다.
사람을 5명이나 6명 정도는 수직으로 세울 수 있을 법한 높이의 벽면이 전체적으로 초록색인 것이었다. 옆으로는 수십여 명도 충분히 누울 수 있을 길이였다.
하지만 이내, 더더욱 눈에 띄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이번 촬영을 위해 미리 세트도 만들어두었기 때문이다. 그것들이 스튜디오 한 켠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상태였다.
“잘 만들어졌네. 확실히 세트 제작 전문가들인가봐.”
세트도 다 외주 의뢰를 준 것이었기에, 나는 무척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세트들을 확인했다.
그리고 촬영을 위한 모든 준비가 끝이 나 있는 것을 확인한 나는, 곧바로 촬영을 시작했다.
시작은 우리 세 가족이 잠을 자고 있는 모습을 찍는 것이었다.
나와 누나, 그 사이에 있는 소은이는 평소 입는 잠옷을 입고 미리 준비해둔 침대에 누워 자는 모습을 찍었다.
얌전히 자는 누나와, 그 옆에서 똑같은 자세로 자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며 스태프 중 일부가 킥킥거리며 웃음을 흘렸다.
“우웅.”
그러던 도중, 가운데에 있던 소은이가 꿈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리에서 일어난 소은이는 반쯤 감긴 눈으로 나와 누나를 바라보았다.
“엄마? 압빠?”
충실하게 자는 연기를 한다고 조금도 움직임이 없는 우리를 보던 소은이는 다시금 누우려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몸이 뒤로 넘어가려던 도중, 살짝 열린 문 밖으로 토끼 한 마리가 움직이는 모습을 바라본 소은이가 침대에서 내려왔다.
푹신한 침대를 엉금엉금 기어 내려온 소은이는 토끼 한 마리가 움직인 곳을 뒤따랐다.
“오디가찌?”
잠깐 토끼를 놓친 소은이였지만, 조금 두리번거리니 조금 떨어진 곳에서 토끼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따!”
토끼를 발견한 소은이는 그대로 오도도도, 달려가 토끼를 차악! 붙잡았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불이 탁! 꺼졌다.
불이 꺼짐과 동시에, 우당탕탕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세트를 바꿨다. 침실이던 세트는 순식간에 널찍한 들판으로 바뀌어 있었다. 벽이 크로마키로 초록색이라는 것만 빼면 말이다.
“우아아아!”
불이 꺼지고, 잠깐 우당탕탕 소리가 나더니 주변이 바뀐 것을 바라본 소은이가 무척 놀란 듯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 틈을 타서, 소은이의 품에 안겨 있던 오기토가 파다다닥 움직이며 도망쳐버렸다.
“오디가!”
소은이는 그런 오기토를 곧장 뒤쫓았다. 그리고, 세트장의 코너를 살짝 도는 것과 동시에 미리 준비되어 있던 풍경이 소은이를 반겼다.
소은이가 발견한 것은 동물들이었다. 그것도, 평범한 모습의 동물들이 아니라, 인간들처럼 옷을 입고 행동하고 있는 동물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으따, 이거 와이래 맛있노?”
“거 내가 함 핥았다 아이가.”
“퉤엣! 뭐꼬!”
정장같은 새카만 옷을 입은 라쿤들은 손처럼 쓰는 앞발로 자그마한 찻잔을 들고서 차를 홀짝이고 있었다.
“으헝, 올해 당근 농사는 다 망한 거샤!”
“그러니까 당근이 아니라 배추를 키우자고 한 거샤!”
“싸우지 말고 당근이나 먹으샤!”
“나는 당근이나 배추보다 상추가 더 좋은 거샤!”
“후아아악. 나는 죽는 줄 알았샤.”
“오기토, 너는 뭘 하다가 이제 오는 거샤?”
그리고, 그 뒷편으로는 자그마하게 만들어둔 화단에서 열심히 움직이는 토끼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저마다 농부인 것을 티내겠다는 듯, 머리에 맞는 밀짚모자를 하나씩 쓰고 있었다. 물론, 귀가 뿅- 튀어나온 형태의 밀짚모자를 말이다.
소은이는 그 모습을 보더니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재빨리 다가갔다.
“우아! 얘두라!”
라쿤들과 토끼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간 소은이는 두 팔을 활짝 벌리며 동물들을 불렀다.
“으아아악?!”
“뭐, 뭐꼬!”
“뀨엑! 애기 떴샤!”
“어떻게 온 거샤! 오기토, 너샤?!”
“나, 나는 모르는 거샤!”
“모르긴 뭘 모르는 거샤! 네가 제일 늦게 왔샤!”
그리고, 소은이를 발견한 동물들은 갑자기 혼비백산하더니 우왕좌왕하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소은이는 그런 동물들의 반응에는 크게 신경쓰지 않고, 토끼즈에게 다가가 오기토를 콰악- 붙잡았다. 애초에 소은이의 목적은 제게서 도망친 오기토를 붙잡는 것이었다.
“자바따!”
“뀨엣!”
오기토는 소은이의 손에서 벗어나려는 듯이 눈알을 데록데록 굴렸지만, 놓칠 생각이 없는 소은이가 워낙 단단하게 틀어쥔 덕분에 도망칠 방법은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오기토를 붙잡고 있는 소은이는 만족스런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요기서 모해?”
자신을 바라보며 어정쩡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라쿤들과 토끼들의 모습에, 소은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애기는 여기 어떻게 온 거샤……?”
“우앗! 토오, 말해써!”
그러던 도중, 일기토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게 된 소은이는 깜짝 놀랐다는 듯이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물론, 그것은 소은이의 귀에 있는 자그마한 이어폰으로 내가 이야기를 번역해주는 것이었지만, 이미 연기라는 개념 자체를 이해하고 있는 똑똑한 우리 소은이는 충실하게 제 역할을 이어갔다.
“신기해! 토오, 또 말해바!”
소은이는 제 손에 쥐어진 오기토를 살며시 흔들었다. 덕분에 오기토 녀석만 롤러코스터를 타는 느낌을 만끽해야 했다.
결국, 오기토는 항복의 백기를 들어올리듯 귀를 파닥거렸다.
“뀨, 뀨엑! 사, 살려주샤!”
“말해써!”
오기토가 살려달라는 말을 하자마자, 흔들어대던 것이 뚝! 멈췄다.
그리고, 히히- 웃음을 지은 소은이는 동물들을 불러모았다. 바닥에 털푸덕, 앉더니 제 옆을 손바닥으로 탁탁 친 것이었다.
도망을 쳐야하나 말아야 하나,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을 하던 라쿤들과 토끼즈는 천천히 소은이에게 다가왔다.
“요기, 오디야?”
제 주변에 동물들을 끌어모은 소은이는 주변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러자 정장같은 검은 옷을 입고 있던 두 라쿤 중 하나인 소포동이 슬쩍 앞으로 나왔다.
“엣흠! 여가 바로, 동물들의 숨겨진 세계! 동물의 숨이다- 안카나!”
“우웅?”
“마, 니는 저리 가라! 설명을 와 그지 같이 하노! 동물의 숨이 뭐고? 아그야. 여가 바로, 이상한 나라다! 우리 동물들이 인간들에게 보여주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안방인기라. 니도, 카페에 있을 때랑 집에 있을 때랑 다르다 아이가? 이해했제?”
“몰라!”
해맑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휘휘 내젓는 모습에 대포동이 이마를 탁! 쳤다.
“아따, 마……. 우짜노? 아, 됐다. 말로 설명하는 것 보다 일단 구경이나 해라. 따라온나!”
대포동은 정장같은 옷 주머니에 앞발을 집어넣더니, 줄을 하나 꺼내들었다. 자세히 바라보면 옷의 뒷 부분에 연결 된 줄이라는 걸 알 수 있었는데, 대포동은 그것을 소은이의 손에 쥐어줬다.
“잘 따라온나!”
소은이가 줄의 끝을 잡은 것을 확인한 대포동은, 앞장서서 어기적거리며 걸어가기 시작했다.
“가치 가아!”
앞장서서 가기 시작하는 대포동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소은이는 한 손으로는 여전히 오기토를 붙잡은 채, 대포동의 뒤를 열심히 쫓아갔다.
미리 지어둔 세트와, 움직임에 맞춰 추가해주고 있는 세트들을 이리저리 파고들며 이동한 대포동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개와 고양이들이 절반씩 영역을 나눠 가지고 있는 공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