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153
0152 서바이벌 드림팀(7)
거센 비가 그치지 않고 사흘 동안 내리 쏟아지는 것에, 우리의 심심함은 폭발할 지경이었다.
다만,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 우리의 삶은 조금 더 윤택해지고 있었다.
할 일이 없다는 것에 기인한 지루함을 더 이상 참지 못한 권설도와 김손이 이리저리 움직여댔기 때문이다.
미리 왕창 구해둔 대나무와 덩쿨을 비롯한 각종 재료들로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시작한 것이었다.
김손이 가장 처음 만들어낸 것은 덩쿨을 가볍게 엮고, 대나무로 틀을 만들어 해먹을 완성했다. 사람 수대로 만들어낸 해먹 덕분에, 우리는 무척 편안한 잠자리를 가지게 되었다.
그 외에도 각종 그릇을 비롯한 식기류, 잠깐 근처를 돌아다닐 때 쓸만한 우산 같은 것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권설도는 촬영진들이 편하게 촬영할 수 있도록 주변에 지붕을 깔아댔고, 화장실로 이어지는 통로 같은 것들도 만들며 집을 거대한 요새처럼 만들어가고 있었다. 더불어, 매 시간 늘어나는 동물들이 쉴만한 곳 역시 만들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손으로 뭔가를 할 수 있는 두 사람과 다르게, 나를 포함한 나머지 세 사람은 그냥 지루하게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지루함을 참지 못한 나는 촬영을 하고 있는 촬영감독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위장색 같은 옷을 입고 촬영하는 감독들이었다. 다만, 그 감독들에게 특이한 점이 있었다.
“……감독님. 괜찮아요?”
“예? 뭐가요?”
카메라를 들고 있는 촬영감독에게 괜찮냐고 물으니 무슨 문제라도 있냐는 물음이 돌아왔다.
아니, 정말 몰라서 그렇게 되묻는 건가? 당신 머리에 있는 극락조랑, 등에 매달려 있는 나무타기캥거루 말이야!
머리에 있는 극락조와 등에 매달려 있는 나무타기캥거루를 빤히 바라보니, 촬영감독이 그제야 알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 괜찮아요. 오히려 뭔가 좀 신기한 체험을 하는 느낌이라, 재미있기도 하거든요.”
간혹 동물 관련 다큐 영상의 촬영감독들이 동물들을 몸에 얹고 있는 사진이 있는데, 그 사진의 주인공이 된 것 같다며 좋아하는 것이었다.
“복슬복슬 새집!”
머리 위에 앉은 극락조에게 집 취급 당하는 건 아는지 모르는지, 마냥 좋다며 웃음을 지으며 촬영하고 있는 촬영감독의 모습에 고개를 내저을 수밖에 없었다. 뭐, 본인이 좋다면 상관없겠지.
촬영감독에게서 시선을 돌린 나는 해먹에 누워,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휴대폰이 있긴 하지만, 통화권 이탈로 인터넷도 안 되는 걸로 뭔가 하기는 애매했다.
잠시 잠에 빠지려 하니, PD가 다가와 인터뷰를 진행하는 모습이 보였다.
모처럼 비도 쏟아지고, 할 것이 없다 보니 이 시간을 틈타서 인터뷰하는 것이었다. 시작은 김손이었다.
“지금까지 여기서 생존하셨는데요, 어떠셨나요?”
“음……. 처음에는 조금 힘들지 않을까, 걱정도 했는데. 생각보다 할만한 거 같아요. 언니, 오빠들 덕분인 거 같지만요.”
“그럼 더 오랜 기간 있을 수도 있겠네요?”
“앗, 그건 좀…….”
어색하게 웃는 김손의 모습에 PD가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혹시, 본인이 가진 초능력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초능력을 가질 수 있다면 어떤 초능력을 가지고 싶으신가요?”
“당연히 수환 오빠의 초능력이죠! 사실, 여기서 이렇게 태평하게 있을 수 있는 것도 다 수환 오빠 덕분인 거 같거든요. 저기 멧돼지만 해도 저희한텐 맹수나 다름없잖아요? 그런 멧돼지를 오히려 부려먹는 건 다 수환 오빠 덕분이죠. 물론, 귀여운 동물들이랑 대화가 통한다는 게 제일 부럽지만요!”
나무타기캥거루의 새끼 한 마리를 품에 안은 김손은 귀여워 죽겠다며 발을 동동 굴러댔다.
그 모습에 피식 웃고 있으니 권설도와 김바리, 하인두 순으로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공통적으로 던져진 질문인 ‘다른 사람의 초능력을 갖고 싶다면 어떤 것인가?’의 답이 하나같이 내 초능력을 꼽았다.
“수환 형님 초능력이 제일 부럽습니다. 제가 아무리 건설 계열 초능력이 있어도, 이 정도 규모의 집을 대나무로 지을 수 있던 건 전부 수환 형님의 도움이 있던 덕이니까요.”
“저도 수환 오빠 초능력을 갖고 싶어요. 그러면 돌고래나 범고래 같은 애들이랑 짝짜꿍해서 큰 물고기도 잡을 수 있을 거 같은데…….”
“다른 애들도 수환이 초능력을 최고라고 생각했죠? 저도 똑같네요. 먹을 거나, 위협을 찾아내는 능력도 생존에 지대한 영향이 있지만 사실 그건 수환이 초능력이면 다 해결되는 거나 마찬가지죠.”
앞선 팀원들의 인터뷰를 듣고 있으니 괜히 부끄러워졌다. 워낙 내 초능력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많긴 하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근처에서 듣게 되니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내게도 그 부끄러움을 유발한 인터뷰 시간이 찾아왔다.
“이제 생존이 절반 정도 진행되었는데, 소감이 어떠세요?”
“음……. 뭐랄까, PD 님께 죄송하네요.”
“제게요? 어째서요?”
“원하신 그림은 이게 아니었을 건데, 제가 망친 게 아닌가 싶어서요. 무인도 조난 생존기를 찍고 싶으셨을 건데, 제가 무슨 무인도 자연친화적 휴가 영상 같은 걸 찍고 있잖아요.”
내 말에 웃음을 터트린 PD가 이내 고개를 가볍게 내저었다.
“꼭 그런 건 아니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애초에, 기획 자체가 무인도에 조난되었을 때 어떤 초능력이 가장 유용할지 찾는 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요. 어떤 초능력이 생존에 도움이 될까? 하는 시청자들의 호기심 충족이 메인인 거죠.”
그림을 망치기보다는 되려 원하는 그림이 확실하게 나오고 있다며 좋아하고 있었다.
“오히려, 제가 더 감사하죠. 세상 어딜 가야 이런 그림을 찍을 수 있겠습니까?”
김손이 다른 사람들의 인터뷰 시간에 뚝딱 만들어낸 자그마한 해먹에 나무타기캥거루가 올라타 흔들거리고 있으며, 그 위에서 극락조가 삑삑거리며 울고 있었다.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이니 PD가 다른 질문들을 이어갔다.
지금 제일 하고 싶은 게 뭐냐, 돌아가면 뭘 할 거냐 등등 여러 질문들이 이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 질문 하나가 남았다.
“다른 분들에게도 다 한 번씩 드린 질문인데, 다른 사람들의 초능력을 가지게 된다면 어떤 초능력을 가지고 싶으신가요?”
그 질문에 나는 곧바로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다른 이들이 그 질문을 받을 때부터 고민했던 건데, 아직도 결정이 나지 않았다.
“솔직히, 진짜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근데, 도저히 결론이 나질 않네요. 다들 확실한 장점이 있으니까요.”
“그래도 꼭 하나만 선택하자면 어떤 걸 선택하시겠습니까?”
“흠……. 정말 딱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김손의 초능력이겠죠. 사실 지금 저희가 쓰는 도구 대부분을 만들어준 게 김손이니까요.”
평범한 사람이 조난되었을 때를 가정한다며 온갖 도구를 압수해버린 악랄한 제작진의 행동에도 편안한 생활을 누릴 수 있는 것은 김손의 영향이 컸다. 돌을 뚝딱뚝딱 깨부숴 돌칼을 만들고, 돌도끼를 만들며 도구를 만들어준 덕이었다.
도구를 뺏은 보람이 거의 없었다며 투덜거리는 PD의 말을 끝으로, 인터뷰가 끝이 났다. 물론, 아직 절반가량밖에 지나지 않은 생존이었기에, 우리의 생존은 며칠 더 이어져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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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간 쉼 없이 내리던 비가 그치니, 거짓말처럼 하늘이 맑아졌다. 비가 언제 왔냐는 듯, 그 흔적들이 하나둘씩 사라져갔다.
하지만 비가 오며 함께 오게 된 동물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넓은 그늘, 비가 오더라도 빗물을 막아주는 지붕, 맛있는 식량까지 쉽게 얻는 곳이다보니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물론, 완전히 우리에게 의지하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조만간 떠날 것임을 분명히 알려준 상태였기에, 자기들끼리 알아서 식량을 구해 먹기도 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그렇게 빗속에서 반강제적으로 집에 틀어박혀 있어야 했던 우리는 주변을 쏘다녔다. 소비하기만 한 식량을 채워 넣고, 비바람에 틀어진 벽들을 재정비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할 일을 모두 끝낸 우리는 다시금 해변에 집결했다. 집에 박혀 있을 때 느꼈던 지루함을 보상받기라도 하겠다는 듯, 우리는 정말 열정적으로 놀았다.
또다시 찾아온 듀공과 수영하는 것은 기본이고, 어슬렁거리며 다가와 우리를 놀래킨 바다악어 녀석을 붙잡아 악어보트로 부리거나, 몇 개의 대나무를 엮어 만든 서핑보드까지 타고 노는 것이었다.
이미 무인도 조난 생존물과는 거리가 멀어진 것을 확실히 인지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우리는 정말 거리낄 것 없이 놀기 시작했다.
하루는 바다에서 놀고, 또 하루는 숲속의 여러 동물들의 서식지를 구경하는 식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이었다.
생존의 고생과 고난 따위는 눈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는 생존이 이어졌고, 결국 생존의 마지막 날이 찾아왔다. 이 무인도에서 탈출할 시간이 찾아온 것이었다.
“자, 그럼 뗏목부터 만들어서 탈출할까?”
우리는 곧바로, 집의 외벽으로 쓰던 대나무 일부를 뜯어와 배를 만들기 시작했다. 배라고 해봐야 넓고 평평하게 만든 배가 전부였지만 말이다.
대나무들을 덩쿨로 이리저리 엮으며 고정하니 다섯 명 정도는 충분히 탈 수 있는 수준의 뗏목이 완성되었다. 혹시 몰라 바다에 띄워보니 파도를 따라 둥실둥실 흔들렸다.
뗏목이 잘 떠있는 모습을 확인한 우리는 곧바로 가지고 있던, 많지 않은 짐들과 함께 뗏목에 올라탔다.
당연히, 이제는 비를 막아줄 지붕과 방벽만이 남은 집에 있던 동물들과 작별 인사하는 것을 잊지는 않았다. 우리와 헤어진다는 것에 아쉬워하며 매달리는 녀석들이 많았지만, 어떻게든 녀석들을 달래고 헤어질 수 있었다.
“오빠, 근데 노 같은 것도 있어야 하는 거 아녜요?”
다만 우리에게 노가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뗏목을 만들긴 했지만 노를 만들지는 않은 것이었다. 물론, 그것은 내 주장으로 인한 것이었다.
“괜찮아. 미리 약속해뒀으니까.”
“약속……이요?”
“응. 이제 슬슬 올 때가 됐는데.”
뗏목에 올라탄 나는 망망대해를 향해 잠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저 멀리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바다악어다!”
며칠 전, 바다악어의 등 위에 올라타서 악어보트를 즐긴 금바리가 악어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오빠! 쟤들한테 시킬 거예요?”
“마지막인데, 이런 것 정도는 해줘야 그림이 살지.”
곁에 설치되어 있는 거치 카메라를 가리키며 말하니 팀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런 팀원들에게 가볍게 웃어 보이고선,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몇 마리의 바다악어를 바라보았다. 며칠 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 부탁했던 것이었다. 오늘 찾아와, 뗏목을 끌어달라고 말이다.
“자, 이건 약속했던 거.”
어차피 더 이상 생존을 이어가는 것도 아니기에, 남아 있던 생선들을 탈탈 털어 바다악어들의 주둥이에 던져주었다.
녀석들은 생선을 찹찹 씹어먹더니, 뒤이어 내가 내미는 굵고 질긴 덩쿨을 하나씩 조심스레 베어 물었다.
“저쪽으로 가자.”
조금 먼 곳에 위치해 있는 배를 향해 바다악어를 조종하기 시작했다. 내게 받아먹은 것이 있는 녀석들은 내 말을 곧잘 따라주었다.
덕분에 위아래로 출렁이는 파도와, 섬 방향으로 이끄는 해류를 손쉽게 이겨내며 목적지를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
그렇게 바다악어가 바다를 가르며 나아가길 십여 분이 흘렀을 때, 우리는 목적지인 배에 당도할 수 있었다.
“바다악어야, 잘 가! 고생했어!”
배에 올라탄 우리는 손을 붕붕 흔들며 바다악어를 배웅해 주는 김손과 함께, 가볍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리고, 바다악어가 우리들에게서 떠나간 것처럼, 우리 역시 무인도를 떠나 한국으로 향하는 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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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빠!”
“수환아!”
한국에 도착해, 김해 공항까지 국내선을 이용해 돌아오니 입국장에서 나를 반겨주는 사람이 있었다.
내가 무인도로 떠난 사이 제주도로 놀러 간 누나와 소은이였다.
제주도에 다녀온 것을 티 내겠다는 건지 감귤모자를 사이좋게 쓰고 있는 두 사람은 나를 보자마자 와락 끌어안았다.
거진 보름 만에 보는 두 사람의 모습에, 나도 반가움이 물씬 풍겨오며 두 사람을 마주 끌어안아주었다. 특히, 내게서 떨어지려 하지 않는 소은이를 한참이나 끌어안고 있었다.
무인도를 다녀온 이야기와 제주도를 다녀온 이야기를 하며 이야기꽃을 피운 우리는 그리운 우리의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무인도에서의 촬영이 방송으로 공개된 이후 사람들이 무인도에서 가장 필수라고 생각하는 초능력 순위에 변동이 있었다.
내가 1위라는 건 변함이 없었지만, 그 수치에 어마어마한 변화가 있었다. 거의 대다수가 드루이드를 선택했고, 드루이드의 능력으로 쉽게 대체할 수 없는 초능력인 손재주와 건설 계열의 초능력이 조금 더 선택받게 된 것이었다.
맹수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고, 과일 같은 식물들의 생장을 촉진해 큰 열매를 얻고, 동물들을 통해 거처의 제작이나 식량의 수색까지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