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152
0151 서바이벌 드림팀(6)
“야, 어떻게 하면 갈래?”
나는 꿈쩍않는 멧돼지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 덩치 큰 녀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툭 치면, 아무리 권설도가 만든 집이라고 해도 무사하긴 힘들 거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맛있는 거, 줘. 많이.”
한국에서도 농작물 피해의 주범 중 하나인 멧돼지 답게, 녀석은 내 물음에 먹을 것을 요구했다.
화식조와 딱따구리가 이 녀석에게 줄 것이 없다며 꺼지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먹을 것을 찾아 여기까지 온 것이 분명했다.
이런저런 식량을 구워먹고, 달달한 과일냄새까지 풍기고 있으니 찾아온 것이었다.
“끙…….”
나는 그런 녀석의 말에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보내기 위해 녀석에게 먹을 걸 주자니, 나중에 또 찾아올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팀원들에게 알리며 어떻게 해야 좋을지 의견을 구했다.
하지만 내 물음에 뭘 당연한 것을 묻냐는 듯한 반응이 돌아왔다.
“오빠, 걔도 일 시키면 되는 거 아녜요? 먹은 만큼 일해라!”
화식조에게 쥐나 곤충을 잡게 만들고, 딱따구리에게 건축의 서포트를 시키는 등의 전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먹을 걸 주고, 그 이상으로 시키라는 것이었다.
“음, 좋은 생각 같은데? 안 그래도, 엄청 큰 카사바 같은 것들을 꽤 발견했어도 너무 깊게 있어서 캐질 못했었거든. 멧돼지라면 충분히 파헤칠 수 있을 거야.”
심지어 하인두 역시 그런 이야기에 동조하고 있었다. 산에서 가끔 멧돼지를 마주쳐본 사람인지라 꺼려할 줄 알았더니, 전혀 다른 반응이었다.
결국 팀원들에게 설득당한 나는, 2층에 보관중이던 식량의 일부를 가져왔다. 일부라고는 하지만, 우리가 워낙 많은 양을 모아둔 탓에 그 양이 무척 많았다.
“맛있는 거!”
멧돼지의 앞에 식량을 내려놓으니, 녀석이 흥분하며 식량에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커다란 카사바는 물론, 각종 과일들을 씨앗 하나 남기지 않고 와그작와그작 소리를 내며 먹어치웠다.
“와, 진짜 잘먹는다. 저 정도로 먹으니까 농작물 피해가 많은 건가?”
김손이 멧돼지의 모습에 감탄할 정도로 열심히, 많이 먹어치웠다.
그리고, 충분히 배를 불린 녀석은 1층의 구석에, 그늘이 많이 져서 시원한 자리를 찾아가더니 그대로 드러누웠다. 아주 여기에 정착하겠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어이가 없어 고개를 내저었으나, 먹을 것을 주면서 알차게 부려먹을 생각이었기에 무시하기로 했다.
멧돼지에게서 시선을 돌린 우리는, 어느덧 어둑해지는 날씨에 저녁을 챙겨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 ◑ ● ◐ ○ ◑ ● ◐ ○
“크헉, 크헝, 컹!”
“……아, 무슨 소리야.”
괴상한 소리에 눈을 뜨니 이제 막 해가 뜨려는 듯, 불그스름한 하늘이 창문 너머로 보여졌다.
나는 곧바로 아래로 내려가, 소리의 근원을 찾았다.
“코골이 소리가 무슨…….”
소리의 근원은 바로, 어젯밤부터 합류한 멧돼지 녀석이 코를 고는 소리였다. 크르러억, 하는 괴상한 소리가 녀석이 숨을 쉴 때마다 울려퍼졌다.
그리고, 그런 소리에 잠에서 깬 것은 나 혼자가 아니었다. 다른 팀원들 역시 하나둘씩 이른 아침부터 잠에서 깨게 되었다.
“와, 여기까지 와서 우리 아빠 코골이 소리를 들을 줄은 몰랐는데.”
금바리가 TMI를 방출하는 사이, 나는 딱따구리와 화식조가 먹을 것들을 챙겨주었다.
“수환아. 오늘 비가 올지도 모르겠다.”
“……네? 갑자기요?”
그리고, 먹이를 챙겨주고 있으니 하인두가 다가와 비가 올 거라며 이야기를 했다. 난데없이 비가 온다는 소리에 하늘을 바라보았지만, 딱히 비가 올 것 같은 느낌은 없었다.
“아침에 노을이 진다는 건 날씨가 좋지 않을 거라고 알려주는 전조현상이거든.”
하인두의 말에 하늘을 바라보니, 다른 때 보다 하늘이 불그스름하게 느껴졌다.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니 권설도가 다가왔다.
“인두 형님. 오늘 비가 올 거라고요?”
“어, 아침 노을이 지면 날씨가 안 좋거든.”
하인두의 말에 권설도가 여기저기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집을 조금 더 보수해야겠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약간의 비 정도는 대비했지만, 강한 바람을 동반한 비 까지는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결국, 김손과 금바리가 식사준비 및 새로운 식량 조달을 하기로 하고, 나를 포함한 세 남자가 집을 보수하기로 결정했다.
과일 수색 겸, 가방의 역할을 하기로한 화식조를 여자들이 데려가고, 우리는 딱따구리와 멧돼지를 데려가기로 했다.
“자, 어제 먹은 만큼은 일 해야지?”
“맛있는 거, 더 줘라!”
“그래, 열심히하면 맛있는 거 줄게.”
내 말에 기쁜듯, 바닥을 헤집은 녀석은 무척 열심히 일을 하기 시작했다. 딱따구리가 꺾어낸 대나무들을 하나로 묶어, 멧돼지에게 연결해주니 녀석이 힘차게 끌고간 것이었다.
우리가 몇 번은 왕복해야 할 정도로 무거운 것이었는데, 멧돼지는 그것이 가볍기라도 한 것처럼 숲에 길을 내며 집으로 향했다.
멧돼지 덕분에 우리는 생각보다 더 수월하게 집을 보수할 수 있었다.
강한 비바람을 막기 위해 거대한 방벽을 세우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무겁고 커다란 방벽을 세우는데도 멧돼지가 큰 도움을 주었다. 방벽을 세울 바닥을 파주는 것도 멧돼지였고, 눕혀서 만든 방벽을 세운 것도 멧돼지인 것이었다.
“많이 먹어라!”
비바람을 피할 공간을 만들어낸 우리는 무척 수고해준 멧돼지와 딱따구리에게 먹을 것들을 한가득 내어주었다.
녀석들은 일한 보람이 있다며, 빠르게 배를 채웠다.
그리고, 두 녀석이 먹을 것들을 다 해치울 때 즈음이 되니 김손과 금바리, 짐꾼 화식조가 돌아왔다.
“수환 오빠. 오빠 초능력이 식물한테도 영향이 있다고 했죠?”
“그렇지. 근데, 왜?”
“짜잔!”
돌아온 김손이 내게 초능력에 대해 묻더니, 곧바로 화식조에게 얹어둔 가방에서 과일 하나를 꺼냈다.
마트에 가면 흔히 볼 수 있지만, 이곳에서는 한 번도 발견하지 못했던 파인애플이었다. 그것도, 웬만한 사람 머리보다도 더 커다란 크기의 파인애플이었다.
그 외에도 평소보다 더 커다란 크기를 자랑하는 과일들이 한 가득이었다.
“그런데, 물고기는 거의 못 잡았어요. 날씨가 정말 안 좋을 건지, 파도도 꽤 높아서 낚시하기도 힘들고, 물고기 자체가 별로 없어요.”
“괜찮아. 미리 잡아둔 게 많잖아.”
미안해하는 금바리에게 괜찮다고 이야기한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고, 식사를 하며 느긋하게 시간을 보냈다.
“근데 갑자기 생각난 건데, 저희 이름이 너무 초능력이랑 잘 맞는 거 아닐까요?”
“왜?”
“제 이름이 손인데다, 성을 한자로 쓰면 금이잖아요? 금손이라는 것처럼 손재주 관련된 초능력을 가졌고, 바리 언니는 다금바리라서 낚시를 잘 하고……. 설도 오빠는 권설이라서 건설 계열. 인두 오빠는 영어로 Find라서 탐색. 수환 오빠는……. 신수?”
뭔가 나름대로 그럴듯하면서도 허무맹랑한 이야기에 우리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여러 이야기들을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토독- 토독-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비온다!”
창 밖을 바라보니, 빗방울이 한 방울씩 떨어지며 주변을 적시고 있었다.
무인도에서 맞는 첫 빗방울에 감성적인 느낌을 받기도 잠시, 한 방울씩 떨어지던 빗방울이 굵어지며 많아졌다.
쏴아- 수준으로 내리는 것이 아니라, 푸아아악- 소리가 날 정도로 거세게 내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저 멀리서 나무가 부러지는 뿌드드득- 소리가 들려올 정도로 세차게 내렸다.
“……설도야. 이거 집 괜찮지?”
“아, 걱정마십셔! 제가 다 신경써서 지었으니까요. 절대 비 한 방울 안 샙니다.”
자신만만한 권설도 덕에, 두려울 정도의 비가 내림에도 우리는 안심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비는 정말 계속해서 주륵주륵 내렸다. 정말 하늘에 폭포가 자리 잡은 듯, 한 시도 쉬지 않고 계속해서 비가 내리는 것이었다.
다음 날 아침은 물론, 저녁에도 비가 계속 오고 있었다.
물론, 그렇게 계속 비가 온다고 해도 큰 문제는 없었다. 워낙 튼튼하게 지은 집은 강풍이 불어도 끄떡 없었고, 식량은 몇 날 며칠을 놀아도 될 정도로 모아둔 상태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바로, 동물들이었다.
워낙 강한 비바람이 몰아치다보니, 비를 피해 이리저리 숨던 동물들이 비를 막아주는 우리 집으로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첫 시작은 극락조였다. 마치 다채로운 색깔의 먼지털이를 꼬리깃에 달고 있는 듯한 외형을 하고 있는 화려한 새였는데, 비에 쫄딱 젖어서 힘겹게 날아와 깃털을 말리는 모습을 보였다.
“오빠, 저 새는 뭐예요?”
“극락조일거야. 오기전에 간단하게 본 거라 확실한 건 아니지만.”
“그런 새도 있었어요? 진짜 동물들이 엄청 많구나.”
“그, 왜 있잖아. 예전에 그림판으로 그린 거 같은 이미지로 새를 찾던 사람. 검은 바탕에 파란색으로 웃는 듯한 그림 그려놓은 거.”
“아! 그거!”
내 말에 김손이 안다는 듯이 박수를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새도 극락조의 일종이야. 얘랑은 조금 생긴게 다르지만.”
“우와!”
내 말에 김손이 더 신기하다는 듯한 반응을 보이며, 내 도움을 받아 극락조를 손에 올리며 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게 찾아오는 동물은 극락조가 끝이 아니었다.
이미 있는 딱따구리나 화식조들은 물론이고,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자그마한 크기의 물총새들도 찾아왔다.
심지어, 캥거루의 친척이라고도 할 수 있는 나무타기캥거루들까지 찾아올 정도였다.
깡총깡총 뛰는 대신 나무를 타고 걸어다니는 캥거루였는데, 꽤나 귀여운 외모를 자랑하는 녀석들이었다.
“귀여워어어!”
홀딱 젖었음에도 나름대로 귀여움을 자랑하는 녀석들의 등장에, 김손과 금바리, 권설도가 흥분하며 녀석들을 끌어안고 난리가 났다.
그리고, 그 외에도 여러 동물들이 찾아왔고, 우리 집은 수 많은 동물들의 대피소가 되어버렸다.
멧돼지 위에 나무타기캥거루가 널부러져 있고, 폭신한 그 위에서 물총새들이 총총 뛰어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대피소가 되어버린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