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273
0272 드루이드는 드루이드를 연기한다(2)
“바로 자랑해야지!”
누나가 호응해 주지 않았기에, 나는 이 들뜨는 기분을 해소하기 위해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나랑 게임을 같이하는 친구 놈들이라면 100% 내가 원하는 반응을 보여줄 것이 뻔했다.
하지만 그런 내 계획은 누나에 의해서 저지되었다.
“아까 잠깐 비밀이라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어?”
“아…….”
두근대는 기대감에, 아직 외부에 알리지 말아 달라고 한 말이 떠올랐다.
“쩝, 어쩔 수 없지.”
또다시 아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여전히 두근대는 기대감이 사라지지 않았기에, 하루빨리 라전두 팀장과의 미팅이 진행되었으면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대감 때문인지는 몰라도 시간이 참 느리게 흘렀다. 몇 주는 지난 것 같았는데, 겨우 나흘이 지났을 정도로 느리게 흘렀다.
물론, 그렇게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이라도 어쨌든 흘러가긴 흘러갔기에, 미팅을 앞두게 되었다.
“반갑습니다. 라전두입니다.”
아무래도 내게 아쉬울 것이 많은 입장인 파이엇게임즈였기에, 라전두 팀장은 직접 부산까지 찾아왔다. 그것도 우리 동물원까지 직접 찾아온 것이었다.
그와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괜히 이런저런 이야기를 덧붙이는 것보다 본론을 바로 꺼내는 것이 좋았다.
라전두 팀장도 잘 됐다는 듯, 곧장 종이뭉치를 내밀었다.
“일단, 이것이 저희가 준비한 계약서입니다. 신수 님의 퍼블리시티권에 대한 이용료를 비롯해 제작 과정 등에 대한 내용이 있습니다. 한 번 천천히 읽어보십쇼.”
종이뭉치를 받은 나는 곧바로 내용을 천천히, 그리고 꼼꼼하게 읽어 보았다.
그곳에는 라전두 팀장이 말한 내용들이 가득했다. 퍼블리시티권의 이용료로 얼마를 지불하고, 캐릭터에서 나오는 수익의 몇 퍼센트를 지불하는 등의 내용이었다. 그 아래에는 평균적으로 캐릭터들의 수익이 어느 수준인지도 적혀 있었다.
“금액적인 부분이 꽤 괜찮네요?”
“그렇게 생각해 주셔서 다행입니다. 사실 그 부분은 톡 까놓고 말해서, 저희가 제공할 수 있는 최대의 금액이었습니다. 괜히 신수 님과 흥정을 하면서, 계약이 불발되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처음부터 가장 강력한 카드를 내밀기로 했었습니다.”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글로벌한 게임 회사에서 이렇게 이야기해 주니 괜히 어깨가 올라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캐릭터 모델링에 필요한 촬영은 부산에서 진행할 거고……. 음? 여기, 청호랑 남캣도 같이 나왔으면 한다고요?”
“예. 현재 신수 님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의 스킬을 구상 중인데, 아무래도 신수 님의 특성상 동물들이 나오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힌 것 같습니다. 신수 님 하면 가장 크게 떠오르는 부분이 동물 아니겠습니까?”
“그렇긴 하죠. 그럼 청호랑 남캣 정도면 되겠어요?”
“스킬 파트에서 요청하기론 청호와 남캣이었습니다. 다만, 스킬 디자인에 따라 바뀔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청호와 남캣도 함께 모델링을 하겠다는 말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선, 종이뭉치를 다시금 정리했다. 필요한 부분은 모두 읽었고, 혹시라도 문제가 될 부분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은 변호사가 해줄 일이었다.
“딱히 문제 될 부분이 없으면 이대로 진행해도 되겠네요. 그래도 일단 따로 검토한 다음에 결정을 하도록 할게요.”
“당연한 일입니다. 만약 계약서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시다면 언제든지 연락주십시길 바랍니다.”
부디 좋은 결과가 있길 바란다며 라전두 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로 가시는 건가요?”
“아뇨. 모처럼 관광지에 출장 왔는데, 둘러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후후후!”
근무 시간에 합법적으로 관광하는 것이라며 웃어 보인 라전두 팀장은 손목을 들어 올렸다. 그의 손목에는 은빛의 시계와 함께, 우리 동물원의 자유 이용권이 묶여 있었다.
바로, 동물원 전 구역과 아쿠아리움 전 구역을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는 자유이용권이었다.
어쩐지. 별다른 말도 없이 동물원에 도착했다고 연락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 건데.
나는 피식 웃으며, 근처에서 굴러다니던 소포동 녀석을 불렀다.
“이렇게 생긴 사람 보면, 교환권 하나 넣어줘.”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교환권 하나를 주둥이에 물고서 호다닥 달려나가는 소포동이었다.
예전엔 훔치는 것에 환장하던 녀석들이, 이제는 교환권을 소매넣기 하는 것에 환장하는 중이었다.
“……이건 또 언제 넣은 거야.”
계약서를 법무팀에 전해 주기 위해 일어나는 순간 굿즈 교환권 하나가 팔랑팔랑 떨어졌다. 조금 전 소포동 녀석이 내 주머니에 반쯤 걸치게 넣어둔 것이 떨어진 것이었다.
고개를 내저으며 법무팀에 서류를 투척해 주고 나왔다. 며칠 동안 열심히 서류를 글자 하나하나 음미하듯 검토한 법무팀은 그 결과를 알려왔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이것이었다.
“자, 신수 님! 가볍게 걸어주시기 바랍니다!”
“어우, 이거 좀 부끄러운데요?”
내 몸에 딱 달라붙는 쫄쫄이를 입고, 감독의 요청에 따라 이런저런 모션을 취하고 있는 중이었다.
바로, 모션캡쳐라는 기능으로, 사람의 움직임을 그대로 디지털 데이터로 만들어주는 것을 진행 중이었다. 나를 모티브로 하는 캐릭터이니 만큼, 내가 실제로 움직이는 모션 등을 고스란히 사용하겠다는 것이었다.
정말 몸에 딱! 달라붙는 슈트를 입고 카메라 앞에서 이런저런 모션을 취하고 있으니 부끄러웠다. 그나마, 슈트에 붙은 수많은 센서들이 시선을 분산해 주는 게 아니었더라면 더 부끄러웠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래도 열심히 감독의 요구대로 움직여주었다. 나를 본딴 캐릭터가 만들어진다는데, 잠깐의 부끄러움 정도는 감수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스킬 모션을 촬영하겠습니다.”
걷는 모션과 뛰는 모션을 촬영하고 나니, 스킬 모션이라며 영상 하나를 보여주었다. 스킬을 제작하는 이들이 촬영해둔 건지, 스킬을 사용할 때 캐릭터가 보일 모션 같은 것들이 예시로 촬영되어 있었다.
“첫 번째 스킬입니다. 아까 보신 것처럼, 손가락으로 총을 쏘는 듯한 모션 위주로 해 주십쇼!”
감독의 요구사항에 맞춰, 몇 번씩 자세를 바꿔가며 촬영을 이어갔다.
그런데, 흔히들 Q, W, E, R이라고도 불리는 스킬의 모션을 촬영하고 나니 내게 폭탄이 던져졌다.
“신수 님. 이번엔 춤 한 번 춰보시겠습니까?”
“……뭘 하라고요?”
“춤 말입니다. 잘 아시면서.”
“…….”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나도 잘 아는 기능이었기 때문이다. 가끔 재미로 써보는 기능이었는데, 캐릭터가 이런저런 춤을 추는 기능이었다.
하지만 이 상태로는 춤을 추고 싶은 마음이 정말 조금도 들지 않았다. 센서가 달린 쫄쫄이를 입고 춤을 추라고? 절대 못하지. 내가 춤을 못 춰서 이러는 게 아니었다.
“어쩔 수 없군요. 그럼 이걸로 합시다.”
결국 감독은 내게 한 가지 동작을 요구했다. 바닥에 무언가를 심는 듯한 모션을 몇 번 하고 나서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요구한 것이었다.
“신수 님이 심어낸 식물들이 춤을 추는 컨셉으로 갈 겁니다.”
“차라리 그게 낫겠네요.”
감독의 요구에 안도감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뒤로도 몇 가지 촬영을 더 하고 나서야 쫄쫄이를 벗을 수 있었다.
하지만 촬영이 끝나려면 아직 한참 더 남아 있었다. 지금은 내가 아니라 다른 녀석들이 촬영을 할 순서였을 뿐이었다.
“신수 님. 남캣에게 이걸 그냥 냥냥펀치로 냅다 갈겨달라고 좀 해 주십쇼.”
“그걸요? 그거, 깨져도 되는 물건인가요?”
“어……. 네, 그런데 깨긴 힘들지 않을까요? 저게 그냥 플라스틱이 아니라, 안전모에도 쓰이는 단단한 강화 플라스틱인데요.”
의아해하는 감독에게 살짝 웃고선, 센서가 달린 슈트가 불편한 듯한 반응을 보이는 남캣을 데리고 움직였다.
“불편하지? 그걸 전부 여기에 풀어도 돼. 박살 내도 상관없어.”
“오.”
꼬리까지 센서가 붙어 있는 것이 여간 거슬렸던 건지, 녀석은 내 말에 강하게 흥미를 보였다. 그리고, 그대로 안전모처럼 생긴 플라스틱 덩어리를 향해 냥냥펀치를 갈겼다.
순식간에, 1초에 세 번 정도 되는 듯한 속도로 냥냥펀치가 갈겨졌다.
쾅쾅쾅!
자그마한 고양이가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힘든 소리가 울려 퍼지며, 안전모 같은 플라스틱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한 조각이 아니라, 총 네 조각으로 분해되어서.
“……저거 고양이 맞습니까? 칡……아니, 삵 아닙니까?”
“쟤 고양이 맞아요. 의심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유전자 검사까지 했다니까요?”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남캣을 바라보는 감독의 모습을 보며 웃었다. 남캣이 센서 달린 슈트를 견디지 못하고 찢으려 하기 직전까지 말이다.
“한 번만 더 입히면 찢어버릴 거야.”
“진짜, 누가 냥아치 아니랄까 봐.”
고개를 내저은 나는 다음으로 청호를 불렀다. 냥아치가 따로 없는 남캣과 다르게, 녀석은 얌전하게 내 앞으로 뽀르르- 다가와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청호가 자리를 잡은 것을 확인한 나는 감독에게 시선을 돌렸다. 청호는 어떤 모션으로 촬영할 것인지 물어보기 위함이었다.
“청호는 줄을 물고 잡아당긴다는 느낌으로 촬영해 주십쇼. 터그 놀이라고 하던가요? 그것처럼 말입니다.”
감독이 손뼉을 짝! 치며 신호를 주니, 근처에서 덩치가 좋은 남자 한 명이 밧줄을 쥐고 나왔다.
“……혹시, 저 사람이 잡고 버틴다는 계획은 아니겠죠?”
“어……. 맞습니다만, 문제라도 있습니까?”
“혹시, 저분 여기 직원으로 산재 보험도 가입되어 있죠?”
“당연하죠. 그런데, 그건 왜……?”
“보시면 알 거예요. 일단 그럼 이건 제 책임 아닌 걸로.”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뭐가 문제냐는 듯이 나를 바라보는 감독에게 어서 촬영을 하라고 손짓해 주었다.
물론, 청호의 뒤편으로 완충 매트를 갖다 까는 것을 잊지 않았다.
“청호야, 저 밧줄을 물고 그냥 힘껏 당겨.”
“힘껏, 말씀이심까? 알겠슴다.”
청호에게 엄지를 척- 들어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청호 녀석은 제 앞에 놓인 밧줄을 물었다.
그리고, 내가 예상했던 결과가 펼쳐졌다.
“으아아아아악!”
밧줄을 쥐고 있던 건장한 남자가 그대로 밧줄에 끌려, 내가 미리 깔아둔 완충 매트 위로 날아온 것이었다.
“어, 어……. 어? 이게…….”
“잘 했어.”
경악 가득한 얼굴로 상황 파악도 제대로 못하는 듯한 감독을 보며, 수고해 준 청호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날아간 사람도 얼떨떨할 뿐, 어디가 다쳤다거나 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으니 걱정할 것도 없었다.
“자자, 이제 그만 놀라고 다음 촬영으로 넘어가죠.”
나는 감독을 비롯한 촬영팀의, 가출한 정신을 되찾아주며 촬영을 독촉했다. 시간이 늦어져서 저녁에 들어가면, 소은이랑 같이 저녁 못 먹는다고.
그리고, 다시금 촬영의 순서가 내 앞으로 돌아왔다. 그것도 온갖 풀떼기와 깃털, 가죽 같은 것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코스튬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