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379
0378 밭 만들기
“농사, 농사, 노오오옹사아아아!”
칡소들이 끌 쟁기가 왔다는 소식에, 은수가 농사농사 노래를 부르며 즐거워했다.
하지만 은수에겐 안타깝게도 바로 농사를 할 수가 없었다. 약간의 밑 준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여기 있는 나무랑 다 뽑아서 옮겨 심은 다음에 농사지을 거야.”
자연구역을 그대로 밭으로 쓸 생각이었기에, 밭으로 쓸 곳을 정리해야 하는 것이었다. 여러 나무는 물론이고, 조금 큼직한 돌덩이도 치워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면, 그 장소까지 장비를 들여오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자연구역 내부에 있는 장소였기에, 나무와 바위들이 장애가 되어 장비가 들어올 수 없었다. 한 마디로 수작업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소은아, 은수야. 아빠 도와줄…….”
“압빠, 빠빠이!”
“아뿌, 빠빠이!”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이들이 호다닥 도망치는 모습이 보였다. 손을 붕붕 흔들면서 도망가고 있었다.
“…….”
순식간에 뛰어가는 아이들의 모습에 멍하니 아이들이 달려가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자식 키워봐야 소용없다더니.
하지만 애초에 아이들이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었기에, 어깨를 으쓱였다. 초등학교 2학년과 유치원에 다니는 애들한테 큰 바위나 나무를 뽑으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냥 응원이나 시키고, 저녁에 치킨 시켜 먹을까 했는데. 연어를 듬뿍 넣은 샐러드랑 같이. 어쩔 수 없네.”
아쉬움을 가득 담아 그렇게 중얼거리니, 열심히 뛰어가던 아이들이 급브레이크를 밟은 것처럼 멈춰 섰다.
“압빠 화이팅!”
“아뿌 화팅!”
급하게 멈춰 선 아이들은 그대로 뒤로 돌아 다시금 내게 호다닥 달려와서는 응원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화이팅, 화이팅- 하면서 율동 같은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머릿속에는 치킨과 연어샐러드가 가득하다는 것이 훤히 보이는 중이었다.
그 모습에 피식 웃음을 지은 나는 아이들의 볼을 가볍게 꼬집고선, 작업에 필요한 이들을 차출하러 움직였다.
“아뿌, 코끼리도 농사해?”
처음으로 차출하러 간 곳은 뿌우뿌우 녀석이 서커스를 벌이고 있는 우리였다. 녀석이 해줄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전에. 우리나라 말고, 저기 동남쪽으로 엄청 멀리 있는 나라에서는 코끼리들로 농사를 짓기도 했어. 엄청 옛날 일이야.”
“하라부지보다 더 옛날?”
“응.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보다 더 옛날.”
“오와아아!”
신기하다는 듯이 눈을 크게 치켜뜨는 은수의 볼을 콕- 찌르고서 뿌우뿌우에게 다가갔다.
“뿌우뿌우. 나랑 같이 가서 힘자랑 한 판 하지 않을래?”
“힘자랑?!”
힘자랑이라는 소리에 뿌우뿌우 녀석이 자그마한 눈을 번뜩였다. 지상 최강의 생물이라고 하는 아프리카코끼리가 아닌, 아시아코끼리인 뿌우뿌우였지만 녀석이 가진 힘은 아프리카코끼리를 능가했다. 그만큼 녀석은 자신의 강력한 힘을 드러내길 좋아했다.
뿌우뿌우는 특히나 자신의 힘을 보고 사람들이 감탄을 터트리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괜히 녀석에게 관종 코끼리라는 별명이 붙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녀석에게 힘자랑을 하러 가자 하니, 뿌우뿌우는 당장 가자는 듯이 내게 다가와 코를 들이밀었다. 어서 앞장서! 하듯이 나를 콕콕 찌르며 밀었다.
“좀 기다려 봐!”
나를 밀어대는 코를 덥석 붙잡아, 빙글빙글 말아버렸다. 마음 같아서는 묶어버리고 싶었는데, 무척 두텁고 단단해서 쉽지가 않았다. 말아버리는 것 정도가 최선이었다.
“너는 애들 태우고 따라와.”
“와! 은수야 눈나랑 뿌우뿌우 타자!”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소은이가 은수와 함께 뿌우뿌우의 위로 올라탔다. 아니, 뿌우뿌우가 아이들을 코로 들어 올려, 제 등에 태운 것이었다.
아이들이 자리를 잡고 앉는 것을 보고서 다음 목적지로 이동했다. 이번에 찾아간 곳은 체력단련실이었다. 물론, 직원을 데리러 간 것은 아니었다.
“콩콩아! 힘쓰러 가자!”
쿠우웅!
체력단련실 내부를 향해 크게 소리치니, 내부에서 꽤나 묵직한 것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내가 서 있는 바닥까지 진동이 느껴진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슬쩍 내부를 보니, 거대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의 바벨이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그것을 가지고 운동하던 콩콩이 녀석이 내 외침을 듣고, 그것을 던지듯 내려놓은 탓이었다. 당연히 조금 전의 굉음 역시 그 과정에서 울린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바벨을 놓은 콩콩이 녀석이 체력단련실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근육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처럼 꿈틀거리는 콩콩이 녀석은 커다란 콧구멍으로 푸욱푸욱 숨을 쉬며 다가왔다. 몸에서 열기가 오르는 듯한 느낌을 보니, 아주 열심히 운동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힘을 좀 써야 하는데, 할 수 있지?”
내 물음에 콩콩이는 대답하는 대신, 보디빌더처럼 자세를 취했다. 그런 자세를 취하니 안 그래도 불끈거리던 근육이 아주 파도치듯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이 수락하는 것임을 아는 나는 곧바로 녀석과 뿌우뿌우를 데리고 자연구역으로 향했다.
자연구역에 밭으로 쓰기 위해 지정한 곳이었는데, 그곳에는 정해둔 크기대로 밭을 만들기 위해 표시를 해놓은 상태였다. 그리고, 그렇게 표시가 되어 있는 내부에는 수십 그루의 나무와, 커다란 돌덩이가 자리하고 있었다.
밭의 경계 밖에 있는 큼직한 바위에 아이들을 앉혀놓고, 그대로 뿌우뿌우와 콩콩이를 불렀다.
“여기 있는 것들을 다 뽑으면 돼. 이쪽 보면 표시가 돼 있지? 그 표시 안쪽에 있는 건 다 뽑으면 되는 거야.”
밭으로 쓸 구역에 있는 나무와 바위들을 가리키니, 뿌우뿌우와 콩콩이가 곧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코를 이용해서 나무를 휘감아 뽑기 좋은 뿌우뿌우는 먼저 나무를 향해 움직였고, 두터운 손을 가진 콩콩이는 큼직한 바위를 향해 다가갔다.
“뿌이이이이익!”
두 녀석 중에 힘을 먼저 쓴 것은 뿌우뿌우였다. 가까운 나무로 다가간 녀석은 그대로 나무의 가장 두터운 부분을 코로 휘감더니, 있는 힘껏 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무런 미동도 없었으나, 뿌우뿌우에게서 증기기관 같은 소리가 남과 동시에 뿌드득- 소리가 울렸다. 그러더니 흙바닥이 들썩이고, 나무가 뿌리 뽑혀 나왔다.
“와아아! 뿌우뿌우 힘 장난아니야!”
“힝, 나무 뽑혀써!”
그리고 그런 뿌우뿌우의 모습에 아이들의 반응이 갈렸다. 딱 봐도 무거워 보이는 나무를 번쩍 들어 올린 뿌우뿌우의 모습에 감탄하는 소은이와, 나무가 뽑혔다는 것에 안타까워하는 은수로 말이다. 물론, 금방 다른 자리에 옮겨 심을 거라는 말을 했기에, 은수도 뿌우뿌우의 힘자랑에 감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당연하게도, 소은이와 은수가 환호하는 것을 확인한 뿌우뿌우는 더더욱 열심히 나무를 뽑았다. 뿌이익- 소리를 낼 때마다 굵직한 나무들이 잔디 뽑히듯 뽑혀 나왔다. 가장 좋아하는 소은이와 그다음으로 좋아하는 은수가 박수를 짝짝 치면서 감탄하니, 온몸에 활력이 솟아오르는 것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뿌오오옷! 이게 힘이다아아!”
뿌우뿌우는 아름드리나무를 힘차게 뽑아내며 힘을 과시했다.
하지만 그것과 동시에 도로로로록- 하고 소리가 들려왔다. 콩콩이 녀석이 준비운동하듯 드러밍을 하는 소리였다.
당연히 그 소리에 아이들과 내 시선이 콩콩이에게로 향했다.
제게 시선이 집중되는 것을 느낀 콩콩이가 근육을 부풀리며, 바닥에 큼직하게 박혀 있는 바위를 향해 손을 뻗었다.
“크허아아아악-!”
녀석은 기합을 내지르듯 소리를 치더니 그대로 힘을 주기 시작했다. 딱 봐도 어마어마한 무게를 자랑할 것 같은 바위였는데, 그것이 들썩였다.
바위 주변에서 흙먼지가 크게 일었다. 하지만 바위는 여전히 그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날카로운 송곳니를 살짝 드러낸 녀석이 다시 한번 크게 기합을 내지르며 힘을 주었다. 막강한 힘이 다시금 투사되니, 들썩이던 바위가 이윽고 뽑혀 나왔다. 바위를 뽑아낸 녀석은 그대로 밭의 경계 밖으로 바위를 데굴데굴 굴렸고, 바위를 뽑은 자리에는 큼직한 구덩이만 남아 있었다.
“와아아아!”
“콩콩이 짜란다!”
순식간에 거대 바위를 치워버린 콩콩이의 모습에 아이들이 박수를 치며 폴짝폴짝 뛰었다.
“오, 오, 오!”
콩콩이는 이게 내 힘이다- 하듯 다시금 드러밍을 하며 근육을 과시했다.
그리고, 그것은 뿌우뿌우의 질투심을 불태우는 연료가 됐다. 관종인 녀석에겐, 콩콩이가 자신의 주 특기라고도 할 수 있는 ‘힘’으로 소은이와 은수의 관심을 가져간 것으로 보이는 것이었다.
당연히 뿌우뿌우는 그것을 참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물리적으로 싸우는 일은 없었다. 가볍게 장난치듯 투닥거리는 거나 서열 싸움 같은 거면 몰라도, 그 외의 싸움은 절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뿌우뿌우가 선택한 것은 다시 한번 자신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조금 전에 뽑았던 것보다 더 큼직한 나무를 뽑아, 봉을 휘두르듯이 한 바퀴 휘두른 것이었다.
수많은 나뭇잎과 열매 같은 것들이 후두둑 떨어졌다.
“맞을꼬야?!”
덤으로 나무에서 놀고 있던 하늘이도 떨어졌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상황에 분노한 녀석이 도토리로 뿌우뿌우의 뚝배기를 깨려 했다. 깨지긴커녕 상처도 내지 못했지만.
아무튼, 그렇게 하늘이까지 나타나면서 뿌우뿌우는 다시금 아이들의 관심을 되찾을 수 있었다.
“크허아악!”
물론, 반대로 관심을 빼앗긴 콩콩이가 다시금 힘을 쓰며 아이들의 관심을 가져갔지만 말이다.
두 녀석은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아이들의 관심을 빼앗고 빼앗길 반복했다. 뿌우뿌우가 활약하면 곧바로 콩콩이가 활약하고, 이후에 다시 뿌우뿌우가 활약하는 것이었다.
덕분에 아이들은 마냥 즐거워했고, 나 역시 무척이나 편했다. 원래라면 나도 삽과 곡괭이를 가지고 두 녀석을 도와주려 했는데, 두 녀석이 경쟁적으로 일을 하고 있으니 내가 할 게 없었다.
순식간에 밭으로 쓸 곳에 있는 나무와 바위들이 사라졌고, 두 녀석은 콧김을 훅훅 뿜어대며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좋은 승부였다.”
“나 역시.”
두 녀석은 서로의 힘을 인정하기로 하겠다는 건지, 서로를 인정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콩콩이의 큼직한 주먹과, 뿌우뿌우의 두터운 코가 맞닿았다.
그렇게 서로를 인정한 두 녀석은 힘이 어떻니, 근육이 어떻니 이야기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은 나는, 곧바로 칡소들을 데리고 왔다. 이제는 칡소들이 활약을 할 차례였다.
밭으로 다가온 녀석들 중 한 마리에게 곧바로 쟁기를 씌웠다. 처음 쓰는 물건이다 보니 조금 버벅거리긴 했는데, 그래도 알맞게 씌울 수 있었다.
“자, 가자!”
나는 쟁기를 쓰고 있는 칡소에게 출발할 것을 알렸고, 녀석이 천천히 앞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바닥에 살짝 박아둔 쟁기에 강한 힘이 전해졌고, 쟁기가 바닥을 부수듯 앞으로 나아갔다. 동시에 잔디나 풀들이 있던 바닥이 이리저리 뒤엎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