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81
0080 입도
예식이 끝난 이후, 한복을 차려입고 폐백까지 빠르게 처리했다.
우리 부모님은 물론이고, 누나네 부모님 역시 이런 행사는 부담스러워 하는 모습이었다. 특히, 이런 격식을 차려야 하는 자리에 대한 알러지라도 있는 것 같은 아빠는 얼굴을 붉게 물들인 상태로 누나에게 온갖 덕담을 쏟아야 했다.
“야, 너 결혼 두 번 하지는 마라. 이건 못 해먹겠네.”
“이 인간이 할 말이 있고, 못 할 말이 있지!”
“아아악!”
나는 엄마에게 구타……가 아니라, 애정담긴 손길을 받고 있는 아빠를 멀리하고서 누나와 함께 뷔페를 돌기 시작했다.
먼 친척, 지인, 친구들 할 것 없이 결혼식에 참가해준 사람들을 만나며 인사하는 것이었다.
“오, 너희 여기 있었네?”
인사를 하며 이리저리 돌고 있으니, 친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에 도착했다. 이미 거하게 뷔페를 조지고 있는 녀석들의 곁에는 접시가 수북하게 쌓이고 있었다. 그런 접시들에는 양념을 제외하곤 부스러기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 많이 먹어라. 그래야 본전 뽑지.”
“음, 으뭉므그, 우우으움!”
“……다 처 먹고 말해. 니가 아무리 짐승같이 굴어도 내 초능력이 안 통하거든.”
“끅…!”
입안 가득 음식을 넣고 말을 하려던 친구는 내 말에 목이 막힌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참 가지가지 하네.
물을 먹으라고 건네주니, 입안 가득 꾸역꾸역 밀어넣은 음식들을 꿀꺽- 삼켰다.
“와, 뒤지는 줄 알았네!”
“뒤져도 나 여행 갔다 온 다음에 뒤져라? 그래야 육개장 먹으러 가지.”
“미친놈.”
“그래서, 방금 뭐라고 한 건데?”
“아, 그래. 우리가 너 공항까지 타고가라고 웨딩카 준비했거든? 타고가라.”
“웨딩카?”
웨딩카라는 말에, 내 곁에 있던 누나가 반응을 보였다.
“네, 누님. 저희가 저 놈도 알고, 누님도 잘 알지 않씀까! 그러니 가만히 있을 수가 있나요. 딱! 그냥 돈 모아서 외제차로 렌트 조지고, 장식도 깔쌈하게 해놨습니다!”
“그래? 고마워.”
“끙……. 뭔가 느낌이 안 좋은데.”
나는 약간의 불안감이 느껴졌지만, 좋아하는 누나의 모습을 보니 웨딩카를 거부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그런 불안감은 곧 현실이 됐다. 인사를 마무리하고 식사까지 한 다음, 아빠에게 가 있는 소은이를 데리고 친구들과 함께 웨딩카를 보러가니 어째서 불안감이 느껴졌는지 알 수 있었다.
“……이딴 걸 타라고?”
“왜, 예쁘지 않냐? 누님! 어떻습니까?”
“으음……. 나, 나쁘지는 않은 거 같은데…….”
나는 물론이고 누나 역시 꽤나 난처한 모습을 보였다.
다름이 아니라, 친구놈들이 웨딩카라고 준비한 것이 문제였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볼 수 있는 차량중에 가장 거대한 캣일락의 에스컬레이터를 웨딩카랍시고 가져온 것이었다.
심지어 그 차에는 온갖 리본과 꽃장식이 그득하게 달려 있는 상태였다. 그것도 작은 것이 아니라, 큼지막한 것으로 말이다.
게다가 그것으로도 모자랐는지, 본넷 위에는 우리 부부와 소은이의 얼굴이 큼지막하게 붙어 있었다.
“진짜 이딴 꼴로 만든 걸 타라고?”
“그럼 안 타게? 친구들이 치킨 한 번, 술 한 번 마실 돈 모아서 열심히 꾸민 건데? 동창이! 어? 결혼한다고 해서! 어? 우리가, 마! 다 모아써!”
“아니…….”
당당하다 못해 우렁차게 소리치는 친구 놈의 모습에 황당함으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 맞아. 참고로 네 차는 너희 아부지가 타고 가셨다?”
“…….”
그리고, 이어진 아빠의 배신 소식을 들은 나는 입을 벌린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이, 이거라도 타고 가야겠는데……?”
“후…….”
나처럼 당황하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정신을 차리고 있던 누나의 말에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약속된 일정에 맞추기 위해서는 다른 이동수단을 구할 시간이 없었다. 나와 누나, 소은이까지 세 명만 탄다면 몰라도, 열 마리가 넘는 동물들을 함께 데려가기 위해서는 눈 앞에 놓인 흉물을 타야했다.
“짜란! 소은이 카시트도 다 옮겨 뒀다 이 말씀! 뒤쪽으로는 동물들의 편안한 승차를 위한 폴딩과 푹신한 쿠션까지!”
영업사원마냥 차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며 자랑하는 친구 놈의 입을 한 방 때려주고 싶었다.
“더 깐족거리다간 맞을 거 같으니까, 난 이만 간다! 공항까지 몇 명 따라갈 거니까, 차는 걔들한테 맡기면 돼! 수고! 결혼축하한다!”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녀석은 내게 차키를 휙 던지고서 도망쳐버렸다.
쫓아가려다가 슬슬 움직여야 할 시간이기에 포기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차에 붙은 장식들을 떼어냈다. 이건 좀 과해도 너무 과하지.
“그걸 떼면 어떡하냐, 임마!”
“및……아니, 정신나간 친구들아. 그럼 이걸 안 떼고 어떻게 타!”
붉은색 리본으로 차를 두어바퀴 감아놓고, 어떻게 타라는 거냐. 그런 황당함을 가득 담아 째려보니, 남아 있는 친구 놈들이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나는 그 틈을 타서, 차 여기저기에 붙어 있는 장식들을 떼어냈다.
“그건 놔둬야지!”
“응, 이거 불법.”
“그게 왜 불법인데!”
“주행하다가 떨어지면 뭐다? 위험한 물건을 도로에 버린 게 된다는 말이지. 그럼 그게 불법일까, 아닐까?”
“와, 빠져나가는 거 보소?”
장식들을 다 떼내는 내 행동에 친구들이 황당해 했지만, 나는 조금도 신경쓰지 않았다. 아무리 웨딩카라고 해도, 이렇게 쪽팔린 차를 타고 공항까지 갈 생각은 없었다.
적당히 장식들을 떼어내고나니 손으로는 뜯기 힘들어 보이는 가족사진 스티커만이 남아 있었다. 조금 부끄럽긴 해도, 이미 얼굴이야 뮤튜브로 다 팔린 상태였으니 감수하기로 했다.
“수환아, 슬슬 출발해야하지 않을까?”
“어, 응. 야! 우리 간다. 차 고~오맙다.”
“당연히 고마워 해야지! 여행다녀와서 보자!”
이죽거리며 웃는 친구 녀석들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짓고서, 소은이와 동물들을 차에 태운 다음 운전석에 올라탔다.
“엄청 높네.”
원래의 내 차보다 더 높은 시야에 감탄하는 것도 잠시, 나는 곧바로 차량을 움직여 공항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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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따라온 친구들 중 한 녀석에게 차키를 던져준 나는 동물들을 이끌고 공항의 한 켠으로 향했다.
에콰도르에서 직접 나를 초대하는 형태가 되었다보니, 전용기가 대기중인 것이었다. 평소처럼 발권하고 수하물을 붙이고, 기다리고 할 것이 없었다.
가장 느린 한무 녀석을 카트에 올린 채로 빠르게 움직여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이미 몇 사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외국인 몇 명과, 한국인처럼 보이는 한 명이 옹기종기 모여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저희가 늦었나요?”
“아뇨, 잘 맞춰서 오셨습니다.”
내 물음에 한국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부드러운 웃음과 함께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이번에 선생님의 갈라파고스 여행의 전체적인 가이드를 맡게 된 곽이두입니다. 이쪽 친구들은 갈라파고스주 정부쪽 인사들입니다.”
나는 곽이두의 소개를 받으며 외국인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눴다.
말 하나 통하지 않았지만, 호의적인 눈빛이 가득한 그들의 시선에 마주 웃을 수 있었다.
“일단 출발하실까요? 짐은 저희가 들어드리겠습니다.”
“아, 그럼 카트만 좀 끌어주실래요?”
묵직한, 200kg에 육박하는 몸무게를 자랑할 수준까지 성장해 있는 한무가 타고 있는 카트를 떠넘겼다. 아무리 바퀴가 달렸다고 해도 그 무게가 어마어마하다보니 솔직히 힘에 부치는 상태였다.
다른 짐들이 조금 더 있긴 했지만, 그거야 청호가 충분히 다룰 수 있는 것들이라 문제 없었다.
“Holy……!”
청호가 캐리어에 앞발을 얹고 척척 걸어나가는 모습을 본 외국인들이 경악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에 가볍게 웃음을 터트리며, 열 개가 넘는 줄을 붙잡고서 출국장으로 향했다.
빠르게 출국 심사를 마친 우리는 금세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와……. 나 일등석 처음 타봐.”
“나도!”
에콰도르에서 꽤나 신경써준 건지, 전용기를 보내는 것으로도 모자라 1등석을 배정해주었다. 다른 사람들은 하나 없이, 우리 가족과 동물들만이 1등석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었다.
원래라면 동물들도 대부분 이동장에 넣고 화물로 보내야하는데, 에콰도르에서 배려를 해준 덕분에 다 함께 갈 수 있었다.
1등석 한 번도 타보지 못한 티를 팍팍 내며 1등석을 구경하고 있으니, 승무원이 다가와 곧 출발한다며 착석을 요구했다.
“흐아아아아아앙!”
그리고, 비행기가 빠른 속도로 질주하며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과 동시에 소은이의 울음이 터졌다.
“아이구, 귀 아팠어요?”
아직 어린 아기인 만큼 기압의 변화에 따른 감각을 고통으로 받아들인 듯했다. 엉엉 우는 소은이를 안아들고 한참동안 달래야 했다.
하지만 아직 한 번 더 남았다.
“에콰도르는 너무 멀어서 직항이 없어……. 경유해야 해…….”
“소은이 어떡하지?”
결국, 우리는 한 번 더 소은이의 울음을 달래줘야 했다. 아, 젠장. 집에 돌아갈 때도 똑같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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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파고스 제도에 가기 위해서는 거진 이틀에 달하는 비행을 통해 에콰도르에 입국한 다음, 갈라파고스 섬에 진입하기 위한 절차를 또 거쳐야 했다.
외부 생물에 의한 생태계 파괴같은 부분들이 무척 문제가 되는 곳이었기에, 엄청난 검열을 거친 다음에야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갈라파고스주의 주지사 덕분에 그러한 검열 절차를 손쉽게 통과할 수 있었다. 단순히 홍보 목적으로 초대하는 게 아니라, 부탁할 것이 있어서 초대하는 것이니 이 정도 편의는 봐주겠다는 것이었다.
비록, 동물들에게서 옮을 수 있는 질병 같은 것들로 인해 예방주사를 맞게 한다던가, 털 구석구석까지 소독을 하는 등의 소동이 있긴 했지만 문제 없이 갈라파고스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거치고, 자그마한 배를 타고 이동하니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가장 큰 섬인 이사벨라 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아아앙!”
이사벨라 섬에 발을 내딛는 것과 동시에, 소은이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와아!”
물론, 커다란 소은이인 하은이 누나의 입에서도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수환아, 저기 봐봐!”
“빠빠! 어마!”
하은이와 소은이는 여기저길 가리키며 연신 나를 불러댔다.
하지만 그런 둘의 모습이 충분히 이해가 되는 것이, 한국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풍경이 주변으로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항구 주변에는 바다사자들이 따사로운 햇빛을 쬐며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었고, 주둥이가 커다란 펠리컨이 하늘을 날고 있었다.
게다가 해안에 접해 있는 커다란 바윗덩이 위에는 커다란 이구아나가 늠름한 자태로 햇빛을 쬐고 있는 상태였다.
“신기하시죠? 저도 처음 왔을 때 엄청 놀랐었습니다. 참고로, 너무 가까이 접근하면 공격하려고 할 수도 있으니 주의하셔야 해요. 특히, 아기들에겐 큰 위협이 될 수 있으니 특별히 주의해주세요.”
가이드의 말에 누나가 소은이를 조금 더 강하게 끌어안았다.
“오늘 일정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피곤하시면 숙소로 바로 가셔도 되고, 주변을 간단하게 둘러봐도 괜찮습니다.”
“일단은 숙소로 가는 걸로 하죠. 저희는 뭐…… 충분히 쉬면서 왔지만 얘들은 장거리 이동이 처음이다보니 지친 거 같거든요.”
나는 축- 처져 있는 동물들을 보며 피식 웃음 지었다.
“그럼 바로 가시죠.”
내 말에 가이드는 앞장서서 우리를 숙소로 안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걸음은 금세 멈추게 되었다.
다름이 아니라, 길을 꼼꼼하게 틀어막고 있는 바다사자 무리 때문이었다. 어떻게 옆으로 피해서 지나갈 수도 없을 정도로, 녀석들이 길을 틀어막고 있는 것이었다.
“뭘 봐?”
심지어, 길을 틀어막은 녀석들 중 한 마리는 나를 보며 뭘 보냐는 듯이 꾸엉- 하고 울음소리를 토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