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98
0097 관찰 카메라
카페 마감을 하고난 뒤, 저녁까지 먹고 소파에서 뒹굴고 있으니 너무나도 심심했다.
따로 VOD를 보는 것이 아니라면 볼만한 TV예능이 있는 것도 아닌 평일이었으니 더더욱 심심한 것이었다.
같이 시간을 보낼 소은이는 쿨쿨 잠에 빠진 상황이었고, 누나 역시 그런 소은이 곁에서 느긋하게 책을 읽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결국 휴대폰을 꺼내들어, 뮤튜브 라이브 방송을 시작했다. 집에 놀아줄 사람이 없으면, 온라인에서 놀아줄 사람을 찾으면 되는 것이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랜만에 킨 방송에, 나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카메라 렌즈를 향해 손을 붕붕 흔들었다.
[소은이는요?] [아버님, 다시 말씀드리지만 대세는 소은이입니다. 데려오시죠.] [원한다. 나는. 공주.] [청호의 등에 올라타서 유부의 부채질을 받으며 폭신폭신한 토끼즈를 안고 있는 소은이를 내놓으면 유혈 사태는 벌어지지 않을 것입니다.]그리고, 방송을 켜자마자 몰려온 시청자들은 내가 아니라 소은이를 원했다. 하긴, 소은이가 귀엽긴 하지.
하지만 그럴 생각은 없었다. 지금 소은이는 귀엽게 낮잠을 자고 있거든.
“소은이는 자고 있어서 안 돼요. 애기들은 잘 자야 예쁘게 자란다고요.”
“소은이잘자라 님, 300만 원 후원 감사합니다. 근데, 이미 싹 다 최고급으로 해뒀어요. 후후, 그러니까 이건 제가 잘 먹겠습니다.”
거액의 후원이었지만, 나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매일같이 하는 방송이 아닌데다, 할 때마다 온갖 신기한 영상들을 만들어내다보니 거액의 후원이 생각보다 자주 터졌기 때문이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꺼억ㅋㅋㅋ] [아 300으로 안 된다고 ㅋㅋ 더 가져오라고 ㅋㅋㅋㅋ] [저번에 누가 400 쏘고 까치랑 까마귀가 공중에서 떼로 3연속 백덤블링하는 거 봤잖어. 300으로 무슨 소은이를 봐; 양심 ㅇㄷ?] [300만 원 증발했쥬? 소은이 보지도 못했쥬?]시청자들은 내가 날로 거액의 후원을 낼름 먹어버렸음에도 나를 타박하지 않았다. 이미 이런 전적이 여럿 있었으니, 이 놈은 원래 그런가보다-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거액의 후원을 보낸 시청자는 초보가 아니었다.
[소은이잘자라 님이 1천 원 후원!] [응애, 나 잼미니. 엄마 카드로 후원해써, 환불해조.]“…….”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엄카 떴죠? 못 이기죠?] [아 잼민이 이길 수 있는 건 없다고 ㅋㅋㅋ] [속보) 삼촌팬이 잼민이로 둔갑하는 데 필요한 것은 300만 원으로 밝혀져, 충격!]뭔가, 아닌 건 알지만 차마 환불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만에 하나라도 진실이었고, 그 돈으로 가정에 불화가 올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없는 것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나는 결국 패배감을 맛보며 환불을 해줄 수밖에 없었다.
[신수님 1패] [1천 원으로 300만 원 날먹 리액션 보기 쌉가능]사람들은 그런 나를 보며 한껏 즐거워했다.
[공중제비하는제비 님이 1천 원 후원!] [지금 299만9천 원 손해본 느낌이죠?]“……네. 진심으로.”
진심으로 299만9천 원을 잃은 느낌이었다. 제길.
나는 쓰린 속을 달래며, 애써 이야기를 돌리기로 했다.
“일단, 오늘 제가 왜 방송을 켰냐면……. 할 게 없어서 그렇습니다.”
[사장님 진상 떴어요 퇴치해주세요 ㅠㅠ] [방송하는 이유 참 대단하다, 그죠?] [그래서 할 게 없으니까 할 걸 내놓으라는 건가?] [사장님이 미쳤어요! 사장이 일을 안 해요!]시청자들이 어이없다는 듯이 나를 타박해댔다. 아닌, 300만 원을 날로 먹어도 그러려니 하는 사람들이 이건 또 왜 안 넘어가는 거야?
나는 다급히 머리를 굴리며 오늘 방송으로 할 컨텐츠를 떠올렸다.
“아무튼! 그래서 지금 잠깐 생각을 해봤는데, 오늘은 관찰카메라를 해보기로 했어요.”
[수감된라쿤 님이 3만 원 후원!] [관찰카메라? 소은이 관찰 각이다!]“아쉽지만, 소은이를 관찰할 생각은 없어요. 나만 볼 거거든. 여러분들은 모르죠? 소은이가 잘 때 가끔 뭐 먹는 꿈 꾸는 건지 입을 오물거리는데, 엄청 귀여워요.”
내 말에 시청자들이 당장 소은이를 보여달라며 아우성이었다. 하지만 곤히 자는 애를 찍을 생각은 없었기에, 나는 그런 요청들을 가볍게 묵살하고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번 관찰 카메라의 대상은 남캣입니다. 지금부터 한두 시간 정도, 녀석을 따라다니면서 녀석이 뭘 하고 다니는 건지 관찰할 거예요.”
소은이를 보여달라며 아우성치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반응을 바꿨다.
카페에 온다면 볼 수 있는 동물들이었지만, 그 동물들이 평소에 뭘 하고 있는 건지 궁금할 수밖에 없던 것이었다.
[남캣의 비밀스런 사생활 들추기……! 두근두근!]“비밀스런 사생활이라니, 표현이 좀 그렇지 않나?”
[됐고 빨리 보여줘요!]시청자들의 재촉에, 나는 곧바로 남캣을 찾아 나섰다.
물론,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집안 구석구석에 있는 동물들에게 위치를 몇 번 물어보는 것으로 찾을 수 있었다.
“너 왜 거기 있냐?”
“남이사.”
담벼락 위에 늘어지듯이 있던 남캣은 날 보며 꼬리를 한 번 스윽- 흔들었다. 녀석 나름대로 반겨주는 모습이었다.
“야, 지금부터 네가 뭐 하는지 좀 관찰할 거거든? 나 있는 건 신경쓰지 말고, 평소대로 해.”
“……뭐 잘못 먹었냐?”
“잘못 먹었냐니. 아니, 됐다. 신경쓰지 말고, 너 하는 거 해.”
나는 손을 휘휘 내저으며 남캣을 향해 렌즈를 조준했다.
녀석은 내가 아무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휴대폰을 들이밀고 있으니 신경쓰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아주 잠깐.
[개무시 당했죠? 주인이고 뭐고 없죠?] [있든 말든 신경도 안쓰네 ㅋㅋㅋ]신경쓰던 모습이 몇 초만에 사라져버리는 모습에 시청자들이 웃어댔다. 나는 그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휴대폰을 들이밀고 있었다.
그리고, 몇십 초 정도가 더 지났을 때 남캣이 몸을 일으켰다.
[냥아치 그 자체.] [신수와 영물들/남캣/사건사고/361차 조류폭행] [걍 보이니까 패는 거 아니냐?]몸을 일으킨 남캣은 그대로 담벼락 위를 걸어가더니, 담벼락에 앉아 살아있는 CCTV마냥 주변을 둘러보던 까치 한 마리를 후드려팼다.
“뭐, 뭐하는 거요!”
“여긴 내 자리야.”
“이, 괴물 고양이가……. ?, 더러워서 간다!”
남캣에게 얻어맞은 까치는 거칠게 바닥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아주 작은 목소리로 두 녀석의 짤막한 대화를 통역해주니 사람들이 역시 냥아치라며 추켜세웠다.
하지만 나는 그런 반응을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자기 자리라며 까치를 후드려팬 남캣이 담벼락을 넘어 집 밖으로 나갔기 때문이다.
‘아니, 그럴거면 까치는 왜 쫓아낸 거야.’
남캣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던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재빨리 집 밖으로 나가 남캣을 따라갔다.
밖으로 나간 남캣은 곧바로 어딘가를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나는 재빨리 녀석의 뒤를 쫓았다. 제법 빠르긴 했지만, 마루를 산책시키며 나 역시 단련된 상태였기에 쫓아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집에서 수십 미터 이상 떨어지자, 남캣은 더더욱 으슥한 곳으로 이동했다. 안 그래도 주변에 뭐가 없는 곳이다보니 어두웠는데, 휴대폰 조명이 아니었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을 정도였다.
[남캣인줄 알고 쫓아갔는데 사실 남캣이 아니었던 거임;; 주인장 돔황챠!] [진짜 어디 가는 거냐? 좆냥이가 자기 영역은 잘 안 벗어나는데.] [초심찾으러 가잖아. 쟤 원래 길거리 출신이잖아.]섬뜩한 채팅이 보여 순간 흠칫했지만, 그렇다고 움직임을 멈추지는 않았다.
그리고, 조금 더 녀석을 따라가니 야트막한 뒷산에 도착하게 되었다. 어두워서 제대로 분간을 하지 못했는데, 조금 돌아서 뒷산에 도착한 꼴인 것이었다.
“여긴 뭐 하러 온 거지?”
뒷산에는 진짜 별 것이 없었기에, 나는 남캣이 이곳을 찾은 이유에 의문을 품으며 조금 더 녀석을 따라갔다.
아닌 밤중에 등산을 하게 됐지만 꾸역꾸역 녀석을 따라간 나는, 금세 녀석이 이곳을 찾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남캣이 이곳까지 찾아온 이유는 딱 하나였다.
“으허어어억, 뿅간다!”
“……약빨러 여기까지 온 거였냐.”
어째서 이곳에 자생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캣닙이라고도 불리는 개박하 군락이 이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녀석은 개박하 군락에 뛰어들어, 온 몸을 부벼댔다.
[약쟁이 현행범 체포다!] [남캣의 강함, 캣닙이 원인인 걸로 밝혀져…….] [신수와 영물들/남캣/논란/로이더] [유부 : 그 새끼 그럴 줄 알았어. 네츄럴이면 그럴 수가 없었다고!] [ㅋㅋㅋㅋㅋㅋㅋㅋ]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본 시청자들은 폭소를 터트렸다.
하지만 남캣은 단순히 개박하를 빨……. 아니, 개박하 향을 즐기기 위해서 이곳으로 온 것은 아니었다.
온 몸을 한껏 비벼대던 남캣은 재빨리 움직여 집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 녀석의 뒤를 따라 집으로 돌아온 나는 녀석이 그런 행동들을 보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좋은 냄새……. 너무, 좋아요.”
집으로 돌아온 내게 보인 광경은, 괜히 몸에 힘을 주고 있는 남캣의 몸에 폭신이가 제 몸을 부벼대는 모습이었다.
“페로몬향수 뿌리러 간 거였냐.”
나는 황당함에 입을 다물지 못했고, 이내 폭신이와 으슥한 곳으로 천천히 가버리는 녀석의 모습에 시청자들도 한동안 아무런 채팅을 치지 못했다.
그래. 아무리 폭신이가 남캣을 좋아하는 상태라고는 해도, 관리를 잘해야 사랑받겠지.
시야에서 사라진, 두 녀석이 가버린 곳을 잠시 바라보던 나는 몸을 돌려 집안으로 돌아갔다.
“남캣 관찰 카메라는 여기서 종료하고, 나태 관찰 카메라를 진행하겠습니다. 말 그대로 관찰 카메라니까, 저는 설치를 해두고 자러 가겠습니다. 다들 좋은 밤 되세요!”
나는 바닥에 널부러져서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는 나태를 향해 휴대폰을 들이밀었다.
하지만 그런다고 반응을 보일 나태가 아니었기에, 삼각대에 휴대폰을 걸어놓고 자러갔다. 물론, 다음날 아침이 되어 휴대폰을 회수할 때까지 나태가 움직이는 일은 없었다.
[뮤튜브 맛탱이 간줄 알았음. 어떻게 한 번을 안 움직이냐.] [정지화면 아니었어요?] [ㅇㅇ 잘 보면 새벽 5시쯤 부터 살짝씩 밝아지는 게 보임. 아니면 움직이는 발소리 같은 것도 한 번씩 들렸고.] [7시간 동안 이걸 보고 있는 내가 레게노다 진짜…….]심지어, 기록되어 있는 채팅의 대부분은 화면이 멈췄다는 이야기나, 뮤튜브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냐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자, 그럼 관찰 카메라는 여기서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아침까지 버티신 분들 수고하셨어요. 그럼 다음에 봐요!”
잔뜩 쌓여 있는 채팅들에 가볍게 웃은 나는 그대로 라이브를 종료했다.
“수환아! 이제 가자!”
그리고 현관에서 들려오는 누나의 외침에, 나는 나태를 챙겨들고 카페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