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97
0096 나들이(2)
잠드는 거 하나는 참 빠른 소은이가 고롱고롱 숨쉬는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잠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잠에 빠졌다가 바람소리에 살짝 깨고 다시금 잠에 빠지길 반복하던 도중, 누나가 나를 툭툭 건드렸다.
“……왜에.”
“수환아. 저기 봐.”
누나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향해 시선을 돌린 나는, 몰려오던 잠이 순식간에 달아났다.
“쟤들 뭐야……?”
다름이 아니라, 우리가 있는 돗자리 주변으로 동물들이 꽤나 몰려와 있었기 때문이다.
청솔모인지 다람쥐인지 모를 녀석들이 조금. 거기에 두더지 몇 마리에 고양이 몇 마리와, 족제비 한 마리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니, 요즘 족제비가 자주 나타난다더니, 여기도 있어?
“얘들 어디서 온 거야?”
“소은이 잠들고 너도 졸기 시작하니까 하나둘씩 오던데?”
누나는 태평한 모습으로 일기토와 청호를 쓰다듬으며 간식을 주고 있었다.
“……아, 몰라. 잘래.”
나는 딱히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았기에, 다시금 몸에 힘을 풀며 잠을 청했다.
문제가 생길 것 같으면 청호가 알아서 해결하겠지. 청호만큼 믿음직한 녀석도 없으니까.
바람쐬러 나와서 머리 아프게 신경쓰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내 생각대로 삼십 분 정도 흐른 다음 깨어났을 때, 우리 주변에 있는 것은 몇 마리의 참새들 밖에 없었다.
나는 조금 전에 우리에게 다가왔던 동물들에 대한 생각을 접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잤는데 엄청 개운하네.”
“그럴 수밖에 없지. 코까지 골던데? 심하게는 아니고, 코오오- 수준으로.”
“그래?”
“응. 소은이도 들었거든. 그치이?”
“웅! 코오오!”
코까지 골았다는 소리에 멋쩍게 머리를 긁적일 수밖에 없었다. 집에서도 잘 골지 않는 코를 여기서 골게 될 줄이야.
나는 괜히 이야기의 주제를 돌리기로 했다.
“날씨도 좋고, 잠도 한 번 잤으니까 산책이나 할래?”
“산책? 음……. 소은아, 산책할까?”
“산책 조아!”
산책이라는 소리에 소은이가 벌떡 일어나서, 당장이라도 걷겠다는 듯이 다리에 힘을 주었다.
나는 부랴부랴 돗자리를 접고 바구니를 챙겨 차에 넣고 돌아왔다. 짐을 들고 간절곶 한 바퀴를 도느니 잠깐 주차장에 다녀오는 것이 더 나았다.
짐 하나 없이 돌아오니, 누나의 곁에 웬 여자 한 명이 누나와 함께 하하호호 웃고 있었다. 가까이가서 들으니, 대부분이 소은이가 귀엽다는 등의 이야기였다.
“어? 누나, 누구?”
“왔어? 인사해. 내 친구야. 예은이라고, 너도 학교다닐 때 오가면서 봤을 걸?”
우리처럼 바람쐬러 나왔는데, 우연히 마주친 거라는 누나의 설명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나눴다.
학교다닐 때 한두 번 정도 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예은아. 우리 가볍게 산책할 건데, 같이 갈래?”
“그러지 뭐.”
나는 하하호호 떠드는 두 사람의 모습에 어깨를 으쓱이며, 소은이에게 다가가 산책을 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주었다.
언제든지 벗을 수 있도록 헐렁하게 고정한 신발을 탄탄하게 고정해주었고, 앙증맞은 손에 두 개의 줄을 쥐어줬다.
당연히 그 두 개의 줄은 청호와 일기토의 몸줄과 연결 된 줄이었다. 두 녀석을 이끌고 원하는 곳으로 스스로 걸어가라고 해준 것이었다.
“꼬!”
그리고, 산책의 준비를 끝마친 것을 알아차린 소은이는 힘차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성큼성큼 걷는 소은이의 뒤를 청호와 일기토가 따랐다.
“귀여워!”
누나 친구의 외침을 뒤로하고, 나는 천천히 소은이의 뒤를 따랐다.
소은이는 말 그대로,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열심히 걸어갔다.
소은이가 주로 다가가는 곳은 반짝반짝 빛이 나도록 만들어져 있는 조형물들이었다. 지금까지 흔하게 볼 수 있던 것이 아니다보니, 마냥 신기한 듯했다.
어찌나 신기했던 건지, 소은이는 쥐고 있던 일기토와 청호의 줄을 놓을 정도였다.
“히히!”
그리고, 그렇게 신기함에 기뻐하던 소은이는 갑자기 뛰기 시작했다. 그 옆쪽에 위치한 또 다른 조형물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두 녀석들도 소은이의 뒤를 따랐다. 소은이가 신기함에 놓아버린 줄 끝을 물고서 열심히 따라갔다.
폴짝폴짝 뛰는 일기토와, 재빨리 뛰는 청호는 순식간에 소은이의 곁으로 다가갔다.
“아가씨!”
멍- 하고 짖은 청호는 자기가 물고 있던 줄을 내밀었다.
소은이는 그제서야 자신이 줄을 놓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는지, 줄을 붙잡으며 청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 이후, 폴짝폴짝 뛰며 온다고 늦은 일기토의 줄까지 붙잡은 소은이는 다시금 힘차게 걸음을 옮겼다.
조형물에도 기웃거리고, 화단에 기웃거리고, 근처에 놀고 있는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하기도 하며 산책을 즐기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저기 기웃거리던 소은이가 갑자기 어딘가를 보더니, 내게로 쪼르르- 달려왔다.
“압빠! 저기, 저기이!”
내게 달려와 바짓춤을 툭툭 잡아당긴 소은이는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리고, 그곳으로 시선을 돌린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다름이 아니라, 웬 덩치큰 핏불테리어 한 마리가 주인도 없이 혼자서 덩그러니 서있었기 때문이다.
핏불테리어라는 종이 맹견에 속하는 만큼, 그 주변으로 사람들이 접근하지 않고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강아지!”
“저 강아지 보러가고 싶어?”
“웅!”
소은이의 말에 나는 잠깐 고민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소은이의 초능력이라면 걱정할 것이 없었고, 청호까지 있었으니 더더욱 걱정할 것이 없었다. 핏불테리어가 아니라 어떤 맹견이 와도 청호를 이길 수 없으리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소은이를 안아들고 천천히 핏불테리어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본 누나의 친구가 당황한 목소리로 소리치기 시작했다.
“가면 어떡해! 위험해요! 그거 맹견이라고요! 꺄악! 입마개도 없잖아!”
하지만 누나 친구의 외침에 반응한 것은 내가 아니라 누나였다.
“걱정하지 마. 우리 애는 안 물려.”
“아니, 청호가 문제가 아니라 소은이가 문제잖아!”
“……청호가 아니라, 소은이 말한 건데? 소은이는 안 물려. 소은이가 동물한테 물리는 건 로또 당첨될 확률이랑 비슷할 걸?”
“애 엄마라는 사람이 그렇게 말하면 어떡해. 걱정도 안 돼?”
“응. 안 되는데?”
뒤에서 들려오는 만담아닌 만담을 들으며 핏불테리어에게 다가갔다.
입마개는 하지도 않은 건지 흔적도 보이지 않았고, 목줄을 놓쳤던 건지는 몰라도 사슬 같은 목줄이 바닥에 추욱 늘어져 있었다.
아니 도대체 어떤 얼간이 같은 인간이 입마개도 안 한 맹견을 놓친 거야?
“여긴 내 영역이야 꺼져!”
그리고, 점점 더 가까워지니 핏불테리어가 낮게 울며 경고를 했다. 절대 접근하지 말라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나는 그런 위협을 조금도 신경쓰지 않았다.
나 대신 반응하는 두 녀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애기한테 꺼지라고 한 거샤? 뒤지고 싶은 거샤? 대가리 박으샤!”
“쥔님, 잠깐만 놔주십셔. 저 놈의 썩어빠진 정신머리를 고치고 오겠슴다!”
청호는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모습을 보였다.
“……너는 쟤한테 한입거리 아닐까?”
문제는 조그마한 일기토 녀석도 아주 성을 내고 있다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나는 청호의 몸줄을 가볍게 풀어주었다. 소은이가 더 가까이 가기 전에, 일단 위협하고 보는 저 썩어빠진 정신머리를 고치긴 해야할 것 같았다.
“넌 뒤졌슴다!”
“아니, 죽이지 말라고.”
줄에서 풀려난 청호는, 그대로 핏불테리어를 향해 맹렬하게 돌진했다.
그리고, 그런 청호의 행동을 도전으로 받아들인 핏불테리어는 강인해 보이는 다리에 힘을 주어 땅을 박차며 청호를 향해 달려들었다.
서로를 향해 있는 힘껏 달리기 시작한 두 녀석은 곧바로 충돌했고, 그 충돌의 결과가 바로 나타났다.
“끄어어어어…….”
무척 강해보이던 핏불테리어가 바닥을 나뒹굴며, 청호에게 깔려 있었다.
“건방지게 굴면 뒤지는 검다.”
청호는 핏불테리어의 머리를 지그시 밟고서 나지막하게 경고했다. 그 경고가 확실히 먹혀들었는지, 핏불테리어의 꼬리가 가랑이 사이로 쏙 말려들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가까이 다가가, 소은이를 내려주었다.
바닥에 두 발을 딛은 소은이는 그대로 핏불테리어에게 다가가, 청호에게 밟혔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가까이가니 확실하게 초능력이 효과를 발휘하는지 핏불테리어는 으르렁거리지 않고, 오히려 소은이의 손바닥을 할짝할짝 핥아댔다.
“꺄하하항!”
손바닥이 간지러웠던 소은이는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도 마음에 들었던 건지는 몰라도, 녀석의 몸을 슥슥 쓰다듬는 것을 멈추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소은이가 핏불테리어를 만지며 즐기고 있을 때, 저 멀리서 웬 남자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죄, 죄송합니다! 혹시 다치진 않으셨나요?”
다가온 남자는 핏불테리어와 소은이를 보더니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허리를 꾸벅꾸벅 숙여댔다. 그런 그의 손에 입마개가 들려 있는 걸로 봐서는 일부러 풀어놓은 것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다치진 않았는데, 간수는 잘 하셔야겠네요. 저라서 안 다친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크게 다쳤을 수도 있어요.”
“네, 네……. 죄송합니다! 입마개 하려는데 갑자기 도망을 쳐서…….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정말 죄송합니다.”
남자는 연신 허리를 숙이며, 핏불테리어의 목줄인 사슬을 자신의 가슴팍에 걸린 하네스에 연결했다. 그래, 저렇게 하면 최소한 온 몸으로 끌어당기긴 편하겠네.
나는 혹시라도 사고가 날 수 있음을 대비해, 핏불테리어 녀석을 붙잡았다.
“주인 옆에서 도망치지 말고, 입마개는 불편해도 꼭 하고, 사람이 있다고 공격하지 말고. 다른 동물도 공격하면 안 돼. 안 지키면 쟤가 널 찾아갈 거야.”
“히, 히익! 지키겠습니더!”
핏불테리어는 내 경고에 화들짝 놀라더니, 청호를 바라보며 더더욱 놀란 모습을 보였다. 아니, 한 방 맞은 게 그렇게 무서웠던 건가?
심지어, 녀석은 제 주인을 재촉하며 빨리 돌아가자고 했다. 청호랑 더 이상 가까이 있고 싶지 않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소은이가 있어도 도망치려는 것이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핏불테리어의 주인에게 가보라며 인사해주었고, 소은이는 핏불테리어를 향해 손을 붕붕 흔들어대고 있었다.
“엄마한테 갈까?”
“웅, 엄마!”
핏불테리어가 가버린 것에 살짝 아쉬움을 느끼는 듯하던 소은이는 엄마라는 소리에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누나를 향해 달려갔다.
“아, 아가씨 줄 놓으면 안 됨다!”
“나도 좀 데려가라는 거샤!”
또 소은이에게 방치당한 두 녀석은 자신들의 줄 끝을 물고서 다시금 소은이를 쫓았다.
“뀨엑!”
아, 일기토 자빠졌네.
나는 뛰다가 줄에 엉켜 넘어진 일기토를 챙겨 누나에게 다가갔다.
“소은아. 얘들 챙겨야지.”
“웅!”
“대답은 잘 해요.”
나는 소은이 손에 일기토의 줄을 쥐여주며 흐뭇하게 웃음 지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누나와, 누나의 친구 역시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렇게 해맑은 소은이의 모습 덕분에 행복함을 한껏 느낀 우리는 조금씩 해가 저물어갈 때 즈음 카페로 돌아왔다.
다행히 우리가 자리를 비운 사이 문제가 생겼다거나 한 일은 전혀 없었기에, 우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마감을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