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nk Rock: Regenerating World RAW novel - Chapter 247
247화
* * *
호란은 저도 모르게 시현 쪽을 보았다. 시현은 난처한 얼굴이었다.
“위아래를 막론하고 사람의 신체적인 조건을 함부로 입에 담지 않는 것은 지켜져야 할 예법이라 생각하지만…. 아래를 억압하는 도구로 쓰이는 것은 확실히 부작용이 더 크구나. 더구나 처벌까지 한다는 것은.”
“응. 그게 니네들의 문제야. 우리가 뭐 때문에 조졌다는 얘기를 하면 항상 거기에는 명분이 있고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얘기를 제일 먼저 꺼낸다니까. 방금 이쪽이 조진 얘기를 못 들은 것처럼.”
단이 툴툴대자 시현은 입을 다물었다. 단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뭐, 됐어. 웃기는 얘기지만 난 지금 그 거지 같은 금기 덕을 톡톡히 보고 있으니까. 북방 놈들이 그렇게 입조심을 하고 몸을 사리는 덕택에 호란이나 나에 대해서도 신상이나 자세한 인상착의가 안 돌아다니잖아.”
호란이 억울한 얼굴로 물었다.
“하지만 아까는 나 때문에 시문 님 정체가 들키는 거라며?”
“그건 어쩔 수 없지. 주먹으로 거석 깨는 십 대 얘기가 어떻게 소문이 안 나냐? 네 얘기는 이미 중부 쪽 다닐 때부터 가는 데마다 짜했어.”
시현도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런 이야깃거리는 확실히 금기에 상관없이 널리 퍼지더구나. 나도 문이 되었을 때 제일 세간에 많이 알려진 것은 나이 이야기였다. 원래는 격에 오른 이를 이야기할 때 달한 나이를 거론하지 않는 것이 예법이다만.”
“아… 그러면 여기서 별로 달갑지 않은 결론이 나는데.”
단이 호란과 시현 각각을 향해 집게손가락을 뻗으며 말했다.
“장 볼 때 너네 둘이 같이 다니면 안 되겠다.”
호란이 물었다.
“어? 그럼 시문 님 호위는 어떡하구?”
“한씨 율지가 보내준다고 한 애들 있잖아. 그치들이랑 다녀올게.”
호란은 금방 정색이 되었다.
“그런 게 어딨어! 다른 호위들 사이에 섞여 있으면 괜찮은 것 아니었어? 내 나이 몫꾼이 얼마나 흔한데!”
“응. 네 나이 몫꾼도 흔하고, 시문 나이에 벼슬하는 땅인도 흔하지. 그런데 둘이 같이 있으면 역시 눈에 띌 거 같아. 골치 아플 확률은 조금이라도 줄여야지. 그리고….”
단이 호란의 어깨를 양손으로 쥐고 진지하게 말했다.
“전에 말했지? 너는 수레 지켜야 돼. 시문이 신분 안 밝힌 동네에서는 쟤보다 돈궤 들은 수레가 더 중요하다.”
“같이 못 다니는 것도 모자라서, 나는 처소에만 있어야 돼?”
“살 거 빨리 사고 와서 교대해 줄게.”
호란은 잠깐 입을 비쭉거렸지만 곧 마음을 풀었다.
“뭐, 괜찮아! 이것도 누구는 해야 할 몫이니까. 근데 율지 나리가 보내준다는 호위들이 괜찮은 몫꾼이라야 되는데.”
“그건 봐야지 뭐.”
한 시진이 안 지나서, 율비가 보낸 네 명의 호위와 두 명의 종자가 찾아왔다. 일부러 흰바위 마을 밖에서 데려온 이들로, 원래 지역 세도가를 모시던 이들이라고 했다.
몫꾼들이 모두 기세가 좋고 눈빛이 밝아서 호란은 금방 안심했다.
새로 온 사람들이 짐을 풀고 얼굴을 익힌 후, 단은 곧바로 시현과 함께 처소를 나섰다. 이미 해가 진 지 시간이 꽤 지나 야간 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흰바위마을에서 이루어지는 상거래는 백 건 중 구십구 건이 밀거래였지만, 밀거래에도 급이 있었다. ‘급이 다른’ 물건은 대부분 야간시장에 나왔다.
흰바위 마을 암시장은 지금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찰령부사와 원곡부사, 그리고 인근 한수읍성의 지역 토호들이 공동으로 관리하고 있었다. 이 세 세력 중 한쪽과의 연줄 없이는 방석만 한 좌판 하나 펴기 어려웠다.
또한 이들 각각은 대운관 중앙 정계에서 파벌을 지은 세도가들과 복잡하게 줄이 닿아 있었다. 중앙 정계가 평화로울 때는 경쟁을 하면서도 대체로 협력하는 분위기였지만, 본질적으로는 서로 정적이었다.
따라서 이 세 세력은 서로의 양해와 묵인하에 공범 노릇을 하면서도, 언제든지 공격 패로 쓰기 위해 서로의 약점을 찾으려 눈을 빛내는 사이였다.
이 모순적인 관계가 낮 시장과 밤 시장의 차이를 만들었다.
낮 시장에서 거래되는 물건은 세 세력이 제 이득에 따라 어떤 물건을 얼마나 시장에 들이게 할지 나름의 합의를 거친 것들이었다. 가격 담합이나 물량 조절 같은 것도 이루어졌다.
대신 치안도 지켜지고 상품도 어느 정도 보장이 되었다. 어차피 불법인 것은 마찬가지라도 시장에 최소한의 규칙이 있는 셈이었다.
반면 밤 시장에는 세 세력이 서로에게 드러내어 합의 대상으로 삼기 어려운 물건이 올라왔다.
여기서 진행되는 거래 역시 세 세력이 암묵적으로 묵인한 것이었지만, 세 세력은 어느 상인의 어느 물건이 자기와 연줄이 닿아 있는지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횡령한 군수물자, 대역죄로 엄금하는 거래 불가 물품이나 유해 물품, 출처가 뻔한 장물과 약탈품 등이 대표적이었다.
세력 간의 가격 담합 대상에서 빠진 고가의 마력석이 있는가 하면, 규칙이 느슨한 것을 틈타 끼어든 사기꾼의 물건도 돌아다녀 종을 잡을 수 없는 시장이었다.
율비가 종자 겸 안내역으로 보낸 사람에게서 시장 상황에 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서, 단은 야간 시장에서 봐야 할 물건을 두 가지로만 좁혔다. 화기와 마력석이었다.
식량이나 연료 같은 것은 가격 담합으로 바가지를 쓰더라도 낮 시장에서 어느 정도 보장된 물건을 구하는 게 낫다. 하지만 화기는 낮 시장엔 없을 것이고, 마력석 거래에 가격 담합이 있다면 낮과 밤의 시장을 다 둘러보는 것이 좋았다.
단의 계획을 듣고 시현이 말했다.
“마력석은 경매에서 살 수도 있다. 경매로 거래되는 양이 훨씬 많고, 상시로 팔리는 물건은 낮 시장 것이든 밤 시장 것이든 질이 낮은 경우가 많다고 율지가 말하더구나.”
시현의 옆을 걸으며 단은 그를 흘긋 보았다.
“나리님. 경매에 가시겠다는 건 모레까지 머무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말씀이신가요?”
“아.”
시현이 난처한 얼굴이 되었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밤 시장과 낮 시장의 가격을 비교해보자고 한 것은 단 네가 아니냐. 경우에 따라서는 내일 밤 시장에 다시 오게 되는 게 아닌가 하고.”
“아닌데요. 저는 비교하자고 한 적이 없습니다. 둘 다 보자고 했죠. 두 군데 다 보고 양쪽에서 다 살 겁니다.”
“하지만 가격 담합은….”
“나리님, 제가 나리님을 모셔서 좋은 게 딱 하나 있다면 여기까지 오면서 돈 걱정을 한 번도 안 했다는 겁니다. 그냥 쓰실 만한 돌인지만 보세요. 가격 문제는 제가 생각할 테니까요.”
“알았다.”
원래 돈 걱정에 소질이 없는 시현은 바로 수긍했다.
단이 앞쪽을 가리켰다.
“저기 불 밝혀진 데가 밤 시장인가 보네요. 규모가 꽤 되는데요.”
단이 가리킨 방향을 보고 시현이 조금 놀란 듯이 말했다.
“저것이 규모가 큰 것이냐? 그리고… 내가 아는 시장과는 많이 다르구나.”
밤 시장에는 넓게 펼쳐진 좌판도 쌓여 있는 상품도 없었다. 상인이 호객하고 구매자가 흥정을 하는 소란이나 활기도 물론 없었다.
어둑어둑한 광장에 작은 가건물과 천막이 엇갈리며 잔뜩 서 있고, 그 언저리 낮은 불빛 아래에 사람들이 서서 어정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발치에 작은 좌판을 펼쳤거나 가판을 메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거기 올려져 있는 물건들은 몇 개 되지 않았다. 그나마도 주위에 밝혀진 불빛이 어두워 물건을 잘 보기나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단이 설명했다.
“어쨌든 밀거래니까요. 물건을 다 보이게 늘어놓고 팔지 않습니다. 몇 개 바깥에 나와 있는 물건들도 다루는 상품 종류를 보여주기 위한 것일 뿐이고요. 상인이 손님을 찾으면 저 가건물 안에 들어가서 진짜 상품을 보여주지요.”
“너는 암시장에 대해서도 자세하구나.”
“그렇진 않아요. 몇 번 가본 적은 있습니다만.”
“저자들이 다 상인이라면, 누가 무얼 파는지는 어떻게 알고 거래를 청하느냐? 저 중엔 물건을 아예 갖고 있지 않은 이도 있는데.”
“그래서 사전에 정보가 없으면 암시장에 머리를 들이밀기가 쉽지 않죠. 특히 구하기 어렵거나 수량이 제한된 물건은요. 하지만 흔한 물건은 보통 상인이 먼저 알아보고 말을 걸어와요. 저 사람들도 장사하며 쌓은 촉이 있어서 누가 뭘 찾는지 다 알아보거든요.”
“얼굴만 보고 자기 손님인지 아닌지 구분한다고?”
시현이 의아한 듯 물었다. 단이 픽 웃었다.
“왜 모르겠습니까?”
이미 광장의 상인들 중 반 이상이 다섯 명의 수행을 달고 시장으로 다가오는 시현을 보며 눈을 빛내고 있었다.
말뚝이 꽂힌 안으로 시현이 발을 들이자, 그것이 어떤 선이기라도 한 듯 상인들이 우르르 모여들었다.
“나으리, 마력석을 구하십니까?”
“세공된 것, 원석, 어느 쪽을 찾으십니까?”
“제게 참석이 있습니다.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참석입니다.”
상인들은 시현에게 너무 다가붙거나 앞길을 가로막지 않으면서도 번갈아 다가와 낮은 소리로 말을 건넸다.
시현이 쓴웃음을 짓고 단을 보았다.
“과연. 나를 보면 누구나 뭘 찾는지를 알겠구나.”
“어쩔 수 없지요.”
단은 상인들을 둘러보며 첫 번째로 상대해볼 사람을 고르려고 했다. 하지만 단이 낙점을 하기 전에 시현이 먼저 말했다.
“이 중에 약탈물이 아닌 물건을 거래하는 사람이 있느냐?”
상인들은 잠깐 놀란 듯 눈을 껌뻑였지만 곧바로 반 이상이 저라고 하며 앞으로 나섰다.
시현이 그중 한 사람을 고르자 상인은 헤벌쭉해 하며 가건물 하나로 일행을 이끌었다.
뒤를 따라가며 단이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
“질문을 하셔도 꼭… 그렇게 최고로 호구같이 보이는 질문을 하셔야 했습니까?”
“누가 어떤 물건을 갖고 있고 얼마나 신뢰가 있는지 모르는 바에야, 아무거라도 기준이 하나 있는 쪽이 편하지 않겠느냐?”
“그러니까 왜 기준이 하필 그거냐는 말씀이에요. 어차피 암시장에 흘러들어온 물건이야 다 그렇고 그렇기는 마찬가지 아닙니까. 강도질한 물건이라고 해도, 저 상인들이 직접 강도를 한 것도 아니고….”
“나으리, 이리 들어오십시오. 너무 초라한 장소라 죄스럽습니다마는.”
상인이 막사 하나의 입구를 걷어 올리고 유등을 켜며 시현을 불렀다. 안에는 작은 탁자와 의자, 물건을 지키는 하늘인 호위 한 사람이 있었다.
시현은 단과 호위 한 사람만을 데리고 들어가 탁자 앞에 앉았다. 단이 투덜대는 소리를 들었는지 상인이 벙긋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이런 것은 기분 문제도 중요하지요. 모르고 남의 피가 묻은 물건을 지니게 되면 마음도 찜찜하고, 또 동티가 될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귀하신 분답게 잘 결정하셨습니다.”
시현은 상인의 너스레에는 대꾸하지 않고 말했다.
“패물한 것을 보여라. 크기나 값은 상관없다.”
“예, 예.”
상인은 곧 하늘인 몫꾼을 시켜 탁자에 물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차례차례 열리는 상자를 한동안 들여다보던 시현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되었다. 넣거라.”
“예?”
당황하는 상인을 두고 시현은 바로 등을 돌려 막사를 나왔다. 뒤를 쫓아 나오는 단에게 그가 말했다.
“보거라. 대단한 기준은 아니다만 그래도 아무 기준 하나는 있는 쪽이 좋지 않으냐? 최소한 거짓말 하는 자가 누구인지는 구분할 수 있으니.”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