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nk Rock: Regenerating World RAW novel - Chapter 267
267화
* * *
다음 날 오전 일행은 귀수관 인근까지 다다랐다. 아직 성이 안 보이는 장소에 수레를 세우고 이른 점심을 먹은 뒤, 길은 사예를 어깨에 태우고 달려서 관성 상황을 정찰하러 갔다.
두 사람이 다녀오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다. 길이 등을 구부려 막사 안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그냥 다 때려 부수고 들어가면 될 거 같던데.”
정찰을 왜 갔는지 모를 소리로 입을 여는 길을 단이 지겨워하는 얼굴로 쳐다보았다. 그래도 지금 단에게는 평소 두 배 길이의 숙면과 남이 해준 세끼 밥으로 충전된 인내심이 있었다. 그가 차분하게 말했다.
“네가 본 걸 이야기해. 네 생각 따윌 말하지 말고.”
“별다른 건…. 겉만 봐선 성안에 법력이 돌아왔는지 어떤지 전혀 모르겠더만. 성 밖에 초소랑 뭐랑 지키는 놈들이 있긴 하던데 다 비리비리한 놈들뿐이야. 쓸어버리면 돼.”
“그 초소랑 뭐랑 부분을 더 자세히 이야기해줄래?”
“뭘 지어놓긴 했는데 바람도 제대로 못 막게 생겼어.”
단은 도무지 제대로 된 정보를 주지 않는 길 대신 사예를 쳐다보았다. 사예가 가죽을 깐 의자에 풀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성에서 좀 떨어진 장소에 띄엄띄엄 검문소 겸 초소를 세우고 석책으로 연결해서 관성을 한 바퀴 빙 둘러놨어. 석책이래봤자 높이도 낮고 조악한 게 거석한텐 별 구실 못 할 것 같던데.”
“사람의 접근을 막기 위한 거겠죠. 정확히는 시문 나리님을요.”
“그래 보여. 초소마다 하늘인 병사가 수십 명씩 있더라. 그리고 성 위에 총령부 깃발이 줄줄이 있었어. 웬일로 꼰대들이 번을 다 서나 봐. 걔들 추운 날 더운 날엔 절대 성벽 위로 안 올라오는데.”
시현이 말했다.
“그것도 나를 막기 위한 것이겠지. 법군 부대가 교대하며 성벽 위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검문소에서 소란이 나면 법술로 저격해올 것이다.”
“역시 무력으로 성문을 돌파하는 건 그만두겠습니다. 아무리 이쪽에 나리님이 있어도, 성 위에선 마력을 무한정 쓸 수 있을 테니.”
단이 말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얼굴을 하는 길을 무시하고 그가 사예에게 물었다.
“관성의 사대문은 열려 있습니까? 출입하는 사람은요.”
“우리가 보고 온 두 방향은 다 열려 있었어. 출입은 있긴 한데 눈에 띄게 적어. 그래도 군인이랑 상인, 채집꾼에 광산 수송대에 꽤 다양하게 드나들던데.”
“전부 검문을 하겠죠?”
“응. 완전 귀찮아 보였어. 석책 앞 검문소에서 한 번 성문에서 한 번 두 번 검문하고, 출입자 명부 같은 것도 적더라. 군인들까지 한 명 한 명 신분패 확인하고. 이 동네 돌대가리들 융통성 없는 건 그대로일 줄 알았지.”
“아 이럴 거 같았어….”
단이 한숨을 쉬었다.
“그러니까 제가 다른 읍성부터 들르자고 한 거라고요. 그래도 귀수관 속령 땅인은 피난 온 사람까지 다 받아주니까, 누구 관성에 출입 가능한 땅인을 하나 엮어서 신분을 빌려 보려고 했는데.”
길이 물었다.
“뭐야. 신원을 속여서 들어가고 싶었어? 그럼 가짜 신분패라도 쓰면 되잖아.”
“너나 나는 그걸로 어떻게 될지 몰라도….”
단이 말끝을 흐렸다. 시현이 물었다.
“가짜 신분패라니. 그런 걸로 성문을 통과할 수 있단 말이냐? 읍성도 아니고 관성을?”
“평소에는요.”
“하지만 각 관성에서 신분패 위조를 막기 위해 여러 대책을 강구하고 있지 않으냐. 조형과 각명에 엄밀한 규격을 두고, 소재와 무게를 통일하고, 명부를 정확하게 하고….”
“그런 식으로 똑같이 만들기 어렵게 해놨으니까, 역으로 똑같이 만들기만 하면 쉽게 통과가 되는 거죠. 소재는 구할 수 있고 무게야 납이라도 찔끔 넣어서 맞추면 되고요. 평소엔 관성 드나드는 그 수많은 사람들을 명부 대조할 것도 아니고…. 원래는 그런데.”
지금은 원래 상황이 아니라는 게 문제였다. 단이 설명을 덧붙였다.
“게다가 땅인의 신분패는 반민 신분패보다 위조가 어려워요. 모양도 모양이지만 관성 안 땅인 집안은 자칫 문지기가 면면을 알지도 모르니까 함부로 가짜 이름을 새길 수가 없거든요. 그렇다고 속령이나 타관에서 왔다고 하면 검문이 엄청 심해질 테고. 그러니까 인근 읍성에 신원 보증해줄 사람이라도 있어야….”
그새 관심을 잃고 건량 자루를 부스럭거리고 있던 사예가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셋 다 내 애인이라고 하고 데리고 들어갈까? 어쨌든 내 거 하나는 있으니까.”
시현이 눈을 깜박였다.
“그대에게 무엇이 있다고? 설마 귀수관 신분패가?”
“네. 고향이니까?”
사예는 당연한 것처럼 말했다. 단과 길은 놀라는 표정이 아니었지만 시현은 금시초문이었다.
“그대가 귀수관 출신이었던가. 하지만 추방당했다 하지 않았는가?”
사예가 손가락을 꼽아보다 말면서 말했다.
“추방령은 5년 기한이었는데, 끝났어요. 끝났나? 집에서 돌아오라고 신분패 보내오는 거 보니까 끝난 거 맞겠죠.”
단이 말했다.
“끝난 지야 한참 됐죠. 근데 그 신분패 잃어버렸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잃어버렸는데 자꾸 또 보내더라고. 거기 어디 있을 건데.”
“거기 어디가 어디… 아니, 됐습니다.”
단이 벌떡 일어나서 막사를 나갔다. 그는 사예의 수레 짐칸을 제 것처럼 뒤져대더니 곧 똑같이 생긴 세 개의 신분패를 들고 와서 좌라락 늘어놓았다. 사예가 아하하 웃었다.
“술 먹으면 나도 내가 어느 동네 가 있는지를 모르는데, 우리 집에선 대체 어떻게 알고 이렇게 보내오는지 몰라!”
시현은 사예 부모의 심정을 생각하고 마음이 애련해졌다.
추방령의 기한이 끝나더라도 가문에서 직접 죄인을 맞으러 가는 것은 법도 밖이다. 서신 써서 오라 말라 하는 것도 옳지 않게 여겼다. 우회적인 의미로 여비와 관성에 출입할 수 있는 신분패를 보내주는 게 최대한이었다.
시현이 물었다.
“이제까지 왜 돌아가지 않았는가.”
“돌아가도 별 재미 없어서요?”
사예는 무심하게 대답하고는 발치에 큰 개처럼 주저앉아있는 길의 머리통을 벅벅 문질렀다.
“그리고 내가 관성 들어가 버리면, 우리 길이는 어떡하라구? 그치 응?”
“그러게요! 저는 사예 님밖에 없는데!”
길이 냉큼 대답했다. 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류사예가 인생에 단 한 번 책임 있는 어른의 판단력을 발휘한 일이었다. 사예 아니라 누구라도 최길을 관성도시에 데려가 풀어놓고 기를 수는 없는 것이었다.
어쨌든 사예에게 진짜 귀수관 신분패가 있으니 일은 크게 진전된 거였다. 하지만 단은 아직도 어려운 얼굴이었다.
“사예 님이 신원을 보증해주시면 저나 길이는 다 들어간 건데. 역시 문제는 시문 나리님이네요. 관성 밖에서 왔다고 땅인 신분패 내밀면 눈에 불을 켜고 볼 텐데. 충분히 그럴듯하게 만들 수 있을지 잘….”
사예가 물었다.
“전문이잖아? 그런 거.”
“아니, 일단 전 위조 전문이 아니고요.”
남운관 총치부 대리의 시선이 와서 꽂히는 걸 느끼며 민적관 잡직 공무원이 말했다.
“땅인 신분패는 반민이나 하늘인 것보다 훨씬 정교하잖아요. 관성마다 생긴 거 달라서 이제는 세세한 거까지 살릴 자신이 없다고요. 마지막으로 만든 지가 거의 3년은 됐는데.”
결국 말 나온 흐름으로 범죄 전력을 고백하고서 단은 머리를 긁적였다. 남운관에 돌아가면 직장을 새로 구해야 할 것이다.
사예가 말했다.
“괜찮을 거 같은데. 내 일행으로 들어가는 거잖아. 일단 내 거가 확인되면 다른 사람 것까지 그렇게 열심히 보겠어?”
“보겠죠, 상황이 상황인데.”
사예가 단을 보며 의아한 듯 눈을 깜박였다.
“안 본 사이 애가 왜 이렇게 숙맥이 됐어? 너무 편하게 지낸 거야, 아니면 너무 고생을 많이 한 거야?”
그가 말을 이었다.
“마력이 되돌아왔단 건 저 동네는 옛날 그대로 꼰대들 세상이란 거잖아. 타관 땅인 혼자면 모를까, 관성에 연고 있는 땅인한테 니 패 짭 같다 소리를 어떻게 해?”
“평시에야 못 그러죠. 근데 지금은 놈들이 속령에까지 사람을 풀어서 시문 나리님을 찾고 있잖습니까. 관성은 더 철통같이 하겠죠.”
“응? 철통 뜻을 내가 잘못 알았니? 철통은 그거잖아. ‘어, 철통같이 해라. 나는 빼고.’ 할 때 그거.”
사예가 턱과 배를 내밀며 고관 흉내를 냈다. 단의 표정이 약간 변했다. 길은 실실 웃고 있었고 시현은 혼자 못 알아들은 얼굴이었다.
사예가 말했다.
“꼰대들이 시문 절대 못 들어오게 하라 소리야 했겠지. 근데 그 소리가, 초소병 따라지가 패 내놓으라 하고 신원 따박따박 따져 물어도 지들이 참겠다 소리는 아니라고. 초소 애들도 다 알지. 꼰대 하루 이틀 보냐.”
사예는 손가락 세 개를 펼쳐 들었다. 그가 손을 하나하나 꼽으면서 설명했다.
“봐라? 초소 애들 입장에선, 완씨 시문 찾으라고 명 받아봤자 문이 어떻게 생긴지를 아무도 몰라. 윗전, 그것도 극상격의 외모가 어떻다 말하는 건 법도에 어긋나서 말이 안 전해지니까. 신분패? 난 이 동네 살던 시절엔 신분패 더 잘 잃어버렸어. 패 검사 안 해서 쓸 일이 없으니까. 꼰대께서 제 신분이 뭐라 하면 그냥 그런 줄 아는 거지, 한낱 초소병이 되물었다가 무슨 난리가 나려고.”
단은 조금씩 수긍하는 얼굴이 되어갔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하기는… 북방 3성의 특산물이 진상 꼰대란 건 유명한 사실이죠….”
“귀수관은 그중에서도 특급이라고.”
사예가 마지막 남은 손가락을 흔들면서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유일하게 쟤들이 용기 있게 따져 물을 수 있는 게 정말로 귀수관 대관성 사는 사람 맞느냐 하는 건데, 내가 대관성 사람인 건 바로 확인될 거야. 나는 유명하니까.”
단은 바로 납득했다. 그야 유명했을 것이다. 사람 죽이기 전에도 이미 뭐로든 간에 유명했겠지.
단이 턱을 짚고 곰곰이 생각하며 말했다.
“괜찮을지도… 될 지도요. 놈들이 대강 본다 치면, 윤지관이나 치풍관 같이 먼 지역 패는 좀 어색해도 잘 모를 거고.”
“그렇다니까. 나랑 같이 가면 쟤들은 절대 제대로 검문 못 해.”
사예가 자신 있게 말했다. 하지만 시현은 확신이 없어 보였다.
“설마. 저들도 제 목숨이 걸린 일인데 그렇게까지 엉망일 수가 있겠느냐.”
“그거라고요. 딱 그렇게 엉망일 수가 있다고요.”
“네. 군과 관의 현장 실무란 건 대체로 그렇게까지 엉망이죠. 다 같이 목숨 걸었단 얘긴 아무도 안 걸었단 얘기고.”
사예와 단이 차례로 답했다. 시현은 그래도 걱정을 했다.
“만약 책임 있는 땅인 관인이 초소에 나와 지키고 있다면 위험하지 않겠느냐.”
사예가 딱하다는 얼굴이 되었다.
“이분은 꼰대들을 너무 믿으신다. 대체 왜 그런 거를 믿지? 정 신경 쓰이면 나중에 초소 꼬라지를 보세요! 걱정이 싹 내려갈걸. 귀수관 사족들은 그런 데 발 들이면 그 자리에서 죽어서 고꾸라져요, 무슨 품위 경색 같은 걸로.”
단은 다 정해졌다는 얼굴로 걸낭을 열고 도구와 나무패, 물감통을 꺼냈다. 그가 탁자 위에 가죽을 깔고 빠르게 조각도를 늘어놓으며 물었다.
“옙. 나리님 신분패 새겨드립죠. 뭐라고 새길까요?”
시현이 심각한 얼굴로 질문했다.
“본디부터 신분패 위조할 재료를 가지고 다녔느냐? 언제나 그러느냐?”
“……뭐라고 새길까요?”
단이 다시 한번 물었다. 사예가 신나서 말했다.
“내 정인이라고 하자!”
“그건 신원이 아닙니다. 사예 님은 사람이 아니고.”
단은 냉연했다. 사예가 입술을 삐죽 내밀더니 시현에게 물었다.
“전번에도 나이 차이 갖고 그러더니. 대체 몇 살이길래요? 내가 문 났다 소리 들은 지가 진짜 한참 됐는데.”
“열일곱이다만.”
사예가 비장하게 말했다.
“좋아. 내가 사람 새끼가 아니란 걸 인정하겠다.”
“그걸 인정하지 말고 집적대는 걸 그만둘 생각을 하시라고요.”
단은 핀잔하면서도 아무 기대도 안 하는 음성이었다.
시현이 약간 민망해하는 얼굴로 사예에게 말했다.
“그래도, 그대에게 무례가 되지 않는다면… 혹시 초소병이 질문하면 정인 사이라 답하는 게 어떻겠는가? 이런 난시에 먼 타관 사람이 북방 끝까지 올 이유가 마땅치 않고….”
“채택한다! 이건 감수할 가치가 있는 배덕감이다.”
사예가 열의에 차서 말했다.
“지금부터 말 놓는다? 시현이라고 불러도 되지?”
“미친…. 신분 위장하려고 정인 행세 하는 건데 시현이라고 부르면 다 뒤지자는 겁니까. 잠행 놀음은 나중에 알아서들 하시고 성명이랑 출신지부터 정해주세요. 패에 새길 수 있는 걸로. 사람 걸로.”
단이 짜증스럽게 말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