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hortstop hits a home run too well RAW novel - Chapter 189
189. 미친개는 미친개인데…….
유행운이 데굴데굴 구른다.
한국에서는 벤치 클리어링이 터지면 살짝 피해 있거나, 아니면 참전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애초에 KBO 벤클은 그냥 친목 모임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달랐다.
여기는 진심으로 패싸움을 한다. 주먹질도 하고 발차기도 하고 아주 다채롭게 싸움을 했다. 미국 진출을 준비하면서 유행운은 이 벤치 클리어링에서 살아남을 방법을 궁리했다.
유행운의 키는 185cm.
일반인 사이에서는 당연히 큰 키였지만, 야구 선수 사이에서는 아니었다. 고로, 덩치 큰 사람들 사이에서는 약간 작아 보일 수 있다.
그 이점과 여러 생각을 정리한 끝에 패싸움이 벌어지면 드러눕기로 결심했다. 출장 금지 같은 징계도 피해야 하고, 무엇보다 선수에게 몸은 소중했다.
다치지 않는 것.
“으아아아악!”
그것이 이 헐리우드 액션의 근본적인 이유였다.
보복구를 던진 투수가 당황한다. 벤치 클리어링을 각오하고 팀을 대표하여 어제의 패배를 응징하려는 마음이었다.
유행운의 배트 플립은 지나쳤다. 그게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입장이었고, 이 작은 동양인 선수에게 MLB가 이런 거라는 걸 보여 줄 생각이었다. 게다가 그는 레드삭스의 핵심 아닌가? 초장에 기를 죽일 필요도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런 결과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의 머리에 피터슨이 스쳐 지나갔다. 투수에게 시비를 걸고 유행운에게 폭력을 가해서 너덜너덜해진 포수. 그는 공개적으로 유행운에게 사과했음에도 조롱을 받고 있었다.
“서, 설마…….”
비슷한 그림이다.
피터슨은 똑같이 먼저 잘못을 저질렀고 그 이후에는 유행운에게 손을 댔다. 다음 그림은 바로 이런 거였다.
유행운이 어깨를 붙잡고 뒹구는…….
“이번에는 나야……?”
똑같다.
보복구를 날렸고 유행운이 화를 내며 다가왔다. 보복구라는 잘못은 카디널스의 유망주 선발 크리스가 저질렀고, 벤치 클리어링은 그 공 하나로 시작되었다.
유행운이 마운드를 방문했다.
순간 겁을 먹은 크리스가 유행운의 어깨를 밀치는 순간, 할리우드 액션이 시작되었다.
“당했군.”
이 경기를 TV로 보고 있는 피터슨이 중얼거렸다.
“YU의 저주가 카디널스를 덮칠 거야…….”
피터슨이 혀를 찼다.
유행운을 건드린 피터슨은 넝마가 되었다. 구단에서는 멘탈 수습을 하라며 그에게 휴식을 부여했다. 어차피 징계 때문에 경기에 나설 수도 없는 피터슨이었다.
지금 텍사스 레인저스는 연패에 휩싸였다. 그 모든 것이 유행운의 저주로 보였다. 작은 유행운을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이 개자식! 크리스, 이 자식 이리 안 와?] [다 비켜! 우리 소중한 YU를 건드리다니! 감독님은 좀 빠지세요! 감독님 또 퇴장당하고 싶어요? YU는 우리가 지킬 거라고요!] [빠가야로!]엉망이다.
징계를 걱정하는지 본격적인 폭력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카디널스 야수들이 투수를 보호하고 있었다. 그리고 레드삭스 선수들은 가해자를 내놓으라며 성화였고 심판들은 그들을 말리느라 진땀을 흘렸다.
그 사이, 유행운이 몸을 둥글게 말고 한껏 아픈 척을 한다.
“미친개는 미친개인데…….”
다른 의미로 미친개로군.
* * *
치이이이익!
유행운이 아프지도 않은 어깨에 파스를 뿌린다.
이번에는 두 번째인 만큼 리액션이 더 커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사실 아프지 않다. 엉덩이는 좀 욱신거리지만 참을 만했다. 꾀병을 부린 것이다.
“괜찮겠나?”
“네. 뛰어야죠.”
걱정에 물든 슈나이더 감독에게 괜찮다는 신호를 보냈다.
이 일의 빌미를 제공한 투수를 퇴장시키라고 어필한 슈나이더 감독이었지만, 유행운은 아주 너그러운 마음으로 괜찮다고 신호를 보냈다.
투수가 불쌍해서 그런 건 아니었고, 차라리 계속 마운드에 두는 것이 더 나은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지금 투수는 정신력이 바닥을 보였다. 아마 지금 당장 마운드를 떠나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프랭키, 감정은 억누르고 볼 길게 봐. 투수가 흔들릴 거야.”
“알았어. YU, 정말 괜찮은 거지?”
“어어. 나는 괜찮아.”
프랭키는 거구다.
거구의 1루수. 제대로 맞으면 홈런이었지만, 제대로 맞는 횟수가 좀 적다.
그는 오늘 유행운의 보디가드였다. 투수를 데리고 오라며 행패를 부릴 때, 실눈으로 슬쩍 지켜본 유행운은 아주 흡족했다.
저 정도면 경호원으로 대동하고 다녀도 될 정도였다.
[무사 1, 2루. 어제 YU의 배트 플립의 여파가 오늘 경기에 이어진 결과, 카디널스는 시작부터 무사 1, 2루 위기에 처합니다. 3번 타자 프랭키 타석에 서는군요.] [크리스는 아직 어린 선수입니다. 차라리 교체를 하는 게 카디널스에게는 도움이 될 것 같지만, 그대로 두는군요. 아무래도 선발이 1회에 내려가게 되면 투수 운용이 힘들어지기 때문에, 지켜보기로 한 것 같습니다.] [알아서 극복해야죠. 요즘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어요. 언제까지 불문율 타령을 하며 폐쇄적인 분위기를 유지할 겁니까? 다른 리그에서는 배트 플립이 해서는 안 될 금지된 행위가 아니에요. 최근 배트 플립을 시도하는 타자도 나오고 있으니, 카디널스의 보복구는 선을 넘었어요.]야구도 결국은 쇼다.
야구에 무슨 생산성이 있겠는가?
그깟 공놀이가 경제에 기여하는가? 멋진 자동차를 만드는가? 아니면 핸드폰을 만들고 의류를 생산하는가? 물론 의류를 생산하긴 한다. 평소에 입지도 않을 유니폼 따위를.
결국 야구가 존재하는 이유는 즐거움 때문이다. 배우나 가수처럼 야구를 통해서 보여 주는 거다. 이렇게 내가 잘 쳐요, 이렇게 내가 잘 던져요. 그러니 야구 선수에게도 관중을 흥분케 할 의무가 있었다.
요즘 MLB가 배트 플립의 불문율을 깨려고 하는 이유는 다 여기서 나왔다. 격렬한 쇼맨십은 지켜보는 사람을 흥분하게 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불문율을 깰 만한 가치가 있었다.
따아아아악!
예상대로 투수가 흔들린다.
초구부터 제구가 흔들리는 걸 프랭키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프랭키는 볼질 끝에 카운트를 잡기 위해 던진 투심을 그대로 잡아당겼다.
한복판에 몰린 공은 힘을 타고난 거포에게는 아주 맛있는 먹잇감이었다. 타구가 쏜살같이 멀리 날아간다. 담장을 넘어가는 공을 보며 유행운이 경쾌하게 박수를 쳤다.
분위기가 완벽하게 넘어왔다.
벤치 클리어링은 어느 한 팀에게는 반드시 대미지를 준다.
“나이스! 프랭키!”
유행운이 홈 플레이트를 밟고 들어오는 프랭키와 하이파이브를 하며 어깨가 멀쩡함을 증명했다.
* * *
경기 분위기는 이미 넘어갔다.
4선발 크리스는 배팅볼 투수가 된 것처럼 난타를 당했다. 홈런을 맞은 후에도 담장에 맞고 떨어지는 2루타를 허용했고, 이어서는 볼넷을 내주었다.
순식간에 석 점 차.
투수 교체를 고려해야 하지만, 문제는 지금이 1회라는 점이었다.
“스윙! 삼진!”
이걸 다행이라 해야 하나?
크리스가 드디어 아웃카운트를 가져왔다. 벤치 클리어링 이후로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는데, 이 모든 것도 경험이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지만.
따아악!
다시 안타를 허용하고 추가 실점을 하는 모습을 보니 골이 아파 왔다.
“투수 교체 준비해.”
“네, 알겠습니다.”
어쩔 도리가 없다.
투구 수는 늘어가고 시간을 줘도 정신을 못 차린다. 포수가 다독이는 것도 한계가 있다. 카디널스 감독이 고개를 돌려 유행운을 보았다.
확실히 비상한 놈이었다.
일전에 일어난 텍사스의 피터슨과의 충돌을 생각했어야 했다. 전날 끝내기 홈런을 치고 눈치 하나 보지 않는 배트 플립에 짜증이 치솟았지만, 보복구는 모두 선수의 선택이었다.
크리스는 어리다.
팀의 마무리 투수의 요청을 거부하기에는 힘이 없었을 것이다.
[1사 1, 3루. 카디널스 투수 교체 진행합니다. 결국 크리스가 내상을 입은 채로 마운드를 내려가는군요. YU를 건드린 대가를 톡톡히 치렀습니다. 힘내요, 크리스. 이번 일로 배운 것이 있을 거예요.]“크리스.”
감독의 부름에 크리스가 발길을 돌린다.
모든 것이 허망해져서 화장실에서 설움을 펑펑 쏟아 내려 했는데, 감독의 목소리는 절대적이었다.
“네, 감독님.”
“왜 그렇게 쫄았어?”
“…….”
“보복구 던지기로 했으면 씩씩해야지. 이게 뭐야?”
“죄송합니다.”
“죄송할 일은 하지 마. 선발 투수가 1회도 못 채우면 그게 선수냐?”
크리스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사실상 그는 파리 목숨이다. 감독의 한 마디면 다시 마이너로 내려갈지도 모르는 투수. 카디널스에서 기회를 주며 키우고 있지만, 아직은 완벽한 선발 투수는 아니었다.
“경기 끝나고 YU에게 가서 사과해.”
“네…….”
“사람들 다 보이는 곳에서 사과해. 알았어?”
“알겠습니다.”
“가 봐.”
피터슨이 당한 걸 봤으니,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오늘 경기가 끝난 직후에 바로 사과의 뜻을 전해야 한다. 여기는 레드삭스 홈이었고 유행운의 존재감은 절대적이었다.
물론 카디널스 감독이 생각하기에 유행운은 머리가 비상한 놈이었다. 충돌을 일으키고 빠지는 그 타이밍이 대단하다. 머리로 계산하고 움직이는 스타일…….
“고놈, 참 탐나네.”
팀은 지고 있지만, 유행운을 보면 입맛이 싹 돈다.
물론 모든 팀의 감독은 유행운을 보면 입맛이 싹 돌 것이다.
지금 이 팀의 유격수 자리에 유행운을 넣는다면? 그 생각 하나만으로도 설렌다. 처음에는 유행운이라는 존재가 그리 간절하지 않았다.
변방에서 활약한 선수, 그 정도였다. 실제로 KBO를 거쳐 미국에 온 한국 선수 중에 생각보다 질적으로 좋은 선수가 있었지만, 압도적인 선수는 없었다.
굳이 골라보자면 강우성이나 미스터 추 정도.
“메이슨 할배 말이 맞았군.”
메이슨 사장은 유행운에게 2년 6천만 달러를 안기며 이렇게 말했었다.
– 유행운은 지금이 가장 싸다.
라고.
* * *
2:8.
보스턴 레드삭스가 가볍게 위닝 시리즈를 가져온다. 내일 경기가 남아 있지만, 일단 카디널스 상대로 2승을 가져왔다는 건 희소식이었다.
경기가 끝나고 크리스가 쭈뼛거리며 유행운을 찾아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레드삭스 팬들 사이로 야유 소리가 쏟아졌다.
“저기, 제가, 미, 미안합니다!”
크게 외치며 허리를 굽힌다.
유행운이 고개를 숙인 크리스를 보며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그에게 다가간 유행운이 어깨를 다독이며 귓가에 속삭였다.
“너 사구 함부로 던지지 마라.”
주변이 시끄러워서 유행운의 목소리는 크리스 외에는 닿지 않았다.
“고개 들어.”
그 말에 크리스가 창백해진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너 공으로 사람 죽이려고 투수해?”
그 물음에 크리스가 고개를 저었다.
“근데 왜 사람에게 공을 던져? 네가 던지는 공은 98마일에 달하는 강속구잖아. 근데 그 공을 왜 사람에게 던져? 야구공이 폭신해? 엄청 딱딱한데. 너 사람 죽이려고 투수 하는 거 아냐?”
“아, 아닙니다…….”
“네가 야구공으로 사람을 다치게 하면 그거 다 너에게 돌아와.”
“네…….”
“명심해. 내가 너 오늘 좋은 거 가르쳐 준 거야.”
“명심하겠습니다…….”
“이제 가.”
1회차 인생에서 유행운은 공에 맞아 생을 마감했다. 더럽게 운이 없었다. 공에 맞아도 치명적인 부위에 맞았으니. 그래서 그 누구보다 빈볼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다.
투수는 사람에게 공을 던지면 안 된다.
적어도 배트 플립은 투수에게 겨냥하지 않는다. 사람이 다치지 않을 곳으로 날려 보내는 것일 뿐이었다.
어찌 되었든 MLB는 가장 큰 리그면서 하는 짓은 딱 꼰대였다.
“MLB에서는 배트 플립이 금지되어 있는데, 오늘 사구도 그런 상황에서 터진 거거든요. YU는 그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경기가 끝나고 짧게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역시나 오늘 사구 사태 관련 질문이 주어졌고 배트 플립에 대한 생각도 묻는다. 유행운은 담담한 표정으로 기자를 보았다.
“음, 꼰대라고 생각하는데요?”
“……꼰대?”
“전체적으로 늙었다고요.”
“아, 그렇군요.”
“고리타분해요.”
직설적으로 유행운은 MLB가 고집하는 불문율을 그대로 물어뜯었다.
“낡고 늙어서 재미도 없네요.”
세계적인 선수가 뛰는 MLB는 순식간에 낡고 늙은 리그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