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hortstop hits a home run too well RAW novel - Chapter 188
188. 미친개
이른 오전.
유행운은 전날 친 그랜드슬램의 여파를 느끼고 있었다.
찬물, 얼음물, 이온 음료…….
여러 액체를 뒤집어썼고 환호하는 관중을 향해 팬서비스도 했다. 인생 처음으로 겪은 메이저리그 끝내기 만루 홈런은 확실히 최고였다. 도파민이 폭발하는 느낌.
“하긴스 캠린하고 친하게 지내. 좀 어딘가 이상하지만, 공 하나는 일품이니까.”
여러 차가운 액체를 뒤집어쓴 채, 동료들의 애정이 담긴 과격한 손길까지 맞은 유행운은 다음 날 평소보다 몸이 무거움을 느꼈다.
아침에 일어나 동네 한 바퀴를 돌았고 그 옆에는 백유진이 함께했다. 우스갯소리로 육아나 하라고 했지만, 요즘 딸이 미국 생활에 적응을 한 듯 보여 베이비시터를 고용했다.
돈이 들더라도 최대한 한국인으로 알아본 베이비시터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아이를 맡아 주었다. 덕분에 백유정도 한결 편해졌고 백유진도 마찬가지였다.
“걔는 좀…….”
조깅을 마치고 샤워를 한 후에 펜웨이 파크 근처 식당을 찾았다. 백유진은 계속 유행운을 따라다녔는데, 그럴 때마다 유행운은 투수조와 친하게 지내라는 말을 건넸다.
“부담스러워.”
“부담스러워도 네가 먼저 다가가야지. 걔는 아무리 유리 몸이었어도 이 바닥에서 살아남은 투순데.”
“…….”
“올해만 하고 집 갈래? 지금 당장은 네 공이 먹힌다지만, 시간 지나면 분석 다 들어갈 텐데? 난 투수가 아니라서 너에게 조언해 줄 것도 없어.”
“잔소리 겁나게 하네.”
모두 아는 소리다.
백유진도 구구절절 다 알고 있다. 다행히 보스턴 레드삭스 분위기는 좋았다. 사실 백유진이 유행운의 가족이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살갑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 유행운은 원하지는 않았지만, 팀의 중심이었다. 단지 경기를 뛸 때를 말하는 게 아니라 그냥 중심이 되어 있었다.
유행운의 이름을 영어로 풀이하면 행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저 본인의 실력이 충분해서 성적이 좋게 나오는 건데, 그 모든 걸 유행운과 연결한다.
마치 징크스처럼.
아니면 애착 인형처럼 유행운에게 의지했다.
“어, YU!”
스크램블을 먹고 있던 유행운이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저 멀리 아카치가 커피를 들고 다가온다.
“여기서 우연히 만나다니, 오늘 내 운이 폭발할 날인가?”
“…….”
“합석 괜찮지?”
유행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 BAEK. 오늘도 정말 잘생겼군.”
우연은 무슨.
아카치는 이미 유행운이 자주 찾는 식당을 알고 있었다. 꾸준히 식단을 챙기는 유행운은 아침 식사는 가볍게 스크램블과 계란프라이에 간이 되지 않은 닭가슴살을 먹었다.
빵은 애초에 먹을 생각이 없어서 빼 달라고 주문했고 그를 알아본 식당 주인은 빵 없이 어떻게 식사가 되는지 궁금해했다.
이곳은 유행운 덕분에 유명해졌다.
YU가 자주 찾는 식당으로 알려졌고 그의 음식을 따라 먹는 사람도 생겼다. 그래서 이 식당에는 스크램블과 계란프라이만 따로 파는 메뉴가 생겼을 정도였다.
“어제 말이야, 너의 그랜드슬램은 정말 환상적이었어. 내 가슴이 설렐 정도로!”
유행운은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들어 주었다. 아카치는 아주 단순한 녀석이었다. 가끔 이 일본인을 보면 한국에 있는 강수현이 생각났다.
강수현 역시도 한없이 가벼운 성향이 두드러지는 선수였다.
“한 팀에 동양인 선수가 이렇게 많은 팀은 우리가 유일할 거야.”
찰칵!
“기념으로 사진 남겨 두자고.”
찰칵!
아카치가 핸드폰을 들고 열심히 사진을 찍는다. 백유진은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맞춰 주었고 유행운은 만사가 다 귀찮았다.
지금 아카치가 이렇게 살갑게 굴고 사진까지 찍는 이유는 단순했다.
유행운은 당연히 일본 내에서도 유명한 선수였다. 아카치 역시도 일본인이기에 유명할 수밖에 없다. 아카치는 꾸준히 유행운을 칭찬하고 가까이했고 마치 단짝 친구인 것처럼 굴었다.
일본 사람들은 아카치가 유행운의 파트너라고 생각한다. 타순도 그랬고 같은 동양인이었으며 유행운 자체가 팀의 중심이었기에, 어떻게든 자국 선수를 붙여 보려 노력했다.
그들의 자부심은 은퇴했다.
유일무이한 선수였지만, 이미 은퇴했기 때문에 새로운 스타가 필요했다. 그들의 눈높이에는 유행운 정도는 되어야 마음에 찰 텐데, 아쉬운 대로 아카치에게 기대해 보기로 했다.
천재 유격수라 불리는 선수와 찰떡궁합을 자랑하는 파트너라면 그 자체만으로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이거 나 별스타그램에 올려도 돼?”
안 된다 하면 안 할 건가.
유행운이 우유를 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진, 그래도 돼?”
언제부터 BAEK이 유진이 되었을까.
하여튼 속마음이 다 드러난다. 처음 아카치는 백유진을 질투했다. 이 팀에서 유행운과 가장 가까운 사람은 동양인인 자신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백유진이 튀어나왔다.
단순히 같은 한국인이라는 것도 불안한데, 심지어 가족이란다. 아카치는 괜히 백유진을 째려보고 어떻게 하면 골탕 먹일 수 있을지 궁리했는데, 이제 그런 생각은 접었다.
백유진은…….
잘생겼다. 남자도 잘생긴 남자에게 호감을 느낀다. 그게 이성적인 감정이 아니라 진심으로 신기해하고 닮고 싶어 하지만, 닮을 수 없는 한계를 느끼며 호감을 느낀다.
처음에는 얼굴로 야구한다며 이죽거렸지만, 이제는 달랐다.
백유진은 이미 보스턴에 오기 전부터 일본에서 인기 많은 선수였다. 각종 국제 대회에서 얼굴도장을 찍었기 때문에 이미 일본에서는 백유진 팬클럽도 있단다.
인정받는 걸 좋아하는 아카치는 급속도로 백유진에 대한 생각을 바꾸었고 더욱 친절하게 다가가려 노력했다.
“난 상관없어.”
“고마워. 역시 한국인은 친절하구나.”
그게 왜 그렇게 연결되는데.
아카치가 올린 사진 한 장은 일본인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큰 활약을 하고 있는 천재 유격수와 서서히 자리를 잡아 가는 꽃미남의 조합. 그 사이에 자국 선수가 끼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듯 격한 반응을 쏟아 냈다.
“이봐, YU.”
아침 겸 점심 식사를 마친 유행운은 바로 운동에 들어갔다. 경기 전 충분히 몸을 풀고 허기짐을 느끼면 아내가 삶아 준 삶은 계란과 단백질 드링크로 간식을 챙겨 먹는다.
지금 유행운은 더그아웃에 앉아 계란 하나를 먹고 있었다.
“아카치와 아침을 먹었더군.”
캠린 하긴스가 무뚝뚝한 얼굴로 다가왔다.
“나와는 왜 먹지 않았지?”
이건 또 뭐야.
“난 아카치가 올린 사진을 보고 몹시 섭섭했어.”
“너는 원래 늦게 일어나서 밥 안 먹는다며.”
“그거와는 다르지! 난 럭키가 부른다면 지옥 끝까지 갈 수 있는 남자라고!”
“굳이 그렇게까지……?”
“넌 나의 마음을 잘 모르는군. 난 네가 대전 호크스에서 은퇴한다고 하면 거기까지 따라갈 남자야.”
“오…….”
제발 그 마음 접어 둬.
“다음엔 나와 꼭 아침 식사를 하자고.”
“캠린.”
유행운이 피곤하다는 듯 도시락 뚜껑을 닫으며 말했다.
“오늘 아카치와는 우연히 마주친 거야. 동료와 함께 식사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지. 그건 이해하지, 캠린?”
가끔 유행운은 이 팀에서 유치원 선생님이 된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건 이해하지.”
“선수마다 자신의 루틴이 있어. 나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 프로틴을 마시고 동네 한 바퀴를 돌며 가볍게 조깅해. 그리고 샤워를 하고 단골 식당에 들러 아침 식사를 하지. 그 후에는 담당 트레이너와 운동을 하고 다시 샤워 후에 유니폼을 입고 이 자리에 와. 이렇게 사람마다 루틴이 달라. 너는 오전 10시에 일어난다며. 그게 루틴인데, 갑자기 그 루틴을 깨면 너의 신체 밸런스가 깨질 수 있어.”
“그래서?”
“나는 너를 배려해서 아침 식사를 하자고 이야기하지 않은 거야.”
“오, 럭키……!”
“…….”
“너는 정말 착하고 배려가 넘치는 남자야. 나 캠린 하긴스, 이제 정확히 이해했어. 너의 넓은 마음에 감사를 표하지.”
응, 제발 이제 가라.
* * *
리빌딩이 마무리 단계인 팀은 대체로 1점 승부에 약하다.
지금 보스턴 레드삭스가 딱 그런 상황이었다. 시즌 초에 1점 차를 극복하지 못해서 패배한다. 심지어 1점 차를 리드하고 있어도 끝내 9회에 역전당할 거라 생각하는 분위기마저 깔려 있었다.
올 시즌, 보스턴 레드삭스는 사단장이 모두 교체되었다. 신임 사장 키런 메이슨은 체질 개선을 위해 아끼던 유망주를 팔아 불펜 투수를 영입했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뭐든 아끼면 결국 똥이 된다고.
그 결과, 전반기와 다르게 불펜이 한결 탄탄해졌고 서서히 팀 분위기가 살아나고 있었다. 올 시즌은 결국 꼴찌 탈출이 목표였다.
내년 시즌에 선발 투수와 타선을 보강한 후에 왕좌를 노린다. 이게 메이슨의 생각이었고 곧 보스턴 레드삭스의 방향성이었다.
따악!
1회 초.
마운드에는 카터 곤잘레스.
지난 경기에서 급격히 무너졌던 곤잘레스는 초구에 유격수 방향 땅볼을 유도했다. 유행운이 가볍게 포구하고 한 바퀴 돌아 1루를 향해 강하게 송구했다.
파앙!
1루수 미트에 공이 쏙 들어간다.
컨디션은 좋았고 경기 스타트도 나쁘지 않았다. 많은 야구 관계자는 유행운의 타격에 집중하지만, 사실 진짜 야구를 잘 아는 사람은 그의 수비에 집중했다.
유행운은 지금 역대 최고의 수비율을 기록하고 있었다. 후반기 들어서는 실책도 없었고 내야의 중심을 잡아 주고 있다.
부웅!
“스트라이크!”
지난 경기의 부진은 잊은 듯 곤잘레스의 공도 예리하다.
타자의 몸쪽을 공략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지 않고, 쉽게 쉽게 잡아 가고 있었다. 확실히 전날의 역전승이 주는 기운이 있었다.
[삼진! 두 번째 아웃카운트를 헛스윙 삼진으로 잡아내는 카터 곤잘레스! 확실히 컨디션이 좋으면 좋은 투수입니다.]따아악!
선글라스를 낀 유행운이 빠른 타구를 향해 달려간다.
타자에 따라 수비 위치를 조정하는데, 강한 타구를 자주 생산하는 타자라 두 걸음 뒤로 물러선 상태였다.
슬라이딩을 하며 타구를 건져 낸 유행운이 자리에서 일어나 스텝을 밟지 않고 강하게 공을 던졌다.
슈우우우우-
파앙!
공은 정확하게 1루수 미트에 배달되었다.
“아웃!”
컨디션은 완벽했다.
* * *
아카치가 볼을 골라 1루에 안착했다.
이제 유행운의 타석. 유행운은 어제보다 더 꼼꼼하게 보호대를 착용했다. 어제 끝내기 홈런을 치고 배트를 던진 유행운이었기에 보복구가 날아올 수도 있었다.
이것 때문에 슈나이더 감독은 진심으로 선발 엔트리에서 빼야 하는지 고민했다. 괜히 공을 맞고 좋은 밸런스가 무너질 수도 있었고 무엇보다 다칠까 봐 걱정이었다.
그만큼 유행운은 보스턴 레드삭스에서는 절대적인 존재감을 갖고 있었다.
“어제는 미안해.”
유행운이 고분고분 사과를 한다.
보복구를 피할 수 있다면 사과 정도는 아무렇지 않았다.
“한국에서 뛰던 게 버릇이 돼서, 나도 모르게 배트를 던졌더군.”
“그런 말은 굳이 하지 마.”
포수는 유행운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요즘 MLB는 배트 플립에 대한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호쾌한 배트플립의 쇼맨십이 필요하다는 반응과 그래도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반응이 공존했다.
“씨알도 안 먹히네.”
유행운이 한국어로 중얼거리고 타격 자세를 취했다.
이왕이면 사과 한마디로 어제 일을 정리하고 싶은데, 아무래도 보복구가 날아올 듯했다. 투수가 공을 던진다.
1루에 주자가 있으니 웬만하면 좋게 가자고 돌려 말한 건데, 투수의 비장한 눈빛은 역시…….
슈우우우우-
대놓고 몸쪽이었다.
퍼억!
유행운이 피하고 싶었지만, 애초에 타자를 맞힐 생각으로 던진 공이라 그럴 틈이 없었다. 게다가 뒤로 물러서다가 되레 다칠 수도 있었다.
빠르게 등을 돌렸고 공은 다행히 허리가 아니라 엉덩이에 들어왔다.
“하…….”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심하지 않냐.”
유행운이 배트를 다시금 바닥에 집어 던졌다.
“너 이리 와, 개새끼야.”
불문율이고 뭐고 유행운이 가장 싫어하는 건 몸맞공이었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참고 싶지도 않았다.
참으면 호구가 된다.
특히 동양인 선수인 유행운은 더더욱 미친개가 되어야 한다. 날 건드리면 똑같이 물어뜯어 주겠다는 그런 마음으로.
“꺼져.”
양 팀 선수단이 쏟아져 나왔고 제 팔을 붙잡는 포수의 팔을 떨쳐 냈다.
유행운이 투수에게 다가간다.
“오, 오지 마……!”
투수가 그저 방어할 목적으로 유행운의 어깨를 밀었고, 그대로 뒤로 넘어간 유행운이 또다시 엄살을 피우며 소리를 질렀다.
“아악!”
유행운 인생에서 맞이한 두 번째 벤치 클라이어링은…….
“이 새끼가 사구 던지고 이번에는 내 어깨를 박살 내네!”
또다시 할리우드 액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