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nk Rock: Regenerating World RAW novel - Chapter 296
296화
* * *
“인간 따위가!”
모들은 짜증을 터뜨리고 길을 향해 덤벼들었다. 살기와 기세에 감싸인 주먹이 정면으로 찔러 들어왔다.
길이 두 팔뚝을 교차해 방패처럼 몸 앞에 세우고 기세를 화산처럼 폭발시켰다. 대포알도 막아 낼 것 같은 기운이었지만 모들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모들의 주먹은 길을 휘감은 기운을 산산이 깨부수고 정면으로 충격을 가했다.
“윽…!”
길은 나가떨어지지는 않았지만 작은 신음을 내며 뒤로 밀려났다. 몸 앞에서 벌어지는 두 팔의 각도가 이상했다. 아직 힘이 남은 근육이 가까스로 하완의 형태를 지지하고 있었지만 안에서 뼈가 박살 난 것은 확실했다.
모들은 틈을 줄 생각이 없었다. 격한 충돌의 반발로 튕긴 몸이 땅에 닿자마자 곧바로 다시 돌진했다. 두 번째 공격은 몸통을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길은 고통으로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왼발을 뒤로 빼면서 몸을 빙글 돌려 모들이 뻗은 주먹을 피했다. 그리고 제 상체 옆으로 아슬아슬하게 지나가는 적의 팔을 두 손으로 와락 붙잡았다.
“이게 또!”
모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길은 모들이 돌진해온 기세와 제 몸의 회전을 이용해 모들의 몸을 공중에 한 바퀴 빙 돌리고는 그대로 땅에 메다꽂아버렸다.
폭발과 벼락이 한 번에 터지는 것 같은 엄청난 굉음이 지축을 흔들었다. 모들은 분화구 같은 구멍을 만들며 땅속에 깊이 처박혔다.
길은 비산하는 돌과 흙더미를 피해 뒤로 훌쩍 물러섰다. 그가 두 팔을 하나씩 휘둘러 보며 씩 웃었다. 양쪽 팔 모두 언제 부러졌었냐는 듯 멀쩡해져 있었다.
사예가 타 버린 마력석을 손안에서 가지고 놀며 말했다.
“길아, 그러다가 성벽 또 무너진다.”
“근데 쟤 상대로는 살살 못 해요. 저 자식 진짜로 세요.”
“살살 하란 게 아니고, 무너질 거 같으니까 잘 피하라고.”
“역시 저 생각해주는 사람은 사예 님밖에 없어요….”
길이 감동으로 눈빛을 촉촉하게 하고 있는데 지면에서 쾅 소리가 났다. 모들이 흙을 흩뿌리며 땅속에서 뛰쳐나왔다. 약이 오를 대로 오른 그가 소리쳤다.
“정말로 뭐야 너는! 인간 주제에 왜 때려도 안 망가지는 거야?”
“우리 길이가 튼튼해서.”
“우리 사예 님이 훌륭하셔서.”
사예와 길이 번갈아 말했다. 전장의 반대편에서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금강이 눈을 커다랗게 떴다.
“뒤의 여자가 혹시 치료 마법사인가? 폭탄마가 아니라?”
“사예 님은 둘 다 하셔! 그것도 최고로 잘하시지!”
“길아, 폭탄마는 칭찬이 아냐.”
사예가 따뜻하게 말했다. 모들이 입을 딱 벌렸다.
“망가진 걸 계속 고쳐 가면서 싸우고 있다고? 말이 돼? 떨어진 상태에서 원격으로 외상을 치료한다니, 그런 기술은 최초 시대 인간들도 구현 못 했어!”
“그야 떨어져 있지 않으니까 그렇지. 사예 님하고 나는 한 몸 한 쌍이니까!”
길이 가슴을 쫙 펴고 으스댔다. 물론 그 말은 모들과 금강을 더욱 혼란에 빠뜨렸을 뿐이었다. 사예가 귀찮아하는 얼굴로 말했다.
“의외로 많이들 모르는데, 마법으로 치료할 때 손을 대는 건 치료가 아니라 진단을 위해서야. 체내의 기운이 사람마다 다르니까. 그런데 길이는 굳이 안 읽어도 내가 전부 알거든. 쟤 온몸에 내가 안 고쳐 본 데가 한 군데도 없어. 그것도 수십 번씩. 애가 어찌나 몸을 막 쓰고 다녔는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내가 만들어준 거나 마찬가지라니까.”
길이 쑥스러운 듯 말했다.
“어휴 사예 님, 그건 어릴 때 이야기고요. 저 이제 철들었잖아요.”
“길아, 네가 나이 들고 나서 덜 다치게 된 건 철이 들어서가 아니야. 전보다 싸움을 잘하게 돼서야.”
“헤헤헤.”
길이 칭찬을 받았다는 표정으로 헤벌쭉하게 웃었다.
“말도 안 되는….”
모들이 다시 한번 중얼거렸다.
그는 지금 마음이 초조했다. 성벽에 포진한 마법사들만 흩어버리면 곧바로 운모에게 달려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런 놈들에게 발목이 잡혀 있었다.
처음에 모들이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건 관성의 마법사들이 성 주위에 깊은 해자를 팠을 때였다. 인간들은 주거지로 흘러드는 지맥과 수맥이 끊기는 걸 제일 두려워해서 성 주위에서 대규모 토법술 쓰기를 꺼렸다. 최후의 수단까지 동원한다는 것은 저쪽이 사생결단을 각오했다는 것이었다.
그 직후 대지에서 엄청난 빛과 마력이 넘쳐 나오기 시작했다. 운모가 관성을 파괴하기 위해 모은 마력이었다. 운모의 계획에 문제가 생긴 게 틀림없었다.
다급해진 모들과 금강은 힘을 아끼지 않고 공세를 시작했다. 부서진 거석을 되살려 해자 안에 쌓아올리고 그 위로 거석 무리를 진군시켰다.
좁혀진 진군로로 마법사들의 주문이 쏟아졌지만 화력은 생각보다 보잘것없었다. 대지에서 쏟아져나오는 마력의 폭풍 때문에 마법사들이 제 역할을 못 하고 있었다.
선봉에 선 장군석이 순식간에 화망을 뚫고 북쪽 각루를 깨부쉈다. 성벽 가운데가 뻥 뚫리고, 장군석과 거석 무리가 관성 안으로 밀려들어 갔다.
모들은 금강과 함께 장군석의 어깨 위에 선 채 그 광경을 보았다. 그가 이제까지 전면에 나서지 않은 것은 만에 하나 상황에서 금강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마법사 주력이 붕괴되었으니 슬슬 움직여도 될 것 같았다.
그때 나타난 게 폭탄마였다.
아직 무너지지 않은 성벽 끄트머리에 자루를 멘 거구의 남자가 올라선 것을 보았을 때 모들은 별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가 자루에서 크고 단단한 돌덩이 같은 물체를 꺼내 이쪽으로 던졌을 때도 흔하고 헛된 발악으로 여겼을 뿐이었다.
그는 제 쪽으로 정확하게 날아오는 돌덩이를 대수롭지 않게 걷어내 버리려고 했다.
“빠―앙!”
모들의 손등이 물체에 닿기 직전, 여자의 낭랑한 목소리가 전장의 소란을 뚫고 모들의 귓전에 닿았다. 음파의 초과 전달은 인간 마법사가 강력한 의지를 원거리까지 전하려 할 때 부차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그리고 물체가 모들의 몸 앞에서 성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날아온 것은 됫박만 한 크기의 폭약 덩어리였다.
“큭!”
모들은 반사적으로 기결을 가렸지만 다음 순간 오판을 깨달았다. 폭발은 강력하긴 했지만 모들에게 큰 타격이 될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그는 그때 성벽만큼 높은 장군석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었다.
모들이 아무리 강해도 물리계의 육체는 압력과 중력 같은 물리 법칙의 지배를 받았고 체구가 작은 모들은 그렇게까지 무겁지 않았다. 폭발이 일으킨 공기압에 떠밀린 몸이 속수무책으로 허공에 떴다.
“금강! 피해! 막아!”
추락을 직감한 모들이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남자는 두 번째 폭약을 던지고 있었다. 표적이 누구인지는 뻔했다. 신체 능력이 평범한 금강이 남자의 빠르고 정확한 겨냥을 피하지 못할 것도 뻔했다.
“빵! 빵!”
여자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모들이 추락해서 지면에 닿을 때까지의 짧은 사이에도 장군석의 어깨 부근에서 두 번이나 폭음이 났다.
모들은 이를 악물고 땅을 차 장군석의 몸체 위를 달려 올라갔다. 쉴 새 없이 폭음과 함께 장군석의 몸체가 흔들렸다. 지금 공격받고 있는 것은 장군석의 기결이었다.
모들이 장군석의 어깨에 도달했을 때 금강은 무사했다.
그는 장군석의 머리 근처에 서 있어서 최초의 폭발에 떠밀리지도 않았고, 지금은 푸른빛의 보호막을 펼쳐 날아오는 공격을 막아 내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는 금강에게 공격이 먹히지 않자 표적을 장군석의 기결로 바꾸었다. 마법으로 강화된 폭약의 폭발이 기결의 기운과 얽혀 위력을 더 키웠다. 그런 공격이 짬도 안 주고 이어졌다.
금강이 소리쳤다.
“적의 공격이 너무 빨라! 방어하면서 수복을 하려니 속도가 못 따라가!”
“제길, 이리 와!”
모들이 금강을 휙 낚아채서 장군석의 등 뒤로 뛰어내렸다. 금강은 바로 방어막을 거두고 장군석 쪽으로 힘을 보냈다.
장군석의 몸을 감싼 푸른 빛이 강해지면서 금 갔던 상체가 복구되었다. 휘청이던 장군석이 중심을 잡고 몸을 곧추세웠다. 장군석은 바로 길이 섰던 성벽으로 달려가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성벽 위에 이미 길의 모습은 없었다. 모들은 바닥에 착지하자마자 주위의 거석 무리에게 명령했다.
“성곽을 공격해! 마법사가 숨어 있을 만한 곳부터!”
거석들이 쿵쿵대면서 성벽 이곳저곳으로 달려갔다.
모들은 마법사와 남자가 몸을 숨기고 공격을 해오리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처음 한 번의 공격만 피하면 남자는 금방 찾아낼 수 있을 것이고, 남자가 없으면 마법사도 아까 같은 위력을 못 낼 것이다.
하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걷혀가는 분진 사이로 한 쌍의 남녀가 어정어정 걸어 나왔다. 남자는 커다란 자루 두 개를 지고 있었고 여자도 주머니 하나를 어깨에 척 메고 있었다.
길이 커다란 손으로 폭약 덩어리를 가볍게 던졌다 받았다 하며 금강을 향해 씩 웃었다.
“여어. 형씨는 구면이네?”
“너는…. 그렇군. 시문을 처음 대면했을 때 같이 있던 놈이군. 어디서 봤다 했더니.”
금강이 얼굴을 찡그렸다. 당연하게도 금강에게 길과의 대면은 좋은 추억이 아니었다.
길이 졌던 자루를 턱 하고 땅에 내려놓고 모들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너네 저 형씨가 인질로 잡히는 거 싫어하지? 이번엔 그런 거 하지 말고 너랑 나랑 일대일로 붙자. 우리는 저 약골 형씨 안 건드리고, 대신에 너네도 사예 님 안 건드리고.”
“약골….”
금강이 상처받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모들은 코웃음을 쳤다.
“주제를 모르는 인간이군. 왜 내가 마법사를 놔두고 너를 상대해야 하지? 너 따윈 마법사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데.”
길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난 사예 님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긴 해! 그래도 이 조건을 받아들이는 게 너네한테도 좋을걸. 나랑 너랑 싸우는 동안은 사예 님도 저 형씨를 공격하지 않을 테니까.”
“내가 너희 둘 다를 단숨에 해치울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
“쾅.”
모들이 말하는 중에 사예가 불쑥 말했다. 그 순간 모들이 선 곳에서 몇 치 안 떨어진 땅이 폭발했다.
“이런!”
모들은 제 몸으로 금강을 감싸며 폭발을 피해 멀리 뛰었다. 하지만 돌발에 대응하느라 착지가 불안정했다. 길이 장난하듯 가볍게 던진 폭탄이 금강의 콧잔등에 탁 맞고 바닥에 굴렀다.
“그거, 일부러 안 터뜨린 거 알지? 내가 한 번 봐준 거야.”
사예가 금강의 얼굴을 손가락질하며 태평하게 말했다. 모들이 자세를 잡으며 빠득 소리 나게 이를 갈았다.
사예의 손가락이 움직여 금강과 모들의 발치로 향했다.
“어쩌면 지금도 봐주고 있을지도 몰라. 니네 발밑에, 하필 거기에 뭐가 있을지도.”
“설마 땅 밑 여기저기에 폭약을 묻어놓은 거야? 지뢰를?”
금강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물었다. 사예가 대답했다.
“아, 이걸 지뢰라고 불러? 그건 몰랐네. 어쨌든 토 과 마법사들이 해자 판다길래 겸사겸사 부탁 좀 했어. 다들 싫어하긴 했지만.”
“믿을 수가 없군. 마법과 화약을 같이 쓰는 마법사라니. 너는 네 소속 집단 문화의 영향을 안 받나? 이 시대 마법사들은 화약 같은 기술 문명을 천시하잖아?”
“그러게. 믿을 수가 없지? 다들 이 좋은 걸 왜 안 쓰고 주문으로 폭발을 만드느라 고생하나 몰라. 원래 터지라고 있는 걸 터뜨리면 되는데. 쉽고, 세고, 빠르고.”
사예가 한쪽 눈을 찡긋하더니 손가락을 쭉 뻗으며 빠르게 말했다.
“쾅쾅쾅!”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