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the World Tree RAW novel - Chapter 72
턱 끝에 맺혀 떨어지는 땀방울.
고된 훈련으로 한계에 달해 요동치는 팔뚝에는 핏줄이 선명하게 돋아나 있었다.
“허억, 허억.”
정시우.
푹 젖은 머리카락이 살벌한 두 눈매를 가린다.
상반신을 탈의한 채 거친 숨을 몰아쉬는 그 모습은 항상 아카데미 동기들의 중심에 서서 웃고 있던 모습과는 정반대였다.
수석(首席).
그의 명찰 옆에 떡하니 붙어있는 금칠 된 단어.
그 글자에 담기는 무게란 일필휘지로 써 내리는 것만큼 가볍지 않았다.
-털썩.
비틀거리며 쓰러지듯 자리에 주저앉는 시우. 눈이 흐린 듯 미간을 찌푸렸다.
부러진 목검, 피를 토하는 노력의 흔적.
어린 나이에 부모를 여의고, 갓 태어난 여동생을 잃어버리고, 잃어버린 가족을 찾기 위해 누구보다 강한 남자가 되겠다고 맹세한 지 5년.
정시우는 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 눈에 맺힌 창이 그의 다음 길목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이번 퀘스트는…… 중간고사 1위. 그 보상은….’
눈이 돌연 크게 떠졌다.
[퀘스트 보상]-위치 추적기
[퀘스트 실패시]-패널티는 없습니다.
하나 뿐인 여동생.
그녀를 찾을 방법을 찾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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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inQuest 3. 더 높은 곳으로 】
▶좋□ □□ 인맥, 이제는 실력을 □□□ 때입니다.
▶당신에게 할당된 과제의 수는 [2]입니다.
-한국 순위 20위권 이내로 진입.
-필기 1위
[퀘스트 보상]-최상급 포션 x 5
[퀘스트 실패시]□□□□□□
-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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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퀘스트가 도착할 때라고는 생각하고 있었다.
나타난 퀘스트를 쭉 읽어 내리니 문장 중간에 글자를 가리는 네모들이 눈에 거슬렸다.
하다하다 이제는 퀘스트의 내용조차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가.
한숨을 쉬며 바로 옆의 천도에게 말했다.
“퀘스트 도착했네요. 필기 1위에 한국 20위권 진입, 물론 실패하면 죽는 거고.”
“그러냐.”
기숙사.
자신의 몸보다 몇 사이즈는 커 보이는 곤룡포를 끌어 입은 천도는 곰방대를 두드리며 태운 담뱃잎을 털어냈다. 창문 밖을 바라보는 그 무감정한 얼굴이 햇살을 받아 더욱 빛나는 듯했다.
“얼마 남지 않았군.”
그녀의 말마따나 시간이 널널하지는 않았다.
내 현재 순위는 153위.
20위권에 도달하려면 적어도 실기 시험에서 결승전까지는 가야만 했다.
그러나 이곳은 엘 아카데미. 많은 실력자들이 도사리는 곳.
아무리 내 잠재력이 높아도 시간의 격차 만큼은 쉬이 좁힐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이번에는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
떨리기 시작하는 심장에 나는 씁쓸히 중얼거렸다.
“엔트까지 잡을 정도면 꽤 잘 싸우는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무얼. 그 나이에 너는 강한 게 맞다. 세상 어느 누가 던전에 잡혀 들어가 살아 돌아오겠나?”
천도의 말은 지극히 옳았다.
그래 확실히 강하긴 해. 단지 어디까지 통할지 모른다는 게 문제지만.
성장이 너무 빨라 아카데미라는 한 길 우물의 속조차 파악하지 못한 나다.
아무리 성장 중이라지만 지금의 내가 정시우와 산수유같은 괴물들을 상대로 이길 수 있느냐고 물으면…… 글쎄올시다.
산수유는 기량에서는 내가 앞서겠지만 마력 싸움에서 지고.
정시우는 뭐 말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워낙 괴물인 녀석이다.
지금의 내가 그들을 상대로 승기를 거두려면 누구보다도 한 발자국 앞서나갈 무기가 필요했다.
잘 벼려진 날카로운 검날과도 같은….
“기술이 필요하겠구나.”
천도의 말에 나는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날 믿어라. 스승은 원래 제자가 고행을 견뎌낼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법이니.”
“그렇습니까.”
“그 말을 알고 있나?”
나는 눈을 돌려 천도를 바라봤다.
“도리불언 하자성혜(桃李不言 下自成蹊).”
“그게 무슨 말입니까?”
“덕이 있는 사람은 스스로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따른다는 소리다.”
천도는 재떨이에 다시 한번 담뱃잎을 떨구면서 손으로 내 턱을 쓸어 올렸다.
내 고개가 살짝 위로 들려진다.
“덕이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무얼, 당연히 내가 아닌가. 이렇게 참한 제자를 두었으니.”
내 긴장을 풀어주려는 건지 오늘따라 듣기 좋은 말만 골라 하는 천도.
“그리고 유유상종이라는 말도 있지. 시헌, 덕이 있는 자의 곁엔 언제나 덕이 있는 자가 다가와 그 곁가지를 쥐는 법이다.”
말을 잇는다.
“나는 제일(第一)이다.”
“그러한 스승을 붙잡은 게 너다. 이런 역경이라면 환영을 해야 하는 것이 맞지 않나?”
슬며시 웃어 보이는 상냥함.
나는 더없이 만족하며 미소로 받아주었다.
“그것 참.”
천도의 손바닥에 맞닿아 턱 끝에 느껴지는 타이즈의 감촉.
손을 뻗어 천도의 손을 아래로 내렸다. 그대로 깍지를 쥐었으나 천도의 표정에는 여전히 변화가 없었다.
“듣기 좋은 말이네요.”
“준비하는 게 있다. 그때까지는 아카데미의 생활을 즐겨 두도록.”
“저 또 어디로 나가야 합니까?”
천도는 눈치가 좋은 아해를 보는 듯한 얼굴로 깍지 낀 손에 힘을 꽉 주었다.
“훈련은 힘들겠지만 포기할 생각은 마라. 난 한 번 정한 제자는 놓지 않는 성격이니.”
천도의 손은 시원해서 기분이 좋았다.
믿을 사람은 바로 옆에도 있었구나.
새삼 그리 느끼며 나는 장난스레 웃었다.
“놓치기 싫어서 절 덮쳤습니까?”
“대체 몇 번을 부정해야 그 소리를 않겠느냐?”
천도는 얄궂은 얼굴로 손을 뿌리친 후 내 어깨를 팍 밀쳐왔다.
역시나 이번에도 넘어가지 않는 천도였다.
*****
“저, 저랑 같이 하실래요?……훈련.”
개인 훈련 시간에 찾아온 진달래가 슬그머니 말을 걸어왔다.
몸에 쫙 달라붙는 전투복을 입은 채 머리를 꼬아대는 모습이 퍽 볼만 했다.
“미안. 나중에 하자.”
“아…….”
하고는 싶지만, 산수유와의 약속도 있으니 적당히 거부했다.
달래의 시선으로 따가운 목을 긁으며 나는 산수유를 찾아 멍을 때리고 있는 녀석의 어깨를 콕 잡았다.
“?”
어깨를 잡은 그대로 검지를 펴자 고개를 돌린 산수유의 볼이 꾹 짓눌렸다.
“…머해?”
“요즘 유행하는 장난.”
“이런 거 하면 재밌어?”
언젠가 구슬이 내게 했었던 장난.
놀리 듯 고개를 주억이자 산수유는 내 손가락을 빤히 바라보더니, 입을 왕 벌려 그것을 깨물었다.
-아앙
어억!
따끔한 고통에 기겁해서 손을 뺐다. 검지 두 번째 마디에 선명한 잇자국이 남아있었다.
“요즘 유행하는 장난.”
내 웃음을 어색하게 따라 하며 말마저 베끼는 산수유.
장난 두 번 쳤다간 손가락이 남아나지 않겠다.
“그래서 훈련할 거야?”
“그러려고 찾아왔지.”
침을 대충 옷자락에 비벼 닦아내고 입바람을 불어 고통을 식히고 있으니 산수유가 근처에서 목검 하나를 주워왔다.
오랜만의 훈련이라 그런지 행동도 빠릿빠릿하고 눈동자에 생기가 가득했다.
“훈련 열심히 했나 봐?”
“많이 했어…그리고 스승? 스승님도 구했어.”
산수유와 제대로 비무를 겨뤄본 지도 꽤 오래된 이야기였다.
하긴 이 녀석도 재능이 충만한 녀석이니 그새 성장해있지 않았을까.
백도의 훈련 이후 새로운 스승을 구했다면 훨씬 까다로울지도 모른다.
우리는 1vs1 훈련실로 자리를 옮겼다.
불투명한 강화 유리문이 열리자마자 들어와 자세를 잡는 산수유. 전투복 안에 꽉 짓눌려있음에도 제 자태를 과시하는 커다란 가슴이 한 차례 흔들렸다.
“잘 보고 있어.”
산수유는 발 하나를 올리고, 검을 위로 치켜든 채 검 끝을 내게로 겨누었다.
난생 처음 보는 자세.
잠시 산수유의 기량을 가늠하기 위해 몸을 풀며 그녀를 잠자코 지켜보았다.
첫판은 마력 없이. 어디 한 번 내 실력을 체크 해보자.
-철컥.
10초로 지정된 타이머를 누르고 훈련실 정중앙에 들어와 산수유를 마주 본 채 자세를 잡았다.
-기우뚱.
산수유의 자세는 상당히 위태위태해 보였다.
샛노란 머리카락과 흉부의 가슴이 기울어진 몸의 중심에 맞춰 흔들리고, 검끝이 방향을 상실한 듯 자꾸만 좌우로 비틀거렸다.
이거 제대로 싸울 수 있나?
그런 생각에 말을 걸려던 그때.
“……쿠이쿠이.”
산수유의 입에서 끔찍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녀는 고개를 귀엽게 갸웃이며 그리 중얼거렸다.
“으음……데챳?”
이런.
“산수유.”
“?”
“너 또 트리인사이드 봤지.”
“어떻게 알았어? 스승님도 거기서 만났어. 실장검법.”
“아니 뭔 스승을 그딴 곳에서… 아니 그것보다 내가 그 사이트 하지 말랬지. 거기는 사람을 망치는 곳이라니까?”
내 말에 산수유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볼을 살짝 부풀리더니 탓하는 목소리로 나를 질책해왔다.
“훈련 때 이후로…시헌이가 문화 공부 안 어울려 줬어. 훈련도 안 하고. 그래서….”
요컨대 내가 안 놀아줘서 다시 그 소굴로 들어갔다는 소리?
“…….”
“맵쫀맛 떡볶이….”
아마도 맞는 듯하다.
나는 이마를 짚으며 고단한 숨을 뱉었다.
“왜 하필 그 길로 가려는 거니. 실장검법이 뭐냐 실장검법이-”
-삐리리릭.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알람이 울리고 산수유의 몸이 급격히 기울면서 내 쪽으로 쏘아져 왔다.
정갈하지 못한 막검.
그러나 발재간이 예사롭지 않았다.
왼쪽으로 가는가 싶으면 오른쪽으로 비틀고, 엉망인 무게 중심이 갑자기 뒤틀리더니 바른 자리로 돌아간다.
실장검법이라는 우스꽝스러운 이름은 둘째 치더라도 상당히 까다로운 몸놀림이다.
천재는 방식마저도 제 입맛에 맞게 바꾸어버린다.
그 흉악한 재능은 이미 자신의 경험으로서 알고 있는 사실.
-휘릭!
한 손에는 장검. 다른 한 손에는 역수로 쥔 단검을 숨긴 산수유가 내 코앞까지 접근해온다.
권법가의 상대로 거리를 좁혀오는 선택은 자존심을 망가트리는 일.
목젖에 닿으려던 장검의 면을 오른손으로 치며 이윽고 산수유의 품 안으로 파고든다.
-휘리릭.
일 초가 흐르는 짧은 순간 내 몸과 산수유가 한 번 교차 한다.
허공을 가르는 주먹과 검. 유효한 타격은 커녕 각자 서로의 몸을 노리지도 못했다.
그러나 공격이란 한 번 더 몰아치는 법.
산수유는 몸을 가속 시키며 역수로 쥔 단검으로 내 목을 노려왔다.
연속해서 자세를 바꾸는 변칙적인 검술을 구사하니 급격히 속도를 올려오는 것은 이미 예상하던바.
똑같이 뒤로 돌며 중심을 기울여 발을 뻗는다.
회전하며 공기를 밀고 올라간 다리. 미간을 뚫을 기세로 민첩하게 찔러오는 단검.
우뚝- 두 공격은 정확히 서로의 몸에 닿기 전에 멈추었다.
우리는 그대로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네 허벅지가 서로 교차하며 맞물린다.
“허억, 허억.”
“후으…후”
한참 숨을 고르던 나와 산수유는 각자 마주 보며 제 주장을 펼쳤다.
“…내가 이겼어.”
“그건 아니지.”
아슬아슬했다. 실전이었다면 서로 죽지 않았을까.
벌러덩 드러누우니 뒤통수에 닿은 딱딱하고 차디찬 바닥이 제법 기분이 좋았다.
“…맵쫀맛 떡볶이.”
산수유의 말에 나는 어이없다는 듯 땀이 맺힌 턱을 긁었다.
“훈련 열심히 했어.”
“그래 먹으러 가자. 배 터지게.”
이번 훈련 덕분에 한 가지의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정시우를 이기기에는 한참 멀었다는 사실. 그리고 퀘스트를 클리어하기 위해서는 수단을 가려서는 안 된다는 것까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산수유의 손을 잡아 일으켜주었다.
아 그래.
“트리인사이드 금지.”
“……잉”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큼은 용납할 수 없었다.
산수유는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였다.
기분이 하락해서일까.
입맛이 없어 보였는데 그 날 산수유는 떡볶이만 세 그릇을 먹어 치웠다.
삶은 달걀의 노른자까지 터뜨려가면서 아주 잘도 먹었다.
“이럴 때 쓰는 단어 알아. 배 뚠뚠!”
“풉.”
다른 건 몰라도 인터넷 용어 하나 만큼은 기가 막히게 아는 녀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