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eror of Demon Flames RAW novel - Chapter 5
마염의 황제 005화
***
“이, 이럴 수가! 내 보고가!”
완전히 폐허가 된 지하보고를 보며 바하른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골렘이 부서진 것은 고치면 그만이다. 무너진 보고는 다시 세우면 된다. 하지만 그것이 없다. 오늘 거래를 하기로 한 중요한 그 ‘물건’이. 얼이 빠져 있는 바하른의 뒤에 서 있던, 검은 로브의 사내가 자신의 부하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쫓아라. 놈들을 잡는다.”
***
알센데린. 음침하고 어두운 숲 안에서 낭랑한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꺄아! 도둑이야. 유괴야. 누가 살려줘요. 꺄아!”
비명의 주인공은 로자리아가 영주의 보고에서 훔쳐낸 에고 소드. 저택에서 빠져나온 뒤로 계속해서 소리를 질러대는 통에 질려버릴 정도였다.
로자리아가 짜증스러운 눈으로 쏘아보았다.
“정말 시끄러운 검이네. 조용히 안 하면 정말 용광로에다가 집어넣을 거야.”
“천박한 인간 같으니. 지금 누구한테 감히 큰소릴 치는 거야! 너희 내가 누군지나 알고 있어? 난 가즈 블레이드(God’s Blade)라고. 전설의 검이란 말이야! 알았으면 빨리 제자리에 갖다 놔, 이 도둑놈들아.”
가즈 블레이드? 전설의 검?
이터가 검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별거 아닌 거 같은데.”
“니가 뭘 알아, 이 촌놈아!”
가즈 블레이드는 악을 썼지만 그래봤자 검이었다. 로자리아는 손 안에서 퍼덕거리는 검을 보며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전설의 뭔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검이라면 나야 대환영이지. 이런저런 실험 잔뜩 해볼 수 있을 테니까.”
가즈 블레이드는 새파랗게 질린 검날을 흔들었다.
“꺄아! 이 악마. 놔줘, 내려줘……!”
아까보다 더 퍼덕거리며 발광하는 검을 혼자 설치게 내버려두고 걸음을 옮기며 로자리아는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나 좀 걸리는데, 아까 그 골렘.’
그 정도의 힘을 가진 녀석이라면 상품 중에서도 최상급으로 쳐줄 물건이다. 그런 것까지 풀어서 지키려고 했다면 영주가 상당히 아끼는 물건이라는 이야기인데. 아까는 욕심이 생겨 앞뒤 안 보고 집어왔다지만 이제 집어온 이상 앞일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병사들을 잔뜩 풀어서 잡겠다고 난리를 칠 것은 뻔한 일.
‘당분간은 탑에 틀어박혀 조용히 지내지, 뭐.’
집에 틀어박혀 있어도 지루할 것도 없었다. 자신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 줄 물건이 손에 들려 있지 않는가. 가즈 블레이드는 난데없는 오한에 몸을 떨어야 했다.
그때, 곁에서 걷고 있던 이터가 걸음을 멈추었다.
“왜 그러니, 이터?”
“저기 봐라.”
“응?”
검은 숲의 저 너머가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숲에 화재가 발생한 건가?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니다. 저 방향에는…….
“내 탑!”
로자리아는 황급히 몸을 날렸다. 불타는 숲의 너머에는 자신의 탑이 자리하고 있다. 불길이 그쪽으로 번지기 전에 얼른 꺼버려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다. 불길의 근원지는 바로 그녀의 탑이었기 때문이다.
“이럴 수가… 내 탑이.”
불타고 있었다. 알센데린 마녀의 공포의 상징이기도 했던 마탑이 불타고 있었다. 그 안에는 생각하는 해골을 비롯하여 그녀가 그간 흑마법을 통해 만들어왔던 예술품들과 노하우가 모두 담겨져 있는데 그런 것이 불기둥이 되어 타고 있었다.
차마 불길을 잡겠다는 생각도 못 한 채 넋 놓고 그 광경을 보는 로자리아의 귀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인가, 알센데린의 마녀라는 자가?”
로자리아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셋이었다. 하나같이 검은 후드를 눌러쓰고 있어 얼굴은 확인할 수 없었지만 강대한 마나의 기운을 갈무리하고 있었다.
로자리아는 단번에 그들이 자신의 탑을 태운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누구야, 네 녀석들은! 내 집에 무슨 짓을 한 거야?”
그러나 그들은 로자리아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가즈 블레이드를 본 사내 하나가 그의 상관에게 고개를 숙였다.
“저것입니다.”
“가즈 블레이드.”
후드 사내들 중, 가장 가운데에 선 사내가 가즈 블레이드를 보며 눈을 빛냈다. 그는 로자리아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긴말은 하지 않으마. 그 물건은 본디 우리의 것. 내놓아라. 우리를 보았기에 목숨을 보전치는 못하겠지만 최대한 편안한 죽음을 맞도록 해주겠다.”
상대는 에고 소드를 잃은 영주가 파견한 자들인 것일까?
그러나 탑을 잃어버린 로자리아에게 사내들의 협박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이마에 핏대를 세운 그녀의 주위로 마나가 요동쳤다.
“편안한 죽음 좋아하네. 내 탑을 저렇게 만들어놓은 대가는 톡톡히 치러야 할 거야!”
로자리아는 마나를 형상화하여 세 명의 사내를 향해 휘둘렀다. 세 명은 거의 동시라고 할 정도의 똑같은 타이밍으로 흩어졌다. 그들이 선 자리를 폭발과 함께 산산이 흩어졌다.
“도망가게 내버려둘 줄 알고! 바람의 열두 자락, 어둠의 권능을 받아 암흑의 검이 되리. 트웰브 섀도 소드!”
보이지 않는 무형의 열두 그림자 검이 사방으로 흩어져 날았다. 이터와 싸울 때와는 달리 로자리아는 이번엔 시작부터 전력을 다해 검을 전개했다. 자신의 탑을 날려버린 녀석들에게 베풀 자비는 없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검이 무시무시한 살기를 내뿜으며 사내들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자신들을 노리는 살벌한 기운을 느꼈는지 사내들은 재빨리 수인을 맺었다. 그들의 몸 주위에 엷은 흑빛의 막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빛을 가리는 어둠이여. 끝 모를 강대한 암흑으로 나를 지켜다오. 섀도 클락.”
카카캉! 캉!
흑빛의 막이 생겨나기가 무섭게 무형의 검이 부딪히며 불똥을 토했다. 상당한 충격이었는지 흑빛의 막은 조금 옅어졌지만 로자리아의 검들도 뒤로 튕겨나 버렸다.
로자리아는 그들이 사용한 술수를 보며 놀랐다.
“흑마법?”
“변방의 마녀 치고는 제법이구나.”
사내 중 하나가 소리치며 방위를 밟았다. 그와 함께 흑빛의 구가 로자리아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로자리아는 급히 몸을 뒤로 피하며 그림자의 검을 이용해 구를 막았다. 틈을 주지 않기 위해 로자리아는 재빨리 검을 움직였다.
그러나 그보다, 지독할 만큼 짙은 연기가 그녀의 주위를 메우는 것이 더 빨랐다.
‘이 연기는?’
그녀가 적의 의도를 눈치 채기도 전에 사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이지 않는 검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을 조종하는 것은 인간.”
“조종자의 눈을 가리면 무용지물이지.”
‘아차.’
로자리아는 당황했다. 단 한 번 본 것만으로 섀도 소드의 약점을 파악하다니.
그러나 놀랄 틈도 없었다. 검은 안개 사이로 뭔가가 날아든다. 검은 구체다.
콰쾅!
로자리아는 간신히 피했고, 구체는 바닥에 박혀 큰 폭발을 일으켰다.
하지만 주위는 검은 연기에 가려 공격이 어디서 날아오는지 파악조차 할 수 없었다. 섀도 소드로 적들을 궁지에 몰아넣었던 로자리아가 도리어 적에게 몰린 것이다. 로자리아는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이 녀석들 진짜야.’
최소한의 힘을 이용해 최대한의 효과를 낸다. 별것 아닌 주술로 이런 상황을 만들어내는 건 어설픈 3류 흑마법사들 따위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들은 프로. 어떻게 영주는 이런 녀석들을 끌어들인 거지?
“한눈팔 여유가 있더냐.”
정신을 차리는 순간, 사방에서 검은 구체가 날아들었다. 그때 시뻘건 불길이 검은 연기 속에서 터져나왔다.
콰아앙!
“……?”
폭염으로 이루어진 띠가 나선을 그리면서 로자리아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그것이 방금 전의 구체로부터 그녀를 지켜준 것이다.
연기 너머로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우리의 공격을 막아내다니. 내가 너를 너무 낮춰 보았구나.”
로자리아는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자신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 비슷한 경우가 벌써 세 번째. 짚이는 곳은 있었다.
“이터!”
그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연기 속에서 붉은 빛 하나가 번쩍였다. 점점 커져가는 그것은 로자리아의 몸에 씌워진 불꽃과 같은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빛은 이터의 왼손에서 뻗어나오고 있었다.
“지워라, 불.”
콰르르르!
이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폭염의 자락이 폭풍처럼 일어나 돌풍을 일으켰다. 연기는 불꽃의 소용돌이에 말려 그대로 흩어져 버렸고 주변의 시야가 다시 트였다. 연기에 모습을 감추고 있던 흑마법사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떻게 된 거지?”
이터가 영문을 몰라 하는 흑마법사들을 보며 말했다.
“이 여자, 지켜주기로 했다. 돌아가라.”
화르륵.
소년의 왼손에서 다시 불꽃이 일었다. 분명 불꽃 계열의 마법이다. 그것도 상당한 고서클의.
‘역시 마법이야.’
방금 본 것이 헛것이 아니었다. 기사 때려잡는 힘도 놀라운데 마법까지 써? 다시 한 번 이터의 정체가 궁금해지는 로자리아였다. 저 정도면 자신도 무시 못 할 수준의 화염 주문이지 않은가.
흑마법사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이런 변방에 저 정도의 마나를 부리는 이가 있었다니!”
감탄하는 흑마법사들을 보며 이터는 재차 물었다.
“안 물러가나? 안 물러가면 혼내준다.”
“흥. 광오한 꼬마 녀석. 비록 어린 나이에 그 정도 불꽃을 만들어내는 것은 대단하지만 우리의 적수는 아니다.”
순환시키고 있던 마나를 드러낸 흑마법사들은 본격적으로 공격을 시작해 왔다. 닿는 순간 쇳덩어리조차 부식시키는 죽음의 안개가 수십 마리의 흑나비로 변해 이터를 감싸며 덮쳤다. 죽어버린 고목의 썩은 가지가 이터의 다리를 붙들고 용해액을 내뿜는다. 하늘에 모여든 마나 덩어리들은 거대한 낫을 든 사신의 형상으로 변하여 이터를 내리찍었다. 하나같이 쟁쟁한 위력을 가진 주문들이다. 그러나 그 사이에 끼인 이터가 한 것은 불꽃이 맺힌 왼손을 휘두르는 것뿐이었다.
“지워라, 불.”
콰아아아!
아까 검은 안개가 걷혀나갈 때 같은 거대한 충격이 주위를 뒤흔들었다. 이터의 몸을 감싼 불꽃의 돌풍이 흑나비들을 짓이겼고, 용해액을 내뿜던 썩은 가지들은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사신의 낫은 접근조차 하지 못한 채 다시 마나 덩어리로 잘게 흩어져 부서졌다. 불꽃의 폭풍은 그 여파를 몰아 주변에 강한 열풍을 내뿜었다.
설마 자신들의 주술이 손짓 한번에 깨어질 거라곤 생각지 못한 흑마법사들은 서둘러 섀도 클락을 전개했다.
그러나 이터가 한 발 빨랐다.
“조용히 해.”
“빛을 가리는 어둠이여. 끝 모를… 억?”
주문을 외우던 흑마법사들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굳어졌다. 입에서 말이 나오질 않았다.
‘사일런스?’
정확히 말하면 그들이 선 일정 지역의 소리가 모두 지워져 버린 것이지만. 주문을 완성하지 못한 흑마법사들은 휘몰아치는 열풍에 쓸려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크윽!”
열풍에 휩쓸림과 동시에 그들의 목소리도 다시 트였다. 널브러져 제대로 몸도 가누지 못하는 동료들을 보며 홀로 간신히 일어난 흑마법사의 리더는 황망함을 감추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