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eror of Demon Flames RAW novel - Chapter 65
마염의 황제 065화
그제야 상황을 깨달은 로자리아는 악을 쓰며 소리를 질렀다.
“야, 임마! 돌아와! 야!”
그로부터 열 시간 뒤.
로자리아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조르네에게서 빼앗은 해독제를 먹어보았다. 하지만 그녀의 말대로 그건 가짜였다. 오히려 역한 냄새에 고춧가루까지 풀어놓은 가짜 약을 먹는 바람에 그녀는 한참을 구토증에 시달려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의 목에 새겨진 검은 깃털은 하나만 남았다.
그녀가 알고 있는 어떤 수단을 써보아도 깃털이 사라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루시펠 나이츠 일당 역시 이조르네의 장담대로 어디에 숨었는지 찾아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타임 리미트.
마지막 순간에 다다르자 로자리아는 의연하게 죽음을…….
“으아아악! 이거 놔, 죽고 싶지 않아. 이거 놔!”
“지, 진정해요, 로자리아 씨.”
맞이하진 않았다.
비명을 지르던 로자리아가 엘리스의 머리를 붙잡고 흔들었다.
“살려줘. 아니, 살려내. 날 살려내라고!”
“켁! 목 흔들지 마세요. 저까지 죽을 것 같아요.”
로자리아는 찢어지는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저까지 죽는다’니! 역시 내가 죽는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잖아!”
“꺄아아악.”
로자리아의 폭주를 지켜보며 그레이센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루파에게 얻어터진 부기는 이제 좀 가라앉아 있었다. 그는 론에게 고갯짓을 했다.
“죽을 때도 시끄러운 여자로군. 론.”
“네, 왕자님.”
어디서 구해 왔는지 성서를 꺼내 든 론이 로자리아의 앞에서 기도문을 읽어내렸다.
“거룩한 루비에린님의 가호를 받아 비록 육신은 재가 될지언정 영혼은 남아 어쩌고저쩌고…….”
로자리아는 눈에서 불을 뿜었다.
“무슨 염불을 외우고 있는 거야! 벌써 날 포기한 거냐고!”
로자리아는 애원하는 눈으로 이터를 바라보았다.
“이터, 어떻게 좀 해봐. 너라면 날 구해 줄 수 있을 거 아냐!”
하지만 믿었던 이터마저 고개를 저었다.
“방법이 없다. 기다리는 수밖에.”
“기다리라니! 뭘 더 기다리라는 거야? 죽을 시간을 기다리라는 거냐고!”
“머, 머리 좀 놔주세요.”
“그리하여 우리가 천상의 낙원에서 다시 만날 때를 기다리며…….”
“그 재수없는 염불 그만 외워!”
그렇지만 그렇게 난동을 부려도 흘러가는 시간을 멈출 수는 없었다. 로자리아는 비명을 지르며 엘리스의 머리를 쥐어뜯었다.
“죽는다. 싫어, 죽기 싫어!”
“로자리아.”
그때, 이터가 그녀를 불렀다.
“깃털 사라졌다.”
“응?”
로자리아는 깜짝 놀라 목에 손을 대어보았다. 없다. 목에 새겨져 있어야 할 검은 깃털이 사라지고 없다.
“으아아악! 그럼 난 이제 죽는 거야?”
“그게 아니다.”
이터는 웃으며 말했다.
“깃털은 아까부터 없었다.”
“엥?”
로자리아는 떨리는 손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근데 나 안 죽었잖아.”
“응.”
“어, 어떻게 된 거야? 도대체?”
***
일행에게서 한참 떨어진 어딘지 모를 곳. 이조르네는 손톱 손질을 하면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러니까 ‘인사’라고 했잖아? 지금쯤은 녀석들, 한바탕 뒤집어졌겠지?”
“암만 생각해도 니 너무 짓궂은 거 아니가.”
호호호. 이조르네가 입가를 가리며 웃었다.
“재미있잖아. 이걸로 확실히 녀석들에게 임팩트도 남겼고.”
쉐드는 아직도 얼얼한 볼을 매만지며 투덜거렸다.
“임팩트는 너만 남겼잖아. 우리는 두들겨맞기만 하고.”
그러나 이조르네는 쉐드의 말은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흥겹게 콧노래를 불렀다.
“호호, 앞으로가 기대되는데?”
***
한편, 이조르네에게 완전히 속았다는 것을 깨달은 로자리아는…….
“용서 못 해. 이 괴팍한 똘추 절벽가슴 여마법사!”
“지, 진정해요. 아니, 제발 진정해 주세요, 로자리아 씨.”
다시 엘리스의 머리를 잡고 흔들고 있었다. 게다가 이조르네의 가슴은 로자리아보단 분명히 컸다.
아무튼 소동은 해결되었다. 툭탁거리는 일행에게서 시선을 뗀 이터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멀리서 동이 터오고 있었다.
“루시펠의 분신인가…….”
하나같이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놈들이지만 결코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이터는 눈을 가늘게 떴다.
“다음에 만날 때는 놈들도 진짜로 온다.”
루시펠과의 싸움은 지금부터가 시작이었다.
Chapter 3-3. 루시펠 나이츠의 계략
새로운 적, 루시펠 나이츠.
그들과의 첫 대면이 끝나고 로자리아가 무사한 것을 확인한 뒤에 일행은 성을 나섰다. 성은 마치 일행이 밖으로 나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먼지처럼 사라져 흩어졌다. 애초에 이조르네의 성은 존재하지도 않은 것처럼.
조용한 초원. 따사로운 햇살이 그 위를 비추고 있었다.
“그럼 이제부터 어떻게 할 생각이지?”
그레이센이 일행을 바라보며 말했다. 루시펠은 이미 움직였다. 이제는 자신들도 움직일 시간인 것이다. 이터가 입을 열었다.
“녀석들은 다시 나타난다. 루시펠의 목표는 모든 조각을 모아 이데아로크를 부활시키는 것. 그리고 그 힘으로 세계를 파괴하는 거다. 조각을 모으기 위해서라도 녀석들은 계속해서 우리를 노리고 온다.”
루시펠 나이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로자리아의 얼굴이 대번에 험악해졌다. 그녀는 부채를 우그러뜨리며 씩씩거렸다.
“오기만 해봐, 그 망할 여자 마법사 녀석! 잘도 가지고 놀았겠다.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거야!”
“로자리아 씨, 엄청 불타고 계시네요.”
“루시펠 나이츠라… 확실히 그 녀석들, 이번은 인사라고 했었지.”
턱을 쓰다듬는 그레이센의 말에 곁에 선 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에 만날 때는 훨씬 위험할지도 모르겠군요.”
확실히 한 사람의 실력으로는 이터가 루시펠 나이츠보다 위였다. 하지만 파티 전체의 평균 능력으로 따져보면 루시펠 나이츠가 더 강했다. ‘인사’라고 말했던 싸움에서 이터 외의 일행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떠올려보면 알 수 있는 이야기였다. 다음에 녀석들이 나타나면 어떻게 막아야 할지…….
“수성은 하지 않는다. 녀석들을 막기만 해서는 이 싸움은 끝나지 않아.”
이터가 입을 열었다. 그는 일행을 돌아보며 말했다.
“싸움을 종결시킬 방법은 한 가지. 루시펠과 녀석이 가진 조각을 파괴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루시펠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알아내죠? 직접 움직이고 있는 게 아니니 정보를 구하는 건 쉽지 않을 텐데요.”
엘리스가 지적한 대로였다.
루시펠은 지금까지 알 제라드의 그림자에 숨어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루시펠 나이츠라는 자신의 부하들을 이용해 움직이고 있을 뿐, 스스로는 절대 앞으로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런 루시펠에 관한 정보를 평범한 민간 정보기관의 힘으로 알아내는 건 무리였다.
로자리아가 눈에서 불을 뿜으며 외쳤다.
“역시 그놈들을 조져서 불게 만드는 수밖에 없어!”
“…….”
아무래도 로자리아는 이조르네에게 놀림 당한 것이 못내 분한 모양이었다. 그때 엘리스가 손바닥을 치며 말했다.
“아, 맞다. 그럼 점을 쳐보는 게 어때요? 그레이센 씨, 틀림없이 전에 론 씨도 점을 볼 수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레이센이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흐음, 확실히 그렇기는 하지만 내시의 점이라 신뢰가 가지 않는걸.”
“점이 아니라 신탁입니다. 그리고 대체 몇 번을 말씀드려야 제가 내시가 아니라는 걸 깨달으시는 겁니까?”
론이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따지자 그레이센이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건방진! 감히 짐을 능멸하려고 하다니! 네가 속이면 내가 곧이곧대로 믿을 줄 알았더냐.”
“…….”
제가 내시가 아니면 능멸하는 게 되는 겁니까. 론은 어깨를 늘어뜨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엘리스가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저, 이전부터 계속 궁금했던 건데, 내시라는 게 무슨 뜻이죠?”
그레이센이 콧방귀를 뀌며 답했다.
“흥, 그건 밤일도 하지 못하는 형편없는 남자를 말하는 거지.”
“그 뜻이 아니잖아요!”
발끈하는 론. 엘리스가 호기심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밤일? 그건 또 뭐죠?”
“밤일이라는 것은 남자가 여자를 벗겨서 침대…….”
퍼억!
막 엘리스에게 친절하고 자세하게 설명하려는 그레이센의 머리에 황금 프라이팬이 작렬했다. 이마에 힘줄이 튀어나온 로자리아가 그레이센을 노려보았다.
“애한테 뭘 가르치려는 거야? 그리고 넌 어제도 이터를 덮치려고 한 주제에 뭘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고 있어?”
팔짱을 낀 채 나무에 기대어 있던 소류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점점 논지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하고 있군.”
“아무튼 녀석들의 본거지를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은 녀석들이야. 놈들을 족쳐서 불게 하는 게 최선이야.”
로자리아는 끝까지 루시펠 나이츠들과 싸워서 정보를 얻는 방법을 주장했다. 엘리스는 반대했다.
“굳이 폭력적이 아니더라도 론 씨의 점괘를 들으면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거예요.”
“점이 아니라 신탁입니다.”
론이 친절하게 지적했다. 그레이센은 콧방귀를 뀌었다.
“밤일도 못 하는 남자의 이야기 따윈 듣고 싶지 않다.”
“제가 왜 못 해요!”
“저어, 그러니까 밤일이라는 게……?”
우왕좌왕.
일행의 회의는 이미 엉망진창이었다. 중구난방으로 튀어나오는 그들의 의견을 수습한 것은 이터였다.
“루시펠 나이츠에게서는 정보를 얻어낼 수 없다. 녀석들은 루시펠의 분신. 스스로 파괴될지언정 정보를 내놓지는 않을 거야. 그 정도 녀석들이라면 바르엘처럼 기억을 훔쳐내는 것도 어려울 거다.”
“그럼 역시 론 씨의 점괘를 들어보는 건가요?”
엘리스의 말에 이터는 론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밤일도 못 하는 남자의 점괘 따윈 듣고 싶지 않다.”
“당신까지 그런 소릴 하는 겁니까!”
공격해 올 루시펠 나이츠를 쓰러뜨려 정보를 얻어내는 것도. 점괘를 보는 것도 안 된다. 로자리아는 물었다.
“그럼 정보를 어떻게 모을 생각인 건데? 루시펠의 본거지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지 않으면 우리 쪽에서 공격해 들어가는 것은 무리야.”
그 말에 이터는 기대어져 있던 펜릴을 집어 들었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 마창, 펜릴의 힘을 이용하면 완벽하진 못해도 녀석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을 거야.”
“펜릴을?”
이터는 마창의 블레이드를 가리켰다.
“펜릴은 그때 루시펠의 몸에 작지만 상처를 입혔다. 그때의 접촉을 이 블레이드는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휘이잉…….
이터는 순백으로 빛나는 자신의 왼손을 펜릴의 블레이드에 가져다 댔다. 왼손의 빛과 공명하며 블레이드가 떨렸다.
“루시펠 역시 이데아로크의 조각. 펜릴에다 조각에 공명하는 내 능력을 더하면 녀석의 대략적인 위치를 파악할 수 있어.”
“대단해. 역시 대단해요, 이터 씨.”
엘리스는 감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외의 일행은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