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eror of Demon Flames RAW novel - Chapter 79
마염의 황제 079화
그의 모습을 지켜보던 이터는 피식 웃으며 양손을 뻗었다. 그리고 마치 공을 잡는 듯한 시늉을 했다. 그와 함께 팽창하던 베가스의 투기가 덜컥 멈췄다.
“윽?”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베가스. 투기를 발산하려고 하지만 뭔가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터는 허공에 뻗은 두 손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러자 동시에 베가스의 투기가 쪼그라들었다. 이터는 두 손을 움켜쥐었다.
쾅!
퍼어엉!
그와 함께 쪼그라든 투기가 베가스가 선 영역과 함께 폭발해 버렸다. 주위의 피해는 전혀 없었다.
온몸이 엉망진창이 된 베가스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몸을 떨었다.
“마, 말도 안 돼.”
“말도 안 되긴! 말이 됐으면 어쩌려고 그랬던 거야?”
“죽으려면 혼자 죽든가! 누굴 잡으려는 거야?”
이조르네와 쉐드가 투덜거리며 쏘아붙였다. 엉망으로 박살났건만 동료들 중에 제대로 걱정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베가스였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터 일행과 루시펠 나이츠의 공방은 계속되었다.
아네스는 성기사들의 능력을 뛰어넘는 일행의 전투를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의 머릿속에 아직도 이터와 론의 말이 메아리치고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사악하지 않은 마녀라니. 그런 게 있을 리가 있나.’
특별한 이유가 아니다. 악의 세력들은 지금 자신들끼리 알력 다툼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할 일은 무엇인가? 이렇게 정신없이 싸우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둘 다 없애버릴 수 있는 찬스다.
그녀는 성력을 끌어모아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빛의 주문을 외웠다.
“거짓된 빛의 사도들이여, 사라질지어다. 여신의 은총과 여신의 분노가 내 손에 거하니. 거룩한 십자가, 그 이름을 불러 가로되.”
화아아악!
아네스의 가슴을 시작으로 엄청난 빛이 주위로 뻗어나왔다. 그 빛은 서로 불꽃을 날려대며 신경전을 펼치는 로자리아와 이조르네, 베가스와 그를 압도하는 이터, 구경하는 쉐드와 얻어맞는 그레이센, 그리고 강아지 취급을 받다가 화살에 맞아 쓰러져있는 올가와 엘리스 모두를 집어삼켰다.
절정에 달한 빛이 사방으로 폭사한다.
“그랜드 크로스(Grand Cross)!”
쿠아아아!
광장 안에 빛의 폭풍이 몰아닥쳤다. 거룩한 빛의 십자가가 그 앞을 가로막는 부정한 것들을 모두 잿더미로 만들어 버린다.
광장을 뒤덮던 정화의 빛이 사라지고 곧 이어 폐허가 된 광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가운데에 선 이조르네가 부채로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투덜거렸다.
“뭐야? 난데없이! 이런 걸 날리려면 미리 말로 하라고.”
“멀쩡하다니?”
아네스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빈틈을 노린 회심의 일격이었고, 정통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피해를 입지 않다니!
무사한 것은 이조르네뿐만이 아니었다. 올가와 베가스, 쉐드도 멀쩡히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조르네는 플레어 브레이저의 불길을 담으며 아네스를 노려보았다.
“기분 나쁜 빛이네. 끼어들지 말고 꺼져.”
파아앗!
부채를 떠난 불꽃이 아네스를 노리고 무서운 속도로 날아들었다. 창의 모습으로 변한 그것은 일견 홀리 스피어와 닮아 있었으나 그 안의 위력은 천지 차이라는 것을 아네스는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방금의 그랜드 크로스 때문에 홀리 월은 사용할 수 없었다. 홀리 실드는 쓸 수 있겠지만 그걸 펼친다고 해서 막아낼 수 있을지. 그렇다고 안 펼칠 수도 없었다.
“홀리 실…….”
콰아앙!
그녀가 억지로 주문을 써 막으려는데 불의 창이 중간에서 터져나갔다. 아네스 앞을 타이탄 브레이커를 장착한 이터가 막아서고 있었다.
“너는…….”
이터는 아네스를 바라보지 않았다. 대신 허공의 마법진에서 기간틱 블레이드를 꺼내 들었다.
“모두 사라져 버려라.”
환하게 타오르는 불꽃이 검신을 타고 올라간다. 강렬하게 타오르는 불꽃의 검.
“지워라, 불. 부러져라, 천풍!”
이터는 하늘로 치켜 든 불꽃의 검을 일자로 힘차게 내리그었다.
“폭마검!”
콰아아아!
대지가 갈라진다. 투기의 해일이 터져나간다. 방금 전 아네스가 채웠던 빛과는 또 다른 힘이 광장을 뒤흔들었다. 엄청난 폭발이 모든 것을 쓸어버렸다.
“으읏차! 위험, 위험. 그런 무지막지한 공격을 함부로 날리지 말라고.”
박살나 버린 광장. 하지만 루시펠 나이츠는 이미 거기서 멀찌감치 도망친 뒤였다.
광장 옆의 박살난 건물 위에 선 이조르네는 김이 샌다는 얼굴로 부채를 접었다.
“흥! 흥이 떨어져 버렸네. 오늘은 이쯤 해둘까…….”
로자리아가 인상을 구기며 소리쳤다.
“또 도망치는 거야?”
“호호. 도망치다니. 무슨 소리야? 흥이 떨어졌다고 말했잖아.”
“늘 네 녀석들 마음대로 될 줄 알고? 트웰브 섀도 소드!”
로자리아는 보이지 않는 열두 개의 검을 이조르네를 향해 날렸다. 하지만 이조르네는 웃으며 열두 개의 불의 방패를 꺼내 차근차근 모두 튕겨내었다.
공격을 튕겨낸 이조르네가 부채를 얼굴에 부치며 미소 지었다.
“너무 조급해하지 마, 로자리아. 곧 이어 빅게임이 시작될 테니까. 그때까지 조금만 기다리라고.”
빅게임? 이터가 물었다.
“그게 무슨 뜻이지?”
“뭐긴 뭐야. 말 그대로 빅게임이지. 호호, 루시펠님이 야심차게 준비하고 계시니까 무슨 뜻인지는 조만간에 알게 될 거야.”
알쏭달쏭한 말을 늘어놓은 이조르네는 미소를 지으며 부채를 펼쳐 얼굴을 가렸다.
“그럼 안녕.”
퍼어엉!
결코 조용히 사라지는 일이 없는 루시펠 나이츠는 이번에는 건물들을 폭죽처럼 터뜨리며 모습을 감췄다.
그들이 사라지며 일으킨 먼지에 콜록거리던 로자리아가 불만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정말… 사라질 때는 조용히 꺼지란 말이야.”
루시펠 나이츠는 물러갔다. 하지만 이번 일로 인해 에이다 마을은 죽음의 마을이 되어버렸고, 마을을 그렇게 만든 성기사들도 모조리 죽어버렸다. 무사한 것은 이터 일행, 그리고 아네스뿐이었다.
“왜……?”
아네스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눈으로 이터를 바라보았다.
“왜 날 구해 줬지? 난 너희를 없애려고 했다. 그런데 왜……?”
이터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얼굴로 답했다.
“아까 말했잖아. 너는 로자리아가 이 마을에서 나쁜 짓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해 줄 증인이라고. 다른 이유는 없다.”
“…….”
아네스는 황당한 얼굴이 되었다. 자신들이 죄를 짓지 않았다는 증인으로 빛의 사제를 살려두는 마녀 일행이라니. 그런 건 들어본 적도 없었다.
일행은 다시 떠날 준비를 했다. 마을은 폐허가 되었다. 이 마을에서 이제 뭔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또다시 그들이 뭔가 꾸미기 전에 이쪽도 서두르는 것이 좋았다.
아네스가 떠나는 그들에게 물었다.
“그 녀석들은 누구지? 너희 편은 아닌 것 같던데…….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마의 무리인가?”
“그런 건 네가 직접 알아봐라.”
아네스는 쓰게 입맛을 다셨다.
“그렇군. 네가 이야기해 줄 의무는 없겠지.”
“이데아로크.”
아네스에게서 등을 돌린 이터가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이데아로크에 대해 조사해 봐라. 그러면 네가 궁금한 게 조금은 풀릴지도 몰라.”
그 말과 함께 이터는 일행과 함께 마을을 떠났다. 아네스가 급히 그를 불렀다.
“잠깐. 꼬마, 네 이름은 뭐지?”
“내 이름은 이터다.”
이터 일행은 떠났다. 홀로 광장에 남은 아네스는 가라앉은 눈으로 말없이 그들이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터… 감사는 하지 않겠다. 언젠가 지금의 빚은 갚아줄 테니.”
‘이데아로크라.’
아네스는 고개를 돌렸다. 폐허가 된 광장이 눈에 들어왔다. 죽어버린 성기사들의 갑옷 조각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모든 것이 불분명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 마을 사람들을 살해하고, 자신을 끌어들인 성기사들의 행위는 앞의 두 마녀 집단과는 상관없다는 사실이었다.
아네스는 생각을 정리하며 걸음을 옮겼다.
“일단은 돌아가 이번 사태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는 것이 먼저겠군.”
이럴 때 세레나나 맥스가 있으면 도움이 되었겠지만 이번 여행에 수행원은 데려오지 않았다. 아네스는 그 사실을 아쉬워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그리고 같은 시각, 세레나와 맥스는…….
“그나저나, 여긴 대체 어디인 거야?”
“아네스님은 무사하실까…….”
“그 전에 우리가 안 무사하게 생겼다고. 길이나 제대로 찾아봐!”
여전히 어딘지 모를 숲 속을 헤매고 있었다.
Chapter 3-7. 루시펠의 초대장
에이다 마을에서의 일이 있은 뒤에 아네스는 서둘러 신성연맹의 대신전으로 되돌아왔다.
그녀는 마녀의 행세를 하던 성기사들에 대한 진상을 밝히고 이터 일행과 루시펠 나이츠에 대한 것을 조사하려는 계산이었지만 일은 호락호락 풀리지 않았다. 성기사들이 마녀 행세를 했다는 사실 자체가 상당히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마드렐 추기경의 손이 주위의 인물들을 움직여 오히려 그녀에게 혐의가 씌워지기 시작했다. 결국 청문회까지 열리게 되었는데…….
“그러니까 아네스 심판관. 자네의 말은 마녀 행세를 하고 있던 것이 성기사들이었다는 말인가?”
대강당.
객석은 이미 각종 고위 사제들로 가득 차 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강당의 가운데에서 그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선 아네스가 늙은 추기경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마녀인 양 행세를 하며 에이다 마을의 민중을 이단으로 몰아 살해했습니다.”
웅성웅성.
장내가 술렁였다. 마녀의 행세를 한 것도 모자라 마을 사람들을 살해했다니. 이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교단의 권위를 뒤엎어 버리는 행위였다.
“조용히… 조용히 하시오.”
웅성거림이 잦아지기를 기다린 추기경이 다시 질문했다.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지?”
“살아남은 이들은 기습을 당해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
그 말에 사람들은 또다시 웅성거렸다. 추기경도 미심쩍다는 표정이었다.
“기습이라니, 그건 또 무슨 말인가?”
“에이다 마을에서 만난 성기사들 외에 마녀, 로자리아를 사칭하는 무리는 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들이 살아남은 기사들을 죽였습니다.”
“사칭하는 무리라고 했는데… 그 말은 그 기습을 했다는 사람들도 가짜라는 말인가? 그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나?”
아네스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꾸했다.
“그것은 제가 진짜 마녀의 무리와 만났기 때문입니다.”
“진짜 마녀의 무리를 만났다고?”
아네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하지만 그들의 말에 의하면 지금 세간에 알려진 마녀, 로자리아의 악행은 그들 자신이 벌인 일이 아닌 성기사들을 습격한 사칭의 무리가 행한 일이라 하였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마녀의 행세를 하는 성기사들에게서 저를 구해 주었습니다.”
거기까지 말한 아네스는 경악을 금치 못하는 사제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