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night Flower RAW novel - Chapter 761
761화. 각자
게네바는 수많은 데이터를 메인 모듈로 들여 빠르게 연산을 시작했다.
몇 초 후, 그가 말했다.
“이건 우리가 처음에 했던 추측이야. 그러나 이후 초기의 각성자들은 뭇별 홀에 아예 진입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증명됐지.
뭇별 홀, 기원의 바다, 심령의 복도는 전부 어느 존재들에 의해 형성된 것이거나 구세계의 어느 연구자들이 남긴 결과로 짐작돼.
다시 말해, 각성자는 뭇별 홀에 의지하지 않고, 기원의 바다를 건너지 않고, 심령의 복도를 탐색하지 않아도 자신의 능력을 높일 수 있다는 거야. 그 방법을 알 수는 없고, 그런 작업에 따르는 어려움만 훨씬 커질 뿐이지.
그러니까 굳이 기원의 바다를 건너야 할 필요가 없다면 굳이 트라우마로 이루어진 섬을 극복할 필요도 없다는 거야.”
깨달음을 얻은 성건우가 말을 받았다.
“그 고등 무심자들도 마찬가지일까?”
“아직은 추측에 불과한 이야기지.”
게네바도 확신하지는 않았다.
성건우의 시선은 다시 안개 깊은 곳으로 향했다. 그가 곧 낮게 외쳤다.
“하나, 둘, 셋, 출발!”
쏜살처럼 튀어간 그는 한쪽 팔이 마비됐음에도 군용 외골격 장치의 도움 아래 안정적이고도 자연스럽게 달렸다.
게네바는 바로 그 뒤를 따랐다.
* * *
성건우는 더는 길가의 시체를 살피지 않았다. 계속해서 안개의 가장 안쪽을 향한 질주만 이어졌다.
동시에 그는 강제로 힘을 통제해 발바닥의 금속 골격과 지면이 충돌하는 소리를 최대한 줄이려 했다.
그렇게 달리던 성건우가 갑자기 몸을 옆으로 틀었다.
그는 곧장 베르세르크 돌격 소총을 들고 어둠에 뒤덮인 골목길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그곳에, 명확한 공격성을 가진 인영이 있었다.
동시에 게네바도 팔을 높이 들어 반대편 건물의 어느 창문을 겨냥했다.
그곳에도 마찬가지로 인영이 나타나 있었다.
그는 유리창을 깨고 뛰어내려 성건우와 게네바를 덮치려는 것 같았다.
탕탕탕!
성건우와 게네바는 동시에 사격을 마쳤다.
둘은 강한 전자파 방해에 대항해, 정확도보단 화력 강화에 집중했다.
요란한 총성 속에 유리창은 결국 깨졌고 골목길 측면의 벽과 시멘트 바닥에는 총알 자국이 났다.
그러나 두 인영은 총알에 맞아도 그저 물결처럼 관통당할 뿐,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
게네바는 냉정하게 사격을 중단한 채 한 가지 가능성을 제시했다.
“환영?”
두 인영은 여전히 각자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하나는 골목길 구석으로 달려들어 뭔가 맛있는 사냥감이 있는 듯한 어둠을 뜯어먹었고, 하나는 창문을 박차고 나와 거리에 착지한 뒤 몇 번 휘청이다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성건우가 탄성을 내뱉었다.
“플로라와 버나드 같은 환영?”
게네바가 빠르게 분석했다.
“하지만 이건 신세계와 중첩된 장면이라기보다는 커닝미스에 재난이 일어난 후의 장면 같은데. 혼란한 전자파 환경에 기록된 건가?”
그 말을 듣고 성건우가 크게 기뻐했다.
“그럼 우리가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거네! 우리와 문제의 근원 사이의 거리는 훨씬 더 가까워진 거야!”
그의 말은 전에는 없었던 일이 벌어진 것으로 볼 때 자신들이 재난 폭발의 핵심 구역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으리라는 뜻이었다.
게네바는 공정한 태도로 답했다.
“그런 것 같네.”
이윽고 성건우는 베르세스크 돌격 소총을 쥔 오른손을 휘둘렀다.
“계속 전진하자고!”
* * *
커닝미스 가장자리, 서쪽 산으로 이어지는 길목.
장목화, 백새벽, 용여홍은 지프를 숲 안쪽으로 조금 더 옮겨놓았다. 제8 연구원의 순찰자들에게 발각당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건우랑 겐은 더 이상 연락이 안 돼. 저곳의 전자파 환경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나빠지나?”
군용 외골격 장치를 착용한 장목화는 결국 시도를 포기했다.
백새벽은 고개를 끄덕이며 걱정된다는 듯 말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제8 연구원 사람을 마주칠 확률도 높아지죠. 그들은 당시 커닝미스의 일을 조사하러 온 사람을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그래, 타이 시티에서처럼 원거리 미사일을 쏟아부어 이 도시를 완전히 매장해 버릴지도 몰라.”
장목화는 제8 연구원의 일 처리 방식을 잘 알고 있었다.
이어, 용여홍이 추측에 나섰다.
“커닝미스 깊은 곳의 문제는 확실하게 조사해낼 수 없는 것일 수도 있어요. 제8 연구원은 그저 그 문제의 확산을 막고 싶은 것인지도 몰라요. 미사일 세례로는 그 상황을 해결할 수 없잖아요.”
장목화가 말을 받았다.
“일단은 건우랑 겐이 제8 연구원 사람과 맞닥뜨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야. 그들과는 어느 정도 준비를 한 뒤에 이야기하는 게 좋을 테니까.”
“맞아요, 맞아요.”
용여홍이 얼른 동조했다.
이때 백새벽이 입술을 오므렸다.
“팀장님, 이 주변이 지나치게 조용한 것 같다는 생각 안 드세요?”
백새벽의 질문에 용여홍은 그제야 자신들이 자리한 이 숲에 바람 한 점 불지 않고 있음을 깨달았다.
조금 전까지와는 확연히 다른 상황이었다.
‘우리 쪽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겠지?’
용여홍은 솜털이 쭈뼛 섰다. 숲 안의 빛도 갑자기 어두워지는 것 같았다.
그 사이 군용 외골격 장치를 착용한 장목화는 일단 지프 지붕 위로 뛰어올라, 그것을 발판으로 부근의 한 나무 위로 올라가 주위를 살폈다.
몇 초 후, 그녀가 약간 느릿한 말투로 말했다.
“이상 현상이 발생한 건 우리가 있는 이 숲만이 아니야. 커닝미스 전체가 그래. 이곳 하늘이 엄청 어두워졌어. 시간이 꼭 고정된 것 같아. 도심지로 향할수록 상황은 심각하고.”
고정된 것은 시간이 아니라 각종 기척이었다.
백새벽이 추측에 나섰다.
“건우랑 겐이 커닝미스 도심지에서 겪은 어떤 일 때문에 모종의 변화가 일어난 걸까요?”
“그럴지도.”
장목화는 다시 한번 군용 외골격 장치에 딸린 통신 시스템으로 성건우, 게네바와 연락을 취하려 했지만 이번에도 성공하지는 못했다.
어쩔 수 없이 나무에서 내려온 그녀가 백새벽과 용여홍에게 말했다.
“새벽아, 넌 마지막 남은 군용 외골격 장치 입고, 여홍이는 검은 늪 철갑뱀 인공지능 갑옷 입어. 정신 바짝 차리고 집중해서 상황의 악화에 대비하자.”
“예!”
용여홍이 곧장 답했다.
이내 그는 지프 트렁크로 향하며 자조하듯 웃었다.
“건우랑 겐도 제8 연구원 사람과 아직 마주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우리가 마주치게 될 줄이야⋯⋯.”
장목화와 백새벽의 시선이 동시에 그에게 향했다.
“얼른 인공지능 갑옷이나 입어.”
백새벽이 그를 채근했다.
용여홍은 얼른 입을 다물고 지프 트렁크로 성큼성큼 향했다.
* * *
성건우와 게네바는 최대한 조용히 커닝미스 안쪽으로 이동했다.
그들 주위의 환영은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한두 개 인영에 불과했던 것이 이제는 사방에 널려 있었다.
전부 무심자인 환영들은 미친 듯이 서로를 잔인하게 죽였다.
외부의 무심자들은 굶어 죽기 직전이지만 다른 먹이를 찾을 수 없는 상황이 아니고서야 동족을 공격하지 않았다.
게네바가 통신 시스템을 이용해 성건우에게 말했다.
“옷 스타일로 보면 구세계 파괴로부터 어느 정도 지난 후의 일 같아.”
그의 목소리에 잡음이 섞여 들렸다. 언제든 통신이 끊어질 듯했다.
“구세계 파괴로부터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의 옷 스타일이 어떤데?”
성건우가 물었다.
게네바는 솔직하게 답했다.
“옷감은 낡고, 디자인은 이것저것 긁어모은 듯하거나 실용적이고 간단해.”
성건우는 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커닝미스가 무심병의 재난을 맞닥뜨렸을 때의 그 광경이 혼란한 전자파 환경에 기록돼서 끊임없이 재현되고 있나 봐.”
게네바의 메인 모듈에는 자연스레 그 당시의 대략적인 광경이 떠올랐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커닝미스와 신세계 사이에 작지 않은 통로가 하나 뚫리고, 그 통로를 통해 무심병 바이러스가 미친 듯이 밀려듦에 따라 전자파가 폭발하는 광경이었다.
“정말 끔찍해⋯⋯.”
성건우가 감정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다음 순간, 그가 또 기대감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에 왔던 구조팀이 문제를 일으킨 화면도 기록돼 있을까? 그럼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을 텐데!”
게네바가 동조했다.
“그럴 가능성이 커. 어느 부분이 녹화됐는지에 달린 문제지만.”
성건우는 순간 속도를 높이며 거리를 가득 채운 무심자들을 뚫고 달렸다. 게네바도 빠르게 반응하며 그 뒤를 바짝 따랐다.
그 사이 성건우는 자신의 인간 의식을 숨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제8 연구원 사람이 멀리서 자신의 존재를 감지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 * *
한참 달린 끝에, 성건우와 게네바는 한 광장에 이르렀다.
옅었던 안개는 광장 위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어느새 안개는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기까지 했다.
이러한 환경 속에 등불 하나가 밝혀져 있었다.
광장 중앙에 자리한 등불이었다.
말라버린 분수 옆 석제 난간 위에 설치된 등불 주위로 허상처럼 일렁이는 책장들이 보였다.
그 책장 옆, 책상 앞에 검은 티셔츠를 입은 한 남자가 앉아있었다. 낮게 숙인 고개는 양손에 파묻고, 3대 7로 나뉜 검은 머리는 약간 헝클어져 있었다.
성건우, 게네바는 동시에 남자의 목에 두드러진 푸른 핏줄을 보았다. 그 핏줄이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는 가운데 남자의 몸이 미미하게 경련했다.
둘은 남자의 얼굴을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그가 지금 뭔가 고통을 애써 참고 있다는 것만은 직관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또 다른 신세계 사람이네.”
걸음을 늦춘 성건우의 음성이 통신 시스템을 통해 게네바에게 전해졌다.
“맞다. 근데 상태는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아. 전에 본 플로라나 버나드, 오하명과 달라.”
게네바가 일렀다.
전에 만난 세 사람은 비교적 여유로워 보였다. 플로라와 버나드에게는 나름의 불편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기는 했지만 적어도 또렷한 고통을 밖으로 드러낸 적은 없었다.
성건우가 웃음을 터뜨렸다.
“저 사람이랑 교류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야?”
게네바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래, 이곳은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너도 일단 시체 판별을 중단하고 문제의 근원이 뭔지 빠르게 확인하기로 했잖아. 그 외의 지엽적인 부분에 신경 쓸 필요는 없어.”
“알았어. 내가 그렇게 성급한 사람인 것 같아?”
성건우가 웃었다.
게네바는 그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이후 속도를 높인 성건우는 발소리를 죽여 살금살금 앞으로 나아갔다.
게네바는 그 명확하고 간단한 성건우의 의도를 단박에 알아차렸다.
성건우는 무심자의 환영으로 가득한 광장을 몰래 관통하며 신세계 남자의 시선을 끌지 않으려 하고 있었다.
‘사실 저자는 너를 보지도 못하고 네 말을 듣지도 못하는 데다 지금 넌 인간 의식을 숨기기까지 하고 있으니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될 텐데.’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말하려 했지만 게네바도 결국 성건우를 따랐다.
군용 외골격 장치를 착용한 성건우는 광장 맞은편을 향해 가볍게 뛰어갔고, 게네바는 그런 그를 흉내 내며 보다 사회성 있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던 그때, 책상에 앉아있던 검은 머리의 남자가 돌연 고개를 들었다.
매섭게 일그러진 얼굴에 자리한 약간 붉은 눈이 성건우, 게네바를 향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