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night Flower RAW novel - Chapter 768
768화. 게스트 보루
얼마 지나지 않아 구조팀은 속도를 늦췄다.
전방에 바리케이드에 걸쳐 세워진 검문소가 하나 있었다.
장갑차들의 보호 아래, 은흑색 흉갑을 장착한 병사들이 기관단총과 돌격 소총을 메고 게스트 보루에 진입하려는 차량을 검사하고 있었다.
병사들은 전부 남성이었고, 머리는 갈색이나 금색, 키는 평균 180센티미터 정도로 큰 편이었다. 강건한 몸과 윤곽이 굵고 분명한 얼굴을 가진 남자들은 척 봐도 매우 냉정하고 단호해 보였다.
“모두 선택받은 자들이네.”
장목화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선택받은 자란 어릴 때부터 유전자 개량을 받은 인간을 일컫는 말이었다.
반고 바이오와 마찬가지로 유전자 개량액 수출 세력인 화이트 기사단의 병사들은 기본적으로 다 선택받은 자였다.
물론 반고 바이오도 마찬가지였다. 현재 이 지프에 탑승한 사람 중에도 유전자 개량을 받지 않은 건 게네바 뿐이었다.
목을 빼고 병사들의 은흑색 흉갑을 보던 백새벽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힘을 강화한 선택받은 자만이 화이트 기사단 특산물인 방탄 합금 장갑을 입은 상태에서도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어요.”
광물 자원이 풍부하기로 유명한 화이트 기사단은 장비도 독특했다.
그 말을 들은 성건우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휴, 유전자 개량을 했는데도 175센티미터에, 그렇게 잘생긴 것도 아니⋯⋯.”
“그만!”
용여홍이 황급히 그의 말을 끊었다.
그때, 게네바도 다른 화두를 꺼냈다.
“친구가 되어야 하나?”
지금 지프 트렁크에는 금지 물품이 굉장히 많이 실려 있었다. 정말로 뜻밖의 상황이 벌어진다면 온 게스트 보루가 파괴될지 몰랐다.
검문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성건우의 사교술이 필수적이었다.
장목화는 검문소를 바라보며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일단은 됐어. 저 병사들, 금지 물품을 찾는 것 같진 않아. 그보다는 입장료를 징수하는 것 같은데. 그게 아니면 그때 건우 능력을 발휘하면 돼.”
현재 앞쪽 차량을 검문 중인 병사들은 트렁크를 열어본 뒤 대충 한 번만 훑어볼 뿐이었다.
장목화의 판단대로였다. 구조팀을 검문할 때도 담당 병사는 물자의 양만 확인하듯 대충 한 번 훑어본 뒤 이렇게 말했다.
“기사 은화 두 개.”
화이트 기사단에서 통용되는 화폐는 그들이 자체적으로 주조한 금속 화폐였다. 그 종류는 평범한 종자 동전, 그보다 더 가치가 높은 기사 은화, 그리고 어마어마한 가치의 그랜드 기사 금화로 나뉘었다.
그들의 광산 자원을 충분히 이용한 화폐 체계였다.
구조팀은 전에 게스트 보루에서 제8 연구원의 일을 조사했다는 것을 고려하여, 스미스가 이끄는 무근자 상인단에게 식량을 주고 화이트 기사단 화폐를 어느 정도 교환했었다.
이에 장목화도 당황하지 않고 기사 은화 두 개를 꺼내 병사에게 건넸다.
일찍이 염색약과 컬러 렌즈 등을 이용해 변장한 구조팀원들은 외모는 누가 봐도 화이트 기사단의 주류인 레드리버인처럼 보였다.
또한 전과 달리 의도적으로 못나게 위장하지는 않았다. 화이트 기사단은 유전자 개량을 한 사람이 워낙 많아서 평균 외모가 상당히 뛰어난 편이라 굳이 그러지 않아도 구조팀이 눈에 띌 리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위장할 당시 성건우는 빨간색으로 염색을 하고 싶어했지만 모두에게 반대의 몰표만 받았다.
* * *
순조롭게 검문소를 통과한 구조팀은 게스트 보루 핵심 구역에 진입했다.
“이제 뭘 하죠?”
용여홍이 창밖으로 느릿하게 스치는 각종 건물을 보며 물었다.
이내 성건우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조사!”
구조팀이 게스트 보루에 온 주요 이유는 2가지 일의 조사를 위해서였다.
하나는 제8 연구원의 종적.
그들은 이곳에서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합작해온 파트너에게 필요한 물자를 얻었을 테고, 그가 바로 스미스가 이끄는 무근자 상인단에게 빙설 폐허로 물자를 운송해 달라고 부탁한 의뢰인일 것이었다.
그 의뢰인과 관련한 기억은 이미 제8 연구원의 각성자에 의해 지워졌지만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기는 법이었다. 장목화는 게스트 보루에서 찾아낼 수 있는 무언가가 분명 있으리라 믿었다.
처음에는 스미스 무근자 상인단의 지인부터 찾아볼 생각이었다. 그들에게 아직 봄인 이때, 빙원으로 가야만 하는 이렇게 기이하고 위험한 임무를 맡기는 건 절대 낯선 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장목화는 결국 이 생각을 포기했다. 생각해보면 지인이야 기억 곡해나 추리 광대를 통해 얼마든 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그녀는 상응하는 물자의 출처부터 찾아보기로 했다. 물자만큼은 각성자 능력에 영향을 받는 영역이었다.
끝으로 구조팀이 조사할 두 번째 사안은 성건우 부친이 속한 구조팀이 커닝미스에서 가장 가까운 거점인 게스트 보루에 온 적이 있냐는 것이었다.
그들이 이곳에서 무슨 정보를 얻었는지, 혹은 어떤 정보를 드러낸 적이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지금 당장 할 일은 충전할 곳을 찾는 거지! 조사는 다음 일이고!”
장목화는 짜증 섞인 웃음을 흘리며 반박했다.
그러자 성건우는 또 곧장 동조했다.
“맞네, 겐은 이틀간 배터리를 아낀다고 저한테 춤도 못 가르쳐 줬거든요.”
그는 곧 성의 출구 근처 거리에서 ‘불과 철’이란 이름의 여관을 찾았다.
* * *
리넨색 머리의 성건우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프런트에는 한 남자가 앉아있었다.
“여관방에 콘센트가 있을까? 혹시 수시로 정전이 되지는 않아?”
잠시 멍한 표정을 드러내던 남자가 되물었다.
“남쪽에서 왔어?”
20대 정도로 젊은 남자는 키가 장목화와 거의 비슷했다. 금발과 파란 눈을 비롯한 이목구비는 꽤 훌륭한 편이었는데, 분위기가 있는 외모는 아니었다.
“어떻게 알았어?”
성건우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호기심을 표했다.
남자가 웃었다.
“말투가 그래서.”
성건우의 레드리버어에는 퍼스트 시티 억양이 어려 있었다. 이는 화이트 기사단 최남단 지역의 억양과 비슷했다.
“아아.”
깨달음을 얻은 성건우가 탄성을 내뱉었다.
이어, 남자는 성건우를 비롯해 용여홍, 백새벽, 장목화와 평범한 로봇인 척하고 있는 게네바를 힐긋 살핀 뒤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 우리 게스트 보루에 다른 건 없어도 석탄, 철, 화력 발전소는 많으니까! 최고급 스위트룸 방값에는 전기료가 포함돼 있어서 따로 지불할 필요도 없어.”
성건우가 깜짝 놀랐다.
“정말?”
남자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계약서를 써줄 수도 있어.”
충전이 시급한 어마어마한 양의 고성능 배터리를 떠올린 용여홍은 그의 말을 듣자마자 속으로 입을 쩍 벌렸다.
이렇게 좋을 수가?
* * *
구조팀이 택한 건 전기 요금이 무료인 최고급 스위트룸이 아닌, 따로 붙는 평범한 방이었다. 전 인류 구원을 제창하는 성건우는 절대 그런 방에서 묵는 호사를 허락하지 않았다.
팀장 장목화는 그렇게 늘 구조팀의 양심처럼 행동하는 성건우의 모습에 남몰래 한숨만 푹 내쉴 뿐이었다.
방으로 들어온 성건우는 아직 밝은 바깥을 보고 의욕을 불태웠다.
“겐의 충전이 끝나면 바로 나가서 조사해요?”
장목화가 피식 웃었다.
“일단 며칠 조용히 지켜본 다음에.”
퍼스트 시티에서는 검은색을 유지하고 있던 그녀의 머리도 역시 리넨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같은 레드리버인이라도 화이트 기사단에는 검은 머리를 가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또 장목화가 지금 착용한 파란 렌즈는 전에 썼던 것이 아닌, 임무를 수행하러 외부에 나오기 전에 회사의 관련 기술자가 만들어준 생물 재료였다.
“왜요?”
성건우는 꼭 누군가에게 한 대 얻어맞은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커다랗게 뜬 그의 눈 속엔 녹색 렌즈가 반짝이고 있었다.
파란 눈의 장목화가 조용히 그를 흘겨보았다.
“지금 가장 먼저 할 일은 모든 배터리를 충전하는 거야. 그전까지는 될 수 있으면 밖을 나서지도, 조사해서도 안 돼. 정말 무슨 단서를 발견해 문제를 일으켰다간 배터리를 다 충전하기도 전에 게스트 보루에서 쫓겨날 테니까. 때가 되면 안정적으로 배터리 충전할 장소는 찾기조차 어려울 거야.”
그녀는 걸핏하면 문제를 일으키는 이 구조팀의 체질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이 늘 걱정이었다.
운이 나쁠 경우, 제8 연구원이나 성건우 부친이 속한 팀에 관한 단서를 조사하러 나갔다가 수확을 얻더라도 또 문제가 생길지도 몰랐다.
그 사이에 일으킨 모종의 갈등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결국 날이 밝기도 전에 게스트 보루를 떠나야만 하는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될 경우 고성능 배터리를 몇 개나 충전할 수 있겠는가? 그 후에는 또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럴 가능성까지 고려한 장목화는 최대한 신중하기로 했다. 팀원들을 다 여관에 가둬놓고 모든 배터리의 충전이 끝난 후에 조사에 나설 계획이었다.
성건우도 장목화의 말뜻을 금세 알아차리고 용여홍을 째려보았다.
“너 말하는 거잖아!”
용여홍이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넌 아무 단서도 발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한다?”
또 다른 염색약을 쓴 그의 머리는 갈색으로 변해 있었다. 더불어 그가 선택한 렌즈는 노란색이었다.
백새벽도 그와 똑같은 모습으로 커플룩을 연출한 상태였다.
두 친구가 또 말다툼하는 사이, 게네바는 방의 거실 안쪽으로 들어가 알아서 충전을 했다. 이후 옆쪽의 개인용 소파에 앉았다.
지금 그는 하루를 바쁘게 보내고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한 뒤 침대에 누운 탄소 기반인처럼 편해 보였다.
백새벽은 다른 콘센트를 찾아 또 다른 고성능 배터리를 충전했다.
주위를 한번 둘러본 장목화는 전술 배낭을 풀고 거실 창문으로 향했다.
그녀는 화이트 기사단이 꽤 익숙했다. 와본 적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이곳에 관한 자료를 적잖게 읽어 보기도 했고, 화이트 기사단의 구성원, 혹은 이전에 이곳을 다녀간 대형 세력 구성원과 접촉한 적은 있었기 때문이었다.
화이트 기사단은 구세계 파고 후, 혼란의 시대 초기에 설립된 세력이었다. 당시 고대의 기사 정신을 숭상한 사람들과 구세계의 몇몇 종교 조직 생존자들은 함께 모여 인류를 이끌고 혼란에서 벗어나 질서를 중건하려 했었다.
그때만 해도 달지기에 관한 소문은 돌지 않았고 구세계 몇몇 종교에서 말하는 신은 나타나지도, 인간들에게 어떤 계시를 주지도 않았다.
그 때문에 상응하는 종교는 와해됐고 생존자들은 동료들의 위안 아래 분분히 자신의 심령을 기사 정신으로 채웠다.
이것이 화이트 기사단의 탄생이었다.
혼란의 시대, 검소, 절약, 자제, 연민, 겸손, 용기, 공정 등의 신조를 강조하며 거점을 하나하나 개척한 기사들은 이를 통해 대량의 민중을 그러모으는 한편 하나로 똘똘 뭉쳐 난관을 헤쳐나갔다.
구세군도 기사들이 하는 일을 칭찬했다. 귀천과 복종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이념과 비교적 낮은 여성의 지위에 대해서는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을 공격하거나 건드리지는 않았다.
이로 인해 그들과 상당히 긴 경계를 맞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세군은 언제나 서남쪽으로 진군해 퍼스트 시티의 인류를 구원하려 했을 뿐, 화이트 기사단과는 평화롭게 공존하며 서로를 방해하려 하지 않았다.
한편, 신앙 방면에서 화이트 기사단은 표면적으로는 어떠한 신령도 숭상하지 않고 기사 정신을 최고의 행동 수칙으로 삼았다.
그러나 실제로 어떨지는 장목화도 아는 바가 없었다. 그들의 고위층은 어쩌면 구세군처럼 시종일관 달지기들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 수도 있고, 퍼스트 시티처럼 배후에서 몇몇 달지기와 결탁해 있을 수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