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night Flower RAW novel - Chapter 802
802화. 내가 잘못 판단한 모양이군
작별을 고하던 그때, 성건우가 열성적으로 물었다.
“지금까지 모아둔 돈이면 최신형 유전자 개량 약제를 살 수 있어? 부족하다면 우리가 좀 빌려줄 수도 있는데.”
‘우리가 빌려줄 수 있는 돈은 힘껏 쥐어짜 봤자 그랜드 기사 금화 하나밖에 안 되는데 그걸 어디다 써?’
장목화는 속으로 빈정대면서도 성건우를 저지하지는 않았다.
정 안 되겠으면 상부에 경비를 신청하는 방법도 있었다.
제8 연구원의 구체적인 위치까지 찾아낸 구조팀이 경비가 필요하다는 데 어느 누가 안 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전에 부탁한 생물 제제는 중요한 인물을 매수하는 데 쓸 것이었으니 임무 수행에 필수적인 지출이었다.
지티스는 흠칫 놀라고 말았다. 이들이 자신에게 돈까지 빌려주려 할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장목화와 성건우를 위아래로 몇 번이나 훑어보더니 웃어 보였다.
“너희는 진정한 기사 정신을 가지고 있구나.”
‘난 아니야. 난 자격 없어. 건우는 몰라도⋯⋯.’
장목화는 스스로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지티스는 곧 웃음을 거두며 말을 이었다.
“필요 없어. 난 사실 3년 동안 최신형 유전자 개량 약제를 살 만한 돈을 충분히 모아뒀어. 그중 대부분은 부모님 치료를 위해 남겨둬야 하긴 하지만. 근데 너희들이 이번에 주겠다는 생물 제제가 정말 효과가 있다면 유전자 개량 약제를 살 비용 정도는 충분히 부담할 수 있어.”
“잘됐다!”
성건우의 목소리에는 진심이 어려 있었다.
이후 문 쪽으로 몇 발짝 걷던 그가 돌연 뒤돌아섰다.
“네 분신의 죽음이 핏빛 재난이었을까?”
“분명 그렇겠지.”
지티스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핏빛 재난은 결국 이렇게 실현됐네.”
성건우는 모종의 깨달음을 얻은 듯 중얼거렸다.
당시 그의 예언 대상은 그의 일행이었다. 지티스는 합작자였으니 그 순간에는 그의 일행 중 일원이 됐던 것이었다.
따라서 고개를 끄덕이던 장목화가 성건우에게 당부했다.
“하지만 자정이 될 때까지 경계를 낮추면 안 돼.”
* * *
안전 가옥을 나온 장목화, 성건우는 바로 사건 현장으로 가서 목격자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곳은 지나치게 구석진 곳이고 사건이 발생한 것은 근무 시간이었다. 피비린내가 퍼져나갈 때까지 골목길 안에서 발생한 일에 신경을 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구조팀은 게네바가 인쇄한 습격자의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아직까진 그런 사람을 봤다는 이도 나타나지 않았다.
장목화는 상대가 골목길 밖에 차를 세워뒀다가 보리 불상을 손에 넣은 뒤 곧장 그 차를 타고 떠났거나 그녀에게 공범이 있으리라 의심했다. 습격자는 보리 불상을 찾자마자 상대에게 넘긴 뒤 곧장 은신한 것일 터였다.
그때, 장목화가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엔 벌써 빛이 떠나고 서서히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벌써 구조팀이 잠을 자지 않은 지도 사흘째였다. 팀원들의 상태를 고려한 장목화는 일단 조사를 중단시켰다.
“내일은 그 사람의 대칭 강박증을 바탕으로 조사해보자.”
* * *
다음 날 오전.
모처럼 단잠을 자고 일어난 구조팀은 일단 사냥꾼 길드로 향했다. 보리 불상에 관한 단서를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뭐라고요? 임무가 취소됐다고요?”
성건우는 대경실색하며 실망한 기색을 짙게 드러냈다.
직원은 간단히 답했다.
“의뢰인이 부하가 보리 불상을 손에 넣은 것을 확인했답니다.”
“그 사람이 손에 넣었다고 손에 넣은 거랍니까? 게스트 보루에 온 모두를 기만하는 거 아닙니까?”
성건우가 씩씩대며 대꾸했다.
직원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의뢰인은 이미 이전까지 수집된 정보들에 대해 그랜드 기사 금화 30개에 달하는 금액을 지불했습니다.”
수확을 얻은 여러 유적 사냥꾼은 이미 상당히 만족한 상태였다.
고민하던 장목화가 말했다.
“그렇다면 의뢰인의 수하가 그 습격자일까?”
혹은 그 암살자가 보리 불상을 의뢰인에 가져다준 것일 수도 있었다.
의뢰인은 제8 연구원 사람이 아닌 듯했다. 만약 그가 정말 제8 연구원 사람이라면 암살자가 진 교수와 차으뜸을 내버려 둔 채 홀로 다른 속을 차렸을 리는 없었다.
장목화는 지난번 사건 이후 제8 연구원을 배반한 암살자가 지금은 의뢰인을 위해 일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의심했다.
“맞아요! 치안소로 가서 신고하시죠!”
성건우가 문을 향해 돌아섰다.
그러면 단서에 대한 어느 정도 대가라도 받을 수 있었다.
티끌 모아 태산이었다.
장목화는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몰래 지티스를 안타까워했다.
보리 불상을 다시 찾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그것은 이미 게스트 보루 밖으로 떠난 뒤였다.
* * *
며칠 후, 구조팀은 그들의 손에 들어온 생물 제제를 지티스에게 넘기고 그 효과를 확인했다.
뒤이어 스미스와 만난 구조팀은 일찍이 물자를 보충해둔 지프를 끌고 게스트 보루를 나와 빙원으로 향했다.
지프가 바리케이드를 지나칠 무렵, 고개를 틀어 뒤를 돌아본 성건우가 아쉬움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화이트 기사단의 최신형 유전자 개량 약제가 우리에게도 효과가 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는데⋯⋯.”
“돈 없어.”
장목화가 간결하게 대꾸했다.
운전대를 잡은 백새벽은 앞으로 달리는 지프의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목적지는 커닝미스였다.
* * *
커닝미스.
영원히 빛은 없을 것 같은 어두운 하늘 아래, 성건우가 걷고 있었다. 곁에는 게네바도 함께였다.
목적지는 지난번 제8 연구원 관리팀이 주둔했던 초소였다.
현재 성건우는 군용 외골격 장치를 착용한 채로 있었다. 지금까지 구조팀은 생명 천사 목걸이가 커닝미스에 만연한 무심병 바이러스를 막아준다는 건 확신하고 있었지만, 옥부처와 육식주에도 같은 효과가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실험을 통해 오답을 배제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 해답을 찾으려면 결국 한 팀원이 무심자로 변해야만 했다.
그래서 구조팀은 지난번처럼 성건우에게 생명 천사 목걸이를 착용하게 하고, 게네바와 함께 탐색해보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도심지 안쪽으로 진입하기 전, 구조팀은 일단 전에 마주친 제8 연구원의 현 상황을 확인하기로 했다. 갑작스러운 습격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초소 역할을 하는 버려진 건물에 도착한 뒤, 성건우는 한가롭게 문 앞에 서 있었다. 주위를 돌아다니며 검사하는 건 게네바의 몫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게네바가 결론을 내렸다.
“최근 인간이 출몰한 흔적은 없다. 그들과 그 대형 고양잇과 동물은 여기 다시 오진 않은 것 같네.”
“상황을 확인하러 오지도 않은 거야? 프로가 아니네!”
성건우는 꼭 본인 팀원이 실수하기라도 한 것처럼 불만을 표했다.
“그건 그들에게 물어봐야겠지.”
게네바가 솔직하게 답했다.
“그래, 도심지에서 뭔가를 맞닥뜨리는 바람에 곧장 제8 연구원으로 철수한 것인지도 모르고.”
성건우는 왼손으로 턱을 쓰다듬으려 했지만, 생명 천사 목걸이를 두르고 있던 까닭에 팔에 힘을 줄 수 없었다.
성건우와 게네바는 멈추지 않고 계속 이동했다. 초록색 건물을 하나하나 오르고, 갈라진 길을 걸어 커닝미스 도심지로 향했다.
도중에 성건우는 수시로 왈, 짖었지만 게네바는 못 들은 척 외면했다.
“겐, 네 생각에는 제8 연구원 깊은 안쪽엔 뭐가 숨겨져 있을 것 같아?”
성건우의 생각은 언제나 럭비공처럼 멋대로 통통 튀었다.
이내 카멜레온 인공지능 갑옷을 입은 게네바는 금속 목을 흔들었다.
“모르겠는데.”
“대담한 가설을 세우고 조심스럽게 실증을 해보라는 거잖아.”
성건우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늘 인내심과 끈기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이미 구조팀은 이 주제를 여러 번이나 토론한 바 있었다. 여러 추측이 있었지만 현재 증명이 가능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는 답은 3가지가 있었는데, 첫째는 제8 연구원의 각성 확률이 월등히 높은 까닭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어둠’의 비밀. 이는 구세계 파괴 후 제8 연구원이 어둠의 앞잡이가 되었다는 이야기에서 기인한 추측이었다.
마지막으로는 신세계와 관련한 무언가를 꼽았다.
그러나 이 모든 게 구조팀원들의 추측일 뿐, 아무 단서도 없으니 대체 어느 방면과 관련돼 있을지는 무엇 하나 짐작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게네바는 이 커닝미스 도심지와 가까운 곳에서 그런 얘기를 하고 싶진 않았다. 이번 작전과 아무 관계도 없었고, 얘기해봤자 새로운 정보를 얻기 전까진 지금껏 팀원들과 했던 브레인스토밍과 큰 차이도 없을 터였다.
게네바는 조용히 팀장 장목화의 행동 데이터베이스를 뒤져보았다. 그녀가 이런 상황에서 보였을 반응, ‘폭력적인 위협’ 등의 선택지가 떠올랐지만 그는 그래도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하나를 골랐다.
“저게 뭐지?”
게네바가 고개를 살짝 틀어 한쪽을 가리켰다.
“뭔데?”
성건우는 잔뜩 흥분해 돌아봤다가, 미간을 팩 구겼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내가 잘못 판단한 모양이군.”
게네바는 빠르게 사과했다.
성건우는 실망한 듯 시선을 거뒀다.
이후로 몇 분은 침묵이 흘렀다.
하늘은 점점 더 어둑해졌고, 성건우는 숲처럼 빽빽한 건물이 자리한 곳을 바라보다가 불쑥 입을 열었다.
“자꾸 진 교수의 기원의 바다에서 중요한 걸 빼먹은 것 같은 느낌이야.”
“정상이야. 숙명통은 네게 모든 기억을 보여줄 뿐이고 그 기억을 선별하고 검사하는 건 스스로 할 일이니까. 인간은 그런 힘이 부족하기도 하잖아.”
성건우가 부럽다는 게네바를 쳐다보았다.
“너희 지능인은 안 그렇잖아. 근데 중요한 정보를 빠뜨린 것 같다는 건, 커닝미스에 들어와서야 들었어. 지난 며칠 동안 그랬다는 얘기가 아니라.”
표현은 이상했지만 게네바도 그의 말뜻을 이해했다.
“당시 뭔가 비밀스러운 방해가 있어서 중요 정보를 소홀히 한 것 같다?”
성건우는 또 흥분한 채 추측에 나섰다.
“응! 일종의 암시였을지도 모르지? 관련 기억을 그냥 묵과하라는 암시.”
게네바가 눈으로 붉은빛을 두어 번 번득였다.
“당시 어딘가에 숨어있던 다른 각성자가 너한테 영향을 미친 건가?”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그 암살자가 사건 현장 옆에서 기다렸을 수도 있고, 심지어 지티스의 남자 분신이 몰던 그 SUV에 앉아있었는지도 몰랐다.
성건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일부 기억에 문제가 있던 것 같아. 기억 자체에 암시가 걸린 거지.”
“고작 특정한 기억 파편이 소리소문없이 너한테 암시를 걸 수 있다고?”
여태 게네바가 형성한 각성자 관련 모델은 이 근거를 뒷받침하지 못했다.
“그래. 달지기 급의 힘인지도 모르지.”
성건우의 목소리에 동경심이 배어나왔다.
게네바는 바로 분석에 나섰다.
“다른 설명도 가능하다. 사전에 영향을 받은 진 교수의 상응하는 기억 파편이 위장한 채 네 선별을 피한 것일 수도 있어. 당시 넌 거기서 약간 기이하다거나 조화롭지 못한 부분을 감지했지만 신경 쓰지는 못하고 있다가 오늘에서야 퍼뜩 깨닫게 된 거지.”
탁! 탁! 탁!
성건우는 금속 골격으로 뒤덮인 오른손으로 가슴팍 장갑을 두드렸다.
“그럴 수도 있겠다!”
숙명통으로 진 교수의 모든 기억을 뒤져본 그 당사자가 보일 법한 반응은 아니었다. 그는 또 그렇게 신나서 말을 이어갔다.
“숨겨진 기억은 뭐랑 관련돼 있을까?”
게네바는 빠르게 모델을 형성한 뒤 결론을 도출했다.
“어둠, 아니면 원장일 거다. 제8 연구원 힘은 분명 그 신세계 강자들에 그치지 않을 거야. 진 교수는 준 고위층이었으니 자기 세력의 가장 큰 의지처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을 거야. 하지만 넌 숙명통을 이용해 그 사람 기억을 뒤졌는데도 그 방면 정보를 얻진 못했지.”
탁! 탁! 탁!
성건우는 조금 전처럼 손뼉을 대신한 뒤, 성실하게 문제를 제기했다. 원래 성실한 성건우는 트집을 잡는 데에도 가리지 않고 충실했다.
“그럼 제8 연구원 구체적 위치에 관한 기억은 왜 숨기지 않은 거지? 그래, 그것까지 숨기면 진 교수가 그곳으로 돌아가질 못하기 때문에?”
그가 자문자답으로 말을 끝냈다.
게네바는 계속해서 무차별 대입 공격으로 더 많은 가능성을 내놓았다.
“그 부분 기억만 암시 능력으로 스스로를 숨길 수 있거나, 사전에 진 교수에게 영향을 미친 사람이 제8 연구원 사람이 아닌 거겠지. 그는 우리가 제8 연구원을 찾길 바랐지만 특정 비밀까지 아는 건 원치 않은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