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night Flower RAW novel - Chapter 849
849화. 연구 구역
소파에 앉은 진리는 미소로 답하며 문을 가리켰다.
“의문이 다 해소됐다면 이만 나가 봐. 오른쪽으로 쭉 가다 보면 그 끝에 선홍색 문이 보일 거야.
가. 가서 장생이랑 얘기해. 어떻게 하면 애쉬랜드에 드리워진 이 먹구름을 없앨 수 있을지.
달지기들이 대량의 인간 의식을 섭취하면서까지 사력을 다해 싸워야 하는 상황이 펼쳐지지 않았으면 좋겠네.”
성건우가 신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이후 홱 돌아선 그가 문득 소파에 앉은 진리를 돌아보았다.
그는 그대로 얌전히 왼손을 들었다.
“질문 하나 더 있어.”
진리는 어떠한 표정 변화도 보이지 않았지만 몇 초 후에야 응답했다.
“무슨 질문?”
성건우가 진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어느 달지기가 개혁파고 어느 달지기가 현상유지파야? 이따 혹시 현상유지파를 맞닥뜨리면 인사도 하지 말고 최대한 빨리 도망쳐야 하잖아.
혹시 각각의 달지기가 어떤 영역을 관장하는지도 알려줄 수 있어? 그 대가랑 약점까지 알려주면 더 좋고!
설마 내가 순순히 장생의 문 앞에 당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지? 현상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 이들은 나를 저지하려 할지도 몰라.
넌 너희가 다수파라고 했지만 달지기한테는 저마다 특장점이 있잖아. 누군가 너희들이 구축한 방어선을 교묘히 피해 돌아올 수도 있는 거 아냐?”
성건우의 요구는 매우 합리적이었다.
진리는 침묵 끝에 말했다.
“현재 현상을 바꾸고 싶다는 의사를 명확히 표현하고 힘을 보태겠다 한 건 12월의 달지기 사명, 9월의 달지기 만다라, 6월의 달지기 황금 저울, 2월의 달지기 여명, 10월의 달지기 에이돌른, 7월의 달지기 쌍태양, 그리고 나야.”
성건우는 그 수를 자세히 헤아리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반밖에 안 되는데 무슨 다수파?”
열세 명의 달지기에 진리를 더하면 총 열네 명이었다.
진리가 웃었다.
“현상을 유지하기를 원하는 일곱 명 중, 이번에 슬쩍 입장을 바꾼 이들도 몇 명 있어. 구체적으로 몇 명인지는 이야기해줄 수 없지만.”
모종의 깨달음을 얻은 성건우가 중얼거렸다.
“오오⋯⋯. 어쩐지 강소월이 나를 저지하지 않더라니!”
상대는 5월의 달지기 감찰자로 의심되는 존재였다.
눈 깜짝할 사이 성건우는 또 다른 질문이 생겼다.
“그런데 왜 달의 순서대로 호명하지 않는 거야? 아무리 서열이 없다고 해도 그렇지 이렇게 얘기하는 건 너무 불규칙적이잖아?”
진리가 소리 내 웃었다.
“생각나는 대로 말해서 그래.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건 사명인데 그건 아무래도 네가 내 앞에 서 있기 때문이겠지. 설마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내가 동맹을 달의 순서에 의지해서 기억하고 있기를 바라는 거야?”
“그래, 그래야 더 믿음직스럽지!”
성건우가 동의했다.
더 이상 이 대화를 이어 나가고 싶지 않았던 진리는 현상유지파에 속한 달지기를 소개했다.
“한해의 달지기 장생은 사유의 주인이자 의지의 천적으로 여러 인격이 분열된 형식으로 존재해.
3월의 달지기 말인은 기억의 지배자임과 동시에 인류의 신체에 말썽을 일으킬 수 있지만 그 대가는 나약함이지.
11월의 달지기 깨진 거울은 환각의 신으로, 인지 및 자극 방면 능력을 관리해. 그녀의 대가는 아주 비밀스러워. 나로서도 한 가지 현상만 겨우 눈치챘을 뿐이지, 그녀가 실제 모습으로 나타난 적은 한 번도 없다는 거야.
8월의 달지기 작열하는 문은 근육을 지배하는 한편 특정 방면으로 사유와 정신 영역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추위를 두려워한다는 게 문제지만.
1월의 달지기 보리는 의식의 근원이야. 대가가 뭔지는 나도 잘 몰라.
4월의 달지기 왜곡의 그림자는 균형자이자 전쟁의 왕이지. 균형력과 판단력 등 운동 관련 능력을 장악했고, 대가는 왜곡된 생물에 대한 공포야.”
진리는 5월의 감찰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얘기를 들으며 성건우는 고개를 연신 끄덕이다 알아서 대화를 마무리했다.
“고마워, 고마워. 지금 바로 그 선홍색 문을 열러 출발할게!”
의지를 불태우며 당당하게 문가를 떠난 그는 진리가 가르쳐 준 그 복도의 끝을 향해 나아갔다.
* * *
소용돌이형 건물 안.
장목화는 지금 회의 구역 끝에 이르러 있었다. 복도 끝에 다다르니 표지판에 쓰인 글자가 보였다.
[일반 연구 구역]그녀는 이 상황을 굉장히 다행스럽게 여겼다.
그 표지 아래엔 다음과 같은 경고도 붙어있었다.
‘몇 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움직이는 지능 로봇이 남아있으려나⋯⋯.’
장목화는 경계심을 높이며 열린 출입구를 통해 조심스럽게 진입했다.
그리고 단번에 복도 모퉁이에 선 로봇 두 대를 발견했다. 그녀는 태만하게 굴지 않고, 아주 가볍고 빠르게 가장 가까운 방으로 굴러 들어갔다.
* * *
아직 몸을 채 일으키기도 전, 장목화는 방에 놓인 대형 배양 기기, 혹은 그와 비슷한 장치들을 보았다.
그 안에, 회백색의 뇌가 들어 있었다.
‘인간의 뇌⋯⋯.’
장목화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방 안 깊은 곳에는 액체로 가득 채워진 유리 용기들도 있었다. 기둥형 용기 안에 떠 있는 것은 뇌를 드러낸 인간 시체였다.
주위 벽과 탁자에는 각색의 접착 메모지가 굉장히 난잡하게 붙어있었다.
장목화는 가장 먼저 문 옆에 붙은 접착 메모지에 주목했다.
그 위에 애쉬랜드 문자가 적혀 있었다.
「전두엽 : 사고, 연산, 수량 개념을 담당함. 개체의 요구, 감정, 의지와 관련돼 있음. 일부 환자는 실서증, 운동 실어증 등의 증상을 겪기도 함.」
“어⋯⋯?”
흠칫 놀란 장목화는 머릿속에 특정 생각들이 미친 듯이 번져나갔다.
그녀는 황급히 다른 접착 메모지도 마저 살폈다.
「후두엽 : 언어 처리, 동작 감각, 추상 개념 및 시각 정보 담당. 조건 반사 형성에 영향을 미치며 실험자의 학습 기억 능력에 또렷한 장애를 초래할 수 있음. 이 부위에 손상을 입으면 역행성 기억상실증에 걸리기 쉬움.」
「측두엽 : 해마가 딸려 있으며 인간의 정서, 정신, 기억 활동에 관련됨. 측두엽에 문제가 생기면 의식이 흐릿해지고, 언어가 혼란스러워지고, 정서의 기복이 심해지거나 기억이 결손되는 등의 상황이 발생하곤 함.」
「기억 장애는 흔히 나타나는 기본 증상으로 종류에는 근기억력, 원기억력, 현기억력 장애가 있으며 시간 및 장소에 대한 기억의 결함이 두드러짐.」
「자동증도 흔히 볼 수 있음. 발작 시에는 무의식적으로 활동하는데 물건을 손괴하거나, 사람을 해치거나, 충동적인 모습을 보이거나, 자해하거나, 옷을 벗거나, 공황에 빠지거나, 격노 등 정신적으로 흥분한 모습을 보임.」
「측두엽 해마가 훼손됐을 때 기억 장애가 나타나며 기억 장애는 방향 장애를 수반할 수 있음.」
「상측두회 역시 전정기관의 피질 중추임. 그래서 측두엽에 문제가 생기면 균형 장애와 현기증이 나타날 수 있음.」
「상측두회의 후부 손상은 감각성 실어증을 야기할 수 있음. 이 증상을 앓는 환자는 말하는 소리는 들을 수 있지만 그 의미는 이해하지 못하며 자신의 말 역시 이해하지 못함. 우성대뇌반구 내의 상측두회 후부와 연상회의 이행부위에 손상을 입으면 명명성 실어증이 나타날 수 있음.」
「측두엽에 손상을 입으면 사분맹(四分盲)이 나타날 수 있음.」
「측두엽의 넓은 면적에 병변이 생기면 동안 신경이 마비될 수 있음.」
「해마체는 기억 및 공간 개념을 담당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 해마체가 손상을 입으면 기억력 감퇴와 방향 감각 상실 등의 증상이 나타남.」
「두정엽 : 기타 여러 중요 구역을 포함하는 감각 중추. 두정엽이 손상되면 대뇌 피질성의 이상 감각 혹은 감각 장애, 운동 불능(실용증), 공간 지향 장애 및 신체 위축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고 다음과 같은 모습도 수반됨.
사지 인식 불능 : 환자가 사지 마비를 부인하고 마비된 좌측의 지체를 자신의 것으로 인정하지 않는 부정적인 체상 장애.
다지 환상 : 실존하지 않는 제3의 지체가 있다고 믿는 긍정적 체상 장애.
통각 인식 불능 : 통각이 존재함에도 통증을 유발하는 자극을 인식하지 못하는 장애. 담배에 손가락을 데어도 무반응이며 담배를 집어 던지는 보호성의 조건 반사도 보이지 않음. 병변은 좌측 연상회에 존재하며 각회와 상측두회에 연루되는 경우는 비교적 적음.
안면 인식 불능 : 익숙한 사람, 심지어는 거울 속 자신의 얼굴도 알아보지 못하는 장애. 보통 색, 물체, 방향 인식 불능을 수반하며 두정부에 손상을 입었을 때 드물게 나타남.」
「뇌섬엽 : 신체 생리 상태의 정보를 받아 주관적인 결정을 내림. 허기를 느껴 남을 시켜 음식을 가져오게 하거나 더 많은 담배와 코카인을 가져오게 하는 것 등을 예시로 들 수 있음.」
「뇌섬엽이 내장과 피부 등 감각 기관에서 받는 정보는 더위, 추위, 가려움, 통증, 미각, 허기, 목마름, 근육통, 내장 감각, 공기 감각 등이 포함됨.」
「뇌섬엽은 아직 발생하지 않은 일을 처리할 때 매우 중요하게 작용함. 추운 날씨에 외출하기로 결정했을 때 당사자 몸은 실제로 그 추운 날씨를 경험하기 전부터 혈압을 높여 신진대사를 활성화하는 등의 준비를 하는데, 이것이 바로 뇌섬엽의 역할임.」
「뇌섬엽 역할을 억제하는 건 신중해야 함. 흡연, 음주, 마약에 대한 욕구를 잃은 인간은 성생활, 식사, 업무 등에 대한 흥미도 잃을 수 있기 때문.」
「선조체 : 근장력, 주의력, 정신 상태에 영향을 미치며 사고에도 어느 정도 연관돼있음. 무도병(舞蹈病)과 파킨슨, 전신 근육 긴장 증대, 운동완서, 섬망, 조증, 감정실금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음.」
「편도체 : 정서를 생산, 식별, 조절하는 뇌부 조직.」
「유아 자폐증도 편도체의 확대와 관련 있는 것으로 보임. 의식이 또렷한 동물의 편도체를 자극하면 판단력을 잃거나, 초조해하거나, 두려워하거나 위축된 모습을 보이기도 하나, 분노하며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함.」
「편도체의 머리끝을 자극하면 도피와 공포를 유도할 수 있고, 꼬리 끝을 자극하면 방어와 공격 반응을 끌어낼 수 있음. 이를 통해 편도체의 주요 기능 중 하나가 대뇌 신피질에 전달되는 각종 외부 정보를 바탕으로, 상응하는 정서를 생산하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음.」
「편도체 양쪽 끝이 파괴된 인간은 공포에 대한 인식, 반응을 잃게 됨.」
「얼굴 근육과 표정 처리를 담당도 편도체 역할 중 하나. 한 사람과 얼굴을 마주했을 때 편도체는 그 표정을 확인하고 우호적인지, 적대적인지 판별한 뒤 그것을 바탕으로 상대를 대면할지, 아니면 도피할지 결정함.」
「또한 편도체는 자율 신경의 중추이기도 함. 이는 유기체의 호흡, 심혈관, 위장관 등의 기능을 조절하는데 특히 감정적인 자극이 수반된 자율 신경 반응은 편도체의 직접적인 제어를 받음.
이것은 유기체의 성생활과 음식 섭취를 조절하는 데 참여하는 한편, 뇌하수체의 작용도 통제하면서 이를 통해 뇌하수체의 호르몬 분비를 제어하고 신경내분비계 기능을 조정함.」
「대상핵 : 의식의 스위치로 추정. 대상핵이 고주파 자극을 받았을 때 환자가 의식을 잃고 혼수상태에 빠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음.
이 상태에 처한 환자는 외부의 지령에 호응할 수 없고, 눈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호흡도 느려짐. 그러다 대상핵을 향한 고주파 자극이 멈추면 환자는 지각을 회복함과 동시에 조금 전에 있었던 어떤 일도 인지하지 못함.」
「백색질 : 반신불수, 반신성지각이상 등을 야기할 수 있음.」
「시상부 : 의식을 생산하는 핵심 기관. 시상 감각을 합성함.」
「시상부는 시상 감각을 합성, 방출해 의식을 생산할 수 있지만 시상부가 의식 활동이 일어나는 장소는 아님. 의식 역시 시상부 안에 존재하지 않음.
시상 감각은 대뇌가 사물에 대한 지각을 생산하게 하는데 이것이 바로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임. 임상 연구 중 시상부에 손상을 입거나 병변이 생김에 따라 의식이 결손되고 상실되는 사례가 있었음.」
「시상부는 감각을 중계하고 움직임을 통제하는 역할도 담당함. 특기할 만한 것은 모든 감각 정보 중 오직 후각 정보만이 시상부의 핵을 거치지 않고 곧장 대뇌 피질로 전달된다는 것임.」
「시상하부 : 몸의 항상성 유지. 자율 신경 계통 통제. 감정 등과 관련.」
「시상하부는 표본 분석 기능뿐만 아니라 호르몬 분비 기능도 가짐.」
「시상하부는 감각 표본을 분석, 생산하고 시상부의 전핵을 자극해 시상 감각을 합성함. 이곳에서 생성되는 감각에는 인간과 사물에 대한 선호, 기호, 편애, 욕망, 미감, 동기, 즐거움, 두려움, 흥분, 실망 등이 있음.」
「소뇌 : 골격근의 운동에 협조해 근육의 긴장을 유지, 조절하면서 신체의 균형을 지킴.」
「뇌간 : 뇌간에는 시각, 청각, 균형과 같은 조건 반사 중추뿐만 아니라 심혈관 운동 중추, 호흡 중추, 연하중추 등 수많은 중요 신경 중추가 있음.」
장목화는 이 수많은 메모지에 적힌 뇌의 각 부위와 관련한 내용을 빠르게 훑었다. 그리고 헬멧 속 그녀의 표정에 급격한 변화가 몇 차례 일어났다.
그녀는 이를 악문 채 중얼거렸다.
“애초에 달지기의 강림체 따위 없던 거였어! 그런 일은 처음부터 없었어! 당시 제8 연구원에서 연구한 건 각성이 아닌 인간 두뇌의 비밀이었어!”
이 대목에서 장목화는 순간 크게 놀랐다.
“안돼! 전의 추측에만 따르면 건우는 잘못된 판단을 하고 말 거야! 지금 당장 그 녀석한테 알려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