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203
203.
그것은 이제 사라진 과거의 이야기였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검을 잘 다룰 뿐인 평범한 퇴마사였다.
게임과 같은 UI도 보이지 않았고, 퀘스트나 화살표로 사건을 해결하지도 못하는 평범한 퇴마사.
아니, 냉정히 말해 평범한 건 아니었다.
그곳에서도 여전히 내 검은 누구라도 압도해 보일 정도로 강했으니.
그렇게 나는 그 세계에서 퇴마 경찰로 살아갔고.
그러던 어느 날, 사교라는 놈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 탑을 지었다.
들어갔다 나오기만 하면 엄청난 전승을 선물해주는 탑이었다.
그곳에서는 대부분의 퇴마사들이 탑을 경계하지 않았다.
몇몇 사람들이 이를 조심하라고, 이를 의심하라고 말했지만, 그저 헛소리로 취급되었다.
나는 이를 의심하는 사람에 속했지만.
그렇다 해도 다른 이들이 힘을 얻기 위해 탑에 가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렇게 탑이 세워진 지 얼마 후.
그곳에서도 역시 외신이 강림했다.
그들이 가진 힘은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퇴마사들은 그들에게 반항하기는커녕, 곧바로 그들의 노예가 되었다.
탑에서 흩뿌리던 수많은 전승들이 퇴마사들의 몸속에 자리 잡아, 그들을 외신의 권속으로 삼은 것이었다.
그 후 세계는 지옥처럼 변했다.
이 지구라는 곳은 더 이상 인간의 세상이 아닌 강림한 여섯 신의 힘을 시험하는 각축장이었고.
그 장기 말이 된 인간들은 원하지도 않으면서 서로 죽이고 전쟁을 벌였다.
그리고 그런 지옥에서 나는…신들과 맞서는 소수의 저항군이었다.
하지만 내가 가진 힘은 너무나도 미약했고, 결국 전멸 직전에 이르렀다.
기적이 일어난 것은 그때였다.
여섯 신 중 하나가 마침내 싸움에서 패배했다.
그리고 그 신의 죽음으로 인해, 한때 사교의 일원이었던 어떤 여자가 끝내 자신의 신을 소환해 낸 것이었다.
그 뒤로는 간단했다.
여신이 소환되고 용사의 힘을 되찾은 나는 곧바로 여섯 신을 찾아갔다.
나에게는 놈들을 쓰러뜨릴 힘이 있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승리가 아니었다.
그때 그 여섯 신의 권속이 되어 내 앞을 가로막았던 것은 모두 나의 팀원이자 직장 동료들이었으니.
그래도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치열한 전투 끝에, 나는 그 모든 이계의 신들을 죽였다.
하지만 결국 그것은 과거의 반복이었다.
모든 신을 죽인 내 곁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나는 용사였을 때처럼, 또 하나의 세계를 멸망시킨 것뿐이었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이제는 더 이상 돌아갈 곳도 없다는 것.
그래서 나는 절망했다.
그렇게 절망 속에서 세상을 헤매던 나날이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도 없을 무렵.
나는 문득 여신을 강림시켰던 어떤 사제의 말이 떠올랐다.
여신을 살리기 위해 시간을 되돌렸다는 말이었다.
즉… 회귀.
이 모든 걸 되돌릴 수 있다는 희망에 나는 그 사제가 남긴 신기를 찾기 시작했고.
끝내 그것을 발견했다.
그게 바로 제거티의 바늘이었다.
육체를 가진 인간은 과거로 돌아갈 수 없지만, 의식만은 과거로 보낼 수 있다는 신기.
나는 거기에 정령인 페레티나를 심기로 했다.
신의 권능을 통해 순수한 정령체인 페레티나를 영력에 반응하도록 개조했다.
그 때문에 페레티나가 가진 능력의 대부분을 제한할 수밖에 없었지만, 다행히 미래시만큼은 남겨둘 수 있었다.
나는 이를 토대로 닥쳐올 재앙에 대비하기 위한 가이드를 설정했다.
그것이 바로 퀘스트였다.
인간을 각성시키고, 그런 인간에게 게임과 같은 능력을 준다는, 유럽에 강림한 이능의 신에게 힌트를 얻은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퀘스트를 작성했다.
나는 과거의 내가 반드시 행해야 할 일을 메인 퀘스트로 만들어 놓았고.
부족했던 내 힘을 기르기 위해 서브 퀘스트를.
마지막으로 내 손으로 죽여야 했던 친구들을 살리기 위해 캐릭터 퀘스트를 만들어 놓았다.
그것이 내가 지금까지 보아왔던… 퀘스트의 진실.
그렇게나 의심하고 미덥지 못했던 그 퀘스트들이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나에게 보내는 메세지였던 것이다.
“하…”
페레티나를 통해 기억을 전해 받은 내 입에서는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나왔다.
씁쓸한 기억이었다.
결국, 그 비극을 다시 한 번 반복해야 했다니.
그러나 용사 시절의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그 비극은 그저 의미 없는 촌극이 아니었다.
“팀장님! 괜찮으십니까?”
“아저씨!”
뒤에서 그런 소리가 들려왔다.
과거의 내가 그렇게나 지키려 했던, 내 팀원들이 산을 올라오고 있었다.
그래, 저들이 그 증거였다.
나는 결국 그 모든 비극을 겪고, 페레티나를 나에게 보냈고.
그 결과 여기까지 이르렀다.
나는 끝내 내 목표를 이룬 것이었다.
“…그래. 괜찮아.”
“너… 표정이 이상해. 정말, 괜찮아? 상처가…”
모니카는 피투성이가 된 내 몸을 보며 말했다.
하지만 외신과의 전투로 다친 몸은 이미 치유가 끝나 있었다.
“괜찮다니까. 다 치료했어.”
찢어진 옷 뒤로 말끔한 피부가 보이자 모니카는 겨우 안심한듯, 한 걸음 물러났다.
그리고 그제야 한 박자 늦게 도착한 최은영이 숨을 몰아쉬며 내 뒤를 가리켰다.
“헥…헥… 그, 그런데…저건…”
최은영은 여신을 보며 물었다.
이에 다른 팀원들의 시선도 그쪽으로 쏠렸다.
누가 보더라도 심상치 않은 존재였으니.
“아, 저거?”
하지만 그건,
“아무것도 아니야.”
그 말대로 아무것도 아니었다.
촤아아악!
쳐다보지도 않고 내지른 내 검이 여신을 베어 갈랐다.
존재 그 자체를 말살하는, 이번에야말로 파편 하나 남기지 않고 여신을 소멸하는 필멸의 검격.
여신은 그 검에 베여, 말 한마디 못 내뱉고 그대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것을… 사교의 사제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 충격적인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눈이었다.
나는 그 여자를 바라보았다.
굳이 죽일 필요도 없었다.
오히려 나에게 그녀는 고마운 존재였다.
그녀가 없었다면 과거의 나도, 그리고 지금의 나도.
저 신들을 상대로 승리할 수 없었을 테니.
“…돌아가자.”
그래서 나는 그 여자를 놔두고 뒤로 돌았다.
팀원들은 바닥에 주저앉은 여자를 의심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으나.
이내 허공만을 멍하니 바라보던 그녀가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눈치채고는 곧 내 뒤를 따라왔다.
그렇게 산의 중턱쯤을 지나고 있을 때였다.
“강 경정!”
아래 쪽에서 누군가 올라왔다.
그건 서인나였다.
“무슨 일이십니까?”
“무슨 일이 있긴 한데. 그것보다, 괜찮은 거니? 엄청나게 싸우던데.”
그녀는 나를 빤히 보며 말했다.
나는 괜찮다는 뜻으로 손을 내저었다.
“멀쩡히 걸어 다닐 정도는 됩니다. 그보다, 무슨 일인데요?”
“그게… 이제 막 복귀한 강 경정에게 할 소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알려줘야 할 것 같아서. 조금 전 들어온 소식이야. 외국에서 또 다른 신이 나타났다고 하더라.”
그래, 나올 때가 되긴 했지.
그렇게 생각하는데, 내 옆에 있던 차서현은 표정을 굳히며 입을 열었다.
“또 다른 신이라니? 그게 정말입니까?”
“그것도 하나가 아니야. 아프리카, 중동, 남미, 호주에서 한 번에 넷이나 더 나왔어. 아직 신에 관한 정보는 수집 중이야. 정확히 어떤 신인지 판별이 된 건 아니라서 당장 대응할 생각은-”
서인나는 그렇게 강림한 외신들에 대한 정보를 쏟아냈다.
다른 팀원들은 이를 심각하게 경청했지만, 나에게는 시시한 이야기였다.
그들에 관한 정보는 이미 알고 있었다.
아프리카 남부에 강림한 것은 허무신 샤리타.
어둠 그 자체로 이뤄진 신으로 어느 현대 판타지의 세계에서 온 이능 부정의 힘을 가진 놈이었다.
그리고 남미의 오우스터는 비슷한 세계에서 온, 심해를 다스리는 바다의 신격.
또 중동에 강림한 유일이라는 놈은 무협의 세계에서 온, 천마였다.
마지막으로 호주에 강림한 EF-344는 SF 세계의 외계 생명체로, 어차피 전부 지금의 내 상대는 되지 않는 놈들.
그래서 나는 서인나에게 말했다.
“걱정하실 거 없습니다.”
“어?”
“1시간 안에 정리하고 올게요.”
내 말을 이해조차 하지 못한 건지, 서인나의 고개가 옆으로 갸웃거렸다.
하지만 나는 그저 빙긋 웃은 채 마법을 사용했다.
텔레포트.
어떤 세계에서는 가장 널리 쓰이던, 순간이동 마법이었다.
그로부터 1년 후.
나는 서산의 한 카페에 와 있었다.
“와… 그거 진짜에요?”
그렇게 말한 것은, 저주 사건과 새우니 사건에서 만났던 고등학생인 연지우였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새삼스럽게 감탄을 흘렸다.
“미친… 그럼 나도 마법 좀 알려줘요.”
연지우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야, 마법은 아카데미 가서 배워야지.”
마법을 아카데미에서 배우다니.
반년 전만 해도 헛소리 축에도 못 드는 말이었으나, 이제는 아니었다.
외신들이 강림한 이후, 이 세상은 크게 바뀌었다.
그 신들은 비록 강림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전부 내 검에 뒤졌지만.
그 전에 있던 여신이 그랬듯, 외신의 법칙이 각각 성지라고 불렸던 지역과 대륙에 새겨졌던 것이다.
그래서 어떤 나라에는 무공의 힘이 깃들었다.
그곳에서 수련하면 기를 얻을 수 있고 그 기를 통해 각종 무공을 펼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또 어디서는 이능이 개방되었고, 또 어디서는 레벨이 올라가며 게임과 같은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건 한국 역시 마찬가지.
지금 한국에는 내가 있던 이세계의 법칙이 깃들어 있었다.
판타지라고 불리는 세상의 법칙으로 이곳에서는 마법이 만연했다.
그 때문에 그런 힘들은 지금 전 세계 곳곳에 퍼져 있었고.
비닉이 풀린 퇴마라는 힘은 그런 힘 중 일부가 되어버렸다.
언젠가 사교가 했던 말 그대로, 세계가 변한 것이었다.
“너무하네. 우리 인연이 있는데.”
“인연?”
“아저씨 그 뭐냐, 그냥 경찰이었을 때부터 친했잖아요! 경찰청장 됐다고 해서 이러시면 안 되지!”
그녀의 말에 나는 웃었다.
그러자 연지우의 말이 이어졌다.
“근데 아저씨, 안 바빠요? 요즘 경찰들 빡세다던데.”
물론 그녀의 말대로 전 세계는 눈코 뜰 새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갑자기 세상에 그런 힘이 뚝 떨어졌으니, 혼란이 없을 리가 있을까.
그러나 그게 나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고생은 능력이 없는 애들이나 하는 거다.”
“능력이요?”
“응, 분신 만드는 능력.”
내가 그렇게 말하고 낄낄대며 웃자, 연지우의 눈이 얇아졌다.
“와, 그럼 지금도 분신시키고 여기 와서 놀고 있는 거에요?”
“응, 그런데?”
“누가 뭐라고 안 해요?”
“누가 그러겠냐. 혼자 10인분을 넘게 일하는데.”
“오… 개꿀이네. 나도 그거 알려줘요. 내일부터 학교 대신 가라고 하게.”
“어림도 없는 소리.”
그렇게 연지우의 요청을 거절한 순간.
갑자기 테이블 옆으로 어떤 여자가 나타났다.
텔레포트였다.
이에 나는 그쪽을 돌아보았고, 거기에는 세모 눈을 한 모니카가 서 있었다.
“뭐야, 여긴 어떻게 왔어?”
“어떻게 오긴. 마력 흔적을 추적했지.”
“흔적을… 추적해?”
나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
세상이 변한 후.
나는 팀원은 물론 다른 이들에게도 마법에 관한 기초를 전수해주었다.
마나는 다루기에 따라서는 폭주를 하는 등 위험할 수도 있기에.
LB 아카데미에게 그 제대로 된 사용법과 몇 개의 주문을 알려주고, 마법 아카데미로 변신하라 주문한 것이었다.
그런 내 요청은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그들은 현재 한국의 최초로 마법 아카데미를 열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모니카는 마법 적성이 특히 뛰어났기에 조금 더 여러 가지를 알려주긴 했으나.
아쉽게도 마력 흔적을 추적하는 방법 따위는, 가르쳐 준 적이 없었다.
아무래도 내 예상보다 모니카의 재능이 더 뛰어난 모양이었다.
“그보다 시간 없다더니, 여유가 넘치네.”
어느새 자연스러워진 한국어로 그녀는 나를 힐난했다.
딱히 할 말도 없어서 나는 헛기침만 몇 번 내뱉었다.
“…왜 왔는데?”
“사건이야. 던전이 나타났어.”
던전이라.
세상이 변하고 나서, 꼭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었다.
마법이라는 힘을 얻은 대가라는 듯, 이세계의 괴물 역시 드문드문 등장하고 있었다.
“그럼-”
나는 분신을 생성하려고 했다.
오크 군락이나 오우거 정도야 분신이 아니라 손가락만 가도 가능할 테니.
그런데 모니카는 고개를 저었다.
“드래곤의 둥지야. 분신으로 감당이 안 돼. 네가 직접 와야 할 것 같아.”
“아니, 뭔…”
성급하게 불만을 내뱉으려던 나는 곧 입을 다물었다.
무슨 소리를 하던 모니카 앞에서 할 말은 아니었기에.
“…어쩔 수 없지.”
하는 수 없이 한숨을 내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옆에 잠시 풀어두었던 검을 챙기고 몸을 풀었다.
그렇게 내가 자리를 뜰 준비를 하자, 연지우가 말을 이었다.
“능력이 있어도 역시 바쁘신가 봐요?”
“…좀 그렇긴 하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쉽게도 이리 새롭게 변한 세상조차 나를 그냥 놔두지는 않을 모양이었다.
뭐… 슬슬 일하는 척이라도 하긴 해야 할 때가 되긴 했다.
벌써 몇 시간이나 놀고 있었으니.
“그럼 다음에 봐요.”
“그래, 또 놀러 올게.”
내 말에 연지우는 옅은 미소를, 그리고 모니카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짧은 인사를 뒤로 하자, 시야가 바뀌었다.
깨끗하던 카페의 풍경이 숲 속으로 덧칠된다.
그리고 그런 숲에서는,
“오셨습니까.”
이미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차서현이 나를 맞았다.
그녀의 뒤로는 서연과 최은영이 있었다.
“아저씨! 늦었어!”
서연은 왜 이제 왔느냐며 투정을 부렸고, 최은영은 묘한 눈길만을 나에게 건넸다.
이어서 모니카 역시 내 뒤에 나타났다.
“이제, 준비됐어.”
그렇게 말하며 그들은 어느새 차분하게 전투 태세를 갖췄다.
그런 그들의 모습이 퍽 익숙했던지라, 이를 보며 나는 웃었다.
묘하게 안정되는 기분이었다.
다소 안타까운 일이기는 하지만.
어째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이런 전장인 것 같았다.
“그래, 가자.”
그래서 나는 속으로 혀를 한 번 차고 숲 속으로 들어갔다.
저 멀리서, 익숙한 포효 소리가 들려왔다.
-전직 용사가 퇴마를 너무 잘함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