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 Rank Supporting Role’s Replay in a Prestigious School RAW novel - Chapter 1003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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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맨얼굴은 아니었지만, 며칠 만에 호랑이를 만나니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진짜가 아니라는 걸 알아도 익숙한 호랑이의 기운이 느껴지니 조금 마음이 놓였다.
모처럼 잘 자고 있는 걸 방해했는데도 싫은 기분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
‘언젠간 올 거라고 생각했지. 예상보다 늦었어.’
호족의 영역에 이렇게나 수상하고 눈에 띄는 일행이 있는데 황호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지금까지 안 왔던 건 임무가 있어서 바빴거나 누가 말려서 그랬을 게 뻔했다.
바빠도 재밌는 일에 시간 투자하는 걸 아까워하지 않을 호랑이이므로 후자일 가능성이 컸다.
‘이건 기회야. 여기에선 예언가다운 말로 흥미를 끌어야 해. 이대로 가다간 다른 호랑이들과 교류를 하지 못한 채로 일방적으로 감시만 당하다 끝날 거야.’
청호는 신인을 최우선시하므로 파고들 틈이 없다.
적호는 웅녀에게 관심이 쏠려 있어서 우리에게 무관심하다.
백호의 눈에 차려면 검을 맞댈 만한 무력을 선보여야 하는데, 대체 뭘 하는 중인지 보이지도 않는다.
또, 은호는 절대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예언가에게 자신과 엮인 천기를 읽힐까 봐 멀리서 다른 호족을 통해 지켜보기만 할 게 뻔했다.
그러니 이번에 황지호의 흥미를 끌어서 호족과 말을 틀 기회를 잡아야 했다.
“흠, 예의가 바르다고 들었는데 인사가 없군.”
“방금 자다가 일어나서 경황이 없었어요. 안녕하세요, 인사가 늦었네요. 곧 오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예전에 늙은 호랑이가 말을 놓으라고 강요한 이후로 예의를 차릴 일이 거의 없다 보니 인사를 못 할 뻔했다.
눈앞의 덜 늙은 호랑이와 내가 아는 호랑이는 다른 존재라는 걸 인식하고 있는데도 습관이라는 게 쉽게 떨쳐지지 않았다.
염준열도 황호를 알아보고 조금 당황하면서도 반가운 티를 조금 내며 인사하니 호랑이가 만족스러워했다.
아직 별로 안 늙었는데 예의를 운운하니 좀 늙어 보였다.
“그런데 내가 누구인지 아는 건가? 자기소개할 필요가 없겠군. 맞춰 봐라.”
황호가 황금색 눈을 반짝이며 나를 보았다.
개천신화 때나 현대에서나 저렇게 눈을 반짝이는 버릇은 여전한 것 같았다.
내가 아는 황지호와 달리 칼 같은 경계심이 섞여 있었으나 그냥 둘이 똑같은 호랑이라는 건 잘 느껴졌다.
나는 황호가 좋아할 것 같으면서도 예언가스러운 말을 골라서 입에 담았다.
“청호와 적호의 친우인 황호죠.”
머리카락과 눈이 황금색으로 빛나는 데다가 저렇게 위풍당당하게 굴면 현대의 황지호를 몰라도 황호라는 걸 바로 알아볼 거다.
황호는 자신을 바로 알아본 것보다는 호랑이들의 친우라는 수식어가 아주 마음에 드는 것 같았다.
옛날부터 호랑이 친구들을 좋아하는 게 잘 느껴졌다.
황호는 짧게 처웃으면서 말했다.
“하하, 잘 아는군, 청호와 적호는 이 몸의 친우다. 소개도 하지 않았는데 잘 알고 있군!”
사실 친우 운운하는 건 적호나 청호의 말도 들어 봐야 할 것 같긴 했다.
다른 호랑이들이 동의할지 어떨지는 몰라도 황호가 앞으로 5천 년 이상 친우라 할 테니 큰 문제가 없긴 했다.
황호의 웃음은 길지 않았다.
금세 가라앉은 얼굴로 다시 말을 걸었다.
“뭐, 이 정도도 못 하면 예언가라고 자칭할 수도 없겠지.”
내가 예언가라는 걸 완전히 믿는 건 아닌 건지, 황호가 ‘자칭’이라는 말에 힘이 들어간 것 같았다.
이미 호족 중에는 천기를 읽는 은호와 무녀가 있다.
그들이 어떤 내용의 천기를 읽고 어떻게 행동하는 중인지는 황호도 모르고 있겠지만, 강력한 예언가라는 건 알고 있을 거다.
그런 예언가가 둘이나 있는 호족의 영역에 내가 나타났고, 그 둘은 나에 관해 알지 못할 테니 수상하게 여기는 게 당연할 것이다.
황호가 시험하듯이 물었다.
“나에 관해 예언할 게 있나? 호족의 영역에 쳐들어온 예언가가 이 몸의 미래 정도도 읽지 못한다면 사기꾼이나 다름없지.”
예언은 공격 스킬처럼 누굴 타깃으로 정해서 사용하는 게 아니다.
아마 노력하면 미래를 읽는 방향 정도는 잡을 수 있겠지만, 예언은 제멋대로 그 힘을 발휘하므로 특정한 개인의 미래를 점치는 건 좀 어려울 것이다.
예를 들자면, 현무도 강력한 예언가라고 인정한 우기환은 본인이 의도하지도 않은데도 프로야구 리그 꼴찌팀이 어디인지 예언했다.
또, 동시에 졸업할 때까지 수석과 차석은 도원우기환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여 개인의 미래를 엿보는 데에도 성공했다.
이렇게 운 좋게 예언의 힘이 누군가의 미래를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뿐이다.
내가 진짜 예언가라고 해도 황호의 미래를 읽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걸 황호가 모를 리도 없을 텐데, 굳이 말을 꺼내는 건 이유가 있을 거야.’
예언을 못 하면 못 하는 대로 순발력이나 대처 능력, 말솜씨, 담력 따위를 시험할 수 있다.
여차하면 전투로 몰고 가서 전투 능력을 시험해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대화는 황호의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을 것이다.
나는 황호의 미래에 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중에선 예언가가 입에 담을 법한 내용도 있었고, 이미 널리 알려져 있어서 이계 시뮬레이터에 의해 중계되더라도 괜찮은 사항도 있었다.
듣는 황호는 그리 기분이 좋을 것 같진 않지만 말이다.
“이미 호족 중 누군가가 당신의 미래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았나요?”
“호족 중엔 함부로 미래에 관해 이야기하는 자는 없다.”
“경솔하게 말하시는 분은 없겠죠. 하지만 호족의 미래를 염려하는 분은 있을 거예요.”
은호가 아무 준비도 없이 황호에게 중책을 넘기지는 않았다.
이건 호랑이에게 개천신화를 듣지 않았어도 알고 있고 짐작할 수 있을 법한 내용이었다.
“당신은 호족의 수장이 될 거예요. 현 수장은 이미 당신에게 수장 자리를 줄 준비를 하고 있겠죠.”
눈을 반짝이며 웃던 황호의 눈이 조금 어두워졌다.
내 말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은 듯했다.
틀린 말을 해서 그런 게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데 듣기 싫은 소리를 들었을 때의 반응이었다.
황호는 감정의 기복을 크게 드러내기는 싫은 듯, 방금과 비슷한 어조로 말을 하긴 했으나 눈빛이 크게 달라져 있어서 별 소용이 없었다.
“아는 게 많은 예언가는 함부로 입을 놀리다 단명하곤 하지. 이 몸이 현 수장을 아주 존경하고, 그 자리에 앉을 마음이 없다는 걸 안다면 말을 아껴야 할 거다.”
황호는 경고하듯이 말했지만, 나는 이번 대화는 성공적이라고 생각했다.
황호의 기분이 좀 상하긴 했으나 방금 한 말에선 나를 예언가로 여긴다는 게 느껴졌다.
지금 내가 한 말은 현대에 있는 자 대부분이 아는 사실이었으나 이 시기엔 호족 내부에서도 일부에서만 도는 말일 테니 예언가다운 말이었을 거다.
예언가스러움을 어필했으니 이제 황호의 흥미를 더 끌어야 했다.
조금 겁을 주는 것만으로도 입을 다무는 자는 황호의 관심을 사지 못할 테니, 더 그럴싸하게 떠들어야 했다.
“방금 제가 침묵했다면 당신은 억지로 제 입을 열려 했을 거예요. 끝까지 입을 다물었다면 저는 수상한 예언가에서 재주 없는 사기꾼이 됐겠죠.”
“말은 잘하는군.”
황호가 혀를 찼지만, 눈에 다시 빛이 감돌았다.
흥미를 느낀 게 분명했다.
하지만 예언가가 하는 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고, 또 내가 정말 예언가라면 호족의 위협이 될 수도 있으니 그리 내키지 않아 한다는 게 느껴졌다.
황금빛 눈이 계속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죽이기는 싫고 어떻게 할까.”
기시감이 느껴졌다.
뻔뻔하게 1학년 0반 교실에 앉아 있던 황지호를 알아본 후, 은휘관의 이사장실에서 황명호의 모습을 한 분신과 삼자대면을 했을 때 들었던 말이었다.
그땐 뭐라고 했더라?
나 때문에 정체를 의심받으면 어떤 짓을 할지 고민하면서 저런 말을 하지 않았던가?
저 말을 또 듣게 되는 날이 오다니 조금 그리우면서도 신기한 기분이 들었는데, 주변 분위기가 그리 좋지는 않았다.
황호는 진심으로 나를 죽일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고, 염준열은 그걸 알아채고 응전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몸은 진심으로 너를 죽일까 말까 고민 중인데, 조금도 겁을 내지 않는군. 하긴 그 정도 담력이 없다면 호족의 영역에서 그딴 말을 떠들지도 않았겠지.”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게 옛 추억에 잠겨 있던 나를 보고 황호가 말했다.
그냥 옛날 황지호를 떠올리느라 특별한 반응 없이 가만히 있던 건데 내가 겁이 없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나 보다.
진짜로 황호가 공격해 오면 조금 곤란할 것 같았는데, 잘됐다.
황호는 겁 없는 예언가에게 점점 흥미를 느낀 것 같았다.
“예언가, 얼굴을 감싼 천을 치울 수 있나? 그리해 주면 내 가면 밑의 얼굴도 보여 주겠다. 그 수상한 얼굴을 전부 보고 싶군.”
딱히 보여 줘도 상관은 없었지만, 황호의 맨얼굴을 보면 현실에 있는 황지호와 구분이 잘 안 가서 번거로울 것 같았다.
내게 흥미를 느끼고 있다고는 하나 지금 황호는 상대하기 어려운 호랑이인데, 가면까지 벗으면 황지호를 대하듯 막 대할지도 모른다.
거절하려다가 직전에 생각을 바꿨다.
“제 질문에 답해 주시면 답변에 따라 얼굴을 가린 것들을 치울게요. 당신은 가면을 벗지 않아도 괜찮아요.”
“흠, 이 몸의 잘난 얼굴이 궁금하지 않다니. 예언가답지 않게 아까운 짓을 하는군. 일단 질문은 해 보도록. 단, 답변을 할지 안 할지는 내 마음이다.”
자신의 얼굴에 자신감이 넘치는 듯 황호가 불만스러워했지만, 황지호의 얼굴은 자주 봐서 그리 아깝지는 않았다.
나는 질문이나 하기로 했다.
“호족의 영역에서 몇 번 노랫소리를 들었어요. 방금도 당신이 오기 직전에 어떤 소리를 들었어요.”
밤에 독고미로와 외출했을 때, 단잠에 빠졌을 때 그 노랫소리가 들렸다.
누가 부르는 노래인 건지, 아니면 연주한 건지 구분이 안 가는 희미한 소리였다.
“그 노랫소리는 어떤 분이 내는 건가요?”
깨어나기 직전에 그 소리를 들었으니 주변에 있던 황호가 들었을 가능성이 컸다.
나는 황호가 바로 답변해 주거나 듣지 못했다고 답변할 줄 알았는데, 예상과는 다른 말이 나왔다.
황호는 가면 뒤에서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흠, 수상한 예언가의 얼굴을 보고 싶었는데 아쉽게 되었군.”
“답변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나요?”
“하하, 수상한 예언가께서도 알 수 없는 게 있나 보군.”
황호가 은근히 말을 돌렸다.
더 추궁하려고 했지만, 말을 아끼기로 했다.
어차피 이건 이계 시뮬레이션이 끝난 후에 황지호한테 직접 물어봐도 답을 들을 수 있을 거다.
조금 위화감을 느끼긴 했지만, 더 캐 보지는 않기로 했다.
그때, 바깥이 시끄러워졌다.
“너희 일행이 돌아왔나 보군. 그냥 산책하고 온 게 아닌 것 같다만.”
황호의 말대로 정찰 나간 이들이 돌아왔다.
돌아온 이들을 본 염준열이 크게 놀라 앞으로 달려갔다.
염준열이 바로 곽경구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어? 그리고 지금 등 뒤에 있는 건…….”
“외적과 교전했다. 그냥 정찰만 하고 오려고 했는데, 도저히 방치할 수가 없었다.”
독고미로, 곽경구, 박승현 셋 다 싸운 기색이 역력했다.
이능파 소모도 상당했고, 선수단복에 전투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싸우고 온 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쟤는…… 야오러치잖아.”
곽경구의 등에 중국 대표팀의 선수 중 하나, 야오러치가 업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