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rdener in a Hunter World RAW novel - Chapter (195)
이제 지하의 정원에선 더 이상 버프가 추가된 작물을 얻을 수 없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작물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버프가 사라졌다.
몬스터도 헌터도 없는데 전투 관련된 버프가 있을 이유가 없기 때문.
대신 세계수는 그 힘을 게헨나의 일부 해안 지역에 부여했다.
면적은 한반도의 2배 정도로 굉장히 넓었고 안의 수많은 동식물에 버프가 생겨났다.
전투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일상에 걸맞은 버프가 대부분이었다.
이곳은 성역이라 일컬어지며 동물을 제외한 존재는 출입할 수 없었다.
오로지 지하와 그가 허락한 존재만을 위한 공간이었다.
지하가 점박이와 함께 숲에 들어왔다.
“와, 좋다…….”
이 숲은 그동안 그가 지내던 정원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날것 그대로의 자연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한 무리의 동물이 지하를 보고선 후다닥 도망갔다.
작은 멧돼지처럼 보이는데 놀랍게도 버프를 갖고 있었다.
지하의 상태창은 사라졌지만, 버프창은 보인다는 이야기.
“혹멧돼지네. 쟤네 사냥해서 먹으면 후각이 민감해지는가 봐.”
돼지가 냄새를 잘 맡았던가?
하긴 야생의 멧돼지는 코끝으로 땅을 파헤치며 먹이를 찾으니 그럴지도 모르겠다.
지하는 점박이와 함께 조심스레 숲을 탐험했다.
세계수가 말했듯이 여기에 몬스터나 위험한 육식 동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있어도 별 상관은 없다.
점박이가 호위 역할을 하기 때문에.
지하는 주위를 둘러보며 생명력 넘치는 숲에 감탄했다.
곳곳에 과일과 작물이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맨몸으로 들어와도 걱정 없겠다, 그지?”
끄덕끄덕.
둘은 한참 동안 숲을 돌아다니다가 해변을 발견했다.
“어, 거기하고 비슷하네. 정원 바닷가 말이야.”
야자수에 매달린 야자집게를 보면 같은 장소가 아닌가 싶다.
거의 머리통만 한 모래게도 그렇고, 여기서 살면 최소 굶을 걱정은 없을 것 같았다.
“여기에서 살면 정말 좋겠다…….”
지하는 점박이와 함께 해변을 거닐며 경치를 구경했다.
그리곤 숲으로 와서 필요한 것들을 체크했다.
“일단 필요한 게 뭐냐면… 그물, 통발, 낚싯대…….”
점박이가 발톱으로 도마와 칼 그리고 주방 도구를 그려보였다.
여기서 다 처리하고 들이자는 의견이었다.
“응, 알았어. 내가 이거 사 올 테니까 넌 배 한 척 더 만들어, 알았지?”
불쌍한 점박이는 낑낑대며 나무를 끌고 와 속을 팠다.
한참 작업한 후 노를 만들고 있으려니 주인이 들어왔다.
“이걸로 고기 잡자.”
뭐가 얼마나 잡힐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시도나 해 보는 거지.
둘은 배에 타고 노를 저어 근해로 나갔다.
에메랄드빛 바다가 그들을 반겼다.
“와… 나오니까 정말 좋다.”
티브이에서나 나오는 남태평양의 낙원을 보는 느낌이었다.
물이 너무 투명해서 바닥까지 다 보였다.
온갖 종류의 버프를 가진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몰려다녔다.
“이거다.”
가늘치.
몸이 가늘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저 생선은 놀라운 버프를 갖고 있었다.
무려 ‘살찌지 않음’ 버프!
“저거 잡자. 저걸로 어묵 만드는 거야.”
점박이는 그물을 촥 펼치곤 물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열심히 헤엄쳐 무수한 가늘치 떼를 그물 속에 가두었다.
“점박이 잘한다!”
지하도 열심히 노를 저어 그물코를 건 배를 움직였다.
둘의 합동 공격에 대부분의 가늘치가 잡히고 말았다.
점박이가 올라와 배에 몸을 싣고 노를 저었고 지하는 뒤에서 따라가기만 했다.
이윽고 그물이 해변으로 올라왔다.
둘은 그물을 조금만 풀어놓고 가늘치를 하나씩 손질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부우웅―
하늘에서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테라드론이 단체로 비행하고 있었다.
“쟤네들 열심히 날아다니네.”
아크에게 돌아간 후로는 통 보지 못했다.
아마 그가 내린 임무를 수행하느라 게헨나와 지구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을 것이다.
그때 점박이의 칼이 지하가 손질한 가늘치를 가리켰다.
“응? 왜?”
녀석의 눈이 말하고 있었다.
주인이 포를 뜬 건 수율이 너무 적다고.
점박이의 것과 비교해 보니 민망할 지경이었다.
“미, 미안. 내가 칼질이 서툴러서.”
지하는 신이었고 10만 년의 세월 동안 순수성을 지켰지만 생선 손질하는 데에는 그다지 뛰어나지 못했다.
그가 사과하자 점박이가 직접 시범을 보여 주었다.
천천히 칼을 놀려서 껍질을 벗기고 포를 뜨는 걸 보면 거의 예술의 경지다.
지하는 이날 점박이에게서 많은 걸 배웠다.
‘나중에 써먹어야지.’
* * *
‘점박이 분식집’이 개업했다.
사람들의 상식과 달리, 주방은 지하가 아니라 점박이의 차지였다.
사람들은 풍뎅이가 열심히 부엌을 오가는 걸 보곤 수군댔다.
놀라서가 아니라 너무한 거 아니냐는 반응이었다.
“세상에… 테라드론 너무 부려 먹는 거 아니에요?”
“지하 씨, 그렇게 안 봤는데.”
“재단에 다 털어 넣어서 돈이 없었을까요? 도와줄 사람이 있을 텐데.”
오해를 받게 된 지하는 억울해하며 해명했다.
“제가 시킨 게 아니라요, 자기가 알아서 여기를 만들더라니깐요. 저 앞치마도 제가 두르라고 한 게 아니에요.”
“그, 그래요?”
하여튼 앞치마를 두르고 부엌에서 돌아다니는 검은 풍뎅이는 꽤 이슈가 된 모양이다.
별다른 홍보도 하지 않았는데 입소문이 퍼졌는지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대부분 헌터들이었다.
혜진은 메뉴판을 보곤 깜짝 놀랐다.
“오빠, 오빠. 어묵탕 먹으면 살이 안 찐다고 돼 있는데?”
진짜 본 걸까, 바람일까.
승혁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젠 아주 헛것이 보이나 보네. 그러니까 먹는 걸 줄이라고. 헌터도 아닌데 계속 먹어 대니까 살이 찌지.”
아닌 게 아니라 혜진은 예전에 비해 볼살이 통통하게 올라 있었다.
헌터 시절엔 어지간히 먹어도 살이 찌지 않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소화력이 좋아서 먹으면 먹는 대로 살이 붙는 체질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울컥하며 승혁의 코앞에 메뉴판을 갖다 댔다.
“이거 보라고, 이거. 진짜 쓰여 있다니깐?”
“…뭐야 이거.”
「서부 게헨나 원주민의 쓰라린 어묵탕. 먹어도 살이 찌지 않음」
옆에는 테라드론 특유의 앞발톱 도장이 찍혀 있었다.
나름 인증 비슷한 것을 한 셈인데, 그보다 이 괴악한 이름은 대체 뭔가 싶다.
“서부 게헨나 원주민의 쓰라린 어묵탕이 뭐냐?”
혜진은 어깨를 으쓱하곤 손가락으로 밑을 가리켰다.
“그건 전혀 문제가 아니네요. 밑을 봐, 밑을.”
“먹어도 살이 찌지 않음… 야, 혜진아. 솔직히 이런 게 있겠냐? 인풋이 있으면 아웃풋이 있는 법이라고.”
“지하 씨한테 물어보면 되잖아. 지하씨이~”
그녀가 웃으며 지하를 불렀다.
“이거 거짓말 아니죠? 진짜라고 해 줘요.”
“네, 진짜예요.”
어…….
혜진은 잠시 머뭇거렸다.
말이야 그랬지만 사실 농담으로 생각했는데 진짜라고?
먹어도 살이 안 찌는 요리라니 상식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지하가 테이블에 몸을 기대곤 설명했다.
“이게 뭐냐면요. 게헨나에서 잡은 가늘치로 만든 어묵이거든요. 100%는 아니지만 하여튼 많이 들어갔어요. 가늘치에 버프가 있어요. ‘살찌지 않음’이라고.”
“살이 안 찌는 버프요?“
“네. 심지어 다른 걸 먹어도 살이 안 쪄요. 그러니까 어묵탕 외에 이거저거 시켜서 먹어도 괜찮아요.”
혜진의 입이 다급해졌다.
“진짜죠? 저 지하 씨 믿는 거 아시죠? 이런 말하긴 그렇지만 요즘 살이…….”
“옆구리 살이.”
승혁이 첨언하자 그녀는 연인을 째려보고는 지하에게 부드럽게 웃었다.
“요즘 살이 많이 쪄서… 그 왜, 아시잖아요. 운동량은 줄었는데 먹는 건 똑같다 보니.”
예전의 그녀와 비교하면 사람이 많이 바뀌었다고 할까.
어쩌면 먹을 걸 가지고 전전긍긍하는 게 혜진의 진짜 모습일지도 모른다.
지하는 그녀에게 확언했다.
“제가 보증할게요. 드시고 내일 아침에 몸무게 재 보세요.”
“으흐흐.”
이상한 웃음소리를 내는 혜진.
승혁이 말했다.
“이상하긴 한데 예전에 지하 씨가 만들던 포션하고 다를 것도 없네요. 그냥 분야가 달라진 것뿐이네. 하여튼 어묵탕하고 몇 개 좀 부탁합니다. 매상 좀 올려 줘야지.”
“감사합니다.”
그 후로도 주문이 물밀 듯이 들어왔다.
지하는 정신없이 주문을 받고 점박이에게 전했다.
손님들의 시선이 녀석에게 집중되었다.
웍 3개와 냄비 2개를 동시에 돌리며 순식간에 김밥을 몇 개씩 싸는 저 솜씨는 신기에 가까울 정도였다.
“이야… 혼자서 다하네.”
“여기 상호가 점박이 분식인 이유가 있었구만.”
“혹시 주인이 점박이고 지하 씨는 일개 종업원인거 아녜요?”
“하하, 맞아요.”
사람들이 보기에 지하는 서빙에 만족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과거 신에 가까운 힘을 가진 그였는데 말이다.
그는 옷을 벗어던지듯 힘을 포기했다.
그리고 테라드론과 함께 분식집을 하며 웃고 있었다.
신일 때보다 지금이 더 밝게 보이는 건 결코 착각이 아닐 것이다.
사람들에게 메뉴의 효능을 설명해 주는 지하는 오늘따라 더 즐거워 보였다.
* * *
오후가 되어 브레이크 타임이 찾아왔다.
지하가 문에 달린 나무판을 돌리는데 몇 명의 여성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누군가 해서 보니 유진과 친구들이었다.
대전쟁에서 나름 활약을 했다고 들었는데 그 후로는 통 보지 못했다.
하긴 사태가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지하는 여러 사람을 만나느라 바빴으니 눈치를 봤는지도 모른다.
“헉, 헉… 아이고 나 죽네.”
“좀 빨리 오자고 했잖아. 브레이크 타임이네.”
“아… 여기 진짜 맛있다고 하던데.”
다슬이와 유미가 투덜거렸고 지하는 웃으며 나무판을 돌렸다.
OPEN.
아가씨 세 명의 입이 벌어졌다.
“헤헤, 아저씨! 여기서 뭐 먹어도 살이 안 찐다면서요?”
“소문이 벌써 그렇게 퍼졌어?”
“금방 퍼지죠. 서울 좁잖아요.”
유진은 그렇게 대답하며 외투를 의자에 걸쳤다.
헌터들은 저항이 높기 때문에 사시사철 비슷한 옷차림을 하곤 했다.
하지만 이젠 아니었다.
추우면 껴입어야 하고, 더우면 벗어야 하는 상식적인 시대가 되었다.
셋은 목도리와 점퍼를 벗고는 점박이를 보며 꺄꺄, 거렸다.
“점박이 너무 귀여워.”
“점박아, 점박아. 잠깐 와 줄 수 있어?”
점박이는 검은 눈을 깜빡거리더니 장갑을 벗곤 부엌에서 나왔다.
유미와 다슬이가 녀석과 노는 동안, 유진이 지하의 앞 의자에 앉았다.
“아저씨 나빴어요. 연락 한번 안 해 주시구.”
“미안. 일 때문에 바빴어.”
그 일이란 게헨나에 들어가 재료를 채집하는 것이었다.
요즘 지하는 다른 것은 다 제쳐 두고 그것만 하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게헨나의 자연이 매우 마음에 들었을까.
지하의 얼굴이 편하게 보이자 유진이 어렵게 이야기를 꺼냈다.
“아저씨, 저 여기서 아르바이트라도 하면 안 될까요?”
“갑자기 아르바이트는 왜?”
“저 모아 둔 돈이 다 떨어졌거든요. 헌터 일 하면서 쪼금 벌긴 했는데…….”
“했는데?”
그녀가 혀를 쏙 내밀었다.
“돈 다 기부해 버렸어요. 형석 아저씨 복지 센터에. 또 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주데카가 튀어나오지 뭐예요.”
그러니까 기부 타이밍이 안 맞았던 것이다.
주데카 녀석, 조금 여유를 가지고 튀어나올 것이지.
지하는 웃으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여기서 일하는 건 좀 그래. 이런 말하긴 그렇지만, 유진이를 필요로 하는 좋은 곳이 있을 거야.”
“근데 갈 곳이 없어요…….”
확실히 그랬다.
돈이 확 풀리면서 일자리가 대거 늘어난 것은 좋았지만 그녀와 같은 어린 헌터들이 갈 곳을 잃었다.
베테랑들은 인맥으로 취업하기가 수월했지만 이들에겐 그런 것도 없다.
혹시 어디서 불러 주지 않을까 오매불망 기다리다가 여기를 찾아왔다고 한다.
지하는 유미와 다슬이까지 불렀다.
“제가 일자리를 주선해 줄 수는 있어요. 하지만 여러분도 약속해 주셔야겠어요. 열심히 일하기로.”
“저희, 열심히 일할게요!”
“시켜만 주세요!”
세 명은 입을 모아 외쳤다.
지하는 형석에게 연락해 재단의 적당한 자리를 주선해 주었다.
헌터 일을 할 때와 비교하지는 못하겠지만, 나름 적당한 월급을 받을 수는 있을 것이다.
셋은 희희낙락하며 돌아갔다.
이윽고 저녁이 되어 지하는 많은 사람을 손님으로 맞았다.
서윤이를 안고 온 성호와 주미 부부.
덕훈과 동행한 수희.
짬을 내 방한했다는 요코와 애슐리 등 여러 사람들이 점박이 분식을 방문하고 돌아갔다.
그리고 밤이 되었다.
점박이가 가게의 뒷정리를 하는 동안 지하는 배낭을 쌌다.
게헨나에 들어가 지내기 위한 준비다.
그런데 이 녀석… 정리를 후다닥 끝내더니 묘한 걸 하고 있다.
노트북을 켜곤 액정 각도를 맞추는 게 아닌가.
홍이가 날아와 녀석의 머리에 앉은 것은 덤이다.
호우!
대체 뭘 하는지 구경하던 지하는 깜짝 놀랐다.
요즘 핫하다는 인터넷 방송이었다.
‘아니, 홍이와 점박이가 인터넷 방송을 본다고?’
그것도 신기할 지경인데 정작 누른 건 시청하기가 아니라 방송하기였다.
녀석은 주위를 스윽 둘러보곤 제목을 입력했다.
「우리 주인이 주데카 잡을 때 썰푼닼ㅋ」
쿨럭.
지하는 사레에 걸려 심한 기침을 했다.
매우 막장스럽지만, 클릭하지 않곤 견딜 수 없는 제목임이 분명했다.
그 막장도에 이끌린 시청자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우와… 무슨 시청자 수가 백만 단위야.’
채팅창이 빛의 속도로 올라가며 후원이 쏟아졌다.
홍이의 적절한 리액션이 곁들여지며 방송은 대호황을 맞았다.
점박이가 문장을 화면에 띄울 때마다 채팅창이 폭발했다.
50만 원, 100만 원짜리 후원이 비 오듯 쏟아졌다.
지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돈은 저렇게 버는 거구나.
‘그나저나 슬슬 올 때가 됐는데.’
마침내 화연과 마르그레타가 찾아왔다.
커다란 배낭을 하나씩 메고 움직이기 편한 옷차림이어서 그런지 평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화연은 지하를 보자마자 불평을 터트렸다.
“아니이, 무슨 준비물이 이렇게 많아요? 우리 마을에 가서 지내는 거 아니었어요?”
“마을이 아니라 자연에서 지낼 거예요. 숲과 바다에서.”
“내 팔자야…….”
화연은 바닥에 철퍽 주저앉았지만 돌아가겠다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지하가 앞장서서 두 아가씨의 손을 잡았다.
“가요. 게헨나로.”
차원문이 셋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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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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