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rdener in a Hunter World RAW novel - Chapter (194)
유지하 재단이 설립되었다.
재원을 감당한 지하는 자신의 이름이 재단에 들어가지 않기를 바랐지만 아크가 넣어 버렸기에 어쩔 수 없었다.
소식을 들은 여러 사람과 정부, 각계에서 출연금을 내는 바람에 재단의 재원은 상당히 늘었다.
그래 봐야 대부분의 재원이 지하에게서 나온다는 점은 변함이 없지만.
이 재단의 설립 목적은 하나였다.
굶는 어린아이가 없도록 하는 것이다.
형석의 꿈이기도 했기에 그가 신경을 많이 쓰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고려그룹의 회장이란 사람이 재단 관련 행사에만 모습을 보이니.
재단의 규모가 규모이다 보니 조직도 꽤 방대했다.
이사장은 형석이 맡았고 이사진으로는 기존의 헌터들이 영입되었다.
물론 그들이 맡은 것은 영업 위주였다.
아무래도 재무 쪽은 전문가가 취급해야 하니까.
해외 영업은 화연만 한 적임자가 없었다.
그녀는 여러 국가를 돌아다녔기에 인맥이 꽤 많았다.
하지만 이게 웬일일까.
화연은 형석의 제의에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평소 지하 관련된 일이라고 하면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니는 하이에나답지 않은 모습이다.
지하는 직접 길드로 가서 그녀를 설득했다.
“그러고 보니 전에 지하 씨가 여기서 지낸 적 있죠?”
“아… 네. 전에 잠깐 가게를 냈잖아요. 세계수가 제 가게를 부쉈을 때였나?”
“그때 그냥 눌러앉았어도 아무 말 안 했을 텐데 뭐가 그리 바빴어요?”
“세계수가 집을 지어 줬는데 안 들어가면 좀 그렇잖아요.”
“그건 그래요. 그땐 되게 신기했으니까.”
화연은 그때와 지금을 비교해 봤다.
앞에 앉은 사람과의 관계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보통 남녀 사이에 몇 개월이란 시간은 꽤 길지 않은가 말이다.
만리장성을 쌓았어도 몇 번은 쌓았을 시간인데.
에휴, 내 팔자야.
화연은 속으로 한숨을 푹 쉬었다.
요즘 그녀의 마음은 다소 가라앉아 있었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어쩌면 그녀가 지하에게 별 의미가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기도 했다.
이대로 보내는 시간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서른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 전에 승부를 보고 싶었다.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던 화연은 작심하고 지하에게 묻기로 했다.
“지하 씨, 나 좋아하죠?”
“네, 화연 씨 좋아해요.”
익숙한 대답이다.
하지만 그녀가 원하는 건 이런 게 아니었다.
“근데 지하 씨가 좋아한다는 건 보통 남녀 사이에 오가는 그런 감정은 아니잖아요. 스스로도 그건 알고 있죠?”
“음… 그러니까 이성적으로 좋아하는 걸 말씀하시는 거죠? 성호 형하고 주미 누나처럼?”
“바로 그거예요.”
화연은 눈물이 날 뻔했다.
드디어 지하가 그 방면으로 눈을 뜬 것일까?
워낙 나무처럼 사는 사람이라 주변인들은 이런 얘기를 하곤 했다.
사실은 사랑이란 감정을 알지도 느끼지도 못하는 것 아니냐고.
일단 알고는 있으니 다행이었다.
나머지는 천천히 가르치면 되지.
그녀는 의자를 테이블 가까이 밀어서 앉았다.
얼굴이 거의 맞닿을 정도가 되었음에도 지하는 별로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나는 그래요. 당신이 마음에 들어요. 나한테 와요. 잘해 줄 테니까.”
“그런데 화연 씨. 제가 마음에 들었던 건 제가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였잖아요?”
“처음엔 그랬는데 지금은 아니에요. 당신과 같이 있으면…….”
화연은 지하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보다 더 희고 부드러운 손이었다.
“…기분이 편해지거든요. 당신은 나를 놀리지도 않고 투덜이로 보지도 않으니까. 선입견 없이 나를 봐주니까 좋아요. 이제 대답을 듣고 싶은데.”
“저는…….”
지하는 슬쩍 손을 빼며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화연 씨하고 가까이 지내면 셀레나나 마리와는 친하게 못 지내는 거죠?”
“당연하죠. 나와 사귀는 거니까. 나 외에 어떤 여자와도 가까이 지내선 안 돼요. 주미씨는 예외고요.”
그녀는 지하의 누나나 다름없는 포지션이라서 잘 보여야 하는 사람에 속했다.
유부녀니까 위험할 일도 없고 말이지.
지하가 계속 망설이자 화연은 조금 실망했다.
“나보다 그 두 명이 더 마음에 들어요?”
“아뇨. 저는 그냥… 그렇게 관계를 끊는 게 이상해서요. 두 사람과도 잘 지내고 싶은데.”
“관계를 끊으라는 게 아니에요. 적당히 거리를 두라는 얘기죠.”
사실 이게 지하에겐 어려운 요구라는 것을 화연도 알고 있었다.
셀레나는 그렇다 치더라도 마르그레타가 은근히 지하에게 호감을 보였다.
무뚝뚝한 성격 때문에 잘 드러나진 않지만 옆에서 보고 있으면 알게 된다.
‘나 완전히 나쁜 여자네.’
착한 사람을 꾀어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끊으라고 하다니 이게 대체 뭔가 싶다.
하지만 오랫동안 기다린 만큼 이 남자를 갖길 원했다.
‘만약 거부한다면…….’
그땐 어떻게 하지?
화연은 결과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지하의 입에서 나온 건 대답이 아니라 제의였다.
“지금 당장 대답하지는 않을게요.”
“…그럼요?”
“조만간 게헨나에 갈 거예요. 그리고 거기에서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할 거예요. 화연 씨만 괜찮으시면 저하고 같이 생활하면서 느껴 보세요.”
“뭘 말이죠?”
“저와 같이 지낼 수 있을지를요. 저는 돈이 없어요. 재단에 다 들어갔거든요.”
그녀는 급히 말했다.
“돈은 내가 많아요. 빌딩도 있고, 서울 목 좋은 곳에 집도 여러 채 갖고 있어요. 차가 필요해요? 원하는 거 다 사 줄게요. 지하 씨는 몸만 와요, 나한테.”
화연은 그에게 손을 뻗었다.
이 손, 이 손만 잡으면 된다.
하나 야속하게도 지하는 손을 잡으려 하지 않았다.
“저는 진정 가까워지기 위해선 마음이 맞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거기에서 저하고 같이 생활해 봐요. 그래도 좋다면 말씀해 주세요.”
“좋아요. 며칠 지내는 것쯤이야 뭐.”
화연은 대답을 들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희희낙락했다.
게헨나라고 하면 역시 에스트람 마을을 가리키는 게 아니겠는가?
불편하긴 하지만 집도 있고, 화장실도 있을 것이다.
다소의 불편함이야 지하를 얻는 대가로 감수하지 뭐.
그녀는 기분이 좋아져선 이런저런 썰을 풀었다.
둘은 즐겁게 대화를 나눴다.
* * *
며칠 후, 지하는 아크와 함께 미국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게이트가 멀쩡히 존재하므로 그쪽을 이용해도 좋겠지만 아크가 우겼다.
“가끔은 체면도 세워 줘야 되거든. 비행기에서 우리가 내려서 레드카펫 위를 걷고 의장대가 사열하고 뭐 이런 거.”
“그게 체면이 돼요?”
“넌 잘 모르겠구나. 어떤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을 대접해서 그가 인정해 주면 내 위치가 격상되는 그런 게 있어.”
“아… 근데 형은 그런 거 안 따지지 않았어요? 주먹 한 방이면…….”
“지배를 하려니까 그래.”
“지배요?”
“그래. 게헨나에서 나는 지배를 하지 않았지. 그러니 무턱대고 두들겨 팰 수 있었던 거야. 패고 차 버리면 그걸로 끝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구는 좀 다르거든. 결국 내가 끌고 가야 할 놈들이라고.”
그런 의미였구나.
아크는 지구인은 다 좋은데 쓸데없는 행사에 집착한다고 덧붙였다.
“우리가 가는 에테르 연구소도 거창한 행사를 계획해 놨더라고. 내가 다 취소시켰지. 테이프 커팅식이니 뭐니 한다고 그 돈과 시간을 낭비한다니 말도 안 되는 거지.”
곧장 본론에 들어가면 되지 뭐 하러 시간과 자원을 낭비한단 말인가?
사실 지구인들이 각종 예식과 행사에 몰두하는 것에도 나름의 이유는 있다.
참가자들의 권위를 세우고 주변에 알리기 위함이다.
아크에겐 그게 다 뻘짓으로 보인다는 게 문제지만.
그가 은근히 물었다.
“지하야, 그 재단 말이다. 직접 운영할 건 아니지?”
“네, 실질적인 운영은 이사회에서 해요. 저는 그냥 돈만 대 주는 역할?”
“예전에 말했던 분식집 하게?”
“네, 점박이하고요. 하지만 그것도 제가 진짜 원하는 건 아니에요.”
“그럼?”
“저는…….”
지하는 계속 상상해 왔다.
아무도 없는 자연에서 홀로 지내는 자신을 말이다.
배가 고프면 먹고, 졸리면 잠을 청하는 그런 원시적인 생활을 해 보고 싶었다.
“자연인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아크는 뜨악한 얼굴이 되었다.
이 욕구 없는 녀석이 이젠 다 놓아 버리려 하는구나.
하늘정원도 누구에게 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뭐… 그것도 나쁘진 않지.
아크는 지하를 이해했다.
“사실은 나도 그런 생활을 한 적이 있어.”
지하는 바로 귀를 쫑긋 세우며 호기심을 보였다.
“어떠셨어요? 괜찮던가요?”
“나쁘진 않았어. 하지만 금방 때려 쳤지.”
“왜요?”
“아무래도 나하고는 안 맞는 것 같아서 말이야. 초인적인 힘을 갖고 호의로 가득한 자연에서 먹고 지낸다… 이건 내 스스로 용납할 수 있는 게 아냐. 나한테는 적이 있어야 돼. 약한 놈이든 강한 놈이든 상관없이.”
그래서 지구를 뜯어고치려 하는구나.
그 과정에서 아크는 많은 저항에 부딪칠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극복할 것이고,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을 터였다.
지하는 조금 다른 성향을 갖고 있었다.
아크가 모든 것을 태우는 불이라면 지하는 물에 가깝다.
불순물만 없다면 영원히 오염되지 않는 순수한 물.
그는 무한회로에서 영혼의 순수함을 증명했다.
아크는 그런 지하를 존중하기로 한 상태였다.
“예전에 말했듯이, 넌 푹 쉬어도 돼. 시간은 짧았지만 인류를 위해 일했으니까. 그런데… 거기서 먹고 자기만 할 거냐?”
“다른 것도 할 거예요. 멸종된 동물을 풀어놓고, 작물을 재배하고… 할 건 많아요.”
“아니, 그거 외에 말이다. 아무래도 자연에서 지내게 되면 시간이 많지 않냐?”
대체 뭘 말하려 하는 걸까?
아크는 지하의 어깨에 팔을 턱 걸쳤다.
“혹시 동행하는 사람 있냐?”
“음… 화연 씨는 가자고 했고, 마르그레타는 모르겠어요. 아직 말하진 않아서.”
“너 제법이다?”
아크는 지하를 다시 보게 되었다.
마냥 숙맥인 줄 알았는데 여자를 둘이나 데리고 들어가려 하다니?
하지만 지하의 본심은 그게 아니었다.
“같이 자연에서 지내면 재미있을 거예요. 동물도 기르고 낚시도 하고, 수영도 같이 즐기고…….”
“…그게 전부냐?”
“음… 또 여러 일이 있어요…….”
이것저것 주워섬겼지만 아크의 얼굴은 펴지질 않았다.
이쯤 되면 진짜 행성 규모에서 기념물로 지정해야 되는 것 아닌가 싶다.
그러는 와중에도 비행기는 계속 날아가고 있었다.
* * *
유지하 재단이 본격적으로 기지개를 켰다.
세계 여러 국가와 교섭해서 부지를 마련하고 건물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사진이 바쁘게 움직였다.
그러나 지하는 의외로 한가했는데, 그에게 주어진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그는 늦잠을 자다가 막 깨어난 참이었다.
뚝딱뚝딱.
점박이가 아침부터 잡화점을 뜯어고치고 있었다.
간판을 내리고 가게를 확장한 후 여러 집기를 들였다.
지하는 하품을 하며 나오다가 멈칫했다.
“벌써 시작한 거야?”
끄덕끄덕.
점박이는 날개를 펼쳐서 새로 만든 간판을 걸었다.
「점박이 분식」
음…….
이렇게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메뉴는 정해 뒀어?”
지하가 묻자 점박이는 메뉴가 쓰인 팻말을 탁 박았다.
“으흠, 오호.”
이 녀석 꽤 공부했구나.
메뉴는 주로 게헨나에서 채집할 수 있는 것들로 구성되었다.
어묵을 예로 들면, 게헨나의 바다에서 진짜 생선을 잡아서 만드는 식이다.
떡볶이에 들어가는 밀과 고춧가루 등은 에스트람 마을 사람들에게서 공급받는단다.
꽤 본격적이잖아.
점박이가 구성한 부엌을 돌아보고 있는데 마르그레타와 셀레나가 찾아왔다.
“결국, 음식점을 하시는 거군요…….”
“사실 제가 아니라 얘가 하는 거예요, 점박이.”
“풍뎅이 요리사는 처음 봐요. 근데 의외로 익숙하네요. 전에 잡화점 할 때도 얘가 돕지 않았나요?”
“사실 일은 점박이가 다 했어요. 저는 이것저것 하라고 지시만 했고.”
두 아가씨는 부엌 앞의 임시 테이블에 앉았다.
점박이가 간이 메뉴판을 가져와 들이밀었다.
뭔가 만들 것을 지정해 달라는 것 같다.
지하는 볶음밥을, 마르그레타는 치킨을, 셀레나는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다들 마르그레타를 바라봤다.
“마리, 아침부터 치킨은 좀 그렇지 않나요?”
그녀는 정색했다.
“단백질은 몸에 좋은 겁니다. 아침이라고 해서 가볍게 먹으라는 법도 없고요. 그리고 제가 주문한 건 소스가 들어가지 않는
“뭐 그렇긴 한데…….”
셀레나가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근데 얘, 이거 다 할 수 있니? 일단 메뉴에 있어서 주문하긴 했는데…….”
어떤 요리사도 부담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점박이는 세 요리를 동시에 만드는 신기를 선보였다.
네 개의 앞다리가 제각기 움직이는 모습은 그야말로 경이 그 자체.
웍이 달궈지고 튀김기에서 맛있는 냄새가 났다.
그리고 두터운 빵 사이에 신선한 채소와 치즈가 얹혔다.
완성.
세 명은 맛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엄청 맛있잖아!
“와… 중국집에서 시켜 먹는 것보다 더 맛있어.”
“샌드위치 맛은 다 비슷하지만 이건 더 신선하게 느껴지네요.”
마르그레타는 치킨에 탐닉하고 있었기에 말을 하지 못했다.
점박이는 셋의 표정을 보곤 만족스러워하며 부엌으로 들어가 앞치마를 둘렀다.
이제 요리사 행세를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세 명은 점박이가 만드는 각종 요리를 시식해야 했다.
셀레나는 중간에 도망가 버렸고 지하는 배가 불러서 항복을 선언한 상태.
오직 마르그레타만이 꾸역꾸역 밥을 넘기고 있었다.
지하가 그녀에게 물었다.
“마리, 혹시 시간 있으면…….”
꿀꺽.
그녀는 바로 삼키고 대답했다.
“시간은 여유롭습니다.”
“그럼 다음에 게헨나에 갈래요? 거기서 생활해 보고 싶어서요.”
“게헨나에… 고향 사람들과 같이 지내는 거군요.”
“아뇨, 우리만. 지구에서 멸종된 동물을 거기에 풀어놓을 거거든요. 그리고 자연에서 생활해 보고 싶어요.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아…….”
문명 세계에서 벗어나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거군.
욕구가 거의 없는 지하지만, 원초적인 삶에 대한 동경은 있었나 보다.
‘어쩌면 거기서…….’
자연에 둘만 존재한다는 건 애틋한 관계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는 말과 동일하다.
그리고 이런저런 일도…….
마르그레타의 망상이 폭주하는 동안, 지하는 화연도 거기에 들어간다고 말해 버렸다.
“화, 화연도 말입니까?”
“네. 며칠 체험해 본다고 했어요.”
경쟁자가 생겼다.
하지만 그 경쟁자는 기본적인 시설이 갖춰져 있는 정원도 심심하다며 도망간 사람이었다.
버티면 승리한다.
마르그레타의 눈에 불이 켜졌다.
*****************************************************
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웹에서 실시간으로 편리하게 감상하세요
Chapt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