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 Rank Supporting Role’s Replay in a Prestigious School RAW novel - Chapter 1071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1071)
122. 나이트 아웃포스트 (14)
붉은 천 조각을 발견한 직후 적호의 말수가 줄어든 걸 시작으로 호랑이들의 대화가 뜸해졌다.
이동하는 내내 호랑이들이 도통 입을 열지 않아서 백호군의 모습을 빌린 내가 치료를 받으라고 독촉하기 어려웠다.
‘다들 입을 열기 어렵겠지.’
그나마 옥토윤을 상대할 때에는 호랑이들이 입을 열긴 했지만, 이 주변에 문제가 없음을 확인한 토족은 조용히 물러났다.
옥토윤은 붉은 천 조각을 흘끗 보긴 했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은호는 옥토연에게 월궁계도로 이 주변을 봐 달라고 부탁하되 개입을 부탁하진 않았을 것이다.
황지호를 노리는 자들을 토족이 무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건 대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은호가 토족에게 개입을 부탁한 건 지하 쪽 상황이 정리되어 호족과 토족이 지상에서 합류할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 선 후였을 것이다.
‘비탄의 웅녀는 적호가 다친 후에야 이 상황을 알고 움직인 거겠지. 옥토연은 월궁계도로 비탄의 웅녀를 발견한 후에 은호에게 알렸을 거야.’
황지호는 장미 농원에서 일정 거리를 벗어나자 분신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멈추었던 분신을 갑자기 움직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는지, 부하가 걸려 황지호의 움직임이 느려지고 말도 없어졌다.
적호와 황호가 입을 열지 않자 정말로 조용해졌다.
생각할 게 많아 보이는 청호, 말없이 호랑이들을 지켜보는 공청훤이 먼저 말을 꺼내지도 않았고, 백호군은 예전부터 그랬듯 입을 잘 다물었다.
흰 호랑이는 여전히 자신과 똑같은 모습을 한 나를 보고 입꼬리를 조금 들어 올릴 뿐이었다.
‘저 호랑이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자기랑 똑같은 얼굴을 보는 게 웃긴 건가? 웃기겠지.’
이동 중에는 적호의 적연으로 전원 모습을 감추고 행동했지만,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나는 광림으로 백호군의 모습을 빌렸다.
오늘 또 다른 수를 숨겨 뒀을 것 같진 않지만, 만약에 또 무슨 일이 생겨서 적연이 해제되면 흰 호랑이의 옷을 입은 내 모습이 노출될 테니 주의하기로 했다.
은광구까지 이동하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이동하는 내내 긴장을 풀 수 없어서 체감상 길게 느껴졌다.
마침내 호랑이 저택 부지에 도착했다.
‘결국 다친 호랑이들도 치료 없이 여기까지 왔네. 지금 리웨이나 유상희를 부르는 건 눈에 띄니까 적어도 해가 뜨자마자 치료를 받도록 준비하는 게 좋지 않나? 그리고 저 무식하게 센 신화계 호족이 권능을 사용할 수 있는 동안…….’
내 생각을 읽은 흰 호랑이가 먼저 선수를 쳤다.
“어디로든 갈 수 있는 권능을 사용할 수 있는 사이에 호암소를 살펴보고 오겠다. 내 분신이 너희의 곁에 있으니 무슨 일이 있더라도 괜찮겠지.”
“분신 좋아하네.”
‘분신 좋아하네’ 하고 속으로만 생각하려고 했는데 그만 입으로 말해 버렸다.
황지호와 적호는 어이없어하는 얼굴로 백호군 쪽을 보았으나 웃는 얼굴로 권능을 사용한 호랑이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야 백호군의 권능이 남아 있는 동안에 강원도 동해시에 위치한 호암소를 보고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건 나지만, 저렇게 실실 웃으며 사라지니 썩 좋은 기분이 들진 않았다.
한편, 상황을 모르는 청호가 살짝 미간을 좁히고 내 쪽을 보았다.
그 표정은 마치 교실에서 황지호나 독고미로가 헛소리를 할 때 가만히 쳐다보던 한이의 얼굴을 연상하게 했다.
“분신이 아닌 것처럼 말하네.”
“백호가 속 긁는 말을 하긴 했으나 틀린 소리를 한 건 아니다. 들어가서 설명하마.”
은광구에 도착했을 때부터 눈에 띄게 상태가 좋아진 황지호가 말했다.
황지호는 적호보다 더 크게 다쳤는데, 지금은 피로 엉망인 옷과 이능파 상태를 제외하면 멀쩡해 보였다.
만약 황지호가 다친 직후의 모습을 보지 않았고 내내 같이 있지 않았더라면 정말로 괜찮아졌다고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치료가 다 되었을 리가 없어. 겉만 그럴싸해 보이게 덮은 거겠지.’
진족 특유의 재생 능력을 끌어올려 피부만 수습한 게 아닐까?
혹시 황지호는 예전에도 비슷한 짓을 하지 않았을까?
분신을 활용하면 눈을 속이기는 더 쉬웠을 것이다.
황지호는 아무렇지 않은 척 별채의 문을 열었다.
“어서오세요.”
현관문을 열자 은호가 우리를 맞이했다.
은호의 온화한 미소가 청호를 보자 더욱 따뜻해졌다.
은호를 바로 알아본 청호가 재회의 기쁨을 숨기지 않으며 그 앞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은호, 일어났구나! 은광구에서 만난 기억이 없어서 아직 잠들어 있는 줄 알았어.”
“이 모습으로는 오랜만에 뵙네요, 청호 님. 사정이 있어서 그때는 정체를 밝히지는 못했지만, 이미 인사드린 적이 있어요.”
“우리가 만났었어?”
“네, 은광고에서요.”
은호는 1학년 0반의 부반장으로서 우리 반과 교류를 가진 적이 꽤 있었다.
특히 은호는 0반 반장 선발전에서 태호권을 선보인 것을 계기로 태호권 소모임 소속 학생들과도 말을 나누곤 했다.
그 태호권 소모임 소속 학생 중에는 한이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청호는 은호의 정체를 바로 파악하진 못했다.
은호가 제 입으로 밝히기 전에 1학년 0반 담임 공청훤이 먼저 은호를 알아보고 소개했다.
“제가 담임을 맡은 반 소속인 천은하 학생이에요.”
“은하라고요? 1학년 0반에서 가장 의신이를 잘 따르던 후배가 은호였다고……? 분위기가 비슷하긴 했지만…….”
은호가 나와 가까운 편이긴 했지만, 선배 대부분을 존경하고 잘 따랐다.
나는 은호와 기숙사에서 만날 일이 자주 많다 보니 주변에선 그렇게 보이는 듯했다.
은호가 진심으로 잘 따르는 형인 백호군이나 천동하가 있는데 내 이름이 나오니 민망했다.
이런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은호가 나를 곧게 보며 말했다.
“의신이 형, 그만 본모습으로 돌아오세요.”
마침 호랑이 저택에서 뻔뻔하게 백호군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자니 민망하던 차였다.
그리고 내가 광림을 해제한 것과 동시에 진짜 흰 호랑이가 나타났다.
파앗!
권능의 여파인 섬광이 가라앉자 사이즈가 맞지 않는 무복을 입은 나와 백호군이 나란히 서 있게 되었다.
청호는 은호가 천은하였다는 걸 알았을 때보다 더욱 경악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았다.
사정을 알고 있는 호랑이들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백호군을 보았고, 사정을 몰랐을 공청훤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나를 보았다.
“역시 조의신 학생이었군요.”
예상대로 공청훤은 플레이어의 궤적을 써도 나를 알아보는 것 같았다.
“어떻게 알아보신 건가요?”
내가 묻자 공청훤은 가만히 나를 보다가 호랑이들을 돌아보았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공청훤의 질문을 받자 호랑이들이 바로 답했다.
먼 옛날에도 신인이 이렇게 물으면 바로 대답했을 것 같았다.
“의신이가 본모습을 드러낼 때까지는 알아차리지 못했어요. 진명의 존재도 느껴지고, 기운도 백호의 것이었어요.”
“미리 알지 못했다면 백호라고 생각했겠지.”
“황호 님이 말씀하신 것과 같은 생각이에요.”
“……저도 같습니다. 조의신에게 백호의 진명이 없었어도 알아보기 어려웠을 겁니다. 진명 덕인지 더욱 신뢰감과 친근감도 느끼고 있습니다. 호족의 속을 뒤집는 데에 도가 튼 백호보다 조의신이 더 믿음직합니다.”
웅녀 생각을 떨쳐 내려는 것처럼 적호가 길게 말했는데, 그 말을 들은 청호가 백호를 휙 돌아봤다.
백호의 진명이 내게 있다는 말 때문에 놀란 것 같았다.
“백호, 의신이한테 무슨 짓을 했어?”
“진명으로 가호를 내렸다.”
“미쳤구나. 자랑해?”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
청호는 물론이고 다른 호랑이도 어처구니없어하는 시선을 백호군에게 보냈다.
은호가 먼저 시선을 떼고 공청훤에게 물었다.
“저희의 생각은 이러한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은호가 묻자 공청훤이 순순히 답했다.
“저는 위험을 감지하는 힘이 있죠. 만약 제 진정한 정체가 신인이고, 여러분도 알고 있다면 짐작하고 있을 텐데요.”
공청훤은 평소와 다름없는 다정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공청훤은 신인으로서 자각하지 못한 것 같지만, 자신이 신인일 것이라고 판단한 듯했다.
호랑이들은 신인의 말을 경청했다.
“의신이에게서는 이 땅을 단숨에 뒤덮을 만큼 어둡고 무거운 기운이 느껴지고, 그 기운은 조금씩 강해지고 있어요. 의신이가 어디에 있든 찾아낼 수 있을 정도로요.”
공청훤은 내 안의 악몽을 완전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신인의 감각으로도 내가 품은 악몽은 위협적인가 보다.
은호는 눈을 느리게 감았다 뜨며 말했다.
“신인께서 한반도의 위협을 감지한다는 것도, 의신이 형을 잘 찾아낸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의신이 형이 한반도의 위협이 될 리가 없다는 생각에 이를 연관 짓지 못했죠. 그래서 악몽의 존재를 알아차릴 수 없었어요.”
“의신이는 강하고 선량하며 좋은 학생이에요. 그러니 무언가를 짊어지고 있다고 해도 드러내지 않으려 했겠죠.”
공청훤은 내가 품은 악몽의 존재를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어떻게 하려 들지 않았다.
또한, 나를 선량한 학생이라고 판단해도 눈을 떼지 않았다.
수업에 나타나지 않으면 찾으려 들고 자주 말을 걸었던 것처럼 말이다.
‘신인은, 공청훤은 자신의 눈을 믿지만, 무언가를 느꼈다면 이를 허투루 넘길 자가 아닌가 보네.’
공청훤의 일면을 확인하니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생겼다.
어제와 오늘 접한 정보 중에는 중요한 단서들이 여럿 포함되어 있는데, 신인의 성품 또한 이 단서를 해석하는 데에 중요한 열쇠가 될 것 같았다.
대화가 길어지기 전에 은호가 먼저 말을 꺼냈다.
“진짜 백호 형님도 돌아오셨으니 일단 앉죠. 저 말고도 기다리는 분이 있어요.”
여기서 더 기다릴 자가 있나 싶었는데, 거실로 돌아가니 정말로 호랑이들을 기다리는 자가 있었다.
바로 운사였다.
몸 상태를 생각하면 방에서 나오지도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호족에게 일이 생긴 걸 알고 억지로 나온 것 같았다.
운사는 거실 소파에 누운 채로 목을 길게 빼고 현관 쪽을 보고 있었다.
“운사……!”
청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운사가 마른 팔을 벌벌 떨면서도 손잡이를 짚고 일어나려 했는데, 옆에서 작은 손이 운사를 붙잡았다.
운사의 옆에 산령이 있었다.
“감시로 산령을 붙여 놨어요. 운사 님께서 서 있을 힘도 없는데 자꾸 일어나려고 하셔서요. 먼 옛날부터 운사 님은 산령과 천령에게 매정하게 군 적이 없으니 적역이죠.”
산령이 붙잡자 운사가 움직이지 못했고, 그사이에 청호가 한달음에 달려가 운사의 곁에 앉아 눈을 맞췄다.
운사가 청호의 얼굴을 가까이에서 본 후에야 안심했고, 호랑이들은 이를 보며 흐뭇해했다.
안부를 주고받고, 육신의 행방에 관해 이야기를 꺼내며 운사가 눈물짓는 걸 청호가 달랬다.
청호를 비롯한 호랑이들이 모두 무사한 걸 확인한 운사가 진정했을 때였다.
“조금만 더 기다려 줄 수 있어? 잠깐 다녀오고 싶은 곳이 있어.”
“청호 님?”
청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이 시점에 청호가 다녀올 곳이 있다고?
잠깐 이해가 안 갔지만, 한이를 떠올리자 어디에 가려고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친구의 노래를 듣기로 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