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perienced Newbie RAW novel - Chapter 113
113
올드 뉴비
주먹파. 이름은 촌스럽지만 실력은 진짜다. 실력이 없었다면 그레이트 다운타운에서 터를 잡을 수 없다. 소년이 미래에 거물이 되는 건 소년의 뛰어남도 있지만 기반이 튼실한 주먹파의 역할도 컸다.
“애꾸, 팔 병신, 키다리가 뒈졌고. 제비는 손 잘린 병신이 되어 방구석에 처박혀 있다.”
분위기가 차례로 변했다. 침묵, 그리고 의문, 그 후의 미열.
“정말입니까?”
이성철은 품에 있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잘린 손을 던졌다. 동양화 문신은 그레이트 다운타운에서는 보기 드문 것이었다. 근방에서 이런 문신을 하고 있는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었다.
“정말로…!”
그들이 흥분했다. 내실이 튼튼한 기업도 절대적인 외압에는 어쩔 수 없다. 최근 주먹파… 주먹 기업은 마약 유통을 두고 외부로 말썽이 많았다. 그들을 괴롭힌 건 사장의 유대니 어쩌니 지껄여댄 놈들이었다.
이성철이 쫓아낸 적대 기업의 놈들이란 애꾸의 부하였고, 그놈들이 제비의 사주를 받아 움직이고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이 근방에 없었다.
피의 복수를 벌일 수 있다. 그게 그들을 흥분하게 만들었다. 중심에 선 이성철이 무기를 소환했다. 천심도는 아니었다. 그건 너무 유명하다.
소환한 건 묵빛의 검이었다. 살수들이 애용하는 형태의 검은 성물과는 반대되는, 마물이라 불리는 무기였다.
이성철이 검을 어깨에 걸쳤다. 살짝 껄렁하게, 사선으로. 양복 와이셔츠의 단추를 두 개쯤 풀고. 넥타이를 느슨하게 하며 말했다.
“가자. 오늘 밤거리의 주인이 바뀐다. 소리 지르지 마. 우리는 거리의 주인이다. 체통을 지켜야지.”
살기를 가득 머금은 조용한 웃음이 거리에 울렸다. 각자 무기를 쥔 손에 힘을 주며 걸음을 내디뎠다.
이백여 개의 검은 양복이 밤 산책에 나섰다.
***
그레이트 다운타운의 밤을 비추는 건 달이 아니라 수많은 간판이다. 반짝이는 간판 아래를 검은 물결이 천천히 휩쓸었다.
그레이트 다운타운 어디에서나 맡을 수 있는 담배 냄새와 마약 냄새가 유독 진했다. 은은한 미약 냄새도 났다. 붉은 간판이 거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고, 헐벗은 여인들이 거리에 나와 남자를 유혹하고 있었다.
여긴 매음굴이었다. 이 거리를 관리하는 사장의 이름을 붙여 사람들은 이 거리를 애꾸의 매음굴이라고 불렀다.
이성철은 검은 물결의 선두에서 당당하게 걸었다. 부산스러운 거리가 쫘악 갈라지며 길이 열렸다.
얼굴에 길게 자상이 그어진 남자가 나타났다. 반팔 와이셔츠를 걸친 대머리 남자가 험악하게 인상을 구겼다.
“이게 뭘 뜻하는지 알고 있는 거냐?”
“제가 하겠습니다.”
행동 대장이 나섰다. 사자 갈기를 닮은 머리카락이 곤두서며 남자의 몸이 부풀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한 마리의 늑대가 있었다.
“땅 주인이 땅 찾으러 왔다는 뜻이다. 우리 보스가 애꾸를 죽였으니 이 땅은 우리 것이다.”
“개쌉소리 지껄이고 있네! 사장은 다시 세우면 그만이다. 누구 마음대로 우리 구역에 발을 들여!”
“똑같은 소리를 불과 얼마 전에 들었던 것 같은데. 사장이 죽었으니 주인 없는 땅이라고 박박 우기는 건 그 아가리냐? 아니면 며칠 전 자기가 한 소리도 잊게 만드는 그 빡대가리냐? 머리가 빠지면서 지능도 함께 빼버린 건 아니겠지?”
욕설은 찰지게 천박했다. 이성철은 잘도 저런 말이 술술 나온다고 생각했다.
대머리의 얼굴이 붉어졌다. 행동팀이나 행동대나 행동이라는 글자가 들어가는 직위를 가진 놈들의 본질은 돌격해 싸우는 것이다. 냉정하게 사태를 판단할 주변머리는 필요가 없었다.
판단력까지 가지고 있다면 더욱 좋겠다만, 그게 가능한 인재라면 무력과 관계없이 더 큰물에서 놀고 있다.
촌구석에 있는 놈들의 수준이라고 해봐야 거기서 거기다.
“피와 살은 너희 집 앞마당에 뿌리고 창자는 부랑자들의 먹이로 주마. 죽어서도 그레이트 다운타운의 양분이 되게 해주마.”
대머리가 신호하자 사방에 있던 자들이 일제히 무기를 빼 들었다. 여긴 애꾸의 구역, 적진 한복판이었다.
사방이 무기로 둘러싸인 상황. 그러나 늑대 인간을 포함한 누구도 겁먹은 기색은 없었다.
“안 무섭나?”
“애꾸가 죽은 매음굴은 애꾸의 매음굴이 아닙니다. 그냥 떨거지들의 놀이터죠.”
이성철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늑대 인간이 씩 웃었다.
“다치지 마라.”
“그런 걱정 마십쇼. 저희는 싸우다 죽어도…….”
“앞으로 세 군데를 더 들러야 하니 잔챙이 잡는다고 힘 빼지 말란 거다.”
왁자지껄 웃음이 터졌다. 늑대 인간도 배를 잡고 거의 땅을 뒹굴었다.
“팔 병신, 키다리, 제비. 알겠습니다, 보스. 알아들었냐 새끼들아! 삶은 문어 하나 먹는 데 배 채우지 말랍신다!”
“그딴 거 안주도 안 됩니다!”
“줘도 안 먹습니다!”
삶은 문어처럼 얼굴이 붉어진 대머리가 소리쳤다.
“싹 다 죽여! 저것들 전부 목을 따서 내 앞에 가져와!”
지지 않고 늑대 인간이 외쳤다.
“문어잡이에 다치는 놈은 진짜 수조에 담가버릴 테니 그리 알아라!”
검은 양복이 사방으로 퍼지며 무기를 휘둘렀다. 싸움을 준비한 쪽과 갑작스런 시비에 대응하는 쪽. 전자가 단연 유리했다. 검은 양복이 붉은색 투성이의 매음굴에 피를 뿌렸다.
매음굴의 진한 냄새가 더 진한 피 냄새에 덮였다.
흥분한 대머리가 쌍검을 들고 달려왔다. 늑대 인간이 나서려는 걸 말리며 이성철이 앞으로 나섰다.
“보스, 문어 정도는 제가…….”
확실히 눈에 보이는 실력은 늑대 인간이 대머리보다 뛰어났다. 그러나 여긴 저놈들의 근거지. 숨겨둔 수가 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문어 하나 잡는 데 힘을 뺄 필요도 없다.
이성철의 손이 품에 들어갔다 나왔다. 그의 손에 들린 권총을 보고 대머리가 비웃었다.
“날 상대하려면 라이플 정도는…….”
이성철은 대머리를 겨냥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소리 없이 쏘아진 빛이 대머리의 머리를 관통했다. 빛에 스친 간판에 불이 붙었고, 불은 빠르게 건물에서 건물로 번져갔다.
비명과 함께 거리가 혼란에 빠졌다.
“플라즈마 권총이 뭐라고?”
이성철이 물었지만 죽은 대머리는 대답하지 못했다. 이성철은 대머리의 머리를 잘라 늑대 인간에게 넘겼다. 대머리의 미간에는 깔끔하게 구멍이 뚫려 있었다.
이성철은 권총을 몇 발 더 쏴 위협적인 것들을 처리했다. 간신히 저항하던 매음굴의 세력이 무너졌다.
“5분.”
“아, 알았습니다!”
차가운 이성철의 말에 늑대 인간이 허겁지겁 싸움터로 뛰어들었다. 그가 대머리의 머리를 무기 대신 휘두르며 외쳤다.
“대머리는 죽었다! 다음은 누구냐!”
강기에 감긴 대머리로 적의 머리를 깨부수는 늑대 인간의 모습은 보기에도 살 떨렸다. 이성철은 근처에 있던 의자를 당겨와 앉아 담배를 태웠다.
혼돈의 도가니에서 그의 주위만 조용했다.
길게 한 모금 빨아먹은 이성철이 연기를 길게 뿜으며 하늘을 보았다. 커다란 빌딩에 반달이 반쯤 가려져 있었다.
“편해서 좋아.”
정말, 그 괴물들하고 다닐 때와 비교하면 이 얼마나 편한 일정인가.
***
팔 병신과 키다리의 구역도 별거 없었다. 이성철이 권총을 몇 방 갈겨주고 나머지가 돌격해 때려 부수니 사기그릇처럼 부서져 조각났다.
이성철은 제비의 구역에 도착했다. 제비의 사업장은 커다란 병원을 연상케 했다. 하는 일도 비슷했다.
통나무 놀음. 판타지 세계라고 장기에 대한 수요가 없는 게 아니다. 장기 이식을 시작으로 흑마법 실험, 주술의 제물, 인체 실험, 가장 흔한 매춘까지. 사람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저 안에서 해결할 수 있다고 보면 된다. 종합 인체 놀이터. 그러니까 사업보다는 놀음이다.
사람을 가지고 노는 놀음판.
“마지막 산책길이다. 지쳤나?”
-아닙니다!“
힘차게 대답했지만, 면면들의 얼굴에선 지친 기색이 완연했다. 촌구석치고 뛰어난 기량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촌구석이다. 언제 이런 싸움을 해보았겠는가.
세 번 연속 목숨을 건 싸움을 하고 멀쩡한 자는 없었다. 사상자가 15명밖에 안 되는 게 기적이었다.
날고 뛰던 늑대 인간마저 빳빳하던 꼬리의 끝부분에 힘이 없었다.
‘여기까진가.’
싸우라면 싸울 수는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이성철의 상상 이상으로 잘해주었다. 그러나 이 이상은 힘들다.
“할 수 있습니다!”
이성철의 분위기를 읽었는지 늑대 인간이 힘 있게 소리쳤다. 이성철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그러며 앞으로 걸어갔다.
나서려는 늑대 인간을 이성철이 말로 막았다.
“보고 있어라.”
병원과 닮은 건물은 이때까지와 달리 조용했다. 평소라면 한창 시끄러울 건물에서 소음이 전혀 없었다.
대칭형 건물에 넓은 부지를 둘러싸는 담벼락은 하나의 요새였다.
이성철은 정문을 넘어 병원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정문과 병원 사이에는 텅 빈 공터가 있었다. 정원으로 꾸밀 법도 한데, 흔한 잡초도 심겨 있지 않았다. 휑한 것보다도 꾸민 것이 손님 유치에 좋을 텐데도.
‘그야, 심으면 시야 확보에 방해될테니까.’
이성철이 공터 중앙에 섰을 때였다. 열려 있던 병원 창틀로 기다란 검은색 막대기가 올라왔다. 원형으로 배치된 열 개가 넘는 총열이 돌아갔다.
두두두두! 둔탁한 소리와 함께 수백 발의 총알이 쏟아졌다.
총, 좋은 수단이다. 저레벨에서 통하는 건 물론이고, 총과 탄알의 종류에 따라선 강기도 뚫어낸다. 그리고 배우기만 하면 누구나 다룰 수 있다.
날아오는 총알을 보며 이성철은 태연했다. 강기를 뚫어내는 총알은 회귀자인 그도 돈 낭비라고 생각할 정도로 비효율적인 물건이다. 당연히 저들이 쏘아내는 건 일반 총알이었다. 그래도 숫자가 수백, 수천에 육박하니 가볍게 볼 순 없었다.
이성철은 실드로 자신을 감싸고 호신강기까지 사용했다. 마법과 무공에 능숙하다. 그가 내세우는 얼마 안 되는 장점이다.
총알이 실드를 두드렸다. 전방에서 쏟아지는 총알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실드에 총알이 다닥다닥 붙었다.
이성철은 총성과 마력에 의지해 총을 겨눴다.
마력을 연료로 하는 플라즈마 권총, 5년 뒤에나 개발되는 물건으로 이성철이 에이네에게 부탁해 만든 물건이었다.
권총이라는 무기의 한계 때문에 사용처는 제한되지만 조건만 갖춰지면 이보다 편리한 무기도 달리 없다.
권총에서 쏘아진 빛이 개틀링 건을 관통했다. 양산형 권총은 마력을 모아 쏘는 기능밖에 없지만, 이 권총에는 이성철이 원한 다양한 기능들이 들어가 있었다.
예를 들어, 폭발이라거나.
개틀링 건을 관통한 빛이 건물 내부에서 폭발했다. 환한 빛이 창밖까지 보였다.
권총은 빛을 뿜을 때마다 어김없이 목표를 관통하고 폭발을 일으켰다.
“사격 중지! 소리를 내지 마!”
창틀에 걸쳐져 있던 총열이 창틀 아래로 내려갔다. 몸을 숨기고 소리를 죽이면 끝난다고 생각하는 걸까. 안일해도 너무 안일한 판단이다. 하지만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개틀링 건 수십 정의 화망을 정면에서 뚫을 수 있는 사람은 이런 촌구석에 오지도 않는다.
권총이 빛을 뿜었고, 그때마다 한 번의 폭발과 비명이 들려왔다.
이성철의 공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적들이 쏜 총알은 실드에 튕겨 나가는 게 아니라 달라붙었다. 그 운동 에너지는 모두 실드에 저장되어 있다.
한 발 한 발의 위력은 약하다. 그러나 그게 수만 발이 되고, 수만 발의 총알이 가진 에너지가 모인다면?
이성철은 실드에 저장해놨던 에너지를 방사했다.
충격파가 터졌다. 굉음을 동반한 충격파가 건물을 때렸고, 건물 일부가 붕괴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전체적으로 금이 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모습이 됐다.
이성철이 손을 들었다.
“돌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