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perienced Newbie RAW novel - Chapter 56
56
멸망전
본청의 소란은 금방 진압되었다. 표면적으로 모든 죄는 로이 판관이 뒤집어썼다. 죄명은 뇌물수수였다. 리프턴 안에서 위령 기업이 가지고 있던 모든 특권과 재산이 회수되었다. 위령은 리프턴에서의 기반을 완전히 잃었다.
에이네의 수배는 풀리지 않았다. 그리고 벽에 붙은 수배서 중에 현의 수배서가 추가되었다. 기업과 국가의 소속원을 학살하고 본청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그들은 에이네가 위령 기업과 충돌한 것부터 시작한 모든 일을 현이 주도한 것으로 알고 있다.
기득권에게 현은 살아 있으면 안 되는 인간이었다.
현과 에이네에게 붙은 현상금이 어마어마했다.
본청은 비상사태를 선포해 모든 인력을 동원해 리프턴 전 지역을 수색하고 있었고, 기득권 쪽 사람으로 보이는 놈들도 심심찮게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현상금에 눈 돌아간 현상금 사냥꾼은 덤이었다.
그런 판국에 한가하게 여관이나 빌려서 쉬기는 힘들었다.
현과 에이네는 노숙을 했다.
“…… 우리 거지야?”
뒷골목에서 광학미채 망토를 덮어쓴 에이네가 말했다. 그녀는 상당히 피곤한 상태였다. 처음 만들었던 망토는 본청을 습격하며 버렸다. 처음부터 그럴 용도로 시간이 지나면 분해되어 사라지도록 만들었다.
‘그때는 기분만 내려고 했지.’
실제로 망토를 벗으며 모습을 드러낼 때는 꽤 짜릿했으니까.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안 버리고 챙겨놓을 걸 그랬다고 에이네는 후회했다.
두 명이 덮어쓸 망토와 개인용 망토 하나씩. 그렇게 세 개의 광학미채 망토를 만들며 마력과 정신력의 소모가 상당했다. 2인용 망토를 만든 이유? 광학미채를 꿰뚫어 보는 고글을 만드는 것보다 커다란 망토 하나를 만드는 게 마력이 적게 들었다.
그녀가 덮고 있는 망토는 단순히 빛에서만 몸을 숨겨주는 게 아니라 각종 탐지기로부터도 안전했다. 고글을 만들려면 그 이상으로 특별한 기술이 필요했다.
“그냥 눈 딱 감고 얼굴 바꾸면 안 돼? 특수 분장용 진흙은 금방 만들 수 있는데.”
“딱히 상관은 없는데.”
“정말?”
“그래도 금지.”
에이네가 인상을 쓰며 항의했다. 현은 그녀의 코를 잡아당겼다.
“변장은 앞으로도 질리게 해야 하는 일이고, 이런 식으로 쫓기는 건 자주 할 수 있는 경험이 아니니까.”
“고작 경험 때문에 내가 흙바닥을 침대 삼아 자야 돼?”
에이네가 현의 손을 쳐내며 말했다.
“다음에 혼자 수배됐을 때 안 잡히고 혼자 탈출할 자신 있으면 나가도 되는데, 자신 있어?”
“수배당한다는 전제부터가…….”
잘못됐다고 말하려던 에이네는 그러지 못했다. 현이 지명 수배를 당한 게 몇 번이더라? 과학과의 전쟁 막바지에 활약하는 걸 시작으로 현이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전에는 현도 무명이었다. 이름이 있긴 했지만, 근원 세계 전체를 아우를 정도는 아니었다.
유명소졸이던 현의 명성을 완성해 준 건 마신과의 전쟁이지만, 그 전에도 현은 유명인이었다. 적어도 소졸은 아니었다. 현이 명성을 올린 것은 대부분 사고나 사건이었다.
그 과정에서 현은 몇 번이나 수배된 적이 있었다. 리프턴과는 비교도 안 되는 무력을 가진 도시와 국가에서 말이다.
에이네가 아는 건 공식적인 자료뿐이다. 척살령이나 암살시도 같은 비공식적인 자료까지 합치면 전적은 더욱 화려해질 것이다. 현과 함께 다니며 수배범이 되는 경험이 과연 이걸로 끝일까.
“알겠으면 요령이나 익혀둬. 광학미채 망토라니. 나는 그냥 거적 덮고 거지로 위장했는데.”
세상 참 편해졌다. 현은 한가하게 신세타령을 했다.
리프턴에는 경찰을 뺀 다른 권력 기구가 없다. 공적인 인증이 필요한 일은 당사자끼리 해결하고 경찰에 와서 신고만 하는 방식으로 공적 권력의 개입 여지를 최대한 줄였다. 권력을 잡기 위한 기득권의 수작이었지만, 권력에 구멍이 나면 그걸 먹기 위해 아귀싸움이 벌어지는 부작용이 있었다.
정령으로 염탐하니 본청의 요인들은 서로 물어뜯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니 수색도 효율적이지 않았다. 상대는 에이네가 통신을 도청할 수 있다는 걸 아니 전자 통신은 제한하고 있었다.
마법을 이용한 초장거리 통신은 막대한 마력이 필요했다. 주술은 거리 제한에서 비교적 자유롭지만, 주술을 ‘제대로’ 익힌 사람은 고급 인력이다. 리프턴 같은 도시에서는 찾기 힘들었다.
통신의 제한으로 싸움은 더 개싸움이 되었다.
“마력은 얼마나 남았어?”
“6성 위력으로 한 방?”
에이네와 같은 무공을 익히고 있는 현은 그 말을 제대로 알아들었다. 같은 무공을 익히고 있는 게 이런 식으로 편리할 때도 있다는 걸 현은 처음 알았다.
“부족해. 7성으로 한 방 정도는 날릴 수 있게 준비해둬.”
현이 손을 내밀었다. 에이네가 그 손을 잡았다.
“망토만 안 만들었어도 가능했거든?”
맘 같아선 이성철에게 했던 것처럼 탈진 상태로 만들어주고 싶었지만 그녀의 능력으로는 무리였다. 현이 주는 마력을 쬐끔씩 빨아먹고 있으니 에이네는 자신이 모기가 된 것 같았다.
***
위령 기업의 투기장 역사는 길지 않다. 투기장 사업이 위령 기업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되긴 했지만, 투기장을 열기 전에도 위령 기업은 국가에 따르는 조직, 준국가급 기업이었다.
안전하게 투자해도 천천히 성장할 위령이 위험 부담이 큰 투기장을 운용할 당위는 없었다. 위령의 투기장 사업은 갑작스러웠다. 미치기라도 한 것처럼 급하게 시작한 투기장은 의외로 잘 굴러갔고, 위령 기업의 막대한 수입원으로 자리 잡았고, 위령 기업은 빠르게 성장했다.
위령 기업의 부총수가 투기장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는 것이 투기장이 위령 내에서 가지는 중요성을 알려줬다.
하지만 그 위험성과 규모를 봤을 때 투기장의 관리는 부총수가 아니라 총수가 해야 했다. 총수는 그러지 않았다. 그럴 수가 없었다. 투기장 사업이 시작되기 전부터 총수는 대외 활동을 최소화했다. 그리고 한 사람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어두운 방, 방 한 면을 가득 채운 디스플레이에서는 오늘 진행하는 투기장의 모습이 보였다.
“저 경기는 시원찮군.”
심드렁한 목소리의 주인은 고블린이었다. 매부리코에 처진 눈을 하고 있는 고블린은 디스플레이 반대쪽 벽에 무릎을 세우고 기대앉아 있었다. 그의 체구에 맞춰 만들어진 태도가 고블린의 어깨에 걸려 있었다.
“죄송합니다.”
위령 기업의 총수, 마하루피가 고개 숙였다.
“최근에는 이런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느긋한 목소리였다. 마하루피의 고개가 더욱 꺾였다. 저 고블린은 더럽게 까다로웠다. 그런 주제에 그걸 표현하지 않았다. 가만히 있다가, 마음에 안 들면 그냥 부순다. 위령 기업을 세우는 공의 5할은 자신의 빠른 눈치에 있다고 평가하는 그가 5년이나 옆에서 봐 왔는데도 가끔 고블린의 뜻을 잘못 읽을 때가 있었다.
“최근 여자 공급소 몇 곳에 일이 생겨 공급에 차질이 생겼습니다. 그쪽에서 오려던 여자가 오지 않아…….”
마하루피는 벽을 가득 채운 화면으로 눈을 돌렸다. 4급 몬스터를 상대로 여자가 필사적으로 무기를 휘두르고 있었지만 중과부적이었다. 30초도 안 돼 경기가 끝날 듯싶었다. 원래는 저런 경기가 아니었다. 몬스터와 여인이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고, 마지막에 몬스터가 승리해야했다. 몬스터가 승리한다는 결과는 같아야 했지만, 과정이 저리 밋밋해선 안 되었다.
“리프턴의 그건가.”
고블린의 업은 사투였다. 벌어진 싸움에 고블린이 관심이 가지는 건 자연스러운 이치였다.
“그렇습니다.”
“지금은 어떻지?”
“리프턴에 있던 위령의 끈이 모두 끊어졌습니다. 위령은 리프턴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리프턴에 다시 작업을 시작할 시간에 차라리 다른 도시를 만드는 게 빠를 겁니다.”
고블린은 생각에 빠졌다. 투기장에 떨어지는 제물 중 리프턴에서 나오는 제물은 상등품이었다. 뉴비라고 하던가. 소환되고 얼마 되지 않은 자들이 살기위해 젖 먹던 힘까지 저항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리프턴을 잃기는 아까웠다. 또 얼마 전부터 그의 본능이 속삭이고 있었다. 때가 되었노라. 피를 볼 때가 왔노라. 광기에 취해 피를 뒤집어쓸 때가 되었노라.
“하면, 내가 나선다면 어떨까?”
흠칫, 마하루피는 잠깐 당황했다가 빠르게 계산에 들어갔다.
“조금 부자연스럽긴 하겠지만, 리프턴의 권력을 다시 가져올 수 있을 겁니다.”
운만 좋으면 가져오는 게 아니라 손에 넣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고블린이 일어섰다. 태도를 허리 뒤에 매고 손에 염주를 들자 고블린 주위의 공기가 낮게 깔려 들끓었다.
마하루피는 숨을 쉴 수 없었다. 살기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고블린이 싸움을 생각했다는 것만으로 뿜어지는 기세였다.
가진 마력은 크게 차이나지 않지만, 예나 지금이나 마하루피는 자신이 고블린을 이기는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 머릿속에 고블린과 자신을 세워두면, 싸움을 시작하기 무섭게 그의 목이 달아났다.
마하루피는 그걸 부끄럽다 여기지 않았다. 이기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상대는 존재부터가 싸움을 위한 존재였다. 존재의의가 싸움과 투쟁인 종족에서도 선택받은 존재. 전투에 있어 세계에 축복받은 존재.
종족신, 투신의 선택을 받은 신자.
일곱 번째 재앙의 사도였다.
***
에이네는 빠르게 노숙에 능숙해졌다. 그녀는 부정하고 싶었지만, 자고 일어날 때마다 달라지는 생활에 부정도 힘들었다. 좁은 침대보다 얼마든지 굴러도 되는 흙바닥이 편하다니! 아니, 진짜로 편하긴 했다. 일인용 침대는 옆으로 두 바퀴만 굴러도 침대 아래로 떨어지기 일쑤였으니까.
에이네가 흙바닥과 침대의 장단점에 대해 꽤 진지한 고찰을 이어가고 있을 때, 현의 핸드폰이 울렸다. 우웅… 첫 진동이 끝나기도 전에 현은 핸드폰을 꺼내 귀에 가져다댔다. 현에게 전화를 해올 사람은 세계에 딱 한 명 있었다.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냐.
목소리의 주인이 어처구니 없어하고 있음이 전화 너머로 전해졌다. 현은 담백하게 사실만을 말했다.
“에이네한테 튜토리얼 좀 시켜주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거물이 걸려서.”
-…… 알만하군.
“이해한 건가?”
-아마도.
“역시 다회차. 눈치가 빨라서 좋아.”
-합류해야 할 거 같은데, 어디지?
“리프턴 본청을 중심으로 남서쪽으로 똑바로 오다보면 있는 공원.”
잠시 후 공원 입구로 이성철이 들어왔다. 그는 현과 에이네를 찾았지만, 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현이 광학미채 망토를 벗었다.
“광학미채… 최후의 안드로이드니 이상할 것도 없나.”
“보니까 영약도 꽤 먹은 모양이다?”
이성철의 마력은 떠나기 전과 비교해 한층 더 농밀해져 있었다. 양만 늘어난 게 아니었다. 마력이 압축되어 같은 양이라도 더 강한 힘을 내게 되었다. 마력 압축은 강자가 되기 위한 과정의 일부였다.
“기연이니까.”
“그래, 기연이란 말이지? 그렇게 편하게 마력을 쭉쭉 올리겠단 말이지.”
어딘가 불만이라는 언사에 불길함을 느낀 이성철이 미리 준비해둔 말을 꺼내려했다. 그러나 현이 한 발 빨랐다.
“에이네, 물어!”
“왕!”
보법까지 써가며 최고 속도로 튀어나간 에이네가 이성철의 팔을 잡았다. 이성철이 피하려 했지만, 천마신공을 쓰는 에이네의 손바닥 안이었다. 에이네가 이성철의 마력을 단번에 빨아들였다. 마력 고갈의 아찔한 현기증에 비틀거리며 이성철이 말했다.
“젠장…… 네놈들 몫도… 챙겨왔다고. 새끼야…….”
이성철이 무너졌다.
현과 에이네가 어색한 얼굴로 기절한 이성철을 내려다보았다.
“그걸 먼저 말하지.”
“그러게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