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perienced Newbie RAW novel - Chapter 55
55
멸망전
쾅! 창고 하나를 날려버린 에이네는 몸을 내놓고 움직였다.
“저기 있다!”
“공격!”
낮이었다. 열 곳이 넘는 가게와 창고를 부수고 백에 달하는 사람을 죽인 에이네는 리프턴 공공의 적이 되었다. 그녀가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공격이 날아왔고, 에이네는 그걸 일부러 맞아주었다.
이성철의 마력을 꾸준히 빨아먹으며 그녀의 마력 흡수 능력도 일취월장해 깔끔하게 마력만 흡수하고 나머지 공격은 전부 피해냈다. 에이네가 배운 건 모든 걸 부수는 강권이지만, 그녀가 회피를 못하는 건 아니었다. 천마신공 극에는 보법도 있었고, 천마와의 수련은 마력 흡수만 믿고 까불다간 죽기 딱 좋았다.
천마는 맞아도 되는 공격과 안 되는 공격의 구분법을 에이네의 몸에 새겼다. 자기 능력에 취한 사람들이 어떤 꼴로 죽는지 봐온 탓이었다.
모퉁이를 돌며 그녀는 미리 준비해둔 망토를 꺼내 머리부터 뒤집어썼다. 광학미채 망토가 그녀의 모습을 감췄다.
“어디야?”
“또 놓쳤어!”
“찾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찾아!”
혼란을 뒤로하고 에이네는 유유히 사건 현장을 빠져나왔다. 리프턴에 있는 위령 기업의 물자는 방금이 마지막이었다. 사람도 거의 정리했다. 의외로 손에 피를 많이 묻히지는 않았다. 창고는 물류 관리자만 죽이면 되었고, 몇 군데 있는 여자 ‘공급용’ 가게도 인력이 많지는 않았다.
자원과 물자를 정리하고, 사람이 남았다. 걷던 에이네의 발이 점점 빨라졌다. 달리던 그녀는 땅을 박차고 지붕을 타넘었다. 그러다 덮고 있던 망토를 벗었다.
콰앙!
그녀가 착지한 지붕이 크게 무너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사람이 많은 대로였다. 단번에 시선이 집중됐다. 에이네의 수배서는 리프턴 전체에 붙어 있었다. 사람들은 바로 에이네를 알아봤다.
-수배범을 발견했다! 수배범을 발견했다!
-대상은 이동 중. 본청 방향이다.
수백 개의 전파가 리프턴 상공에 꼬불꼬불 퍼졌다. 에이네는 그걸 모두 듣고 분석했다. 그녀의 목적지가 본청이라는 게 확실해지며 통신량이 늘어나고 있었다. 에이네는 눈을 감았다. 시신경이 다른 곳으로 연결되었다. 리프턴 상공을 지나가는 인공위성은 리프턴의 모든 풍경을 촬영하고 있었다.
그녀가 부른 게 아니었다. 정해진 궤도를 도는 인공위성이 리프턴 위를 지나는 게 지금이었다. 위성에는 리프턴을 이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모두 찍혀 있었다. 열 감지 영상에는 붉은 물결이 본청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응?’
에이네는 처음으로 이상을 알아챘다. 가장 먼저 보인 건 건물이었다. 그녀가 부쉈던 건물 지부에 새로운 건물이 올라가고 있었다.
24시간, 자면서도 통신 분석을 멈추지 않았다. 리프턴에 있는 세력들은 무전기 정도는 보편적으로 사용했다. 별도로 통신망을 설치할 필요 없이 유효 거리 안에만 있다면 편하게 쓸 수 있는 무전기는 넓은 도시에서는 매력적이었다.
에이네는 한 번도 건물과 관련된 통신을 듣지 못했다. 올라가는 건물은 40개가 넘었고, 공사장에 붙어 있는 표식은 기업과 국가의 것이었다. 건물을 세우면서 무전을 한 번도 쓰지 않았다?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지만 충분히 의심스러운 일이다.
건물 현장의 통신을 엿들어서 뭘 하려고? 그러나 그게 알려져선 안 되는 일이라면 달랐다. 위령 기업 소유의 건물이 무너지고 다시 올라가는 건물을 보며 가장 먼저 의심할 사람. 바로 에이네였다. 그녀가 안드로이드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리프턴에 한 사람밖에 없었다.
에이네는 현을 찾았다. 현은 본청으로 밀려드는 흐름 중 하나에 섞여 있었다. 에이네와는 반대 방향에서부터 본청을 향하는 흐름. 그들은 경찰 사람도, 위령 사람도 아니었다. 녹턴을 시작으로 다른 기업과 국가의 사람들이었다.
위령의 거점을 죄다 부수고 다니는데 경찰의 방해가 거의 없었던 이유. 저 망할 인간이 뒤에서 장난을 치고 있었다면 가능했다. 그렇다면 분명…….
‘역시.’
로이 판관은 본청의 독방에 갇혀 있었다. 위령의 개인 로이 판관은 움직일 수 없다. 다른 판관들도 전부 후원자의 후원을 받는 권력의 개. 위령만 골라 부수는 에이네를 도와주면 도와줬지 방해할 이유는 없었다.
에이네가 본청 앞마당에 착지했다. 수백 개의 공격이 그녀를 향해 날아왔다. 에이네는 공격을 피하지 않았다. 저것들이 전부 마력 덩어리다. 그녀의 힘이었다.
마법은 그녀에게 닿기 무섭게 사라졌고, 마력을 둘러싼 암기들은 그녀에게 닿아 마력을 잃었고, 마력을 잃은 철덩어리들은 호신강기에 닿아 분쇄되었다. 폭연을 뚫고 에이네가 뛰쳐나갔다. 정보를 바탕으로 위령에 끈이 닿은 놈과 그렇지 않은 놈을 구분했다. 망설임은 없었다.
발을 딛고, 힘을 준다.
퍼펑.
두 개의 소리가 겹치듯 들렸고, 경찰 한 명이 사라졌다. 몸에 힘이 넘쳤다. 넘치는 마력은 그녀에게 넘치는 힘을 주었다.
펑. 에이네가 다시 땅을 박찼다. 벽도 넘지 못한 어중이떠중이들이 에이네를 잡는 건 불가능했다. 첫 번째 벽을 넘은 사람만이 간신히 그녀의 움직임에 대처할 수 있었다. 에이네는 자신의 주먹을 막은 남자를 보며 희게 웃었다.
“너무 내 생각대로만 돼서 재미없던 참이야.”
손에 두른 마력이 빠르게 사라지자 남자가 기겁하며 몸을 뒤로 뺐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마력 무효화?”
“아니, 흡수.”
남자가 경악했다. 그리고 그게 남자의 마지막이었다. 펑. 남자의 머리가 터졌다.
“그러게, 방심하면 안 되지.”
마력 흡수와 마력 무효화는 숨기고 싶다고 숨길 수 있는 능력이 아니다. 손을 섞으면 바로 들키니까. 그래서 한 번의 방심을 끌어내는 용도로 썼다.
덤으로.
“마력 흡수?”
“제길, 저걸 어떻게 상대해.”
대처법을 모르는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효과도 있었다. 현이나 천마나 되는 괴물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마력 흡수를 뚫어내지만, 그녀의 기록에 따르면 마력 흡수는 재앙과 동급으로 취급받는 능력이었다.
겁먹은 양떼 사이를 한바탕 휘저어놓은 에이네는 본청 건물로 돌입했다. 그리고 로이 판관이 있는 위치까지 가장 빠른 길로 이동했다. 그가 있는 방까지 앞을 가로막는 걸 모두 부쉈다.
벽을 부수고 방으로 돌입했다. 로이 판관은 초췌한 몰골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가 멍한 눈으로 에이네를 보았다.
“너는?”
“그놈이라면 이런 말도 안 했을 것 같은데. 나는 한 마디 해야 직성이 풀리거든.”
에이네는 검지를 로이 판관의 이마에 조준했다.
“쓰레기 새끼. 지옥에나 떨어져라.”
총알처럼 날아간 마력탄이 로이 판관의 머리 안에서 폭발했다. 뼈와 살과 뇌가 사방으로 튀었다.
본청 후면이 시끄러웠다. 굳이 통신을 들을 것도 없이 귀로도 들리는 거리였다.
“위령과 관련된 건 싹 가져와.”
“기록 보관소부터 털어.”
“로이 판관의 사무실은 어디야?”
위령 기업이 가지고 있던 걸 모조리 먹어 치우려는 아귀 떼의 소행이었다. 그들이 후원하는 판관들이 적극적으로 나서 일을 도왔다. 모두 하나라도 이권을 더 챙기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에이네가 벌인 소란이 묻혀버릴 정도의 소란이 생겨났다.
로이 판관은 어느새 위령의 사주를 받아 도시를 팔아먹은 인간이 되어 있었다. 웃긴 건 그게 모함이 아닌 사실이란 점이었고, 더 웃긴 건 로이 판관을 물어뜯는 다른 판관들도 로이 판관과 똑같은 놈들이라는 것이었다.
에이네의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게 무슨 짓이지? 거래는 완만하게 끝난 줄 알았는데.”
“맞습니다. 완만하게, 아주 이상적인 결과로 마무리되었죠. 그래서 이러는 겁니다.”
“백 번 이상 비슷한 상황을 겪으면 이런 생각이 들곤 해.”
“움직이지 마시죠. 당신이 아무리 빨라도 제가 손가락을 당기는 것보단 빠를 수 없을 테니. 총알을 피할 수 있다고 이 총까지 무시하면 머리가 날아갈 겁니다.”
에이네는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보았다. 벽을 투과해 현과 현의 뒤에서 그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는 여자가 보였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 현이 입술만 움직여 말했다. 현에게 그런 습관은 없었다. 그 행동은 누구에게 보여주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 예상은 정답이었다.
“보고 있지? 잘 봐둬. 얕보이면 이렇게 되는 세상이야. 만인이 보는 앞에서 배신을 당했는데 누구도 제지하지 않아.”
현의 근처에는 기업과 국가 소속으로 보이는 여러 사람이 있었다. 그들 누구도 현을 도와주지 않았다. 동물원에 들어온 희귀한 원숭이를 보듯이 구경했다.
“누구와 대화하는 거지? 움직이지 마!”
“그건 내가 할 소린데. 그 손가락, 움직이지 않는 게 좋아. 오체가 분시될 거거든. 그리고 내 잔상 가지고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래?”
현이 안개처럼 사라지더니 조금 떨어진 장소에 다시 나타났다. 당황한 여자가 총구를 돌려 방아쇠에 올린 검지를 움직였다. 여자의 손가락이 떨어졌다. 그걸 시작으로 여자의 몸에 여기저기에 푸른색 선이 나타났다.
현은 싸움에 있어서 말을 아끼는 사람이었다. 꼭 필요하다 판단한 말이 아니면 되도록 입을 열지 않았다. 그건 에이네의 교육을 위한 말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있다고 알려 여자의 경계심을 올렸고, 움직이지 말라며 자존심을 건드렸다. 그게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는지는 현도 모른다. 어쨌든 여자는 검지를 움직였다. 여자의 몸을 묶고 있는 마력의 실이 조여들었다.
푸욱. 고기 써는 소리와 함께 여자의 몸이 잘렸다. 오체분시가 아니라 토막이 났다. 여자였던 고기가 흙을 뒹굴었다.
“동작 그만. 내 말을 지키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는 봤지?”
여자는 녹턴의 사원이었고, 현은 이번 일에 끼어든 외부인이었다. 국가와 기업 입장에서 가장 방해되는 것은 현이었다. 녹턴과는 협상을 하면 되지만, 현의 목적은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현이 죽는 걸 방치했다.
토사구팽. 사냥이 끝난 개는 삶아 먹는다. 미리 이야기된 사안이었다.
여자가 죽으며 심상치 않음을 느낀 사람들이 움직였다. 그들의 마지막은 한결같은 죽은 여자의 절차를 따랐고, 비슷한 부산물을 남겼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동작을 멈췄다. 현은 겁먹은 사람들 사이를 지나다니며 그들의 몸에 실을 감았다. 현재의 현이 할 수 있는 건 아까 덤벼오던 두 명을 한 번에 처리하는 것이 한계였다. 이 많은 인원들에게 들키지 않고 한 순간에 실을 감을 수는 없었다.
이건 허세였다. 저들이 합심해 협공하면 현은 버틸 수 없다. 그러나 가진 게 많은 놈들은 누구도 목숨을 걸지 않았다.
살아남은 사람들의 몸을 묶은 실이 현의 손에 들렸다.
꽈악. 현이 주먹을 쥐자 마찬가지로 실이 조여들며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죽였다. 그들이 현을 살려줄 생각이 없었듯, 현도 그들을 살려줄 생각이 없었다.
현은 에이네를 찾아갔다.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었어?”
“너한테 공간이동 스크롤을 하나만 빌린 다음 위령 기업 본진에서도 같은 짓을 해주려고 했지.”
“나쁘지 않네. 그래도 아직 시험 볼 자격도 없어.”
“이만하면 됐지…….”
에이네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현은 죽은 사람들을 가리켰다.
“이 장면을 보고 생각나는 거 없어?”
“학살?”
“전략적으로.”
“이이제이?”
“위령과의 연결이 완전히 끊어졌으니 위령은 올 거고. 다른 기업도 크게 다르지 않겠지. 리프턴을 두고 이권과 자존심을 둔 싸움이 벌어지는 거야. 우리는 가서 숟가락만 얻으면 되고. 이 정도는 해줘야 합격 도장 찍어줄 수 있지. 가자.”
현은 에이네를 끌고 본청을 빠져나왔다. 권력의 도원이 햇빛을 받으며 타오르고 있었다. 에이네는 몇 번이나 고개를 돌려 타오르는 본청을 확인했다. 사람이 죽어가는 소리가 계속 나무 타는 소리와 함께 들렸다.
위령에 다른 기업과 국가들까지 끼어들며 사건은 계속 커지고 있었다. 에이네는 이 일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막연히 무서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