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zard’s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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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1
2부 Chapter.11 새 생명과 함께
그 이름은 루린에게 있어서 신조차 뛰어넘는 것.
이런 순간에도 필사적으로 자신을 부르는 이 목소리가 엘의 목소리라는 걸 깨달았다.
엘이 누군지 생각나지 않으면서도 이 목소리가 엘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엘은 누구?
으으윽.
고통이 배가 되었지만, 왠지 그 이름을 가진 존재가 떠오르지 않는 것에 대해서 엄청난 슬픔이 밀려왔다.
그리고 루린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루린. 돌아와. 돌아오지 않으면 나는 죽을 거야. 왜냐고? 너를 데려간 존재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복수할 테니까.
그 복수의 끝에 있는 것은 죽음이겠지. 너를 데려간 존재는 그런 존재일 테니까.
죽는다?
목소리의 주인 죽는다?
그건 안 된다.
절대로 안 된다. 목소리의 주인이 죽는 것은.
자신과 동시에.
언젠가 말했다. 아니 항상 말했다. 엘보다 일찍 죽고 싶다고. 엘의 죽음을 보고 싶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엘을 놔두고 죽고 싶지 않았다.
그를 놔두고 죽고 싶지 않았다. 엘이 자신이 모르는 세상을 살아가는 건 싫었다.
만약 새하얗게 눈이 내리던 어느 날 떨어졌던 별똥별에 빈 소원을 취소할 수 있다면.
그 소원은.
-엘과 함께 죽는 것.
그렇게 죽어서도 함께하는 것.
그러니까 싫었다. 죽는 건 안 된다. 자신은 무로 돌아가고, 엘은 죽는 것.
그것은 함께 죽는 게 아니다.
-그러니까 그건 싫다!
루린은 눈을 번쩍 떠서 어둠 속 빛에 손을 가져갔다. 그 순간 모든 기억이 돌아왔고, 어둠이 새하얗게 변해 버렸다.
“으으?”
눈을 뜬 루린은 자신이 돌 위에 누워있다는 걸 깨달았다. 왠지 허리가 아팠다.
“뭐냐 여긴?”
루린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루린의 눈앞에는 장로가 있었다.
자신의 할아버지가. 물론 루린은 장로보다야 엘을 찾았다.
“장로! 엘은! 엘은 어딨냐!”
그러자 메디다나가 루린에게 허허 웃으며 한쪽을 가리켰다.
엘은 쓰러져 있었다.
“그대! 그대에에에?”
루린이 엘을 향해 달려갔다.
“장로? 엘이 왜 이러냐?”
“괜찮다. 자연의 섭리에 잡혀간 너를 데려오겠다고 무리를 해서 쓰러져 있는 것뿐. 깨어날 거란다.”
“엘이…?”
“그래.”
“…….”
루린이 입을 앙다물었다. 대체 자신은 엘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받는 걸까.
그 무한에 가까운 엘의 마음을.
자신은 얼마나 보답했는가.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널 데려오겠다고 성지 지하에 다녀왔다. 아마 고생을 많이 했을 거야. 그곳은 오로지 정신력으로 버텨야 하는 곳이니까.”
으윽!
마음이 아파 왔다. 루린은 엘의 옆으로 가서 입을 꽉 깨물었다. 그 깨문 입술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나는 바보다 장로. 정말로 바보다.”
“얘야? 그렇지 않다. 그리고 섭리를 이겨낸 이상 너와 엘은 완전한 존재가 되었고.”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루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장로는 그런 루린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다른 말을 꺼냈다.
“아,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말하기 뭐하지만, 얘야, 넌 임신했단다.”
“……임신?”
“그래.”
“나, 엄마가 되냐?”
“그렇지.”
“엘의 아기?”
장로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엘이 언젠가 말했다. 아기를 갖고 싶다고. 나는 잘 모르겠지만, 엘이 갖고 싶다면 가지게 해줄 거다. 그러니까 임신했다면 좋은 거 같다.”
“그래? 그럼 루린. 너에게 두 가지 선택이 있다.”
“선택?”
무슨 선택? 아기를 낳기로 했는데 무슨 선택이? 루린이 그런 얼굴을 하자 장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드래곤의 몸으로 알을 낳아서 그 알을 부화시킬 때까지 품고 있는 것. 그리고 인간의 몸으로 인간처럼 아이를 낳는 것. 너는 어떤 것을 선택할 테냐?”
그런 물음이었나?
루린은 웃음이 나왔다. 그거야 전혀 고민할 필요도 없는 거라서.
“당연히 인간이다! 나는 드래곤이지만. 엘은 인간이다. 나는 엘을 사랑한다. 그리고 엘에게 아무것도 해준 것 없으니까,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인간으로 살아갈 거다. 아기를 낳는 것도 똑같다!”
“드래곤으로 알을 낳으면, 힘든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도? 그리고 태어난 아기에도 그다지 지장이 없다. 어차피 인간으로 태어나도 그 아이는 드래곤으로 변할 수 있게 되겠지.”
“나는! 인간의 고통까지 포함해서 엘의 곁에 있겠다!”
루린은 단호하게 말했다.
“내 아가가 드래곤의 모습이 되는 것, 그건 그 아기의 문제다. 하지만 나는, 엘과 같은 인간 모습으로, 그렇게 엘과 같이 죽을 거니까.”
“그러냐? 드래곤족의 장로로서는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만, 이제와 말릴 수 있는 일도 아니겠지.”
“물론 그래도 나는 드래곤이니까. 그 존재의 의미까지는 잊지는 않는다. 그건 걱정마라. 그저 엘과 같은 모습으로 평생을 지내고 싶을 뿐이니까.”
루린은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엘의 등에 자신의 몸을 포갰다.
가슴에 따뜻함이 느껴져 들어왔다.
“그대. 돌아가자! 우리 집으로!”
그렇게 루린은 성지에서 사라졌다.
장로는 그걸 보며 생각했다.
출산쯤 놀러 가야겠다고.
꼴을 보니 자신이 안가면 보여주러 올 것 같지도 않은 모습이라서.
***
루린은 엘을 침대에 눕혔다.
그런 루린은 엘의 손에 상처가 나 있는 걸 본 순간, 뭔가 울컥하는 감정이 치솟아올랐다.
“그대, 무슨 고생을 한 거냐. 나 모르는 사이에. 그런 거 안 된다.”
입술을 깨문 루린.
“으응?”
바로 그때 엘이 깨어났다.
엘이 눈을 떴다!
“오오? 그대!”
루린이 엘 옆에 누워서 엘의 손을 쓰다듬다가 놀라서 일어났다.
“괜찮냐 그대?”
“바보야, 그건 내가 할 말이지. 괜찮은 거야?”
엘이 잠시 황당한 얼굴을 하더니 곧 루린을 와락 껴안았다. 루린이 그 품속에서 고개를 끄덕인다.
“그, 그렇다. 난 괜찮다. 어둠 속에서 그대가 데리러 와서, 괜찮았다. 그대를 잊어버린 나 따위, 최악의 쓰레기였다….”
“응?”
엘은 깜짝 놀랐다.
루린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져 흘렀기 때문이다. 루린은 엘의 품속에서 그렇게 하염없이 울기 시작했다.
“그렇다. 나는 쓰레기다. 바보다. 멍청이다. 죽어야 한다! 그런데 내가 죽으면 그대도 죽어야 하니까 그건 안 되는거다아아… 흐으으윽.”
“바보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돌아왔으니까 된 거지. 그리고 루린이 잊고 싶어서 잊은 건 아니잖아? 자연의 농간일 뿐. 자 뚝.”
엘이 그런 루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열은 거짓말처럼 사라졌고 정신도 말짱. 그렇다면 그 자연의 섭리라는 것을 완벽하게 거스르고 짓밟은 것이겠지.
엘은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그러냐? 그럼 안 운다.”
루린도 눈물을 멈추곤 엘의 품속에 떨어졌다.
“그리고 그대…?”
“응?”
침대 밖으로 떨어져 나간 루린은 잠시 꾸물거린 후에 입을 열었다.
“나, 임신한 것 같다. 장로가 그렇다고 했다.”
“아, 그렇지?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
엘이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낳냐?”
“그럼 당연히 낳아야지 그걸 말이라고 해?”
“좋다, 그럼 낳아준다!”
루린이 고개를 마구 끄덕이며 선언했다.
“아이고 그러세요. 그거 감사합니다.”
“히히히.”
루린이 드디어 웃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 울더니 전환이 빨라도 너무 빨랐다.
“그대.”
“응?”
“딱 오늘만 그대를 위해서 서비스한다. 부끄러움을 참는 거는 정말로 절대로 힘들지만!”
“뭐?”
아기를 낳는다는 선언을 한답시고 엘에게서 떨어져 침대 밖에서 꾸물거리던 루린이 엘에게 달려들었다.
“그대!”
그리곤 엘을 과감하게 껴안았다.
엘이 생각했을 때 이게 진짜 루린인가 싶을 정도로.
“루린?”
“왜 그러냐?”
“그건 좋은데, 이젠 이렇게 몸을 막 내던지면 안 된답니다.”
“……왜냐?”
“임신했잖아!”
“……괜찮다. 내 아기도 드래곤이니까 튼튼하다. 어디 인간들의 아기랑은 다른 거다. 히힛.”
그러고 보니 미래의 딸이 그랬지. 루린은 철저한 방임주의였다고.
엘의 머릿속에 벌써부터 그 낌새가 보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안 됩니다! 자, 일단 앉아.”
“으으으?”
뭐냐. 모처럼 결심하고 이것저것 다 해주려고 했는데. 루린은 시무룩해졌지만, 그래도 일단 앉으라니까 침대에 앉았다. 평소처럼 앉으려고 했더니 엘이 그런 루린의 몸을 받쳐서는 매우 조심스럽게 앉히기까지.
“그대! 아직 괜찮다. 그리고 이 몸은 튼튼하다고… 꺅?”
엘이 루린의 셔츠를 걷어 올렸다. 새하얀 배가 노출된다. 전혀 부풀지 않은 새하얀 배가.
엘이 그 배를 살짝 어루만졌다.
“으으? 그대?”
“이 안에 있는 건가? 아기가?”
“……모른다 그런 거.”
“뭔가 굉장하네.”
엘이 새하얀 배에 귀를 가져다 댔다. 루린은 당연히 간지러워졌다.
“그대, 그러니까 아직 임신 초오오오기다! 뭐하는 거냐. 으으,”
“초기란 건 어떻게 알아?”
“……그런 건 안다. 이 몸이니까.”
“……? 그럼 임신했다는 것도 전에 눈치챘어?”
“몰랐는데?”
그런 뭘 안다는 거야? 엘은 어이가 없었다. 이런 뻔뻔함이 루린 그 자체기는 하지만.
“그러니까, 으우!”
루린이 엘의 셔츠를 뒤집어 올렸다. 그리고 거기에 손을 댔다.
“내 배는 왜?”
“그냥 똑같이 한 거다. 오늘은 내가 다 해주기로 했으니까. 이, 이런 것도 가능하다.”
“어?”
루린이 엘의 바지를 벗기려고 들었다. 그래서 엘은 그런 루린을 안아 들었다.
“우으으? 또 뭐냐!”
“뭐긴, 조심해야 한다니까. 그렇게 과격하게 움직이면 안 돼.”
루린이 바지에 손을 대면서 달려든 것을 과격한 움직이라고 표현한 엘.
루린은 어이가 없어졌다.
“그러니까 그게 아니다아아아!”
“자, 자, 아니건 기건, 일단 누워. 누워서 진정을 좀 해야 돼. 성지에 다녀오느라 엄청 고생했으니까.”
엘은 루린이 지금 만나서 처음 있다고 말할 정도로 과감한 행동을 많이 하고 있었으나, 아기를 가졌다는 말에 정신이 없어서 그것을 인지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
루린은 그런 엘을 잠시 원망스럽게 쳐다봤다. 괜히 얼굴만 빨개지고 귀만 빨개지고 심장만 두근거린다.
“그대.”
“응?”
“그럼 그대도 옆에 누워라.”
“옆에?”
그 말에 엘이 옆에 눕자, 루린은 빠르게 그런 엘의 몸을 타고 올라왔다.
“히히, 내가 이겼다. 그대는 잡혔다. 내 엉덩이 아래에!”
“……으응?”
“그리고 그대. 아기보다 내가 먼저다! 알겠냐아!”
루린은 그렇게 소리치면서 엘의 입술을 향해 몸을 굽혔다. 루린과 엘의 입술이 만났다.
“거야 루린은 당연히 내가 가장 사랑하지.”
딸도 그만큼 사랑하게 되겠지만.
엘은 마음속에서 그렇게 말했다. 일단은 마음속에서만.
“나도 사랑한다! 사랑한다! 너무 사랑한다. 그대 없으면 안 되니까! 절대로 안 된다. 암! 사랑해서 사랑해서 사랑한다. 그대보다 훨씬 더 사랑한다!”
루린은 평생치의 분량을 쏟아내는 것처럼 엘을 향해 사랑해를 연발했다.
엘은 그런 루린을 잠시 멍하게 바라보다가, 부끄럼에 얼굴이 빨갛게 변한 걸 이제야 깨닫고는, 루린을 덮쳐버렸다.
“끄아악! 그대! 안 된다! 안 된다! 거긴, 거긴 배다아아아! 왜 배만 좋아하냐아아아! 아직 아기 안 나온다아!”
루린의 절규가 레어에 울려 퍼졌다.
-2부 끝-
작가후기
안녕하세요.
처음으로 작가 후기를 남깁니다.
왜 이렇게 갑작스럽게 끝내냐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하지만 어느 마법사의 식당은 사실 스토리상 1부로 완벽히 끝난 소설입니다.
아쉬워하는 분들이 많아서 2부를 구성하게 되었는데, 사실 2부는 외전 모음집이라고 하는 편이 더 나은 구성이었습니다.
그 외전 모음도 드디어 모두 고갈되어 임신으로 끝나버리게 됐습니다.
저도 아쉽지만 시작했으면 끝맺음이 있어야 하는 법!
물론 완벽한 끝은 아닙니다.
전혀 평범하지 않은 딸을 키우게 된 엘과 루린의 고군분투기를 그린 3부를 쓸 수 있게 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찾아뵐 수 있기를 바라며, 일단 어느 마법사의 식당은 여기서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부족한 글을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