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perienced Newbie RAW novel - Chapter 64
64
재액의 주문
호르스의 태도는 시종일관 정중했다. 엘프와 요정이 보여서 싸움을 걸었다는 미친놈으로는 안 보였다. 그러나 실제로 호르스는 엘프와 요정의 시체들 틈에서 죽어가고 있었다.
“리센이 제자는 기가 막히게 뽑았군.”
“칭찬 감사합니다.”
호르스가 고개를 숙였다. 바늘도 안 들어갈 것 같은 완벽한 인사였다.
“날 찾았으니, 이제 어쩔 거지? 위원회에 연락할 건가? 아니면 여기서 바로 포박? 리센은 날 원한다고 하던데.”
“프라그하 님에게 들으셨습니까? 아니면 다른 분들? 어쨌든 전에는 그랬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오히려 김우현 님께서 이 정세가 오래 이어지도록 해주셨으면 하십니다.”
지금의 정세가 이어지길 원한다. 전에도 들은 적 있는 말이었다. 김 교수가 현에게 그런 말을 했었다. 현이 이대로 오래 도망쳐주는 편이 과학에게 이득이라고. 그러나 그건 과학이 위원회에게 견제당할 입장에 있으니 나온 말이었다. 리센이 그걸 원한다면 정세를 이용해 그도 노리는 바가 있다는 것이다. 현은 그게 뭔지 알 것 같았다.
“위원회를 먼저 분열한 것이 리센이라던데, 역시 무능한 놈들 때문인가?”
“그렇습니다.”
리센이 무능한 지배층에게 무슨 억하심정이 있는지는 현은 모른다. 알 생각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전부터 그러한 자들에게 반감을 드러냈었고, 그 일로 충돌이 벌어진 적도 있었다. 리센이 위원회에서 따로 놀기 시작했다면, 그 이유는 그거일 거라고 전부터 짐작했다.
“그놈은 변한 게 하나도 없군. 그래서, 용건이 뭐지?”
“당신을 만나면 가장 먼저 이걸 전해드리라고 하셨습니다.”
호르스가 내민 건 양자폰이었다. 합당한 선택이었다. 그 자체로 도시 하나의 가치에 필적하는 양자폰은 구하고 싶다고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다만, 현은 운이 좋았다. 이미 가지고 있지만, 하나 더 준다고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현은 양자폰을 고맙게 받아 챙겼다.
호르스는 그 행동을 유심히 보다가 입을 열었다.
“이미 하나 가지고 계시군요.”
“… 왜 그런 말이 나오는지 이해를 못 하겠는데.”
“정보의 중요성을 알고 계시는 분이라 들었습니다. 그런 분이 단절되었던 정보를 접할 수 있는데 그걸 뒤로 미룬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미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면 그것도 이해가 되는 행동입니다.”
“위원회에 셜로키언이 둘이 됐군.”
김우현이라는 인간에 대해 알고 있으며 관찰력이 뛰어나다면 충분히 도달할 수 있는 결론이다. 문제는 그 결론을 도출해낸 인간이 1분 전까지 피를 줄줄 흘리며 죽어가던 인간이라는 것이다. 상처를 회복했다고 해도 떨어진 체력은 그대로고 머리에 피도 잘 돌지 않을 건데 저런 지적을 해댄다. 까탈스러운 리센이 제자로 들일만도 했다.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리센이 다른 말은 없었나?”
“달리 없으셨습니다.”
“그럼 이제 내 차례군. 나를 찾은 건 우연이라고 했는데, 이 근처에는 무슨 일로 왔지?”
“김우현의 추적을 계속하던 중 겸사겸사 요원 일을 하나 처리하기 위해 들렀습니다. 솔직히 당신을 만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천기를 읽는 도사보다 먼저 목표를 이루다니, 역시 세상일, 근원 세계 돌아가는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법이군요.”
“천기를 읽는 도사?”
“추주성의 후예가 윌리엄의 제자와 함께 당신을 찾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만난 게 리프턴에서 였는데, 그 후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군요.”
호르스는 상당히 수다스러웠다. 자신을 만나서 수다스러운지, 아니면 원래 성격이 이런지는 현도 판단하지 못했다. 보다 보면 윤곽이 잡힐 것이다.
현은 추주성의 후예와 윌리엄의 제자가 자신을 쫓고 있다는 정보만 고이 머릿속에 넣어두었다. 곤륜의 거성, 곤륜 신선 추주성. 만난 적은 없지만 그 명성은 현도 알았다.
“말씀드리고 싶은 게 하나 더 있긴 한데, 그 전에 작은 부탁 하나 괜찮겠습니까?”
“들어보고.”
“큰 부탁은 아닙니다. 한 번만 저와 싸워주실 수 있겠습니까?”
다소곳이 모은 그의 손은 흥분으로 잘게 떨리고 있었다.
***
“위원회 사람을 만나서 잡혀가나 했는데. 이건 또 뭔 일이야?”
서로 마주 보고 선 호르스와 현을 보며 에이네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말했다.
“너라면 모르겠지. 나는 이해한다.”
에이네 옆에 선 이성철이 말했다.
세 번의 죽음과 그 배는 되는 죽음의 위기는 이성철에게서 열정과 호승심을 빼앗았다. 그는 냉철한 겁쟁이, 침착한 도망자가 되었고, 도전에 피가 끓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이성철에게도 한때 저런 시절이 있었다.
강한 사람을 보면 싸워보고 싶고, 내 힘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보고 싶고, 세상에 강자는 또 얼마나 많은지 알아보고 싶었던 열정 넘치는 시절이.
그와 호르스가 다른 점이라면, 이성철은 의욕만 앞서는 쭉정이였다는 거고, 호르스는 이성철이 가진 아티팩트를 모두 사용해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현과 호르스가 대치했다. 호르스는 기대되어 떨리는 몸을 주체할 수 없었다. 김우현이다. 지구 최강이다. 살아있을 때 이미 전설이었으며, 죽어서 신화가 되어가고 있는 남자가 앞에 있다.
“저는 팔 하나를 사용하지 않겠습니다. 그게 형편이 맞을 것 같으니까요.”
호르스와 현이 가진 마력의 차이는 극심했다. 호르스는 위원회에 들어가기 전에도 강했고, 리센의 제자가 되며 위원회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성장했다. 반면 현은 세계에 쫓기는 처지로 제대로 된 지원도 없이 혼자 성장했고, 그 시간도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현의 한계는 뚜렷했다.
‘허, 내가 얕보이는 날도 다 오네.’
호르스는 두 번째 벽을 넘었다. 레벨도 700 중반은 될 것이다. 레벨 상승은 500 이후부터 더뎌지기 시작해 두 번째 벽을 넘을 시점, 700 전후로는 하나 올리는데 수년씩 걸리기도 한다. 그쯤이면 몸도 그릇도 거의 완성된 시점이며 그 이상은 재능과 노력이 모두 받쳐지는 사람들을 위해 열려 있는 영역이다.
호르스는 강했다. 객관적으로 강하다는 건 이견이 없다. 엘프와 요정에게 싸움을 걸었듯 다른 자들에게도 싸움을 걸어왔다면, 그러고도 아직 살아 있다면 보이지 않는 부분, 임기응변과 가진 기술도 뛰어날 것이다.
그래서 그게 어쨌다고.
“필요 없어.”
아직 레벨도 없고, 바벨 시스템이라는 이름도 없던 시절, 현은 첫 번째 벽을 막 넘은 상태로 두 번째 벽을 넘은 무인과 마법사를 죽이고 다녔다.
“그냥 덤벼.”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기술로 밀려본 적이 없었다.
“다치실 수도 있습니다.”
“다치고 죽는 건 내가 정한다. 그리고 날 죽이려면, 최소한 초월자 두 명은 데려와.”
현이 손가락을 까딱였다. 강기사가 땅에서 뱀처럼 튀어 오르며 호르스를 노렸다. 검은색의 밀도 높은 강기였다.
‘이걸 왜 느끼지 못했지?’
강기란 마력의 덩어리. 아무리 은밀히 숨겨도 본질은 마력이다. 마력 적성만 높다면 강기가 어디서 공격해오건 알 수 있다. 그러나 방금 그 공격은 눈으로 보기 전까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의문을 느끼며 호르스는 보법을 밟아 강기사를 피했다. 그리고 그대로 발끝에 힘을 줘 현을 향해 돌진했다.
“리센의 제자라면서 싸움법은 리센과 다르군.”
“제가 사부님에게 배운 건 마법, 싸움법까지 배우진 않았습니다.”
리센은 중거리와 원거리를 선호하는 마법사였다. 원거리에선 절대적인 화력을 자랑했으며, 중거리에선 보법과 마법으로 거리를 벌리며 전사들을 괴롭히는 게 그의 싸움이었다. 반대로 호르스는 마법사이며 전사였다.
사부 리센과 달리 호르스는 마법을 사용한 근접전을 선호했다. 무공을 마법으로 재해석해 펼치는 그의 박투는 리센도 인정하는 일품이었다.
강기와 흡사한 마력을 두른 주먹이 머리 옆을 스쳤다. 현은 노련하게 호르스의 공격을 흘리고 피했다.
지난 6개월, 무덤과 유적을 전전했지만 싸움이 없지는 않았다. 무덤을 지키는 무덤지기, 유적에 둥지 튼 몬스터. 제법 전투를 치러왔다. 이성철이 고르고 고른 장소니만큼 무덤지기와 몬스터의 수준도 낮지 않았고, 현은 그 경험을 허투루 쓰지 않았다.
마력은 크게 진보하지 않았지만, 현의 기술은 몇 단계 더 진보했다.
“말도 안 되는 수준의 반사 신경!”
호르스가 일갈하며 손발을 휘저었다. 그의 손에는 불꽃이, 발에는 날이 달린 얼음 부츠가 각각 감싸여 있었다.
마력 덩어리인 그것들은 어지간한 무공보다 파괴력이 뛰어났다. 그러나 현의 천마신공은 천마가 인정한 가장 뛰어난 무공이었다. 어지간한 게 아니라 최고였다.
팡! 박수와 함께 호르스의 손에 있던 불꽃이 수백 개로 갈라지며 현을 덮쳤다. 현은 유가축골공으로 만든 유연한 신체와 천마신공의 보법으로 불꽃을 피해냈다. 호르스의 손에 번개가 아른거렸다. 파지직! 생겨나기 무섭게 뻗어 나간 번개가 땅을 타고 달렸다. 현이 위로 뛰어오르자 번개가 일어나 현을 따라왔다. 하늘에선 현보다 한 박자 빨리 뛰어올랐던 호르스가 양손에 살기가 넘실거리는 마력 덩어리를 들고 있었다.
살기는 공간을 제압하며 현이 빠져나갈 구멍을 막았다. 아래는 번개, 위는 살기. 피할 장소는 없다. 외통수입니다. 호르스는 그런 눈을 하고 있었다.
‘여기까진가.’
처음부터 이길 거라 생각하진 않았다. 리센이 제자로 받을 정도의 인재. 레벨을 헛먹진 않았다. 그는 레벨 이상의 기량을 가지고 있었다. 현도 레벨 이상의 기량을 가지고 있고, 두 번째 벽을 넘은 강자를 상대로 지지 않을 자신도 있지만, 호르스에게 닿을 만큼은 아니었다.
무인으로서의 현은 말이다.
살기가 제압한 하늘에 환계의 문이 열렸다. 한둘이 아니었다. 수백 개의 문에서 수백의 정령이 나타났다. 현이 마력을 정령에게 전달했고, 정령들은 다시 제들끼리 마력을 전달했다. 살기로 제압된 하늘에 구멍이 뚫렸다.
수천의 강기사가 팽팽하게 당겨졌고, 호르스는 제공권을 잃었다. 살기에서 자유로워진 현은 거미처럼 강기사 위를 걸어 호르스의 공격에서 벗어났다.
수비와 공격은 하나. 현은 손바닥 뒤집듯 수비를 공격으로 바꾸었다. 수백의 정령이 움직였다. 강기사가 전후좌우상하의 여섯 방위를 점하고 호르스를 조였다.
호르스는 빈틈을 찾았다. 빠져나갈 수 없다. 실의 감옥은 유동적이었다. 정령은 그의 작은 움직임에도 반응해 도주로를 봉쇄하고 있었다. 그가 상대하는 건 현 혼자가 아니었다. 현과 현의 휘하에 있는 수백의 정령이었다.
기계가 아닌 호르스는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수백의 지성을 뛰어넘을 수 없었다.
‘갇히면 진다.’
대련이다. 실전과는 다르다. 져도 죽지는 않는다. 그래도 호르스의 긴장감은 최고에 달했다. 지구 최강에게 지기 싫다는 호승심. 객관적으로 자신보다 약한 그가 어디까지 보여줄지에 대한 호기심. 두 가지 감정이 그를 움직였다.
리센의 장기는 다양한 종류의 고화력 폭격이었다. 제자인 호르스도 리센의 장기를 이어받았다. 근거리를 추구하는 그의 전투법에 맞춰 개량해서.
호르스의 양손에 마력이 모였다. 공격 마법의 사용법은 폭격이 전부가 아니다. 무슨 마법을 어떻게 쓸지 정하는 것 또한 마법사의 덕목 중 하나이고, 호르스는 그 점에서 뛰어난 마법사였다.
호르스는 양손을 모아 합장했다. 손에 모인 마력이 서로 충돌하며 반발했다. 쿠구구구궁! 반발로 밀려나는 손에 억지로 힘을 줬다. 호르스를 중심으로 충격파가 퍼졌다. 충격파는 강기사를 잡아먹고 정령들을 역소환시켰다. 호르스를 중심으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