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003
1003화 얼마든 덤벼봐
추격수는 고개를 저었다.
“허, 신수족 놈들. 과연 겁이 많은 놈들이구나. 현실과 마주할 줄도 모르고 자라 새끼처럼 머리를 숨기는 꼴하고는.”
그때, 추격수의 그림자가 입을 움직였다.
“한 외부인이 호수인신 이족을 쫓아 이곳까지 왔다고 합니다. 호수인신 이족들은 전부 신수족이 처리해버렸습니다.”
“외부인이라고?”
추격수는 잠시 놀란 듯했으나 이내 피식 웃어버렸다.
“진양이군. 그 멍청한 놈들은 죽어도 싸다! 괜히 귀찮게 내가 나설 일도 없으니 오히려 잘 됐군.
싸움을 벌이러 온 사람이 본거지만 박살 내고 조각을 회수할 리 있겠느냐? 이런 간단한 계략조차 이해하지 못한 것도 모자라 이곳까지 달고 오다니. 정말로 답이 없는 놈들이구나. 그런 놈들은 죽어도 싸다.”
“떠나시겠습니까? 아니면 싸우겠습니까?”
그림자가 물었다.
“지금은 대사에 신경 써야 할 때다. 신수족과 싸워봐야 득이 될 게 없어. 게다가 어차피 떠날 때도 됐으니 상관은 없다. 허나 넌 당분간 이곳에 남도록 하거라.
진양을 잘 감시하고 있다가 그가 신수족의 영지를 뜨는 순간 죽이도록 하거라. 이곳까지 쫓아온 이상 절대로 살려 보내선 안 된다.”
말을 마친 추격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거대했던 그의 몸은 천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는 어느새 평범한 사람의 크기로 줄어들었다.
얼굴이 다소 각지고 피부가 까만 것을 제외하면 인간과 큰 차이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몸에선 평소보다 수십 배나 더 강력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가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발자국에서 짙은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추격수는 이내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다.
그러나 그의 그림자는 여전히 제자리에 남아있었다.
그는 지면에 붙은 채 헤엄치듯 어둠을 헤쳐나갔다.
천천히 신수족의 영지로 다가간 그는 곧바로 나뭇잎 뒤로 몸을 숨겼고, 곧바로 모습을 감추었다.
* * *
진양은 계속해서 눈을 감은 채 탁본한 옥간의 내용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노인이 찾아왔다.
호수인신 이족의 뒤를 쫓았으나 놀라 도망가던 이들이 스스로 죽음의 구역으로 들어가 전멸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아쉽군요. 꼭 물어봐야 할 일들이 있었는데. 이렇게 되면 더 이상 물어볼 수가 없겠네요.”
진양은 아쉽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역시 수상해.’
신수족들은 겉으로는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었으나 아무리 봐도 속은 그렇지 않은 듯했다.
이러한 느낌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강해져 갔다.
사실 진양은 처음 이곳에 들어올 때부터 모든 상황에 대해 각오를 마친 상태였다.
어차피 이곳에는 도군이 없다.
도군이 없는 이상 무슨 일이 벌어지든 목숨이 위험한 상황까지 치닫는 일은 없을 것이다.
대황에서는 진양이라는 이름만 대도 충분히 통하는 부분이 많다.
그동안 쌓아온 명성 덕분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가희라는 든든한 뒷배 덕이 훨씬 더 컸다.
하지만 외층 공간에선 전혀 그렇지 않다.
대황에서 가늠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신수족들이 진양의 체면까지 살펴줄 것이라곤 애초부터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식물과 관련된 수련법을 익혔다고 해서 모두가 선량한 건 아니다.
지성을 가진 생명체라면 누구든 사심을 품기 마련인 법이니까.
때문에 진양은 처음부터 신수족을 믿지 않았다.
상대가 호의를 베푸는 건 어디까지나 그들의 이익에 해를 끼치거나 위협을 가하지 않을 때의 얘기다.
게다가 아무리 백아농이라는 연결고리가 있다고 해도 아무 거리낌 없이 보관해두었던 서적과 공법을 전부 보여줄 리는 없다.
진양은 이곳에 있는 모든 책을 살펴보았다.
어느 정도 빠진 부분이 있긴 했지만 신수족이라 불리는 나무 인간들이 이곳의 원주민들이라는 사실만은 확실하게 알아낼 수 있었다.
다른 생명체들에게 핍박을 받는 원주민이 아니라, 반대로 다른 생명체들을 압도하고 있는 원주민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들은 호수인신 이족들을 멸구시키고 추격수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이러한 점만 봐도 추격수가 이곳에 있다는 건 증명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서로 간에 아무런 충돌이 없다는 건 모종의 거래가 있었거나 애초에 한 패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신수족이 추격수가 이곳에 있다는 걸 모르고 있을 리 없다.
추격수에게 그럴 만한 능력이 있었다면 아마 지금쯤 순천사 거점을 힘으로 짓누르고도 남았을 것이다.
다시 찾아온 노인이 궁금한 게 없냐고 물었을 때, 진양은 솔직하게 추격수를 찾아 이곳까지 왔고, 그에게 무언가 물어볼 것이 있다고 대답했다.
“추격수라. 아주 오래전에 한 번 만난 적은 있었지. 다만 상대하기 까다로운 녀석인 만큼 그 이후로는 왕래가 없었다네.
녀석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고? 아마 쉽지 않을 걸세. 자칫하단 목숨을 잃을 수도 있으니 신중하게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걸세.”
노인은 태연하게 대답을 하면서 진양을 말리기까지 했다.
“그래도 꼭 찾아가서 물어봐야 할 일이 있어서요. 계속해서 찾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어르신, 그동안 잘 챙겨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대황으로 돌아가게 되면 백아농 대인께도 안부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이곳에선 추격수를 찾을 수 없다는 건 확실해졌다.
노인의 반응으로 보아 추격수와 한패는 아닌 듯했다.
게다가 그는 진양을 적극적으로 말리기까지 하고 있었다.
도무지 왜 이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노인이 진양을 죽일 생각이 없다는 사실만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는 진양을 말린다기보단 스스로 상대에게 목을 바치는 걸 막으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악의적으로 진양을 노린 건 아니니 진양도 뭐라고 할 말은 없었다.
애초에 이들이 진양을 도와야 할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진양은 곧바로 신수족의 영지를 빠져나왔다.
이 모습을 보고도 막아서는 나무 인간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영지를 벗어나기 무섭게 본능적으로 엄청난 위험이 감지되었다.
진양은 재빨리 옆쪽으로 몸을 피했다.
주위를 살폈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동술을 펼치고 살펴봐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또다시 위험이 감지되었다.
진양은 본능적으로 몸을 날려 위험을 피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가슴에 묵직한 일격을 맞고 말았다.
진양은 곧장 잔상을 남기며 반대로 날아가 버렸다.
간신히 중심을 잡고 멈춰선 진양은 자신의 가슴 쪽을 만져보았다.
갈비뼈에 금이 갈 정도로 큰 충격이었다.
마치 무언가 묵직한 것이 진양의 가슴을 강타한 것 같은 충격이었다.
진양은 해안에 보관해두었던 수액을 끌어올려 흉부의 상처를 회복했다.
이어서 정신을 집중한 상태로 위험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뇌화 신통력이 발휘되며 강한 빛이 뿜어져 나왔고 다가오는 적을 향해 날아갔다.
그러나 뇌화는 그대로 허공으로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이어서 다시 한번 가슴에 강한 충격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무엇이 자신을 습격한 것인지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다.
뇌화에서 뿜어져 나온 빛에 다소 형상이 흐릿한 그림자가 지면에 붙어있는 모습이 보인 것이다.
뇌화가 사라지고 나자 그림자의 모습도 완전히 사라졌다.
진양은 기합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빛을 뿜어냈다.
도달한 빛이 거대한 나뭇잎 아래를 비추자 흐릿한 형상의 그림자가 여전히 지면에 붙어있는 모습이 뚜렷하게 확인되었다.
진양은 곧바로 그것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그러나 그림자는 전혀 피할 생각이 없는 듯 주먹을 그대로 받아냈다.
콰광-!
굉음과 함께 땅은 새까만 잿더미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림자는 여전히 멀쩡한 모습이었다.
“소용없다, 진양.”
진양의 귓가에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어서 상대의 손에 장검의 형상을 닮은 무기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림자는 눈 깜짝할 사이에 달려들어 검으로 진양의 그림자를 찔렀다.
위험을 느낀 진양은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여 급소를 피했지만 왼쪽 어깨를 예리한 무언가 뚫고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실체화된 무기로 이루어진 공격이 아니었기 때문에 단단한 육신으로도 막을 수가 없었다.
상대가 검을 뽑아내자 찔린 자리에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상처는 여전히 남아있었으나 눈 깜짝할 사이에 다시 사라져버렸다.
진양은 굳은 표정으로 검을 든 그림자를 노려보았다.
한편, 그림자는 이 정도의 상처로는 진양을 죽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진양을 제압하려면 반드시 급소를 노려야만 했다.
그림자가 검을 내던지자 그것은 곧 손과 하나로 합쳐지며 거대한 참수도가 되었다.
그림자는 거대한 참수도를 휘두르며 다시 한번 진양을 향해 달려들었다.
가늘게 떠진 진양의 눈에서 빛이 흘러나왔고, 그림자의 움직임을 더욱 확실하게 살필 수 있게 되었다.
이어서 참수도가 진양의 그림자를 향해 다가오는 순간.
진양은 순간적으로 기혈을 끌어올려 패왕사갑 네 번째 단계를 시전했다.
그리고 몸 주위에 피어오른 빛을 거두며 육신의 힘으로 버텨냈다.
쨍-!
금속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진양은 목을 부여잡은 채 뒤로 물러났다.
목에는 칼로 그은 흔적이 생생하게 남아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진양의 피부를 전혀 뚫지 못했다.
진양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걸리기 시작했다.
“과연 그렇군. 내 눈에 그림자가 더욱 뚜렷하게 보일수록 네 녀석의 힘도 그만큼 강해지는 모양이구나. 하지만 내가 널 볼 수 없다고 해서 널 못 찾을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지?
연체 수도사의 감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잘 모르나 보군.
자, 얼마든 덤벼봐. 어떻게든 내 숨통을 끊어놓는 게 좋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네놈이 이곳에서 죽게 될 테니까.”
진양은 자신의 목을 탁탁 두드리며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
이어서 그의 몸에서 살기가 천천히 흘러나왔다.
모든 빛이 사라지자 거대한 나뭇잎 아래만 머물던 어둠은 곧 이곳을 전부 뒤덮었다.
진양은 눈을 감았다.
눈으로 보는 대신 모든 감각을 최대한으로 개방하며 느끼기로 한 것이다.
그림자 살수의 실력은 도궁 정도로 추정된다.
그러나 밝은 빛이 비칠수록 그의 힘은 더욱 강해진다.
그의 검이 진양의 어깨를 관통하는 순간 확연한 힘의 차이가 느껴졌다.
진양의 몸은 마치 날카로운 칼이 두부를 뚫는 것처럼 쉽게 뚫려버렸다.
어둠이 깔리고 나자 그림자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고, 진양은 조용히 눈을 감은 채 제자리에 서서 그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그때, 위험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진양은 약간 몸을 비틀어 피하며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손바닥에는 두 줄의 검흔이 남았으나 피는 흐르지 않았다.
분명 무언가 잡히는 느낌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잡히지 않은 것이다.
마치 전혀 다른 세계에서 진양을 공격하는 것 같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림자의 공격은 진양에게 그다지 큰 효과가 없는 듯했다.
하지만 그는 물러설 생각이 전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