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043
1043화 그동안 편하게 놀고먹었잖아
용수거인이 이제 막 잡아 뜯어낸 허상을 살펴보려는 순간.
검의와 검강, 검기로 이루어진 날카로운 힘이 그의 용조를 덮쳤다.
순간 모든 허상은 연기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용수거인은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예리한 기운은 해수면을 뚫고 내려갔고, 무려 수천 리에 달하는 공간까지 찔러 들어갔다.
상당히 강력하면서도 빠른 기운이었으나 바다엔 물결 하나 일어나지 않았다.
용수거인의 용조는 다시 사람의 손으로 바뀌었다.
손바닥에 혈흔이 남아있었다.
방금 전 그 힘이 손바닥을 관통하며 지나간 것이다.
용수거인의 눈에 이글거리던 분노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그의 표정은 한층 더 딱딱하게 굳었다.
“참으로 무시무시한 검의구나. 동해인가? 동해에 언제 이런 무시무시한 실력을 가진 검술 수도사가 나타난 거지? 청련검선의 후계자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인가?”
이어서 한참의 침묵이 이어졌다.
용수거인은 마침내 결심한 듯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다시 끝없는 바다로 돌아간다.”
대부분의 경우 일반적인 수도사가 알고 있는 건 표면에 불과하다.
모두가 청련검선을 과거 동해에서 일검에 영기를 수많은 청련(青蓮, 푸른 연꽃)으로 만들어 수만 리 내에 비를 내리게 만든 인물로 알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청련은 그의 호, 검선은 검술 수도사 사이에선 신선과 같은 이들에게만 붙여지는 일종의 존칭이다.
이토록 과장된 칭호가 사용되는데도 아무도 반대하지 않는다면 그건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모두들 당시의 일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만 청련검선이 어떻게 검을 휘두른 것인지는 모른다.
그가 남긴 사적은 많지 않다.
그나마 가장 널리 알려진 건 이 일이 유일하다.
이러한 점으로 보아 그는 과시를 즐기지 않은 사람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굳이 이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이야기만 듣고 칭찬을 한 게 전부다.
그러나 용수거인은 진상을 알고 있었다.
과거 끝없는 바다에선 수많은 이들이 대황을 노리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한 도군 실력을 가진 해족이 동해로 와서 만 장에 이르는 거대한 파도를 일으켰다.
엄청난 양의 바닷물을 이용하여 대황의 동쪽 국경지대를 전부 뒤덮어버리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순식간에 허사로 돌아갔다.
청련검선의 일검에 의해 도군 해족이 일으켜낸 엄청난 위력의 파도가 일순간에 제압된 것이다.
엄청난 위력을 자랑하던 도군 해족은 그렇게 죽어버렸다.
어떻게 죽었을까?
파도를 제압한 청련검선은 가볍게 한 번 더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도군 해족은 자신을 벤 자가 누구인지도 보지 못한 채 상처를 입었다.
그 상처의 크기는 매우 작았다.
미간에 바늘구멍만 한 아주 작은 상처 하나가 전부였던 것이었다.
그러나 이 상처로 인해 그는 영혼과 이성이 모두 흩어지는 죽음을 맞이했다.
이 일로 더 이상 그 누구도 감히 대황을 넘볼 수가 없게 되었다.
수많은 대황 사람들은 검술 수도사를 두고 도를 이루기 힘들다, 수명을 연장하기 어렵다, 정도가 아니다, 너무 극단적이다라고 평가했다.
많은 요족들은 비로소 대황 사람들이 이런 평가를 내린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분명 수많은 단점을 안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검술 수도사의 살상력이 세계 최강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다.
시대를 막론하고 살상력만 놓고 본다면 검술 수도사는 단 한 번도 서열 일 위를 내어준 적이 없다.
어쨌든 이 사건 이후로 동해는 한동안 잠잠해졌다.
용수거인은 조용히 자신의 손바닥에 난 상처를 살펴보았다.
무언가에 의해 관통되며 생긴 상처는 오랫동안 회복되지 않았다.
상처에 남은 예리한 기운은 그의 힘으로도 한동안 지울 수가 없었다.
정확히 어디서 날아온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대략적으로 동해에서 날아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토록 먼 거리에서 정확하게 일격을 가하다니.
조금이라도 반응이 늦었다면 일검은 그의 미간을 노렸을 것이다.
물론 과거 동해를 호령했던 청련검선에 비하면 한참 모자란 수준이다.
그러나 용수거인으로 하여금 두려움을 느끼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청련검선은 수많은 끝없는 바다의 강자들 마음속에 아직까지도 공포의 그림자로 남아있다.
지금까지도 끝없는 바다에서 인간 검술 수도사를 만나게 된다면 그들의 실력을 한 단계 더 높이 책정하여 전투력을 파악할 정도였다.
심지어 일부 검도에 정통한 검술 수도사들은 끝없는 바다에서 무려 두 단계나 더 높게 평가되기도 했다.
끝없는 바다에서 해족들에게 이런 특별 대우를 받는 건 검술 수도사가 유일했다.
현재 용수거인을 공격한 검술 수도사는 엄청난 경지를 이룬 검술 수도사가 분명했다.
적어도 법상 경지 이상이었다.
용수거인은 수하들에게 분부를 내린 뒤 자신은 곧장 동쪽으로 다시 돌아갔다.
괜히 이곳에 남아있고 싶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더 늦었다간 또다시 일검이 날아와 그의 미간을 뚫을 것만 같았던 것이었다.
* * *
검을 휘두른 뒤에도 제이검군의 표정은 썩 밝지 않았다.
한편 진양은 분신의 기억을 확인하고 있었다.
누가 온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대략적으로 엄청나게 강한 해족이라는 것만은 유추해낼 수 있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제이검군이 검을 놓자 검은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그는 백랑해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느 한 강자가 강제로 엿보려고 하길래 검으로 그를 찔렀소. 그러나 죽이진 못했소. 정면으로 맞서 싸운다면 나 역시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자인 듯하오.”
“그렇군요.”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으나 속으로는 크게 놀랐다.
제이검군조차 장담할 수 없는 상대라니!
제이검군은 이미 과거에 비해 한 단계 더 성장했다.
단순히 경지뿐만 아니라 검도에 대한 깨달음도 한 단계 더 올라갔다.
심지어 사자결 역시 완전히 새로운 경지에 도달했다.
그가 휘두른 일검은 동해를 지나 백랑해까지 날아가는 동안에도 조금도 그 힘이 줄어들지 않았었다.
아마 사자결에서 파생된 순간이동 신통력에도 변화가 생긴 듯했다.
확실히 방금 전에도 이동을 하면서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했다.
속도도 훨씬 빠르고, 느껴지는 압박도 이전에 비해 크게 줄어있었기 때문이다.
제이검군은 오랜 세월 사자결을 유지하는 고행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현재 무거운 짐을 벗어던진 그는 하급 수도사들이 자원을 통해 경지를 올리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이런 그조차 승산을 확신할 수 없는 해족이라니.
그렇다면 도대체 얼마나 강한 존재가 나타났단 말인가!
아무래도 진양의 예상대로 용수거인이 나타난 듯했다.
그는 비록 도군까지는 아니어도 최소 법신 최고봉 이상의 수준을 가지고 있는 자다.
“안심하시오. 일검에 함께 날려 보냈던 검의를 통해 그가 다시 먼 끝없는 바다로 돌아간 것을 확실하게 느꼈소. 만약 그가 또다시 나의 감지 범위 내에 나타난다면 그때는 일검에 숨통을 끊어놓도록 하겠소.”
제이검군은 진양을 위로했다.
하지만 어째서 해족 강자가 진양이 서 있던 곳에 나타난 것인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그는 그저 진양을 도울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기뻤다.
그동안 진양에게 수많은 신세를 졌기 때문이다.
진양에게 원한을 진 이족 하나 베어 넘기는 것쯤은 고민할 일도 아니다.
상대와 정면으로 맞선다면 승산은 삼 할 정도.
일검에 숨통을 끊어놓을 확률은 일 할 정도.
그러나 그는 더 이상 과거의 그가 아니었다.
검의 표식을 가지게 된 만큼 더 이상 정면으로 싸울 필요는 없었다.
진양은 아무 말 없이 포권으로 감사를 표했다.
그리곤 멀리 동쪽을 바라보며 용수거인에게 애도를 표했다.
하필 걸려도 제이검군 같은 괴물에게 걸리다니.
괜히 또 다른 수작을 부리거나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관짝 직행은 뻔했다.
진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눈치 빠르게 반응하며 제이검군을 불러냈기에 망정이었지 그게 아니었으면 지금쯤 저세상으로 건너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원래는 유령호를 챙겨서 움직일 생각이었다.
유령호를 타고 대황에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가 있었기에 적당히 해안 안에 넣어둘 생각이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방금 전 나타났다가 사라진 용수거인과 같은 고수가 또다시 나타나지 않은 이상 유령호는 동해에 있어도 안전하다.
적어도 누군가에게 순식간에 사라질 일은 없을 듯했다.
유령호로 돌아온 진양은 온우백에게 절대로 끝없는 바다 가까이 가지 말 것을 신신당부했다.
웬만하면 동해에서도 서쪽에 머물도록 했다.
그리고 각각 두 가지의 탕이 담긴 호리병을 하나씩 꺼내 온우백에게 주었다.
온우백도 어느 정도 실력을 키울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는 숙환 해소에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이다.
다른 선원들에게는 각자 자신이 맡은 임무에 최선을 다하라는 분부를 내렸다.
온우백에게 볼일을 마친 진양은 흑구를 찾아갔다.
녀석은 늘 그렇듯 갑판 위에 퍼질러 깊게 잠이 들어있었다.
숨을 쉴 때마다 살이 들썩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잠깐 사이에 살이 더 오른 모습이었다.
진양은 녀석에게 다가가 쭈그려 앉았다.
“흑구야, 누군가 유령호를 노리고 있거든. 혹여나 강한 녀석이 찾아온다면 네가 대신 싸워주면 안 될까? 이번에는 운 좋게 외부 진법만 뜯겨져 나가는 걸로 끝났지만, 다음에는 유령호가 통째로 날아가 버릴지도 모르거든.”
그러나 흑구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잘 생각해 봐. 당장 유령호가 사라진다면 어디서 이 정도로 충분한 영기를 공급받을 수 있겠어?
그렇게 되면 탑 안에 있던 영전도 힘을 잃게 될 거야. 너도 잘 알고 있겠지만 그 영전들은 나무 정령이 굉장히 아끼는 보물이나 마찬가지잖아. 이게 파괴된다면 나무 정령이 어떨 것 같아?
게다가 유령호가 파괴되면 나무 정령의 정체가 탄로 나게 될지도 모른다고. 그럼 수많은 강자들이 몰려들 텐데, 그땐 나 혼자서 막지도 못할걸.
내가 그동안 얼마나 나무 정령을 잘 보살펴줬는지는 너도 잘 알고 있잖아. 자기가 하고 싶은 건 뭐든 하게 놔뒀고, 선초를 만들어달라고 조른 적도 없잖아.
하지만 과연 다른 사람은 어떨까?”
나무 정령 얘기를 꺼내니 흑구에게 반응이 있었다.
그는 곧바로 짙은 살기를 뿜어냈다.
진양은 마치 절세의 괴수가 깨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순간 깨우지 말아야 할 괴수가 깨어난 것 같은 환영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러나 환영은 순식간에 사라지며 다시 갑판에 엎드려있는 흑구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미리 얘기하지만 난 괜히 없는 얘기를 지어내는 게 아니야. 널 협박하려는 것도 아니고. 일이 벌어지고 나서 수습하는 것보단 미리 방비하는 게 더 좋지 않겠어? 유령호가 파손된 것도 넌 분명 알고 있었겠지. 이건 누가 봐도 고의적으로 한 거니까.
그동안 여기서 지내면서 편하게 놀고먹었잖아. 그러니까 조금만 도와줘.”
말을 마친 진양을 자리를 떠났다.
흑구는 몸을 뒤척이며 힘겹게 눈을 떴다.
살덩이 사이로 날카로운 눈빛이 번쩍였다.
그가 선실을 바라보는 순간 몸이 쌩- 하고 움직이며 순식간에 선수에 나타났다.
그는 선실 입구를 바라보며 곧바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와 동시에 아무도 느낄 수 없는 강력한 기운이 조금씩 주위로 퍼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