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114
1114화 알고 있는 걸 전부 털어놓다
연 종주는 진양의 시선을 느낀 듯 곧바로 고개를 돌려 진양과 눈을 마주쳤다.
순간 연 종주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한기가 느껴졌다.
마치 진양이 자신의 깊은 곳까지 꿰뚫어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 것이다.
아주 잠깐 빛이 번쩍이듯 스쳐 지나간 느낌이었으나 온몸의 털을 곤두서게 만드는 이 느낌은 도저히 지워지질 않았다.
그는 빠르게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기며 북두성종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이만 돌아간다.”
검은 기름의 바다는 빠르게 수축되며 지면 아래로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다.
북두성종이 설치해두었던 진법도 서서히 소멸되었다.
이어서 이들은 전부 별빛에 둘러싸인 채 남쪽으로 날아갔다.
북쪽.
율종의 승려들은 무목 대사를 향해 예를 갖추었다.
“무목 대사님을 뵙습니다!”
무목 대사도 합장하며 예를 갖추었다.
“소승은 이미 율종에 속한 몸이 아닙니다. 예를 거두십시오.”
이어서 무목 대사는 불골금신을 율종 무리를 이끌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자에게 건네주었다.
지금 알 수 있는 건 자신을 붙잡고 있는 소경 무목 대사가 한때는 율종의 사람이었으나 나중에는 율종에서 도망친 사람이라는 점이다.
보통 종문에 들어가는 건 매우 어렵지만 나오는 것은 그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
때문에, 한 번 어느 종문에 소속되면 곧 평생 죽을 때까지 그곳에 속할 수밖에 없다.
설령 그가 천하를 떠돌아다니다가 재수 없게 모종의 사건에 휘말려 죽게 된다고 하더라도 종문 내에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마치 없는 사람처럼 취급할 뿐.
하지만 그는 여전히 명목상 그 종문에 속한 제자다.
보통 수도사가 종문을 떠나는 경우는 대부분 문주에 의해 축출되거나 종문을 배반했을 때다.
그런데 무목 대사는 율종을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율종의 모든 승려들이 존중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무슨 내막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상당히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무목 대사가 백령을 붙잡고 있었지만 율종의 승려들은 하나 같이 소경이라도 된 것처럼 그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었다.
아니, 아예 백령이라는 존재 자체를 무시하고 있었다.
율종의 승려들이 모두 떠난 뒤, 무목 대사는 백령과 함께 어두운 황야를 가로질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동굴에 도착했다.
무목 대사는 그제서야 백령을 놓아주었다.
그리고 한 곳에 자리를 잡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좌선에 들어갔다.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백령은 우선 조식을 통해 기운을 회복했다.
어느 정도 회복이 되자 그는 벽으로 다가갔다.
그의 몸은 천천히 벽으로 빨려 들어가며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다.
몇 다경 후.
수십 리 밖 떨어진 지면에서 백령의 머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그는 동굴을 돌아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무목 대사, 아직도 날 가둘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
다시 돌아서며 도망치려는 순간 그의 표정이 미소를 지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언제 나타났는지 모를 무목 대사가 자신의 앞에서 좌선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백령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다시 땅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토둔지법(土遁之法)으로 땅속 깊은 곳까지 들어간 그는 곧장 남쪽으로 향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나타난 일 장 정도 되는 작은 동굴에서 허공에 둥둥 뜬 채 눈을 감고 좌선하고 있는 무목 대사를 발견했다.
백령은 화들짝 놀라며 또다시 방향을 틀어 다른 곳으로 도망쳤다.
이번에는 새로운 둔법을 사용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반 다경도 채 되지 않아 가로막혀버리고 말았다.
궁지에 몰린 백령은 자신의 팔 하나를 포기하며 혈둔지법(血遁之法)을 펼쳐 수천 리 너머로 도망쳤다.
하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무목 대사가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백령은 고개를 숙여 아래를 살펴보았다.
처음 도착했던 동굴이 바로 아래 있었던 것이다.
“이 땡중놈아! 도대체 내게 왜 이러는 것이냐! 죽일 생각이라면 속 시원하게 빨리 죽이란 말이다!”
무목 대사는 합장과 함께 여유로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시주님, 무슨 오해가 있으신 듯합니다. 저와는 아무런 원한도 없는데 어찌하여 제가 살수를 두겠습니까? 게다가 그럴 생각이 있었다면 애초에 시주님을 그 불길한 곳에서 밖으로 데려오지도 않았을 겁니다.
다만 노승은 이곳에서 오랜 시간 수련을 하며 최선을 다해야 할 임무가 남아있을 뿐입니다. 시주님께선 제 생각과는 달리 다소 자유분방하신 분이라 몇 가지를 여쭙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모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허나 걱정하실 건 없습니다. 소승은 결코 시주님께 살수를 쓸 생각은 없습니다.”
“네놈이 한 말은 끝까지 지켜야 할 게다! 율종은 엄격한 계율이 적용되는 곳. 한 번 뱉은 말은 번복할 수 없다. 결코 율종의 명성에 먹칠을 하는 짓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게야!”
백령이 이를 부득 갈며 손에 결인을 맺자 손끝에 검은빛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검은빛의 힘은 눈 한 번 깜빡일 때마다 곱절로 늘어났고, 몇 다경도 채 지나지 않아 엄청난 살기를 발산하기 시작했다.
백령은 검은빛으로 둘러싸인 손을 뻗어 무목 대사의 심장을 노렸다.
그러나 무목 대사는 눈을 감은 채 미동조차 하지 않고 그대로 그것을 받아냈다.
파짓- 하며 번개가 피어오르는 소리가 일어났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무목 대사의 몸은 멀쩡했다.
그러나 백령의 손가락은 잘려져 있었다.
몇 번이고 다시 시도해 보았으나 결국 백령이 먼저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망할 무목 대사가 흔쾌히 불골금신을 포기했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불골금신보다 훨씬 더 단단하고 좋은 몸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 분명했다.
아의금신(我意金身).
전설에 따르면 반석과 같이 고르고 강철 같이 단단하며 괴산처럼 흔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무목 대사는 혈육으로 이루어진 몸은 없었지만, 아의금신을 이미 정점으로 연마한 것이다.
수백 년 동안 무목 대사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서 맞기만 한다고 해도 백령은 그의 방어를 뚫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순 없었다.
백령은 며칠 내내 이곳을 빠져나가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모두 시도해 보았다.
하지만 백령은 동굴을 중심으로 백여 장 외의 범위로는 단 한 발자국도 나갈 수가 없었다.
결국 벽을 느낀 백령은 한숨과 함께 다시 동굴로 돌아왔다.
그리고 무목 대사와 마주 앉아 물었다.
“얘기해 봐. 그래서 도대체 뭐가 그렇게 궁금한 건데?”
“시주님께서 왜 이곳에 오셨는지 궁금합니다.”
“얘기해 줬잖아. 신봉 혈맥을 찾으러 온 거라고. 하지만 이미 수포로 돌아가버린 이상 더 이상 이곳에 남을 이유는 없잖아?”
“소승은 시주님께서 왜 이곳에 오셨는지 궁금합니다.”
무목 대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같은 질문을 다시 반복했다.
“이런 망할 땡중놈이…….!”
머리끝까지 화가 난 백령의 이마에 새파랗게 힘줄이 솟았다.
마음 같아서는 망치로 무목 대사의 머리를 마구 내려치고 싶을 정도였다.
그는 최대한 화를 억누르며 다소 누그러진 말투로 물었다.
“대사님, 저를 이대로 가둬놓으실 생각이십니까?”
“시주님께서 제 의문을 충분히 풀어주시고, 앞으로 소승의 의무에도 아무런 저해가 되지 않는다면 기꺼이 풀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마음에 드는 대답이 나올 때까지 계속 가둬두시겠다는 뜻이군요. 얼마나 가둬두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소승은 다른 건 몰라도 이미 큰 깨달음을 얻는 몸입니다. 족히 수만 년은 장수를 누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런 망할 땡중놈아! 그럼 날 산 채로 말려 죽이겠다는 뜻이냐?”
“소승의 하찮은 재주로 어찌 감히 시주님을 해할 수 있겠습니까? 그저 미천한 소승이 죽고 나면 시주님께서는 원하는 곳으로 가시면 됩니다.”
무목 대사는 그 어느때보다 진지한 모습이었다.
백령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미치겠군!’
무목 대사는 처음부터 백령을 이곳에 수만 년 동안 푹 썩혀둘 생각이었던 것이다.
악독한 걸로만 따지자면 차라리 진양이 군자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아니, 아무리 진양이라도 이런 악독한 짓을 벌이진 않는다.
일주일이 흘렀다.
백령은 완전히 자포자기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동안 무슨 짓을 해도 무목 대사는 단 한마디도 상대해 주지 않았으며, 심지어 그가 공격해와도 반격조차 하지 않았다.
수도 없이 이어진 백령의 공격에도 무목 대사는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
“대사님, 제발 부탁드립니다. 절 풀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전 정말로 신봉 혈맥을 찾아 여기까지 온 거지, 결코 다른 목적이 있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그러나 무목 대사는 눈을 감은 채 좌선에만 집중할 뿐 한마디도 대꾸하지 않았다.
백령은 한숨을 푹 쉬며 자리에 털썩 앉았다.
여기서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는다면 천 년이고 만 년이고 같은 상황만 되풀이될 뿐일 것이다.
백령이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그럼 솔직하게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제게 정보를 준 것도, 그리고 대황으로 저를 데려다준 것도 다른 사람이 한 겁니다.
아마도 제가 아무것도 모를 거라고 생각한 듯합니다만,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겠습니까? 분명 그들에겐 무슨 목적이 있을 거라는 사실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솔직히 저는 유혹을 이기지 못해 대황까지 오게 된 게 맞습니다. 하지만 하늘께서 어찌나 무심하신지 도착하기 무섭게 삼신도군에게 원한을 사게 되어버렸죠. 심지어 지난 세대의 신봉 혈맥이 죽어버리는 참사까지 일어나버렸습니다.
이번만큼은 정말 어렵게 신봉 혈맥을 찾아낸 겁니다. 과정은 직접 보셔서 알겠지만, 저와는 일말의 관계조차 없습니다.
누가 정보를 준 것인지는 묻지 말아 주십시오. 저도 그저 그의 이름을 부르면 느껴지는 게 전부니까요.
현재 대황과 이어지는 다리가 모두 사라졌기 때문에 외부인은 쉽게 이곳에 올 수 없습니다. 다만 제가 적절할 위치를 찾아 그를 불러온다면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마 대사님도 그의 적수가 되진 못할 겁니다. 아니, 현재 대황의 상황을 고려해 본다면 그와 맞서 싸울 수 있는 자는 아마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겁니다.
때문에, 저는 결코 그럴 마음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진짜 목적을 대라고 말씀하셔도 전 정말로 그런 게 없다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저를 이곳으로 이끈 자가 무슨 목적이 있는지도 저는 잘 모릅니다.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이게 전부입니다. 이 정도면 만족하시겠습니까?”
백령은 최대한 성의껏 자신이 알고 있는 건 전부 다 털어놓았다.
그러나 무목 대사는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잠시 고민하던 백령은 한마디를 더 보탰다.
“저를 이곳으로 이끈 자는 제가 신봉 혈맥의 신통력을 빼앗을 거라는 사실을 분명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들 역시도 명황의 부활을 바라지 않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아마도요.”
“이것은 율종 공법을 수련하며 얻은 물건이니 율종에게 다시 돌려주는 것이 마땅한 도리인 줄 압니다.”
“감사합니다.”
무목 대사에게 붙들려있는 백령은 눈을 깜빡이며 이 모습을 지켜보았다.
문득 후회가 되었다.
자신의 불골금신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남에게 넘겨버리다니.
참으로 독한 인간이 아닐 수가 없었다.
이 정도 의지를 가진 자라면 스스로 한 가지에 꽂히는 순간 웬만한 악인보다 훨씬 더 상대하기 까다로울 것이다.
차라리 진양과 정면으로 싸우는 게 훨씬 더 나을 정도다.
무목 대사는 이곳에 오래 머물지도 않았고, 율종의 승려들과도 별다른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율종의 승려들도 이전의 일에 대해서는 굳이 묻지 않았다.
그렇게 양쪽 모두 입을 꾹 다문 채 침묵만이 이어지고 있었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백령이 무언가 쓸 만한 정보를 알아내는 건 무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