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113
1113화 빠져나오다
진양이 하늘로 날아오르며 떠나려는 순간.
무목 대사가 돌연 입을 열었다.
“그를 부활 시켰다간 명황도 다시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소승은 선조들의 뜻을 이어받아 명황이 부활하지 못…….”
무목 대사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진양의 왼손이 휘둘러졌다.
진양의 왼손이 검게 물들었고, 마치 기름처럼 끈적이는 무언가 흘러나와 왼팔을 전부 뒤덮었다.
이어서 광택 하나 없는 흑검이 그의 손에 잡혔다.
아주 작은 동작 하나에 검은빛이 뿜어져 나와 천지를 가르는 검은 장막이 되었고 빠르게 하늘과 땅을 둘로 갈라놓았다.
아무 소리도, 아무 힘의 파동도 느껴지지 않았다.
검은빛은 잠시 뒤 사라졌다.
현철과도 같이 단단하던 대지에 거대한 균열이 일어났다.
균열은 진양의 옆쪽에서부터 시작되어 수십 리나 넘게 뻗어져 있었다.
일 다경 정도 지났을 무렵.
수십 리 밖에 있던 산이 그제서야 쾅- 하는 폭발음과 함께 무너져내렸다.
무시무시한 굉음과 함께 모든 것을 파괴해버릴 듯한 강력한 힘이 퍼지며 온 세계를 뒤흔들었다.
무목 대사는 십여 리 떨어진 곳으로 피했다.
그는 육신은 포기한 채 순수한 금신의 모습을 드러낸 상태였다.
놀란 얼굴을 따라 황금빛 땀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일말의 동요조차 없던 마음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고, 몸에선 연신 황금빛이 번쩍이고 있었다.
무목 대사는 곧바로 작은 목소리로 마음을 다스리는 주문을 외워 마음속에 피어오른 악한 기운과 분노를 강제로 잠재웠다.
냉정을 되찾은 무목 대사는 합장을 하며 큰소리로 주문을 외웠다.
그는 손을 뻗어 오른쪽 눈을 가린 뒤 천천히 왼쪽 눈을 떴다.
적금색의 눈은 어둠을 뚫고 떠올라 온 세상을 비추는 뜨거운 태양 같은 모습이었다.
무목 대사는 다소 놀란 눈빛으로 진양을 바라보았다.
온통 회색뿐인 세계에 남아있는 건 없었다.
연못, 강, 바다 등 모든 것이 말라버린 것이다.
이 외에 식물들도 전부 시들어버렸다.
마치 극북빙원처럼 온기 하나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싸늘한 기운만이 남아있었을 뿐이다.
적막함, 황폐함, 공허함, 그리고 외로움.
무목 대사의 미간이 다소 찌푸려졌다.
그의 왼쪽 눈에서 황금빛 피가 한 방울 흘러내렸다.
그는 눈을 감으며 한숨을 푹 쉬었다.
“이것이 고심주란 말인가…….”
무목 대사는 방금 전까지 생각하고 있던 것을 과감하게 체념하기로 했다.
죽는 게 두려워서 그런 건 아니다.
정말 두려운 건 진양의 손에 들려있는 기괴한 흑검이 자신이 일생 동안 버텨올 수 있도록 해 주었던 ‘의지’를 베어버리는 것이었다.
의지를 베이게 되면 자신이 왜 지금까지 버텨왔는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조차 모두 잊게 된다.
물론 단순히 두려움만이 이유는 아니다.
가장 큰 이유는 진양이 하려는 일과 자신이 하려는 일이 서로 충돌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만 진양이 무엇을 할지는 예측이 불가능했다.
이대로 진양이 자신의 뜻을 굽힐 가능성은 무에 가까웠다.
무목 대사가 무슨 짓을 하건 진양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시주님 뜻대로 하시지요.”
무목 대사는 더 이상 진양을 방해할 뜻이 없다는 듯 옆으로 비켜섰다.
진양이 흑검을 다시 거둬 넣자 검게 물들었던 왼손도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를 뒤따라가려던 묵양은 문득 무언가 빠진 듯한 느낌에 다시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곧장 싸늘하게 누워있는 순목의 시신이 눈에 들어왔다.
‘중요한 걸 잊고 있었군. 진양조차도 잊고 있었을 줄이야.’
그는 곧바로 순목의 시신을 거둬 챙겼다.
시신을 챙긴 묵양은 옆에 있던 백령을 힐끔 쳐다보았다.
묵양의 시선과 마주친 백령은 잔뜩 겁먹은 새끼 메추라기처럼 벌벌 떨며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대, 대인, 편한 대로 하십시오. 이전까지의 일들은 모두 오해입니다. 전 결코 대인을 방해할 생각이 없습니다.”
방금 진양의 일 검은 그를 놀라게 만들고도 남을 정도였다.
이게 방금 막 도궁에서도 한 경지를 돌파한 사람이 낼 수 있는 위력이란 말인가?
직접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묵양은 아무 말 없이 백령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녀석을 죽일 생각이 없다고 했던 진양의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백령 녀석은 놔둔 채 진양을 따라 하늘 위로 날아가 버렸다.
* * *
높은 하늘로 올라왔으나 이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불길한 존재 역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잠시 고민하던 진양은 금화를 꺼내 하늘 높이 던졌다.
하늘로 날아오른 금화는 어느 정도 높이에 도달하고 나자 다시 천천히 아래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그때, 하늘 위로 검은 기름이 들끓으며 불길한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어서 그는 나무뿌리처럼 생긴 촉수를 뻗어 금화를 탁- 하고 잡았다.
검은 기름이 한곳을 중심으로 빙빙 돌기 시작했다.
마치 먹구름이 소용돌이에 의해 휩쓸려가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폭풍의 눈에 해당하는 자리에 길이 만들어졌다.
진양은 망설임 없이 그곳을 향해 나아갔고 그 뒤를 묵양이 따라왔다.
금화 하나에 두 사람이 지나가려 했으나 불길한 존재는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악작조차 베어버린 진양에게 어찌 감히 불만을 표할 수 있겠는가?
애초에 그가 금화를 던져준 것도 최소한의 체면을 생각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진양은 묵양과 함께 길 너머로 사라져버렸다.
무목 대사는 시선을 돌려 잔뜩 겁을 먹은 백령을 힐끔 쳐다보았다.
방금 눈을 떴을 때 아주 잠깐 곁눈질로 백령을 살폈었지만, 그의 몸에 무엇이 있는지 파악하기엔 충분했다.
무목 대사가 손을 뻗었으나 백령은 아무 반항 없이 순순히 그에게 붙잡혀주었다.
“대사님, 전 결코 대사님께 밉보일 만한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수많은 생명들이 이런 곳에서 묻히는 걸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순 없으니까요. 밖으로 데리고 나가주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마침 시주님께 여쭙고 싶은 게 있는데 대답을 해 주실 수 있을진 모르겠습니다.”
“말씀하시지요. 제가 알고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다 대답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누군가 자신을 이곳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는데 안 될 게 뭐 있겠는가?
이 괴상한 곳에 이젠 진절머리가 날 지경이었다.
나갈 때는 들어올 때처럼 죽어서 통과한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반드시 불길한 존재를 통해서만 나갈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백령은 이곳에 들어올 때 아무런 값도 지불하지 않고 들어왔다는 점.
불길한 존재가 그를 고운 시선으로 봐줄 리는 없었다.
물론 무목 대사는 예외겠지만.
“시주님께선 이곳 사람도 아닌데 어찌하여 명황의 일을 알고 계신 겁니까? 또 어째서 이 일에 간섭을 하시려는 겁니까?”
“신봉 혈맥이 대황 세계에만 있는 건 아닙니다. 다만 다른 세계에선 신봉 혈맥을 각성한 이들의 대가 완전히 끊어졌을 뿐입니다. 그러니 제가 알고 있는 것도 이상할 건 없죠.
대사님께서는 제 근본까지 들여다보실 수 있으신 분이니 제가 왜 신봉 혈맥을 찾아왔는지도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소승이 궁금한 것은 시주님께서 왜 이 일에 간섭하려 드시는지입니다.”
무목 대사는 따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어조로 다시 한번 같은 질문을 던졌다.
백령은 다소 놀란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대사님,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닙니다. 곧 불길한 존재가 사라질 겁니다. 보아하니 대사님도 매명전을 가지고 계시지 않은 듯한데, 일단은 밖으로 나가서 대답해드려도 괜찮겠습니까?”
무목 대사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매명전은커녕 흔한 영석 하나도 없는 빈곤한 승려일 뿐이다.
게다가 원래의 육신조차 포기하고 금신 상태가 되었으니 매명전을 가지고 있을 리 만무하다.
무목 대사는 백령과 함께 황금빛으로 둘러싸인 채 불길한 존재 안으로 뛰어들었다.
불길한 존재는 황금빛으로 둘러싸인 그들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두 사람을 막자고 길을 부술 순 없는 노릇이다.
정당하게 통행료를 낸 진양까지도 위험하게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두 사람이 사라지고 몇 다경쯤 흘렀을 때.
구석에 누워있던 연 종주가 갑자기 하늘로 튀어 오르며 불길한 존재 안으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불길한 존재는 아예 막을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
어차피 한 사람 더 무임 통과를 한다고 해서 문제될 건 없었기 때문이다.
잠시 뒤.
불길한 존재는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다.
적막의 세계는 또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되었다.
* * *
영야의 땅.
북두성종의 사람들은 여전히 끓어오르는 기름을 완전히 제압하고 있었다.
주위가 완전히 봉쇄되어있었기 때문에 밖으로 나가거나 안으로 들어오는 건 불가능했다.
묵양과 함께 불길한 존재를 빠져나온 진양은 곧장 남쪽으로 향했다.
북두성종의 한 장로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입마한 마두인 건가?”
진양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을 느끼던 장로는 심사숙고한 후 그를 막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잠시 뒤.
황금빛이 번쩍이며 무목 대사가 백령과 함께 밖으로 걸어 나왔다.
북두성종의 고수들은 이번에는 엄청난 적이라도 마주하게 된 것처럼 반응했다.
그가 육신을 포기하고 좌화하도록 몰아세운 건 다름 아닌 이들이다.
그러나 상대는 큰 깨달음을 얻으며 도군으로 진급해버리기까지 했다.
때문에, 무목 대사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자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목 대사는 그들은 무시한 채 자신의 불골금신이 남겨진 곳을 향해 손을 뻗었다.
불골금신을 다시 회수한 그는 백령과 함께 북쪽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율종의 사람들은 이미 오래전에 이곳에 도착했다.
하지만 북두성종의 방어를 강제로 뚫고 지나가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게 했다간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큰 피해를 입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멀리 무목 대사가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율종의 승려들은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방어 진법 밖에서 조용히 그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잠시 뒤.
방어 진법이 극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하늘에 펼쳐진 성도가 불안정하게 번쩍이기 시작했다.
* * *
방어 진법의 남쪽 가장자리.
진양은 손을 뻗어 경계 지점을 만졌다.
그때, 진양이 고개를 들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천겁이군.”
검게 물들었던 진양의 왼손은 곧장 원래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왔다.
온 세계가 그를 배척하는 듯한 느낌은 깔끔하게 사라졌다.
겨우 이런 작은 일로 천겁을 불러올 필요는 없다.
하지만 왼손의 힘 없이 흑검의 힘만으로 방어 진법을 뚫는 건 무리다.
잠시 고민하던 진양은 묵양을 바라보았다.
묵양은 고개를 끄덕이며 두 번째 형태로 변했다.
수많은 발들이 칼날이 되어 방어 진법을 향해 날아들었다.
칼날의 폭풍이 휘몰아치며 방어 진법이 통째로 극심하게 요동쳤다.
이어서 무언가 잘려 나가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방어 진법에 커다란 틈이 만들어졌다.
진양은 곧장 틈 사이로 걸어 나갔다.
그러나 그의 뒤에서 출렁이던 검은 기름은 전부 뒤로 물러났다.
이 틈에 밖으로 빠져나갈 생각은 전혀 없는 듯했다.
묵양까지 완전히 밖으로 빠져나오고 나서야 벌려졌던 틈은 다시 하나로 합쳐지며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되었다.
그때, 일렁이던 기름 안에서 촉수 몇 줄기가 뻗어 나오며 틈을 노렸다.
진양이 고개를 돌리며 뒤를 바라보았다.
촉수는 움찔하며 그대로 멈춰서더니 다시 넘실거리는 기름 바다로 쏙 들어가 버리며 모습을 감추었다.
하지만 진양은 그것을 본 게 아니다.
틈 너머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곳에선 죽음의 빛과 함께 연 종주가 하늘 위로 서서히 떠오르고 있었다.
그의 몸을 둘로 갈랐던 검은 줄은 여전히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