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295
1295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
모든 영향의 본질은 같다.
그러나 영향의 위력과 그 현묘함의 차이는 천차만별이다.
기록에 따르면, 향사의 제령향(祭靈香)은 오직 향사만 만들 수 있으며 그 제작법은 전해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향사의 말을 빌리자면 제령향은 ‘아무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묵향은 이제야 비로소 향사가 왜 이런 말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 당시에는 망자의 세계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백리칠은 제령향을 만들어냈을 뿐만 아니라 망자의 세계에 있는 고수의 영혼까지 불러왔다.
때문에, 묵향은 그가 전설 속에만 존재하는 향사의 계승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찔러보듯 본인에게 직접 물었다.
백리칠은 조금도 숨기지 않고 자신이 향사의 계승자가 맞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럼 어째서 아무도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걸까?
백리칠의 대답은 간단했다.
아무도 묻지 않았기 때문에 얘기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다소 황당한 대답이긴 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어쨌든 이러한 이유로 묵향은 그녀를 제자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감히 어떻게 향사의 계승자를 제자로 받아들인단 말인가?
항렬만 따져도 그녀는 그가 차마 얼굴조차 똑바로 볼 수 없는 존재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죽은 스승이 그녀를 제자로 받아준 셈 치고 사매로 삼은 것이다.
* * *
망자의 세계.
진양의 이성은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다.
눈을 뜬 진양은 한참을 멍하게 앉아있었다.
비록 이성만이긴 했지만 어쨌든 성공적으로 망자의 세계를 벗어났다.
물론 산 자의 세계는 진양을 그다지 반기지 않는 듯하긴 했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가 직접 산 자의 세계로 돌아갔다는 점이다.
왕백강과 꿈에서 만난 것과는 의미 자체가 달랐다.
아무래도 인간 십이사의 능력을 너무 얕잡아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몽사는 몽경 대세계로 여러 사람의 몽경을 연결시켰다.
그리고 진양은 이것을 이용해 왕백강과 연락을 취했다.
이건 생과 사의 경계를 뛰어넘은 연락 방식이었다.
그러나 향사의 영향은 단순히 망자의 세계에 있는 망자에게 위로를 전달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한층 더 나아가 죽은 자의 이성을 산 자의 세계로 되돌리는 효과까지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알아낸 생과 사의 경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은 총 세 가지.
여기서 진양이 가진 환생 신통력을 제외한 남은 두 개는 전부 십이사로부터 비롯된 것들이다.
이제야 비로소 인간 십이사가 왜 인간 십이사라고 칭송을 받았는지 알 것 같았다.
전투력, 경지, 그리고 실력.
이런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본질적인 차이는 실력으로는 결코 극복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 정도 본질의 업적을 이룬다면 전투력을 손에 넣는 것도 손바닥 뒤집듯 간단한 일이었을 것이다.
진양은 소책자를 꺼내 예전에 인간 십이사에 대해 기록해뒀던 부분을 살폈다.
몽사와 향사 모두 생과 사의 경계를 뛰어넘는 데 성공했다.
어쩌면 다른 인간 십이사도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이들은 단순히 생과 사의 경계를 뛰어넘어 연락을 취하는 것 이상의 업적을 이뤄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산 자의 세계와 망자의 세계를 오갈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냈을지도 모른다.
일단 인형사는 제외하기로 했다.
평소 묵양의 멍청한 모습만 떠올려도 크게 기대할 것도 없을 듯했다.
환사 역시 환술을 다루는 사람인 만큼 특별한 건 없을 듯했다.
아마 기껏해야 연락을 취하는 게 전부일 것이다.
요사 역시 일단은 통과하기로 했다.
망자의 세계의 상황을 고려해 본다면 두 세계를 넘나드는 요족을 양성해냈을 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악사 역시 썩 못미덥긴 했지만, 어느 정도 가능성은 있어 보였다.
화사는 그나마 가장 기대치가 높은 사람이었다.
대지가 나타나는 것만 봐도 화사의 힘이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화사를 찾아보는 게 좋을 듯했다.
혹시 모르는 일이다.
어쩌면 그는 이미 산 자의 세계로 향하는 방법을 찾아냈을지도.
풍수사는 예외였다.
그는 아직까지 부활을 기다리고 있는 입장이라 망자의 세계에 나타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이 외에 가장 가능성이 높은 건 도천사(盜天師)였다.
하늘을 훔친다는 이름만 봐도 길게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진양은 소책자를 덮으며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또 하나의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삼사숙?”
“왜?”
“방금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던 겁니까?”
“아, 잠깐 산 자의 세계에 다녀왔어. 협상할 일이 있어서 말이야.”
“…….”
수라는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또 시작이시군…….’
“왜 그런 눈으로 쳐다봐? 방향은 찾은 거야?”
“아, 찾긴 찾았습니다만 아직 확실한 건 아닙니다.”
“그럼 일단 가서 살펴보고 나서 생각해 보자고.
굳이 길게 생각할 것도 없다.
일단 가서 살펴보고 나서 생각해도 늦진 않는다.
그렇게 두 사람은 원교 선경에 기록된 대로 상고 지부로 들어갈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방향을 향해 움직였다.
* * *
풍도대제의 힘으로 만들어진 회색 태양.
대취는 태양과 마주하고 있었다.
태양의 겉표면에 한 쌍의 눈이 나타났다.
이어서 태양의 핵심 안에 여섯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취, 어떻게 됐어?”
강아지가 가장 먼저 물었다.
“전생의 세력을 모으는 일은 이미 끝났다. 하지만 아직 나타난 강자들의 수가 너무 적어. 게다가 아직 망자의 세계에 적합한 공법도 사용할 줄 모르고 말이야.
반대로, 태호의 세력은 무시무시할 정도로 성장하고 있어. 이미 사성 대신관까지 모습을 드러냈지. 태호의 권력을 맞이하기 위해 신탑까지 짓고 있는 상황이야.
게다가 놈들은 과거 마종의 마검 공법까지 손에 넣었어. 여기에 사성 대신관의 힘도 계속해서 회복되는 추세고. 지금 당장의 상황으로만 본다면 우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우세인 거지.
무너진 상고 지부가 나타날 조짐을 보이고 있어. 가장자리에 있던 조각의 위치도 이미 확인했고.
이 밖에 뱀 머리 녀석은 더 이상 쓸모가 없을 것 같아. 여러 번 찔러봤는데, 그냥 조용히 죽이는 게 낫겠어.”
대취는 최근에 있던 일을 설명하면서 다시 한번 뱀 머리를 죽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허허…….”
강아지를 가소롭다는 듯 차갑게 웃었다.
이어서 무면이 그의 말을 이어받았다.
“놈은 살려두도록 하자. 아직은 직접 움직여줘야 할 사람이 하나 필요해. 게다가 그에게 얻을 만한 정보도 아직 남아있고 말이야.
하지만 무엇보다 지금 우리의 힘으로 녀석을 한 번에 죽일 수 있을지는 미지수야.
혹여나 실패하기라도 했다간 오히려 낭패다.”
“실패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대취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놈은 생전에 강한 실력을 가진 강자는 아니었다. 풍도가 상고 천정에 심은 첩자였지. 그러나 나중에 배반을 하며 상고 지부로 돌아오게 되었어. 풍도는 그를 부군의 곁에 두려고 했었지만 아쉽게도 그렇게 하진 못했지.
지금 우린 그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어째서 전생의 모습조차 갖추지 못하는지도 모르고 있고.
녀석은 원할 때마다 스스로 수천 마리의 뱀으로 모습을 바꿀 수 있어. 단 한 마리의 뱀이라도 살아남는다면 녀석은 결코 죽지 않지.
놈이 도망칠 길을 마련해뒀다는 건 강아지가 이미 확인했어. 아마 검은 뱀의 분신을 만들어 사방에 숨겨놓았을 거야.
한 번에 확실하게 죽일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작은 음모 정도는 모른척해 주고 지금처럼 이용하는 편이 낫다.”
대취는 그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마음속엔 여전히 불만이 남아있었다.
지금 이곳에 있는 칠위일체는 전부 풍도대제로부터 비롯된 존재들이다.
이들은 한 몸이었기 때문에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인 셈이다.
후일 완전히 모습을 갖추게 된다면 하나로 합쳐지며 다시 풍도대제가 될 것이다.
어쨌든 모두가 풍도대제인데, 어째서 이런 일을 자신만 모르고 있었단 말인가?
오직 자신만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심지어 강아지조차 무면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미 알고 있었던 듯했다.
다 같은 한 몸이고 풍도인데 어째서 서로에게 숨기는 게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대취의 마음속에 억제할 수 없는 혐오감이 생겨났다.
그는 마종, 대진마문, 그리고 도문과 자신이 겪었던 일에 대해 얘기를 해야 하나 고민했었다.
이제 보니 아무래도 얘기하지 않는 편이 좋을 듯했다.
대취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태양 안에는 여섯 사람만 남게 되었다.
강아지와 새가 시끄럽게 떠들며 싸우고, 무면은 가끔씩 의견을 하나씩 내긴 했으나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외에 다른 녀석들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다만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 생각도 없는 건 아니었다.
한바탕 언쟁이 지나간 후.
무면이 말했다.
“아무래도 대취 혼자서 감당하기엔 힘들 것 같다. 이젠 힘도 충분히 모였으니 아마 한 사람 정도는 더 밖으로 나갈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갈게.”
강아지와 새가 동시에 입을 열었다.
무면인은 한쪽 구석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는 안개 같이 생긴 녀석을 바라보았다.
“유무(幽霧), 네가 다녀오도록 해. 마침 대취가 밝은 곳을 누비고 다니고 있으니까, 넌 어두운 곳으로 다니면 되겠네.”
“알겠다.”
안개 너머로 메아리치는 듯한 목소리로 대답이 돌아왔다.
잠시 뒤.
뿌연 안개가 회색 태양 표면에 모습을 드러냈다.
안개는 아무 소리 없이 흩어지며 모습을 감췄다.
얼마 지나지 않아 희미한 안개가 대취의 앞을 가로막았다.
안개는 한 곳으로 모여들며 요염한 인간 여인의 모습으로 변했다.
“유무?”
“무면이 날 풀어줬어.”
유무는 뭐가 그리도 좋은지 미소를 띄고 있었다.
“풀어줬다고?”
대취의 눈빛이 반짝였다.
“대취, 설마 정말로 칠위일체의 상태로 풍도대제가 되려던 건 아니지? 아마 너도 느꼈을 거야. 시간이 갈수록 우리 모두 각자의 자아이성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는 걸 말이야. 심지어 무면조차 우리에게 무언가를 감추기 시작할 정도로 말이야.”
유무의 미소는 기쁨의 미소가 아닌 비웃음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 나타나는 순간부터 알 만한 사실은 모두 알고 있었잖아. 결국 우리가 하나로 합쳐지며 풍도대제가 되는 건 이미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무슨 근거로 그게 전부 사실이라고 확신하는 거야?
무면은 우리들 중에 가장 먼저 생겨난 녀석이잖아. 게다가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들도 무면으로부터 듣게 된 거고. 그게 가짜라곤 생각해 본 적 없어?”
“…….”
대취는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
“글쎄……. 호호, 그건 내가 해야 할 질문 같은데.
잘 생각해 봐. 밖으로 나온 뒤로 어떤 느낌을 갖게 되었는지 말이야. 그러면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 있을 거야.”
대취는 침묵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