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380
1380화 딱 한 번의 기회
입구를 지나 두 번째 층으로 들어선 분신은 곧장 영감궁으로 향했다.
영감궁으로 향하는 길에 수많은 천병들과 마주쳤지만, 그때마다 회색으로 물든 눈을 번쩍 떠주면 이들은 자동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그 누구도 감히 분신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분신은 말도 안 될 정도로 순조롭게 영감궁에 도착했다.
그러나 여기부턴 뭐가 있을지 아무것도 예상할 수 없다.
아마 기초적인 함정 정도는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왔지만 이곳을 지키고 있는 천병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영감궁 상공에 펼쳐진 수많은 도문과 허상, 그리고 장면들만 있을 뿐이었다.
이곳은 대신관 영감이 천하를 지켜보는 곳.
불가계 내의 범위를 손바닥처럼 훤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감시실’ 같은 곳이었다.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자 곳곳에 세워진 궁전의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궁전의 문은 전부 활짝 열려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예 대문 자체가 없었다.
대신 복잡한 도문이 뒤섞여있는 허상 장면이 그곳에 떠 있었을 뿐이다.
이곳에선 방어 진법이나 함정, 금제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다.
바로 눈앞에 있는 도문과 허상 장면들 때문이다.
만약 누군가 이곳으로 쳐들어온다면 영감은 곧바로 그 사실을 눈치챌 수밖에 없다.
정해진 규칙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곧바로 침입자로 낙인이 찍히기 때문이다.
진양의 분신은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도문과 허상 장면들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여덟 개의 푸른 꽃잎을 가진 꽃이 한 송이가 있었다.
분신은 도문들을 자세히 분석해 보았다.
이것은 아마도 문을 잠그는 자물쇠 같은 역할을 하는 도문인 듯했다.
그리고 자물쇠를 여는 열쇠는 다름 아닌 ‘정보’였다.
여덟 개의 푸른 꽃잎을 가진 이 꽃.
예전에 십이가 보내준 정보 중에 영화와 영초에 대한 정보도 있었는데, 그곳에서 본 적이 있는 꽃이었다.
꽃의 이름은 요희(妖姬).
인간에게는 치명적인 맹독이 될 수도 있고 강력한 몸보신 재료가 될 수도 있지만, 신에겐 수련을 보조해 주는 중요한 자원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직 신만이 자신들이 가진 권력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시켜줄 만한 보물이 어떤 것이 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진양은 머릿속으로 요희에 대한 정보를 떠올리며 손가락을 장면에 가져다 댔다.
그러자 장면으로 옆으로 비키며 길을 만들어주었다.
‘영감, 아주 재미있는 신이군.’
천궁은 나름 철통 방어가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문제까지 걸어놓은 것을 보니 나름 신경을 쓴 듯했다.
이런 장치들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단순히 권력을 연구하며 자연스럽게 얻게 된 부산물처럼 보일 수도 있었지만, 분신이 보기엔 아니었다.
그는 신기를 위협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이런 장치를 설치해둔 게 분명했다.
길을 가로막고 있던 장면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수많은 허상들이 남아있었다.
모든 문제를 맞추며 길을 뚫고 나아가려면 아무래도 꽤 머리를 써야 할 듯했다.
혹여나 틀린 답을 넣는다면 심각한 일이 벌어질 게 뻔했다.
이건 굳이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 * *
불가계 밖에서 영감 대신관의 권력은 두세 단계 정도 낮아지게 된다.
그러나 그가 직접 이곳에서 주변을 살핀다면 감시할 수 있는 범위는 이전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영감궁에 대한 감지력도 크게 낮아지는 수준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다면 즉각 그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최대한 짧은 시간 내에 영감궁으로 돌아가는 것도 가능하다.
모든 대신관들은 스스로를 방어할 최후의 수단을 가지고 있다.
이 중 영감은 가장 보수적으로 방어 수단을 준비해두는 쪽에 속했다.
그러나 이 수단은 단순히 힘으로 이루어진 수단이 아니다.
힘보다 더 큰 위력을 발휘하는 정보로 이루어진 수단이다.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가 펼쳐둔 수단을 뚫고 지나갈 수 없다.
아무리 강한 힘이라도 영감의 눈을 속이는 건 불가능하다.
설령 그것이 전성기의 성은 성관이라고 해도 말이다.
게다가 영감궁 안으로 들어가려면 일정 시간 내에 반드시 알맞은 정보를 기입해야 한다.
첫 번째 문제는 아주 간단한 상식 문제다.
그러나 첫 번째 문제를 푸는 순간부터 초읽기는 시작된다.
침입자는 뒤로 갈수록 점점 더 어려운 문제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것들은 일반적인 기록에서는 찾을 수 없는 것들로, 전부 영감이 자신의 권력을 통해 천하를 감시하는 과정 중 알아낸 것들이었다.
각 문제마다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로 극소수다.
영감은 자신했다.
자신을 제외하면 문제의 답을 모두 맞출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여기에 시간제한까지 걸려있으니 더더욱 안으로 침입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가 느껴진다면 곧바로 영감궁으로 복귀하면 된다.
영감은 일부러 함정을 놓았다.
천년만년 도둑이 들까 봐 걱정만 해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도둑을 잡아야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법.
그래서 과감하게 상대에게 기회를 준 것이다.
기회를 발견한 상대는 영감궁으로 몰래 숨어들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하지만 기회를 붙잡는 순간 그는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 * *
‘역시, 이 세상에 쓸모없는 정보는 없다니깐.’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정보는 언젠간 써먹기 마련이다.
설령 당장은 써먹을 곳이 없어도 반드시 큰 힘이 될 때가 있는 법.
혹은 후일 또 다른 단서를 찾는 기반이 될 수도 있다.
진양은 십이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그동안 상당한 양의 지식을 쌓고 정보를 습득하게 되었다.
덕분에 그는 웬만한 태호 세계 토박이보다도 더 많은 걸 알게 되었다.
잡다한 비밀부터 세월에 의해 완전히 지워져 버린 역사까지.
진양의 머릿속에는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들어있었다.
오래된 비밀일수록 더욱 쉽게 잊히는 법이고, 한번 잊히기 시작하면 나중엔 단서나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되는 법!
신이라면 누구든 쉽게 풀 수 있는 첫 번째 문제를 풀고 나자 상당히 높은 난이도의 문제들이 진양의 앞을 가로막기 시작했다.
점점 더 오래전의 일들에 대해 묻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진양의 얼굴엔 여유로운 미소가 가득했다.
십이에게 받은 정보 중 최근의 정보는 생각보다 많이 없었다.
하지만 과거의 정보라면 차고 넘칠 정도였다.
매우 간단하게 두 번째 문제도 풀어버린 진양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처음에는 한 걸음마다 여러 문제를 풀어야 했기 때문에 다소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뒤로 갈수록 그 속도는 점점 더 빨라졌다.
진양은 마침내 중앙 궁전에 도착했다.
궁전 안에는 한눈에 봐도 비범한 물건들이 가득했다.
신기의 기운이 느껴지는 물건도 있었고, 신기인 줄 알았으나 비보인 물건도 있었고, 누가 봐도 비보인 물건도 있었다.
진양은 몇 번 주위를 둘러보곤 이내 고개를 가로저으며 체념했다.
과연 영감은 만만한 자가 아니었다.
그는 이곳에 있는 모든 물건에 자신의 수단을 걸어놓았다.
만약 여기서 하나라도 건드리는 순간 즉시 영감이 이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영감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 있는 신기가 무엇인지 쉽게 알아낼 방법이 없다.
진양은 궁전 내부를 둘러보며 곳곳을 세밀하게 살폈다.
심지어 바닥에 깔린 벽돌조차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관찰했다.
그러나 단순히 쳐다보는 걸로는 알 방법이 없었다.
진양은 중앙 궁전을 지나 뒤쪽으로 향했다.
이곳에는 중앙 궁전과 벽을 맞대고 있는 곳이 있었는데, 수많은 위패들이 놓여있는 공간이었다.
각 위패마다 사람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진양은 그것을 살펴보면서 일전에 보았던 신의 역사에 대해 떠올려보았다.
위패에 적힌 이름은 역대 영감 대신관들의 이름이었다.
영감 권력만 해도 벌써 수도 없이 주인이 바뀌어왔다.
특히 치열한 상고 전쟁 시기에는 무려 백 년 만에 세 번이나 주인이 바뀌었다.
이들은 아직 권력을 제대로 지배하기도 전에 전부 암살을 당했다.
영감 권력을 통해 정보를 다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며 영감 대신관의 권력을 속이고 암살을 감행할 수 있는 방법은 점점 줄어들었다.
그렇게 영감 권력의 주인이 바뀌는 빈도도 점점 줄어들었다.
진양은 일일이 위패에 적힌 이름과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이름들을 대조했다.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선 다른 곳을 계속해서 둘러보았다.
영감궁 내부를 살핀 지 벌써 반나절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아직 확신이 들 만한 물건은 발견하지 못했다.
함부로 만져볼 수도 없었다.
진양에게 주어진 건 딱 한 번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확신이 들기 전까진 손을 대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어쩔 수 없지. 최선을 바랄 수 없다면 차선이라도 선택하는 수밖에.’
진양은 강회된 훼멸구 하나를 꺼내 허공으로 띄워 고정시켰다.
이어서 영감궁 곳곳에서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그렇게 무려 열 개가 넘는 훼멸구를 설치한 진양은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 * *
같은 시각.
불가계 바깥에 머물고 있던 영감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걸렸구나!’
그는 곧바로 한 줄기의 빛이 되어 날아가며 눈 깜짝할 사이에 완전히 모습을 감췄다.
진양은 씨익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이곳에 설치했던 훼멸구가 동시에 폭발을 일으켰다.
엄청난 힘이 발생하며 거대한 충격파가 만들어졌다.
충격파는 곧바로 사방을 휩쓸며 닿는 것마다 전부 가루로 만들어버렸다.
순간적으로 엄청난 힘이 터져 나오자 거대한 버섯구름이 피어올랐다.
진양은 하늘 높은 곳에서 이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묵양은 천재였다.
그는 방어력에 모든 것을 투자했다.
대신 자신의 부족한 살상 능력을 채우기 위해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훼멸구를 만들어냈다.
솔직히 진양은 아직도 훼멸구에 서려 있는 파괴의 힘의 본질이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상당히 유용하다는 점이다.
훼멸구가 폭발을 일으키는 순간.
먼 하늘에서 빛이 한 줄기 날아왔다.
이어서 빛이 사그라들며 영감의 모습이 나타났다.
이곳에 나타난 그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동시에 피어오르는 여러 개의 거대한 버섯구름과 충격파에 의해 자신의 중앙 궁전인 영감전(靈感殿)과 위패를 보관해두는 곳이 산산조각이 나는 모습이었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함정을 파며 따로 저주 위패를 치워 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저주 위패를 치워 두지 않았다면 자신도 산산조각 나 버린 궁전과 같은 꼴을 당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