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442
1442화 떡과 콩물
무심보경은 자소도경과 비슷하게 기초를 중점적으로 다지는 공법이긴 하나 앞으로의 길을 미리 정해주진 않는다.
기초만 보면 자소도경에 비해 다소 떨어지는 편이다.
하지만 나름의 장점은 있다.
바로 온전한 공법이라는 점이다.
때문에 도군 전까지는 공법에 나와 있는 대로 차근차근 수련을 이어나간다면 잘못된 길로 빠질 일은 거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 때문에 무심보경의 후속 노선을 선택할 때 크게 엇갈리게 된다.
마음이 없는 자는 감정도 욕심도 없다.
즉, 사사로운 감정이나 사리사욕 따위는 없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어지는 수련의 길은 무정도(無情道)와 절정도(絕情道) 등의 길이 있다.
무정도만 해도 분열이 계속해서 이어지는데,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절대적인 공정한 길이면서도 다른 사람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길이기도 하다.
마음, 곧 심(心)에 대한 선택지는 너무나도 많다.
결국 따지고 보면 잃는 게 있어야 얻는 것도 있는 법.
진양은 이처럼 인간으로서의 일부를 포기해야만 무언가를 얻을 수 있는 공법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상고 시대에 무심보경을 중심으로 수련을 한 사람들 중 가장 유명한 고수는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무정도의 길을 택했고, 나머지 하나는 절정도의 길을 택했다.
전자의 경우 인간의 속된 티를 완전히 벗어버리며 마치 전설 속의 신선과도 같은 존재가 되었고, 나중엔 천제의 휘하로 들어가게 되었다.
후자의 경우 완전히 인간성을 버린 존재가 되어 결국 마두가 되어버렸다.
이 두 사람은 지금까지 무정도와 절정도의 기록이 이어지도록 한 장본인들이다.
다만 안타깝게도 두 사람 모두 처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바람 재앙이 들이닥치기도 전에 죽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망자의 세계에 있을 때 두 사람의 모습은 보지 못했다.
어쩌면 모습을 드러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죽었든지, 아니면 아예 앞으로도 나타나지 않거나 둘 중 하나일 듯했다.
어쨌든 이미 전례가 있었기 때문에 설령 적합한 계승자를 찾는다고 해도 이런 공법은 웬만해선 전수해 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조사가 이런 공법을 보냈다는 건 전수해도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일단은 찾아보고 나서 다시 생각해 보기로 했다.
진양은 백리칠이 말한 소년을 찾아왔다.
그러나 생각지 못하게도 백리칠은 나이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그녀가 말한 ‘예전’은 이미 소년에겐 일생의 시간이었던 것.
노인의 기혈이 점차 쇠퇴해져 가고 있는 게 느껴졌다.
생기도 이제 곧 꺼질 것 같은 촛불처럼 위태로운 모습이었다.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수명이 다해 죽게 될 것이다.
만약 그가 정말로 젊은 소년이었다면 공법을 전수해 주겠다는 생각은 단념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일생을 거의 다 보낸 사람이라면, 젊은 소년과 달리 마음이 쉽게 변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오히려 공법을 전수하기에 훨씬 더 적합해진다.
진양은 자신이 찾는 계승자들이 전부 올바른 사람일 거라고 기대하진 않았다.
다만 결국엔 자신의 손으로 직접 처리해야 할 악당을 만들어낼 생각도 없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진양은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급할 건 없다.
애초에 운에 부딪혀보기로 한 것 아니던가?
운 좋게 적절한 사람을 만나게 된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반나절 뒤.
무기력해 보이는 진양은 백리칠과 함께 노인의 집 근처에 모습을 드러냈다.
진양은 체내에 있던 모든 힘을 해안에 숨겼다.
그리고 자신의 육신과 기혈을 봉인한 뒤 평범한 공법을 하나 찾아 양기 구 단계까지 익혔다.
백리칠은 굳이 공들여 위장을 할 필요도 없었다.
검둥이에게 배운 수많은 기괴한 공법 중 하나만으로도 양기 육 단계의 수도사가 되었다.
그녀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절대로 꿰뚫어 보지 못할 것이다.
더 이상 멀리서 염탐할 필요는 없다.
이젠 가까이 다가가 관찰을 해 볼 때였다.
진양은 이번 계승자에게 지난번의 계승자보다 훨씬 더 공을 들일 생각이었다.
두 사람이 집 근처에 나타난 순간.
때마침 영약을 채집하러 나갔던 노인이 돌아왔다.
그는 진양을 보자마자 포권을 취했다.
“온후라고 합니다.”
“진양이라고 합니다. 이쪽은 제 제자인 백리칠입니다.”
진양이 정중하게 포권을 취하자 백리칠도 그 모습을 따라 했다.
그때, 진양의 몸에서 흘러나오던 기운에서 물결이 일어났다.
체내의 힘이 상당히 불안정한 듯 몸을 비틀거렸고, 안색은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했다.
“사부님!”
놀란 백리칠은 황급히 진양에게 다가가 그를 부축했다.
온후의 표정에 미묘한 변화가 일어났다.
진양의 몸에 일어난 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양기 구 단계에서 축기 달성에 실패하게 되면 이런 모습이 된다.
그나마 이건 양호한 축에 속한다.
진양의 몸에서 노쇠한 기운을 느낀 온후가 다급히 외쳤다.
“어서 사부를 안쪽으로 옮기시게.”
두 사람을 집 안으로 들인 온후는 곧바로 연단방으로 향했다.
선반에는 종이로 만든 부적에 쌓인 옥병 하나가 놓여있었다.
온후는 그것을 복잡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것은 그가 직접 만든 단약.
축기 달성에 실패했을 때 마시면 체내의 진원과 기반을 안정시켜주는 약이다.
물론 효과가 좋았다면 이런 식으로 방치해뒀을 리는 없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
고민할 틈이 없었다.
그는 재빨리 단약을 꺼내 백리칠에게 건네주었다.
“이건 내가 직접 조제한 배원단(培元丹)일세. 효과가 썩 좋은 약은 아니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나을 걸세.”
진양은 단약을 삼키며 단약의 힘을 느껴보았다.
일개 양기 수도사치곤 솜씨는 상당히 괜찮은 편이었다.
다만 재료의 상태는 썩 좋지 않았다.
잡다한 것들이 너무 많이 들어있었다.
이런 상태의 약으로 축기 실패라는 심각한 상태를 다스려야 했으니 당연히 큰 효과를 기대해 볼 순 없다.
진양은 자신의 힘은 사용하지 않고 오직 단약의 힘이 발휘되도록 내버려 두었다.
물론 아무리 진양이 스스로의 힘을 봉인했다고 해도 크게 효과가 있진 않았지만 말이다.
잠시 뒤.
진양의 안색은 방금 전보다는 조금 나아졌다.
그는 힘없이 손을 들어 포권을 취했다.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온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양하실 것 없습니다. 기껏해야 없는 것보단 나은 수준의 배원단이니까요.
보아하니 상태가 꽤 심각하신 것 같습니다. 여기서 팔백 리 떨어진 곳에 금단방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 있는 금 대사께 부탁해 보신다면 어느 정도 희망을 기대해봐도 될 것 같습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었다.
사실 진양은 온후의 옆집에 눌러살 생각으로 적당한 핑게를 찾으려던 게 전부다.
그러나 상대는 진양을 경계할 생각이 없는지 흔쾌히 자신의 집 안으로 들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조금 원기를 회복하자마자 곧바로 은근히 쫓아내려고 하는 게 아닌가?
다만 그의 어조에서는 조금의 불편한 기색도, 쫓아내려는 기색도 느껴지지 않았다.
순간 진양은 이곳에서 살아가며 그동안 깊게 믿고 있던 생각들이 한층 더 깊어지는 게 느껴졌다.
수도사의 세계에서 선한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선 그만한 자본이 필요하다.
격렬하게 싸움을 벌이며 상대의 목숨을 빼앗는 것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자들 대부분은 강한 실력을 가진 고수가 아닌 최하층에 있는 수도사들이다.
일개 영초 하나를 두고도 목숨을 건 싸움이 벌어지곤 한다.
그런데 성지도 아닌 곳에서 낯선 사람을 자신의 집까지 들이다니.
그야말로 목숨을 내놓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진양은 범인에서부터 시작하여 여기까지 올라온 사람이다.
때문에 가난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잘 알고 있다.
만약 온후가 아무런 경계심도 없는 착해빠진 사람이었다면 그를 진심으로 존경하긴 해도 절대 공법을 전수해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간 결국 더 처참한 죽음을 맞이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로써 첫 번째 시험은 통과한 셈이었다.
백리칠이 진양을 부축하여 일으키려고 하자 진양은 그녀의 손을 지그시 누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괜찮습니다. 그냥 이대로 있어도 상관없습니다.
제가 어떤 상태인지는 제가 제일 잘 압니다. 한 번 실패했다면 더 이상의 기회는 바랄 수 없다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제게 약간의 영석이 있으니 수련에 보태도록 하시지요.”
자리에서 일어나 감사 인사를 올린 진양은 마당 밖으로 향했다.
많은 산들이 겹겹이 이어진 모습을 보던 진양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한 공터를 가리켰다.
“온 대인, 괜찮으시다면 제가 저곳에서 잠시 머물어도 되겠습니까?”
온후는 조용히 진양을 바라보았다.
진양의 모습을 보며 자신을 떠올려보니 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스스로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이 세상이 험악하고 척박한 곳이라는 건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곳으로 온 것이다.
평온한 끝을 맞이하기 위해서 말이다.
생각을 마친 온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편한 대로 하시지요.”
그렇게 진양은 온후의 이웃이 되었다.
집을 짓고 울타리를 만드는 일은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기에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모든 작업이 끝났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수련을 마친 온후는 마당 한 켠에 마련한 의자에 반쯤 누워 차를 마시며 눈을 감은 채 아침 햇살을 즐기고 있는 진양의 모습을 발견했다.
아예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아마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한 듯했다.
그리고 백리칠은 조용히 그 옆을 지키고 있었다.
이러한 모습을 본 온후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진 대인, 좋은 아침입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아침 식사는 하셨습니까?”
“네?”
진양은 미리 준비해두었던 떡과 콩물 등을 가져왔다.
온후는 한참 동안 멍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비록 아직 벽곡을 할 정도의 수준에 이르진 못했지만, 그래도 곡식이나 옥도를 조금 섭취하는 것만으로도 버티기엔 충분했다.
때문에 이런 세속적인 음식을 마지막으로 먹은 건 벌써 수십 년 전의 일이다.
그러나 치료를 완전히 포기한 진양이 신나게 음식을 먹어 치우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이걸 마냥 좋게 생각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도저히 판단이 서질 않았다.
* * *
시간은 계속해서 흘렀다.
어느덧 온후와 진양도 제법 친해졌다.
온후도 자포자기한 진양의 모습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모습이었다.
하지만 자신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수련을 이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