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558
1558화 완전히 소멸시킨다는 것
목사, 아니, 태일은 풍도대제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한 사람의 인간 천제가 나타났다고 해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물론 그렇게 생각하진 않지.”
진양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태일의 일은 만과 온전함을 뜻하니, 이는 곧 도이니라.’
처음에는 인간들도 네 도와 힘에 대해 공부했었다. 네 힘은 세 천제 중에서 가장 강력한 편은 아니었을 거다. 하지만 권력만큼은 최강이었겠지.
도가 있는 한 태일도 존재하는 법. 때문에 무려 수억 년의 시간을 들여가며 추측을 했음에도 널 완전히 말살할 방법을 찾아내진 못했다.
그동안 네가 여러 시대를 거듭하며 이어오던 계획은 완벽하게 성공했다. 이제 더 이상 널을 처치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야.
설령 내가 아무리 온갖 수단을 동원하더라도 기껏해야 널 망자의 세계에서 소멸시키는 게 전부겠지. 완전히 말살하는 건 불가능할 거야.
난 네가 망자의 세계에 나타나는 걸 막을 수 없었어. 물론 그럴 생각도 없었고. 이게 바로 내가 원하던 결과거든.
설령 인간 사이에 천제가 한 명 나타났다고 해도, 설령 네가 가지고 있던 태일 권력을 손에 넣었다고 해도, 지금 이 순간 네가 망자의 세계에서 손에 넣은 천제의 권력과는 비할 수 없을 거야. 그건 나도 잘 알고 있거든.”
진양은 조용히 풍도대제를 바라보았다.
“심지어 지금 벌어진 상황에 대해서도 충분히 설명할 수도 있어.
우리가 풍도대제를 태일이라고 생각하도록 만들 생각이었겠지. 즉, 네 스스로를 위한 희생양으로 풍도대제를 세운 거야. 물론 반대로 풍도대제가 너일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양쪽 모두 네 녀석일지도 모르겠군. 두 개의 대비책을 남겨둔 거지. 이렇게 하면 어느 한쪽이 밀리더라도 퇴로는 확보된 셈이니까.
설령 나중에 누군가 천제를 죽일 방법을 알아낸다고 해도 죽는 건 결국 하나의 천제일 뿐. 넌 영원히 존재하게 되는 거야.
심지어 네가 스스로 정체를 드러낸 것조차 일종의 눈속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군.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까지도 어느 쪽이 네 녀석인지 모르겠어.”
진양은 한숨을 쉰 뒤 말을 이어갔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더 이상 말하지 않으면 말할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말이야.
사실 천 년 전부터 상황에 가세하여 쟁탈전을 벌이는 척 연기를 할 수도 있었을 거다.
오랜 세월 치열한 싸움 끝에 결국 나는 네게 패배하고 말았다. 넌 결국 천제의 자리를 손에 넣게 되었고 말이야.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이제 막 혼례를 올리고 신혼도 제대로 즐기지 못했는데 수억 년이나 들여가며 이런 짓을 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사실 네가 산 자의 세계에서 죽은 순간부터는 내가 주도권을 쥐게 된 셈이잖아.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얘기를 했지만, 애석하게도 알아듣는 사람은 없더군.
이미 주도권을 쥐게 되었는데 직접 판국에 뛰어들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어? 달콤한 신혼을 허비하며 불필요한 시간 낭비를 하는 것밖에 더 되겠어?
그래서 애초에 신경조차 쓰지 않았던 거야. 조용히 네가 망자의 세계의 천제가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으면 됐으니까.”
이상할 정도로 침착한 진양의 모습에 태일은 싸한 느낌이 들었다.
절망에 빠져있던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딘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진양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떠올리니 모든 의문이 풀렸다.
함정!
이것은 함정이었던 것이다.
진양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널 완전히 말살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고 그토록 얘기했었지만, 아쉽게도 그 누구도 나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지. 모두들 나 자신보다도 더 나를 믿고 있더라고.
난 너를 말살하기 위해 무려 수억 년에 걸쳐 발버둥을 쳤어. 그러다 마지막 순간에 문득 한 가지 깨닫게 되었지.
내가 왜 널 말살해야 하는 거지? 도대체 왜? 널 말살하는 것 자체는 목적이 아니잖아.
태일이라는 존재는 인간의 존망에 큰 위협일 뿐. 그렇다면 살인이 아닌 위협을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하는 거잖아.
그래서 최대한 서로가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을 떠올렸어. 각자 한 걸음씩 물러서서 평화롭게 지내는 방법을 말이야. 만약 문제가 생기면 서로 협력해서 해결하면 충분히 될 거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내가 수많은 고심 끝에 내놓은 제안을 너는 매몰차게 거절했어. 이렇게 된 이상 나도 극단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지.”
태일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알 수 없는 당혹감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그는 곧바로 진양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 자리에서 진양을 끝내버리려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망자의 세계에서 맞이하는 죽음은 곧 영원한 죽음.
진양만 죽이면 모든 게 해결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가 진양을 향해 달려드는 순간.
풍도대제가 그를 막았다.
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던 다른 고수들도 함께 가세하여 그를 막아섰다.
진양은 여전히 평온한 얼굴로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어쨌든 난 한 가지 깨달음을 얻게 되었어.
애초에 내가 해야 할 일은 위협을 제거하는 거지, 누군가를 영원히 말살시키는 게 아니라는 걸 말이야.
지금 상황도 마찬가지야. 풍도대제든 목사든 내가 위협을 제거할 수만 있다면 내가 무슨 짓을 하든 모두들 납득할 테니까.
비록 풍도대제가 너인지, 목사가 너인지, 아니면 둘 다 너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내부에 숨어있는 적을 찾는 건 결코 쉽지 않지. 하지만 문득 반드시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이 생각나더라고.
간단해. 애초에 내부에 숨어있는 적을 찾을 필요가 없었던 거야. 아군이든 적이든 전부 제거해버리면 되니까!”
“맞는 말이군! 하하하!”
풍도대제가 큰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그는 한참 태일과 전투를 벌이면서 큰소리로 외쳤다.
“진양, 나도 꼭 해결해 주길 바라네.
솔직히 내가 가진 태일 권력 안에 태일이 남겨둔 대비책이 있는지 없는지 확신이 들지 않아서 말일세.”
“대인의 숭고한 뜻은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진양은 포권을 취하며 거의 직각에 가깝게 허리를 굽혔다.
풍도대제를 향한 진심이 담긴 인사였다.
이어서 다시 일어난 진양은 오랜 시간 동안 밖으로 꺼내지 않았던 소설책을 꺼냈다.
순간 사방에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참 싸움을 이어나가던 고수들은 일제히 멈춰 섰다.
풍도대제와 태일도 멈춰 섰다.
이들은 놀란 얼굴로 자신의 몸을 바라보았다.
풍도대제는 큰소리로 웃었다.
어찌나 시원하게 웃었는지 금방이라도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아마 이번 생에서 가장 호쾌한 웃음이 아니었을까?
“진양, 이 시간부로 대제의 자리는 자네에게 물려주도록 하겠네.”
진양은 곧바로 거절을 하려고 했으나, 이내 마음을 고쳐먹곤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소설책이 스스로 펼쳐졌다.
책장에는 몇 가지 규칙들이 반짝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직 완전하게 진리로 굳어지지 않은 규칙들이었다.
그러나 진양이 망자의 세계로 소설책을 꺼내는 순간 모든 규칙들이 완전히 새겨지며 진리로 굳어졌다.
그때, 소설책의 책장이 스스로 넘겨지며 한 규칙이 적혀있는 장이 펼쳐졌다.
그곳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하늘의 도를 대신하여 집행하는 자로서 천재는 영원불멸의 존재가 된다. 그러나 자아를 갖지 못하게 되며, 사심을 갖지 못하게 되고, 마치 천지와 같이 아무런 감정조차 느끼지 못하게 된다…….’
천제는 하늘의 화신이자 도의 화신.
이를 합도자(合道者)라고 칭한다.
그는 더 이상 그가 아니기 때문에 자아이성이나 사심 따위는 가져선 안 된다.
모든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그 어떠한 것도.
진양이 지금까지 강하게 믿고 있던 구석은 바로 이것이다.
태일의 패배는 법전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순간부터 이미 정해져 있던 것이나 마찬가지다.
결말은 이미 진작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천제의 자리를 놓고 쟁탈전이 벌어지는 도중에도 한가롭게 가희와 달콤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
이미 결말은 정해져 있는데 굳이 진양이 나설 필요가 없었다.
망자의 세계를 설득하고 규칙 몇 개를 추가하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었다.
진양이 알고 있는 건 망자의 세계도 알고 있다.
그렇다면 규칙을 먼저 추가하고 난 다음 망자의 세계에게 물으면 된다.
‘사심과 자아를 가진 천제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 같아?’
진양이 추가한 규칙은 망자의 세계에게도 절대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다.
천제가 존재한다면 망자의 세계는 한층 더 새로운 단계를 희망할 수 있게 되니까.
하지만 천제가 자아이성이 없는 꼭두각시가 되어버린다면, 그가 가진 모든 위험 요소는 전부 제거된다.
이런 조건을 듣고도 망자의 세계가 규칙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을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자아이성과 사심이 없는 천제가 나타난다면 인간에게 해가 될까?
마찬가지로 아니다.
심지어 천제가 있든 없든 아무런 영향도 없을 것이다.
굳이 따지자면 이 천제가 인간 출신이라면 어느 정도의 영향은 있을 것이다.
진양은 도저히 태일을 죽일 방법을 알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조금 다른 방향으로 생각을 바꿨다.
태일을 조종하거나, 혹은 그가 가진 모든 위협을 제거하는 쪽으로.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진양은 조금씩 태일을 사지로 몰아넣었다.
태일은 이제 불사불멸의 영원한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더 이상은 예전의 태일이 아니었다.
이 시간부로 사람들이 기억하는 건 풍도대제와 목사, 두 인간 출신의 천제뿐일 것이다.
앞으로 매년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마다 이 두 천제를 위해 향을 피우고 공물을 바칠 것이다.
또한 인간이 수도 없이 겪었던 고통의 굴레를 끊어내고자 스스로를 희생하여 천제의 자리에 올랐다는 사실도 기억하게 될 것이다.
“오늘부터 이 세상에 태일, 너를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풍도대제와 목사는 모두가 기억하게 되겠지.”
진양이 손을 뻗자 흑검이 그의 손에 잡혔다.
“누군가를 완전히 소멸시킨다는 것. 그게 바로 이것이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무시무시한 기운이 진양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모든 힘과 신통력이 도천사의 힘이 깃들어있는 왼손에 나타났다.
이어서 진양은 허공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순간 그의 눈앞에 ‘태일’이라는 두 개의 글자가 떠올랐다.
검광이 번쩍이며 눈앞에 나타난 두 글자를 베었다.
검에 베인 두 글자는 흔적도 없이 영원히 사라져버렸다.
그와 동시에 수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도 태일이라는 존재가 완전히 지워졌다.
사람들은 여전히 세 천제를 기억하고 있다.
이들이 인간의 숙적이라는 것도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세 천제는 십이사와 같은 존재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세 명의 천제가 있다는 것은 알지만, 태미와 태호를 제외한 나머지가 누군지는 절대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 누구도 그의 이름을 부르지 못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