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70
170화 누구와 손을 잡을 것인가?
진양은 조용히 눈을 감고 집중했다.
그러자 미세하지만, 솥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이한 기운이 느껴졌다.
자세히 살펴보니 중심부에는 기이한 힘이 흐르고 있었다.
안으로 빠진 존재를 강력한 힘으로 눌러 그 자리에서 압사시켜버리는 강력한 힘이었다.
다시 눈을 뜬 진양은 소년을 처치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놈은 진양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던 게 틀림없었다.
만약 놈이 봉인을 벗어났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비록 남을 현혹하는 능력만큼은 봉인 밖까지 뻗쳐나갔지만 그래도 봉인의 힘이 나머지 힘을 눌러준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진양은 솥을 주머니에 챙겨 넣은 뒤 방향을 찾기 위해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말라버린 강바닥에 남은 흔적, 갈라진 틈이 향해있는 방향, 그리고 강바닥 상공에 있는 음하까지.
이 모든 것들을 종합해 보았을 때 진양이 현재 있는 곳은 강의 상류일 것이다.
강은 매우 깊었고 협소했다.
그러나 하류로 향할수록 점점 얕아지며 넓이도 넓어졌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보아 강의 하류가 끝나는 곳은 아마도 장신하의 지류의 지류가 더욱 큰 지류와 만나게 되는 곳이 있을 것이다.
현재 있는 비경에는 지금 보이는 작은 지류가 전부일 것이다.
진양은 내륙 깊은 곳을 향해 며칠을 걸었으나 걸을수록 황량함은 더해져 갔다.
끝없이 펼쳐진 검은색의 대지 외엔 아무것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잠시 고민하던 진양은 다시 방향을 틀어 강의 하류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또다시 황량한 대지를 열흘 정도 걸어가던 진양은 돌연 고개를 들어 먼 곳을 바라보았다.
앞쪽에서 미세하게 빛이 번쩍였던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연욱은 강가를 따라 하류 쪽으로 갔었지.’
진양은 눈으로 진원을 모아 먼 곳을 살펴보았다.
백 리 정도 떨어진 곳에 빛이 번쩍이는 모습이 보였다.
자세히 보이진 않았으나 누군가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시선을 거둔 진양은 그곳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가기 시작했다.
이런 곳에서 싸움을 벌일 사람은 양범과 연욱뿐이다.
“바보 같긴! 설마 벌써 양범을 찾은 건가?”
진양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더욱 속도를 높였다.
이곳은 날 수 없었기 이동이 매우 불편했다.
그러나 다행히 비교적 평평한 대지가 이어졌기에 반 시진 정도 지나자 진양은 전장 근처에 도착할 수 있었다.
멀리서 벌어지는 전투를 살펴보던 진양의 눈의 동그래졌다.
예상대로 그곳에선 두 사람이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던 대로 그곳에선 양범이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상대는 연욱이 아니었다.
‘화상용이잖아?’
양범의 주위로 붉은빛의 파도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대지는 마치 피로 물든 것처럼 피의 호수를 이루고 있었다. 코를 찌르는 피비린내가 수십 리 떨어진 이곳까지 풍겨올 정도였다.
멀리서 풍겨온 피비린내를 맡는 순간, 진양의 몸에서 기혈이 더욱 빠른 속도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진양이 열화금신연법을 운용하자 체내에 숨겨져 있던 화염이 피어올랐다.
그러자 몸을 뒤덮고 있던 피비린내가 순식간에 소멸했다.
진양의 시선이 다시 전장으로 향했다.
양범의 속도는 매우 빨랐다.
발아래 넘실거리고 있는 피의 파도는 그의 몸을 붙잡아주고 있었고, 그 힘으로 빠르게 화상용을 쫓아가고 있었다.
화상용은 매우 평온한 얼굴이었다.
하얀 소복을 휘날리며 싸우고 물러서기를 반복하는 모습이었다.
분명 비행이 불가능한 곳이었음에도 그녀는 무려 세 장이나 허공에 떠 있었다.
파도를 타고 다시 한번 화상용의 앞에 나타난 양범은 힘차게 주먹을 뻗었다.
양범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붉은 파도는 순식간에 십여 장을 날아가며 거대한 붉은색의 손 형상을 이루며 화상용의 머리를 노렸다.
화상용은 차가운 얼굴로 소매를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빛이 뿜어져 나왔다.
바로 그 순간, 뿜어져 나온 빛은 수많은 칼날로 돌변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칼날은 빠른 속도로 움직이며 무시무시한 칼날 폭풍을 만들었다.
붉은 손은 칼날 폭풍과 맞닿기 무섭게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혈무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칼날 폭풍은 여전히 줄어들지 않은 기세로 수백 장 범위를 감싸며 양범을 향해 몰려들기 시작했다.
양범의 표정이 굳어졌다.
순간 그의 발아래서 파도가 솟구치며 그를 완전히 감싸기 시작했다.
이어서 은빛 칼날 폭풍이 휘몰아치며 붉은 파도를 잘게 썰어버렸다.
양범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가루가 되어버린 듯했다.
그러나 혈무가 되어버린 붉은 손은 여전히 힘을 잃지 않은 듯 계속해서 화상용을 노려오고 있었다.
화상용이 가볍게 허공을 향해 발을 내딛는 순간 그의 발에 맑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녀는 마치 단단한 대지를 밟는 것처럼 빠르게 움직이며 가볍게 혈무를 피해버렸다.
공격을 피한 화상용은 삼 장 높이의 허공에서 조용히 피의 호수를 살펴보았다.
그러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멀리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진양을 바라보았다.
그때, 피의 호수에서 파도가 일렁이는가 싶더니 사람의 형상을 갖추기 시작했다.
파도가 가라앉자 양범의 모습이 다시 나타났다.
다시 나타난 양범은 곧바로 화상용을 공격하는 대신 그녀와 똑같이 고개를 돌려 진양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이런. 이러면 더 이상 싸움 구경을 못 하는데.’
진양을 발견했으니 두 사람은 더 이상 싸움을 이어나가지 않을 것이다.
진양은 미소를 머금은 채 두 손을 들고 힘차게 흔들었다.
“난 그냥 없는 사람이다 생각하고 계속해. 정 불안하면 그냥 조용히 지나가도록 할 테니까.”
두 사람만 원한다면 진양은 기꺼이 자리를 비켜 줄 생각이었다.
어차피 서로 물고 뜯다가 양쪽 모두 크게 다치면 진양으로선 이득이니 말이다.
화상용은 차가운 표정으로 진양을 노려보며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녀의 신발에선 계속해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덕분에 그녀는 마치 대지를 걷듯이 허공을 걸어갈 수 있었다.
게다가 속도도 꽤 빨랐다.
겨우 몇 걸음 만에 벌써 진양이 있는 곳까지 다가온 것이다.
양범도 눈빛을 반짝이는가 싶더니 피의 파도를 타고 진양과 가까운 곳까지 다가왔다.
이렇게 세 사람은 서로 대치하게 되었다.
이 정도면 꽤 안전한 거리였다.
서로가 견제하고 있기에 감히 그 누구도 딴 마음을 품진 못하기 때문이다.
“진양, 이곳엔 어차피 다른 사람도 없는데 어째서 아직까지 모습을 숨기고 있는 것이냐?”
양범이 차갑게 웃으며 진양에게 한마디 했다.
진양은 전혀 놀라지 않은 모습이었다.
가장 위험한 시기에 일도협 깊은 곳에 위치한 비경까지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진양뿐이었다.
때문에 아무리 얼굴을 바꾼다고 하더라도 양범은 그를 알아볼 것이었다.
“지금 모습도 꽤 마음에 드는걸. 잘생겼잖아!”
진양은 만족스러운 듯 자신의 뺨을 긁적였다.
이번에 바꾼 얼굴은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코가 꽤 높은 전형적인 미남상이었다. 거기에 날카롭게 치켜 올라간 눈썹까지 더해져 남자다움이 물씬 풍기고 있었다.
물론 진양이 진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건 양범 때문이기도 하다.
‘아주 대놓고 날 속이겠다고 말하지 그러냐.’
만약 진짜 모습이 흠천보감에 새겨지기라도 한다면 양범은 앞으로 진양의 행적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소문에 따르면 진짜 모습과 기운이 흠천보감에 기록되는 순간 신조의 영토 내에서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세세하게 기록된다고 한다.
일종의 미행이 따라붙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물론 이곳은 대황의 신조 영토 범위 밖이기 때문에 흠천보감의 힘도 크게 줄게 된다.
하지만 또 다른 신묘한 기능이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진양은 여유로운 듯 미소를 지었다.
한편 양범의 표정은 한층 더 어둡게 변했다.
진양이 정체를 뻔히 들키고도 진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한편 화상용은 반짝이는 눈빛으로 조용히 진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양은 그런 그녀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진양이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반응한 것으로 보아 그녀는 진양을 기억하고 있는 게 확실하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듯한 모습이었다.
“처음엔 몰랐지만 이제야 알겠구나. 대우, 뇌후, 우수의 죽음은 십중팔구 네 놈과 연관이 있는 게 틀림없다. 진양, 참으로 대단하구나.”
양범은 진심이었다.
대우, 뇌후, 우수 세 사람 모두 진양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높은 실력을 가지고 있던 수하들이다.
하지만 그의 수하들은 모두 죽었다.
반대로 진양은 멀쩡히 살아있었을 뿐만 아니라 실력이 크게 늘기까지 했다.
“그런 입에 발린 소리는 됐고 날 죽이고 싶으면 죽이고 싶다고 해. 그래도 지금까지 보아온 위선자들 중에 너만 한 사람은 없었는데 말이야. 계속해서 살아있다면 앞날이 창창하겠지만, 아쉽게도 난 널 죽이러 이 자리에 왔다.”
진양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미소를 지었다.
차분하게 말을 이어나가고 있긴 했으나 눈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하하하!”
양범은 큰소리로 웃는가 싶더니 이내 표정이 급격하게 차갑게 변했다.
그는 가식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 말이 맞다. 네가 죽지 않는다면 나 역시 발 뻗고 잘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은 방해꾼이 있어서 어렵겠구나. 괜찮다면 함께 힘을 합쳐 방해꾼을 제거하고 난 뒤에 계속해서 볼일을 보도록 하는 건 어떻겠느냐?”
진양은 양범의 제안은 무시한 채 화상용을 바라보며 물었다.
“화상용, 나와 함께 손을 잡고 저놈을 죽이자. 어때?”
“진양, 네가 어떤 인간인지 모를 줄 알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이냐? 그런 허접한 수단으로 날 농락하려거든 그만두거라.”
화상용은 굳은 표정으로 차갑게 말을 내뱉었다.
그녀의 목소리에선 일말의 감정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화상용이라. 꽤 좋은 이름이군.”
양범의 눈빛에서 살기가 피어올랐다.
“진양, 네가 나와 함께하지 않겠다니 어쩔 수 없구나. 화 소저, 나와 함께 손을 잡고 진양을 죽이는 건 어떻겠소? 지금까지 우린 단순한 오해 때문에 이랬던 것 아니오? 굳이 서로의 목숨을 걸고 싸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오.”
“화상용, 난 당신의 상처를 치유할 방법을 알고 있어. 게다가 이 세상에 그 방법을 알고 있는 건 내가 유일할 텐데. 정말로 저 위선자 놈이랑 손을 잡을 생각은 아니겠지?”
진양은 여유로운 듯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이 손을 잡든 말든 전혀 아무렇지 않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순간 화상용의 표정에 변화가 일어났다.
그녀는 자신의 오른쪽 팔을 힐끔 쳐다보다 다시 시선을 돌려 진양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함께 손을 잡도록 하자.”
“좋았어. 상처를 치료하는 방법은 일단 저 녀석부터 처치하고 난 다음에 알려주도록 하지.”
상황이 이렇게 되자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기 시작했다.
세 사람이 뿜어대는 기운이 서로 맞부딪치며 거센 바람이 일어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