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266
266화 무인도의 정체
꿀꺽-
‘무시무시하군.’
넓은 감방에 처음부터 혼자 갇혀있을 리는 없었다.
아마도 함께 갇혀있던 다른 재능 있는 아이들은 모두 잡아먹었고, 이젠 먹을 게 없자 자신의 팔까지 뜯어먹기 시작한 것이 틀림없었다.
무엇보다 아이의 육신의 힘은 상상 이상으로 무시무시했다.
아이의 주먹에 맞은 감방문은 금방이라도 박살 날 듯했다.
이 외에도 모두 하나같이 심상치 않은 자들이 쇠창살 너머에 갇혀있었다.
그러나 감옥에 갇힌 것치고 상당히 평온한 모습인 자도 있었다.
어느 감방에는 초록색 액체 담긴 거대한 나무의 모습도 보였다.
굵직한 줄기를 중심으로 여러 갈래의 가지가 뻗어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그것들은 가지가 아닌 뱀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가지의 중간에는 온갖 세월의 흔적이 가득한 노인의 얼굴이 박혀있었다.
노인은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한 모습이었고, 이는 가지처럼 달린 뱀도 마찬가지였다.
이 외에 감방 밖에는 각종 악랄한 봉인과 함정들이 수도 없이 걸려있었다.
지금까지 둘러본 바에 의하면 현재 나무 요괴가 있는 감방의 경비가 가장 삼엄했다.
그렇다는 건 감방에 갇혀있는 자들 중 가장 강력한 존재라는 뜻이었다.
어쨌든 배를 한 바퀴 둘러본 진양은 한숨을 푹 쉬었다.
선원은 단 한 명도 남아있지 않았고, 현재 이 배에 살아있는 사람은 진양과 선원들이 잡아 온 노예, 혹은 죄수들 뿐이었다.
‘이제 어쩌지?’
감옥에 갇혀있는 건 자신의 팔까지 뜯어먹을 만큼 정신이 불완전하거나 독으로 가득 찬 액체에 푹 담가놔도 죽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존재들이었다.
예전이었다면 그냥 모른척하면 그만이었지만, 이젠 아니다.
진양은 이 배의 선장이기 때문이었다.
설령 이대로 전부 풀어준다고 해도 어쨌든 이 배의 선장은 진양이기 때문에 온갖 후폭풍을 감당해야만 했다.
그렇다고 계속 가둬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연신 감방문을 두드려대는 어린아이가 있는 감방만 봐도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원래 유령호 녀석들이 하던 것처럼 팔아버리자니 그것 역시 나름대로 문제였다.
무엇보다 진양은 인신매매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럴 능력도 없고, 능력이 있다고 해도 할 생각조차 없었다.
제압할 만큼 충분한 능력이 되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팔아넘길 만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가둬놓자니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나 다름없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진양은 마침내 결심을 내린 듯 풍림호로 향했다.
‘일단 이건 나중에 생각하자고. 임풍 선장이 날 찾는다고 했었지? 무슨 일로 날 찾는 건지 우선 가서 살펴보자.’
풍림호로 넘어와 임풍 선장을 만난 진양은 깜짝 놀랐다.
새하얀 백발, 잔뜩 쪼그라든 얼굴, 움푹 파인 눈가, 거기에 건조한 피부까지.
곧 임종을 앞둔 노인처럼 온갖 죽음의 기운을 풍기고 있는 모습이었다.
“앉지.”
임풍이 손에 들고 있던 농기구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는 손에 묻은 진흙을 깨끗하게 씻어낸 뒤 진양에게 차를 한 잔 권했다.
“선장님,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놀란 진양은 어안이 벙벙한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현재 임풍의 모습은 수명을 다하고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괜찮아. 이미 각오는 했었다네.”
임풍은 괜찮다는 듯 두 손을 휘휘 내저어 보였다.
그의 두 손바닥, 그리고 손가락은 깨끗했다.
유일하게 오른쪽 새끼손가락 끝에만 희미하게 지문이 남아있었다.
“나의 장문, 지문은 이제 곧 완전히 사라질 걸세. 그렇게 나의 수명도 끝이 나겠지. 선장 자리라면 이미 순풍에게 모두 넘겼다네. 유령호의 조타륜을 얻었다고 들었네. 그래서 죽기 전에 자네를 부른 걸세. 하고 싶은 얘기도 있고, 듣고 싶은 얘기도 있거든.”
임풍은 매우 차분한 모습이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의 얼굴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공포심 따위는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순간 진양은 임풍이 무슨 말을 할지 대충 알 수가 있었다.
조타륜을 손에 넣는 것과 넘겨받는 것.
그것은 매우 큰 차이다.
곽순풍은 유령 선장이 직접 진양에게 조타륜을 넘긴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임풍은 아니었다.
임풍은 그 누구보다 유령의 심성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유령이 죽기 전에 조타륜을 넘긴 것도 모자라 연화까지 도와주었다?
결코 말도 안 되는 얘기다.
“대략적인 자초지종은 잘 알고 있다네. 뭐, 어쨌든 결론적으론 잘된 일이니 비밀은 지켜주도록 하지. 지금부터 선장들만 알고 있는 일에 대해 얘기해 줄 걸세. 그리고 얘기가 끝나면 자네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으니 솔직하게 대답해 주시게.”
“알겠습니다.”
진양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유령 해적단은 사실상 유령섬에 갇혀있는 존재를 감시하는 옥졸이라고도 할 수 있지. 수만 년 전부터 이어져 오던 일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배후 세력이 사라지고 결국 세 척의 배만 남게 되었지. 이 세 척의 배는 봉인을 유지하는 관건이자 외층 봉인을 여는 열쇠이기도 하네.
자네, 유령호를 계승 받게 되었으니 한 가지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네. 웬만하면 대황으론 가지 않는 게 좋을 걸세. 그랬다간 큰 위험에 빠질 수도 있거든. 사해는 비록 영기가 사납게 휘몰아치고 무시무시한 괴수가 많긴 하지만, 우리 유령 해적단은 바다에 있을 때야말로 가장 안전하다네.
특히, 부도마교를 조심하시게. 놈들이 우릴 노리던 건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야. 만약 유령호의 주인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분명 자네를 가만두지 않을 걸세.
이 외의 일이라면 조타륜을 완전히 연화하고 나면 천천히 알게 될 걸세.
그럼 이제부터 질문하도록 하겠네.
안에서 무슨 일이 있던 건가? 그리고 사마의 이성은 어째서 유령섬을 벗어나지 않은 건가?”
진양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진양이 입을 열었다.
“봉인에서 흘러나오던 사마의 힘은 이제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될 수준입니다. 앞으로 더 이상 봉인을 강화하기 위해 이곳으로 오지 않아도 됩니다. 적어도 수만 년 내에 누군가 의도적으로 외력을 가하여 봉인을 부수지 않는 이상 봉인은 안정적으로 유지될 겁니다. 지금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여기까지네요.”
“잘됐군. 그렇다면 우리의 임무는 이로써 모두 끝이 난 셈이로군.”
임풍 선장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는 더 이상 자세한 내용에 대해 캐묻진 않았다.
“그래서 사마라고 불리는 그 녀석의 정체는 도대체 뭡니까? 놈의 본체가 도대체 뭐길래 그리 난리인 겁니까?”
진양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본체라……. 난 실제로 본 적이 있다네.”
임풍이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그게 사실입니까?”
진양은 눈이 휘둥그레진 채 그에게 물었다.
그때, 순간적으로 자신의 체내에 진압해두었던 마수가 떠올랐다.
“설마 유령섬 안에 있던 그 무인도입니까?”
마수의 모양은 무인도를 닮아있었던 것이었다.
“잘 알고 있군.”
“그렇다면 저희는 여태 놈의 몸 위에서 그 난리를 벌였단 거군요.”
진상을 알게된 진양은 가슴이 철렁했다.
진양은 호양보종에서 흘러나온 힘을 무인도에 전부 흘려보내 버렸다.
그것도 반나절 넘게 말이다.
‘설마 그 무인도가 사마의 본체였을 줄이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섬은 손의 형상을 띄고 있었다.
세 척의 해적선이 정박한 곳은 바로 손가락 사이의 틈이었던 것.
“꽤 침착하군. 난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자네보다 훨씬 더 크게 놀랐었다네.”
임풍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전설에 따르면 봉인은 천외(天外)에서 날아와 우리가 있는 이 세계로 떨어져 비경을 이루었다고 하더군.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을 발견한 누군가 봉인된 자가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만들기 위해 봉인의 강화를 시작했다고 해.”
“그렇군요.”
진양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문득 사마가 고의로 이곳에 대한 정보를 바깥으로 흘렸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상할 것도 없었다.
봉인에 의해 짓눌려있는 사마가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외부의 힘을 끌어들여야 했다.
그에겐 변화를 일으켜야 희망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전설에 따르면 그곳에 봉인된 건 고대 마선(魔仙)의 왼손이라고 하더군. 마수가 봉인된 이후로 수많은 시간이 흐르며 하나의 세계가 무너졌고, 봉인은 끝없는 허공 속에서 엄청난 세월을 보내다 마침내 우리의 세계로 떨어지게 된 걸세.
그러다 누군가 마수에 이성이 깃들어있다는 것을 발견했지. 놈은 남의 약점을 이용하여 상대를 현혹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어. 부도마교와 같은 수법이지. 마수의 이성은 과거 부도마교의 한 강자를 현혹했다네. 그들이 마수에 깃들어있는 힘을 직접 부리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었지.
그러다 부도마교의 한 현자가 이러한 사실을 알아차리곤 곧바로 그만두긴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마수 본체를 제어하는 것을 포기하고 마수에서 흘러나온 힘을 제어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네.
참으로 대담하고 겁대가리 없는 행동이 아닐 수 없지. 우리의 선조들은 마수 본연의 힘이 너무 강한 나머지 새로운 이성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하셨었다네. 허나 시간이 지나고 난 뒤에야 비로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 엄청난 세월의 풍파를 이겨내고도 소멸하지 않은 불멸의 이성. 그건 오직 상고 시대의 진정한 마선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었지.
오랜 세월이 흐르며 잿더미 속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불씨와 같은 존재에 불과했지만,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막을 수 없었다네. 단순히 현혹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놈은 대상의 마음속 깊은 곳에 만들어진 틈을 파고들었지.
다행히 놈의 본체는 완벽하게 봉인에 의해 진압된 상태이고 섬 위를 활동하며 돌아다닐 수 있는 건 그의 힘의 일부와 사라지지 않은 이성뿐이었지. 하지만 뿜어져 나오던 힘마저 사라졌다니 더 이상은 그곳을 빠져나올 순 없을……. 쿨럭쿨럭!”
임풍이 발작하듯 기침했다.
그의 얼굴은 새하얀 백지장이 되어있었다.
“듣자 하니 무인도에서 얻은 기이과를 쓰면 수명을…….”
“괜찮네.”
임풍은 진양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를 말렸다.
“난 이미 사천오백 년이나 살았다네. 이만큼 살았으면 충분하다네. 우리 가족에 대대로 전해지는 한 가지 전설이 있지. 내 조상께선 상고 지부의 신관이셨는데, 죽음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라는 말을 남기셨다고 하더군. 이제 나의 책임도 다한 듯하니 그 새로운 시작이 어떤 건지 직접 경험해 보고 싶어.”
“그게 아니라 사실 기이과를 한 개 가지고 있어서 말입니다.”
머뭇거리던 진양은 주머니에서 기이과 덩굴을 꺼냈다.
덩굴에는 잘 익은 기이과가 달려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