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35
35화 어리석은 지고
원한이 종이 위를 뚫고 나와 덮쳐오자 진양은 넋이 나가고 두 눈이 아파져 왔다.
서둘러 나무상자를 꺼내어 이 종이를 안에 넣고는 더는 보지 않았다.
진양은 어쩔 수 없었다. 자소도군은 정말 뼛속까지 장해도군을 원망하고 있었다. 죽은 지 이렇게 오래되었고 잔념(殘念)만 남았는데도 아직도 당시의 원한을 기억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런 식으로라도 화를 풀어야만 했다.
“좋습니다. 어르신, 만약 기회가 온다면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진양의 대답은 힘이 없었다.
“내가 바래다주겠네.”
자소도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을 휘두르자 진양의 눈앞이 희미해지더니 순식간에 능침의 입구로 돌아왔다.
옆의 허공에서 손이 튀어나오더니 진양의 어깨를 잡아당겨서 그림자의 세계로 끌어들였다.
“노부, 안색이 안 좋아 보이십니다.”
진양은 다시 노인을 만났다. 그런데 노인의 안색이 창백하고 온몸을 떨고 있고 눈빛마저 떨리는 게 이상했다.
“잔말 말고 어서 가자.”
노인은 조용히 말하고는 진양을 끌고 갔다. 단지 고개를 돌렸을 때 눈에는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설마 잔념만으로도 이 정도로 신위가 넘칠 줄이야. 허공을 넘어 그림자를 간파하고 노부를 제자리에 묶어두다니. 사방의 공간이 모두 감금되어서 내 실력으로도 벗어날 수 없었다.’
‘만약 악의가 있었다면 결과는 비참했을 것이다. 난 그저 죽음을 받아들여야 했을 것이다.’
“노부?”
“어서 가자.”
노인은 진양을 데리고 그림자 속을 걸었다. 그는 꽤 겁에 질려 있었다. 엄청난 속도로 나아가니 주변의 풍경은 마치 희미한 잔상처럼 보일 정도로 빠른 속도로 물러났다.
노인은 진양을 데리고 수백 리를 날아가서야 주변을 살펴보고는 그림자에서 빠져나와 한숨을 쉬었다.
“노부가 정말 미치는 줄 알았다. 무슨 생각으로 너랑 같이 능침으로 들어갔는지. 자소도군이 나에게 문제 삼지 않아서 다행이었지. 안 그랬으면 노부는 아마 도문의 선대 중에 가장 억울하게 죽었을 거다.”
노인은 화가 났는지 아니면 겁이 났는지 모르겠지만 그 자리에서 발만 동동 굴렀다.
“휴, 주머니 하나 더 드릴까요?”
진양은 조금 미안해졌다. 그는 가기 전에는 그렇게 위험한 곳인 줄 몰랐다. 게다가 자소도군의 남아있는 잔념이 그렇게 대단한 줄도 몰랐다.
“됐다.”
노인은 길게 한숨을 쉬고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잠시 후, 정신이 돌아온 노인은 눈을 들어 진양을 보았다. 진양을 노려보다가 온몸에 털이 곤두서자 비로소 웃음을 띠었다.
“애송아, 너는 너무 착하고 실력도 너무 약해서 밖에서 언젠가 비참하게 죽을 수도 있다. 이렇게 하자. 노부는 도문의 계승자로서 어느 정도 권리가 있으니 너를 우리 도문에서 받아줄 수 있도록 하겠다.”
그런데 진양이 대답하기도 전에 먼 하늘에서 갑자기 빛이 비쳤다. 마치 뜨거운 태양 같은 게 하늘에서 떨어졌다. 눈이 부실 정도의 빛이 지나가자 순식간에 날이 바뀌어 어두웠던 하늘이 대낮처럼 변했다.
뜨거운 태양이 하늘 높이 더 있었다. 무겁고 당찬 종소리가 들려오자 육안으로 보일 정도의 잔잔한 물결이 출렁거렸다. 이때, 뜨거운 태양이 웅대해지더니 양기로 가득한 북소리가 들리면서 요사함이 모두 사라졌다.
능침 위에 있던 검은 구름이 걷히면서 검은빛이 사라지자 수많은 거대한 몸집의 능침을 지키던 괴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윽고 종소리가 다시 들렸다.
뎅!
세 대능과 막상막하로 싸울 수 있는 수백 마리의 능침을 지키던 괴수들 모두가 순식간에 모두 가루가 되어 부서졌다.
뎅!
종소리가 다시 울리자 뒤집혔던 하늘과 땅이 잔잔한 물결을 따라 쓸려가더니 너무나 쉽게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한순간에 능침이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아무런 방비 태세도 없었다. 종소리가 다시 한번 울리면 부서질 거 같았다.
“호양보종(昊陽寶鐘)!”
노인은 놀라서 소리를 지른 후에 마치 뭐라도 생각이 난 거처럼 웃었다. 표정은 매우 기뻐하고 있었다.
“현천성종이 종파를 지키는 법보인 호천양종을 더 몇 번이나 울릴 수 있을까? 저들은 자소도군을 너무 쉽게 생각했어. 큰 손해만 보게 될 거야.”
노인은 싱글벙글 웃으며 진양을 데리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는 잡히는 대로 구름을 집어다가 연화시켜 운상(雲床)을 만들었고 진양을 그 위에 놓았다. 그리고 손을 뒤집자 탁자가 생기면서 안주를 차리고 좋은 술을 따르면서 구름 위에 털썩 앉았다.
“빨리 앉아서 좋은 구경 해라. 이런 구경은 만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다.”
“현천성종하고 무슨 원수라도 지셨습니까?”
“없다.”
노인의 대답한 깔끔하고 명료했다.
진양은 말이 없었다.
‘원수도 아닌데 이런다고?’
“잔말 말고 구경이나 해라.”
노인은 더는 못 참겠는지 고개도 돌리지 않고 손을 저었다.
뎅!
다시 한번 종소리가 요란하게 울리자 하늘 높이 있던 태양이 붉은 물결을 일으키며 돌기 시작했다. 만물이 물러나고 음기가 사라졌다. 공기도 모두 물결 때문에 강제로 물러나는 거 같았다. 높은 하늘에 갑자기 거대한 구멍이 뚫리더니 끝없는 밤하늘이 나타났다.
구천(九天) 위에 검푸른 바람이 불더니 찬란한 번개와 서로 하나가 되더니 붉은 물결에 강제로 사로잡혀서 능침을 향해 떨어졌다. 멀리서 보니 하늘이 기울고 거꾸로 내려앉는 듯했다. 이런 엄청난 신위 아래 만물이 소스라지고 산과 돌이 모두 죽기 직전에 비명을 지르는 듯했다.
하지만 능침은 조용했고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천지를 파괴할 힘이 능침을 향해 떨어졌다. 곧 부서지려고 할 때 그 위력을 휘감고 떨어지던 붉은 물결이 갑자기 능침의 위에 멈췄다.
뒤쪽에서 잔잔한 물결이 겹겹이 쌓였다. 이내 붉은 물결처럼 끊임없이 떨어지면서 힘이 쌓였지만 전부 능침의 위에서 멈췄다. 더는 나아가지 못했다.
잠시 후.
적색의 물결은 겹겹이 쌓여 이미 천둥과 하나가 되었다. 백 리 크기의 붉은 바다가 형성되어 파도가 거세게 몰아치고 용솟음쳤고 쌓인 신위는 점점 강해졌다. 붉은 바다의 물결이 몰아치면 모든 것을 휩쓸고 지나는 곳마다 모든 걸 무(無)로 만들 수 있을 거 같았다.
하지만.
번개와 불이 하나가 된 붉은 바다는 갑자기 천천히 솟아올랐다. 마치 보이지 않는 힘이 천지를 파멸시킬 거 이 붉은 바다를 떠받치고 있는 듯했다.
붉은 바다가 점점 높아지자 그제야 어렴풋이 아래에서 손가락 하나가 붉은 바다를 받치고 억지로 밀어 올리는 것이 보였다.
이 손가락은 평범했고 마치 보통 사람의 손가락 같았다. 조금의 티끌도 묻지 않았고 어떤 특별한 점도 없었다. 화려한 신광도 보이지 않았고 도문도 없었고 어떤 다른 이상(異象)도 보이지 않았다.
붉은 바다는 점점 높아졌고 속도도 점점 빨라졌다. 백 리의 바다는 역류하더니 한 손가락에 잡혀서 반대로 뜨거운 태양쪽으로 날아갔다.
솩!
경쾌한 소리가 나면서 뜨거운 태양을 덮고 있던 신광은 마치 거품처럼 갑자기 부서졌다.
한순간에 엄청난 힘이 밖으로 새어 나왔다. 광풍이 불고 포효가 끊이지 않았고 빛이 흔들리면서 마치 파도가 하늘에 닿을 거처럼 휘몰아쳤다.
수백 리의 땅에 있던 수많은 산이 순식간에 가루가 되었다. 큰 강이 뒤엉키더니 갑자기 무너지면서 수증기가 되어 증발했다. 수많은 가루와 수증기가 뒤엉키면서 휩쓸어 나갔다.
하늘에서 운상 위에 앉아 있던 진양은 경악했다. 눈빛이 신광으로 빛나자 시력을 강하게 하여 억지로 지켜보았다. 두 눈이 아파져 왔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이런 신위는 정말 동경심이 생길 정도로 대단했기 때문이다.
진양은 눈이 더욱 아파왔다. 결국 더는 참지 못하고 두 눈을 감았다. 그제야 두 눈의 고통이 조금 가라앉았다.
다시 두 눈을 뜨자 하늘에 있던 뜨거운 태양은 사라졌다. 거대한 적색의 종이 그곳에 걸려있었다.
고풍스러운 종은 온몸이 적색이었다. 겉에는 다양한 형태의 각종 괴수가 조각되어 있었다. 가장 큰 것은 날개를 펴고 머리를 들고 울부짖는 거대한 새였는데 무궁한 신광의 번개와 불이 모두 이 거대한 새의 입으로 빨려 들어가 흡수되었다.
큰 종은 그곳에 매달려 산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주변의 혼란스러운 하늘에서 버티면서 신광이 모두 사라져도 털끝도 건드릴 수 없었다.
하지만 순식간에.
그 손가락이 느리면서도 또 빠르게 하늘로 솟구쳐 오르더니 순식간에 허공을 넘어 커다란 종에 조각된 거대한 새의 머리를 건드렸다.
피시익!
거대한 새의 머리는 마치 수증기처럼 손가락에 부서졌다. 거대한 종에는 갑자기 구멍이 하나 더 생겼다.
비명이 울려 퍼지면서 거대한 종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하늘 높이 있던 신위도 같이 사라졌다.
“하하하, 노부는 알고 있었지. 현천성종 그 멍청이가 당할 것이라는 걸. 종파를 지키는 호양보종이 이렇게 부서지고 안에 봉인되어있던 금오요혼(金烏妖魂)은 죽지는 않았겠지만 사라져버렸다.”
노인은 크게 웃으며 맛있는 술을 한잔 마시더니 얼굴이 새빨개졌다.
“어르신, 원수진 일도 없는데 그렇게까지 좋아하십니까?”
진양은 할 말을 잃었다.
“그들은 나와 원수가 아니지만 내 도문의 선조들하고 큰 원수였다. 전에 우리 도문이 대적(大敵)을 만나 붕괴됐고, 많은 선조가 남았지만 모두 상처를 입고 잔해만 남았었지. 그런데 저 망할 놈들이 더 욕심을 부려서 우리 도문의 남은 분들도 거의 다 죽었고 그때의 계승자도 중상을 입었지. 현천성종 망할 놈이 그 틈을 타서 호양보종으로 그를 울려서 죽였다.”
노인은 한 잔 더 마셨고 마치 속이 좀 풀린 거 같았다.
“이기지 못한다고 그대로 죽어야겠는가?”
노인은 당당하게 말하고는 진양을 흘끗 보았다.
진양은 말문이 막혔다. 생각하기도 전에 이미 알 거 같았다.
‘이 늙은이가 정말 실력이 충분했다면 벌써 현천성종 산문을 부쉈지 어찌 이만 갈고 있었겠는가.’
“응? 자소도군이 뭘 하려는 거지?”
노인은 술잔을 내려놓고 궁금한 표정으로 보았다.
자소도군이 한 손가락으로 호양보종에 구멍을 뚫은 뒤였다. 아래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는 능침에서 황천수가 날아가면서 능침 아래의 있던 물건들이 모두 드러나기 시작했다.
능침 아래에 있던 거대하고 구조가 복잡하기 그지없는 오색천륜(烏色天輪)의 큰 굴렁쇠에 작은 굴렁쇠가 씌워지더니 겹겹이 쌓여갔다.
언뜻 보기에는 더없이 크고 복잡한 나침반처럼 보였다.
게다가 그 위에는 별빛이 빽빽하게 수놓아져 있었는데 한쪽이 빛나면 한쪽은 어두워졌다. 검은 바탕과 어울리는 모습은 마치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별자리 같았다.
능침 전체가 하늘 높이 날아오르더니 갑자기 흔들렸다.
쾅!
폭음이 나면서 하늘과 땅이 떨렸다. 마치 세계가 무너지는 거 같았다.
굉음이 나자 거대한 나침반에 있던 별들이 유광이 되어 적지 않게 떨어졌고 사방을 향해 날아갔다.
“다보천륜(多寶天輪)! 자소도군의 다보천륜이야!”
노인의 눈에서 갑자기 석 척의 푸른 빛이 나오더니 목소리가 떨렸다.
“애송아, 술은 너 혼자 마셔라. 노부는 보물 주우러 간다. 다보천륜 위에 있는 반짝이는 별은 가장 나쁜 게 영기이고 비보의 흐름도 적지 않다. 네 운이 좋으면 아마 한, 두 개가 너한테……”
노인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이미 사라졌다.
쾅!
또다시 굉음이 나면서 다보천륜 위에 있는 별들이 더 많이 떨어졌다. 떨어진 별은 바로 유성이 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굉음이 잦아지면서 하늘에는 마치 별똥별이 떨어지는 거 같았다. 유성은 사람들의 눈을 멀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