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368
368화 어디에 있지?
최양평은 단순히 살기만으로도 귀신의 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을 압살했다.
멍한 얼굴로 서 있던 최양평은 조금씩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광소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중년 남자는 순간적으로 자신도 모르게 공포심을 느꼈다.
과거 최양평의 손에서 살아남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의 실력이 강했기 때문에 살아남은 게 아니다.
하찮을 정도로 약했기 때문에 최양평이 죽일 가치를 느끼지 못해 살려준 것이었다.
당시 최양평이 중년 남자를 바라보던 눈빛이 바로 이 눈빛이었다.
그는 고개를 천천히 떨구며 입꼬리를 잔뜩 올린 채 중년 남자를 비웃고 있었다.
마치 금방이라도 손을 들어 눌러 죽일 수 있는 개미 새끼를 바라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최양평의 눈빛에 중년 남자는 본능적으로 공포심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나 뒤이어 휘몰아치는 분노가 머릿속을 휘저으며 그의 이성을 완전히 마비시켜버렸다.
“그런 수작 따위는 먹히지 않는다!”
일갈과 함께 중년인은 빛이 되어 하늘로 날아올라 독안이 달린 손과 하나가 되었다.
이어서 강렬하면서도 악의 가득한 더러운 기운이 손에 달린 눈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기운과 합쳐지며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소용돌이는 눈 깜짝할 사이에 최양평을 중간에 가둬버렸다.
최양평은 가소롭다는 듯 웃으며 중얼거렸다.
“기억났다. 네 녀석, 그때 살려달라고 빌던 그 녀석이로구나. 내 손에 죽을 가치조차 없던 그 하찮던 녀석…….”
최양평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손바닥을 펼쳤다.
콰광-!
굉음과 함께 빛이 터져 나왔다.
빛과 함께 터져 나온 기의 파도는 눈앞에 있는 소용돌이를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잠시 뒤.
기의 파도와 빛 그리고 소용돌이까지.
모두 깔끔하게 소멸되어버렸다.
그리고 최양평의 오른손에는 커다란 눈이 달린 거대한 손이 붙들려있었다.
“꽤 많이 컸구나.”
최양평은 제법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손을 거두었다.
그러나 거대한 손은 여전히 그곳에 굳어 있었다.
쩌적-
아주 작은 실금이 하나 생겼다.
쩌적- 쩌저적-
이를 시작으로 실금은 손 곳곳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심지어 눈도 마치 기왓장이 깨지듯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쌩- 하고 바람이 불어오자 손은 먼지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손이 사라지자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버린 중년인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며 지면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최양평은 손을 뻗어 중년인의 목을 붙잡았다.
그렇게 전투는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나버리고 말았다.
최양평에게 붙잡힌 중년인의 눈에는 절망이 가득했다.
“최양평, 죽일 거면 빨리 죽여라!”
그러나 최양평은 멍하게 한참 동안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그의 눈은 초점이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그가 화들짝 놀라며 자신의 손에 잡혀있는 중년인을 바라보며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이, 이게 누구야? 내가 왜 이 사람을 붙잡고 있는 거지? 아, 생각났다. 분명 명철이에게 끓여줄 탕 재료를 찾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근데 이 사람은 도대체 누구지…….”
최양평의 반응에 중년인은 이를 바득 갈며 소리쳤다.
“최양평! 죽일 거면 그냥 죽여라! 이런 식으로 욕보이지 말고!”
빠득-!
최양평은 힘을 주어 중년인의 목을 꺾어버리며 진원을 불어넣었다.
그를 완전히 지배하며 자폭할 기회마저 박탈해버린 것이다.
“명철이에게 탕을 끓여주러 가야 하는데…….”
아직 반쯤 숨이 붙어있는 중년인을 붙잡은 채 최양평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허공에 아직 남아있는 붉은 귀신의 흔적을 발견했다.
그는 멍한 얼굴로 붉은 귀신의 흔적을 쫓기 시작했다.
한편 목이 꺾인 중년인은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또다시 최양평은 그를 굴욕적으로 살려주었다.
그러나 이번엔 도대체 왜 그를 살려준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천 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다.
최양평은 분명 노년기에 접어들었다.
그런데 어째서 그는 전성기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란 말인가?
너무나도 치욕스러웠다.
천 년 전, 그는 죽임을 당할 자격조차 없을 정도로 하찮은 존재였다.
그러나 지금 그는 오랜 시간의 수련 끝에 무려 두 경지나 높아진 상태였다.
하지만 여전히 기껏해야 남의 제자가 먹을 탕의 식재료밖에 되지 않는 처지라니.
엄청난 굴욕감에 당장이라도 요절을 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수천 리 밖.
붉은 귀신은 유명성종으로 돌아가는 지름길로 들어서는 순간 황천마종의 사람들과 마주하고 말았다.
간신히 그곳에서 도망친 붉은 귀신은 뒤를 돌아 백옥주를 향해 입을 크게 벌렸다.
한 층의 귀기가 백옥주 전체를 뒤덮었다.
이어서 십여 장 정도 되는 거대한 입이 만들어지더니 그것을 삼켜버렸다.
귀신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포위망을 뚫고 나갈 수 있는 방향을 살피기 시작했다.
흑림해 방향을 바라보는 순간 그는 잠시 고민하는 듯싶더니 이내 붉은 빛이 되어 아래쪽 숲속으로 향했다.
그리고 지면을 따라 흑림해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 * *
같은 시각.
진양은 흑림해의 어느 한 숲을 지나고 있었다.
어느새 음기가 점점 더 짙고 무거워지고 있었다.
음패수가 머무르고 있는 곳과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의 여정은 매우 순조로웠다.
거처가 가까워지자 음패수는 자신의 기운을 완전하게 개방했다.
그러자 주위에 있던 독충과 독사들이 전부 물러났고, 덕분에 며칠 동안 살아있는 벌레나 다른 생명체는 단 한 마리도 발견하지 못할 정도로 순조롭게 이곳까지 올 수 있었다.
하지만 마냥 안심되는 건 아니었다.
보통 과정이 순조로우면 끝에 가서 갑자기 난이도가 급격히 높아졌기 때문이다.
불안한 느낌은 항상 현실이 되었다.
앞으로 갈수록 눈앞에 보이는 식물들은 점점 더 적어지기 시작했고, 음기는 짙고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맑던 하늘 역시 어느새 흐릿해져 해가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었다.
황량한 검은 산 위로 남아있는 건 오직 음기로 만들어진 안개뿐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음기가 강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귀신의 모습은 단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진양은 음패수를 힐끔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진양의 예상대로 녀석은 이곳에 있던 귀신을 모두 잡아먹은 듯했다.
“여기까지 와서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는 건 아니겠지? 물소의 증표를 보고 겁먹은 걸로 봐선 흑여 선배의 영혼을 겁대가리 없이 잡아먹었을 리는 없을 테고. 그렇다고 기습을 한다고 해도 그분의 피부에 상처 하나 내는 것조차 불가능했을 텐데. 그렇다는 건 그분의 시신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다는 뜻이겠지?”
음패수가 고개를 들며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게 언제적 일인데 아직까지 기억하겠어? 물론 정확한 건 더 찾아봐야 하겠지만 그 사람은 여기서 죽진 않았어. 만약 그랬다면 그 빌어먹을 물소 녀석이 날 찾아왔을 테니까.”
“어허, 만 년은 족히 놀고먹어도 될 만큼 귀신이 많은 곳을 알려준다니깐.”
음패수의 시원치 않아 하는 표정에 진양은 한 마디를 보탰다.
“정말이라니깐. 내가 한 입으로 두말하는 사람처럼 보이는 거야?”
“알았어. 알았다고. 찾아는 볼게. 대신 그 사람이 정말로 이곳에 왔다 간 적이 있어야 찾을 수 있다고. 근데, 정말로 그 사람이 이곳에 왔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니깐.”
“그 사람 정도의 실력이라면 네게 기운을 숨기고도 남을 정도니까. 충분히 그럴 만하긴 하지.”
이곳은 서쪽에서 흑림해로 들어와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극음(極陰)의 땅이었다.
그러므로 흑여 선조가 가장 먼저 돌아봤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이기도 하다.
“한 번 돌아보도록 하자고. 만약 이곳을 지난 게 확실하면 어디로 갔는지 알아낼 수 있을 거야.”
그렇게 음패수는 진양을 데리고 자신의 영역 안쪽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진양은 한숨을 푹 쉬었다.
‘이렇게 넓은데. 언제 하나씩 다 둘러보고 있어?’
하지만 당장은 별다른 수가 없었다.
애초에 그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면 흑여 사람들은 진양보다 훨씬 더 먼저 이곳을 다녀갔을 것이었다.
수색을 시작한 지 삼 일이 지났다.
진양과 음패수는 영역 꽤 깊은 곳까지 들어오게 되었다.
그러던 도중 진양이 갑자기 고개를 번쩍 들었다.
진양은 간신히 이곳의 제약을 이겨내며 허공으로 떠오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먼 곳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대략 수십 리 너머로 새까만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연기 아래쪽 끝에는 새빨갛게 무언가를 뿜어내고 있는, 마치 화산과 같은 것이 보였다.
“저긴 어디야? 이런 곳에 화산이 있다니?”
음패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뭘 모르는군. 이곳이 단순히 극음의 땅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리고 극음의 성질은 오히려 양의 성질을 만들어낸다는 말 못 들어봤어? 이건 상식이라고.”
진양은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이마를 탁- 쳤다.
“아, 잊고 있었군. 생각해 보니 그렇네. 곳곳에 깔려있던 귀신들이 전부 소멸하면서 양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모양이네. 그렇다면 저곳이 양안(陽眼)이 있는 곳이겠군.”
과거 이곳에선 수많은 귀신들이 살아가며 땅에서 피어오르는 음기를 빨아먹었다.
그러나 귀신들이 사라지며 넘쳐나는 음기는 감당을 못할 정도로 짙어지기 시작했고, 그 결과 양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럼 계속 찾아봐 줘. 그동안 난 대신해서 저 양기를 해결해 줄 테니까.”
진양은 음패수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쌩- 하고 양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는 화산으로 향했다.
화산에서 붉은 액체가 쏟아져나오고 있었다.
용암은 아니었다.
뜨거운 양기를 품고 있는 붉은 액체였다.
꽤 멀리 서 있었지만, 이곳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불타오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여기서 더 다가가는 건 무리였다.
가부좌를 틀고 앉은 진양은 최양평이 두고 간 솥을 꺼내 탕을 마셨다.
진양은 곧바로 강렬한 양기에 의해 휩싸이게 되었고, 즉시 장해수수전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한편 수십 리 떨어진 곳에 있던 음패수는 불쾌한 양기의 기운을 느낀 듯 미간을 찌푸렸다.
생각해 보니 진양의 말이 맞다.
여기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바엔 자신을 대신하여 양기를 처리해 주는 편이 오히려 더 도움이 된다.
어차피 혼자서도 진양이 찾는 인물은 앞으로 하루 이틀이면 찾을 수 있다.
* * *
흑남해 남쪽에 위치한 어느 한 구석.
세월의 흔적과 피로함이 얼굴에 가득 묻어있는 중년 남자가 흑림해로 들어섰다.
그의 등 뒤에는 생기가 미약하게 남아있는 혼례복을 입고 있는 여인이 업혀있었다.
진양이 성문 입구에서 보았던 바로 그 남자였다.
모두들 이 남자와 만나면 조용히 피해 가면 아무 일도 당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를 발견하자마자 최대한 멀리 돌아갔다.
덕분에 남자는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길을 걸을 수 있었다.
그렇게 삼 일이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