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417
417화 가성비 좋은 착화제
제이검군이 말을 마치기 무섭게 진양이 자리에서 일어나 극진히 예를 갖추었다.
“형님, 여기까지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형수님께도 좋은 가르침을 주셔서 감사하다고 꼭 전해주시지요. 그리고 형님도 웬만하면 밖으로 나오시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형님 역시 남만에서 꽤 널리 알려진 인물에 속하기 때문에, 괜히 귀찮은 일에 휘말릴지도 모릅니다. 항상 몸 조심하셔야 합니다.”
“알겠소. 진 형도 조심하시오.”
간단한 인사를 마친 제이검군은 소리 없이 자리를 떠났다.
그가 떠나고 나자 진양의 얼굴에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생각할수록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이었다.
진양은 자신이 이런 위기에 처했을 거라곤 도저히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약언의 말을 듣고 나니 뒤늦게 깨닫게 된 것이다.
최양평의 성격, 현재 자신과 최양평의 관계, 그리고 남만의 형국.
이런 것들을 모두 종합해 보면 약언의 말대로 진양만큼 착화제로 적합한 사람도 없었다.
남만의 평화를 깨트리려고 작정한 사람이라면 누구든 충분히 생각해낼 수 있는 계획이었다.
게다가 최양평은 이미 비슷한 일을 당했던 적이 있다.
그리고 그 파급력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모든 이들이 보았었다.
또다시 그런 일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은 없다.
오히려 그런 일을 다시 벌이는 건 식은 죽 먹는 것만큼 간단할 것이다.
진양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이젠 어떻게 해야 하지?’
진양은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사실을 말하자니 벌어진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과거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꽤 높은 자리에 있던 구지신후가 어째서 남을 시키지 않고 친히 나서서 황천마종의 제자를 죽이고, 심지어 그 흔적까지 지워버린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여기까지가 얼마 전까지의 얘기고.
이제는 그 이유를 알 수가 있었다.
명철을 죽여 최양평을 분노하게 만들고, 그것을 이용하여 남만에 혼란을 일으켜 판국을 뒤집을 심산이었던 것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상대는 최양평의 성격과 약점을 상당히 깊게 꿰차고 있었다.
배후의 인물이 누군지는 알 순 없었다.
그러나 누가 배후의 인물이던 최양평의 약점인 진양을 노릴 것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었다.
‘아무래도 조용히 숨어있는 게 좋겠어.’
지금으로선 도문으로 돌아가는 게 가장 안전할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도문으로 돌아가기 위해선 대영 신조의 땅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그게 더 위험할 수도 있었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바다로 돌아가는 방법도 있었다.
특히, 사해는 유령 해적단에겐 안방과도 같은 곳.
마도 삼종의 종주 급의 고수가 나서지 않는 이상 바다에서는 웬만해서는 유령 해적단을 이길 수 없었다.
게다가 현재로서 진양이 가장 안심하며 지낼 수 있는 곳, 믿을 만한 곳은 유령 해적단뿐이었다.
사해가 다른 사람들에겐 치명적일 정도로 위험할진 몰라도 진양과 유령 해적단에겐 아니었다.
그러나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진양은 다시 자리에 앉으며 생각에 빠졌다.
세 맥주가 죽은 뒤로 진양은 단 한 번도 산문 밖을 벗어나 본 적이 없다.
즉, 누구든 진양을 죽일 기회조차 노려볼 수가 없었던 것.
이렇게 되면 가만히 있는 게 오히려 상책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웅크리고 있는 건 결코 방법이 아니었다.
계속 가만히 있는다고 사태가 해결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었다.
진양의 이런 판단이 옳은 판단인지, 아니면 잘못된 판단인지는 두고 봐야 아는 법이었다.
그렇게 또 석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진양은 종문 내에 머물며 산문 밖으로는 단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이상할 건 없었다.
보통 수도사들은 수련에 집중할 경우, 한자리에서 오랫동안 수련을 이어나가기 때문이었다.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르면 수백 년 동안 폐관도 가능한데, 현재 진양은 신해 경지이므로 족히 십여 년 정도는 같은 자리에서 폐관이 가능했다.
한편, 남만의 정세는 점점 더 안정화되어가고 있었다.
마도 삼대 세력이나 그 외의 세력 할 것 없이 서로 간의 마찰 또한 그 어느 때보다도 훨씬 줄어든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는 겉으로 보이는 모습일 뿐.
진양은 여러 소식통을 통해 남만의 정세를 어지럽히려는 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세력과 산수들 사이에서 불필요한 마찰이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런 소식은 수많은 다른 소식에 의해 금세 묻혀 버렸다.
무엇보다 세력과 산수의 싸움이라면 순식간에 해결이 되는 편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는 횟수가 점점 더 잦아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진양은 진심으로 놀랐다.
놀랍게도 약언의 말대로 모든 것이 흘러가는 중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진양만큼 가성비 좋은 희생양은 없을 것이었다.
단지 진양이 틈을 보이지 않고 있기에 아무도 그를 노리지 못하는 것일 뿐.
기회가 생긴다면 곧바로 굶주린 늑대처럼 달려들 것이었다.
여기에 지난 몇 달간 관찰한 결과.
설령 누군가 진양을 죽인다고 해도 절대 절정의 고수를 보내 죽이진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만약 절정의 고수가 진양을 죽인다면 최양평은 분노할 것도 없이 곧장 고수를 찾아가 보복을 하면 상황은 종료될 것이었다.
즉, 판국을 뒤엎고자 하는 목적은 달성할 수가 없게 될 것이었다.
누가 죽였는지 알 수 없어야만 가장 큰 효과를 볼 수 있었다.
진양은 복잡한 마음을 다스리고자 술을 챙겨 늘 술을 마시던 절벽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조용히 술잔을 기울였다.
그렇게 절반 정도 마셨을 즘.
조영휘가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볼일 때문에 멀리 외출하셨던 거 아니었습니까? 생각보다 빨리 돌아오셨군요.”
“간단한 일이라 금방 돌아왔습니다. 게다가 석 달이면 꽤 긴 시간이지요.”
조영휘는 진양의 주전자를 가져가 그대로 입에 술을 부었다.
그리곤 ‘크으’하는 소리를 냈다.
“역시 진 형께선 좋은 술만 고집하시는 모양입니다. 도대체 어디서 이렇게 좋은 술을 구해오시는 건지 모르겠군요. 특히 지난번에 주셨던 그 취생몽사 말입니다. 밤에 자다가도 생각이 날 정도로 맛있었는데 말입니다. 위험한 술만 아니었다면 완전히 뻗어버릴 때까지도 마실 수 있을 법한 술인데…….”
“뭐, 굳이 뻗을 때까지 먹고 싶다면 말리진 않겠어요. 대신 책임은 본인이 지는 겁니다.”
하루라도 술을 마시지 않으면 근질거려 하는 조영휘의 모습을 보니 곽순풍이 떠올랐다.
“아무리 술이 좋다고 해도 그렇지, 술독에 빠져 죽고 싶진 않습니다. 게다가 취생몽사가 상당히 좋은 술인 건 맞긴 하지만, 그런 부드러운 술은 우리 같은 사나이들이 마시기엔 적합하지 않은 술이지요.”
조영휘가 호탕하게 큰소리로 웃었다.
“삼 일 뒤에 흑영성 두씨 가문에서 무려 백 년이나 묵혀둔 자강주를 개봉한다고 하더군요. 독한 술 하면 또 그만한 게 없는데. 어쨌든 백 년에 한 번밖에 없는 기회라 몇 병 주문해뒀습니다. 그때 함께 한잔하시지요.”
“허허, 설마 술 때문에 일찍 돌아오신 건 아니겠죠?”
“역시, 저를 제일 잘 아시는 건 진 형뿐입니다.”
그는 웃으면서도 부정하진 않았다.
“자강주는 금방 개봉했을 때야말로 진정한 뜨거움을 느낄 수 있는 술입니다. 숙성을 하게 되면 강한 맛이 부드러운 맛으로 변하며 본연의 맛을 잃게 되죠. 진 형, 이 좋은 기회를 놓치시면 안 됩니다. 이 술이야말로 진정한 사나이의 술이거든요.”
“그렇게까지 얘기하는데 어떻게 놓칠 수 있겠습니까?”
진양이 피식 웃으며 포권을 취했다.
“흑영성이라고 하셨죠? 마침 멀지 않은 곳이니 삼 일 뒤에 그곳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그 사나이의 술이라는 게 도대체 어떤 술인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군요. 대신 이름만 그럴싸한 술이라면 각오하셔야 할 겁니다.”
“하하하! 제때 찾아오기나 하시지요.”
삼 일 뒤.
해가 아직 뜨지도 않은 이른 아침.
진양은 밖으로 나가기 전 최양평에게 문안 인사를 하러 왔다.
“스승님, 흑영성에 좋은 술이 있다고 하여 영휘와 함께 다녀올까 합니다.”
“그래, 조심히 다녀오거라.”
최양평은 별말 없이 진양을 보내주었다.
그렇게 거처를 빠져나온 진양은 곧바로 산문으로 향했다.
산문을 지날 무렵.
그곳을 지키던 제자가 진양을 발견하고는 예를 올렸다.
“진 사조님을 뵙습니다. 이렇게 일찍 어디를 가시는 겁니까? 무슨 일이 있으시면 소인들에게 분부하시지요. 직접 움직이시지 않아도 됩니다.”
“아, 볼일이 있어서 나가는 건 아니고. 흑영성에 자강주라는 술을 판다길래 영휘 사질과 함께 가서 마시고 오려고. 사나이의 술이라고 어찌나 떠들어대던지. 정말 사나이의 술이 맞는지 확인해 보고 오려고.”
진양은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어 화답했다.
“아, 그렇습니까? 그런데 최근 들어 바깥 분위기가 영 좋지 않습니다. 산수들 사이에 격렬하게 싸움이 벌어지는 것 같던데. 잠시만 기다려주시지요. 제가 다른 제자들을 몇 명 더 불러오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호위 무사가 필요하실 겁니다.”
“됐어. 흑영성이면 바로 코앞인데 뭐. 게다가 영휘 사질은 이미 그곳에 도착해서 날 기다리고 있을 거야. 한시라도 빨리 가봐야 해.”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조심히 다녀오시지요.”
“그래, 수고해.”
짤막한 대화를 마친 진양은 곧바로 산문 밖으로 향했다.
산문을 빠져나온 진양은 곧장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그는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산문을 힐끔 쳐다보고는 전속력으로 흑영성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날기 시작한 지 두 시진쯤 지났을 무렵.
진양은 어느 한 산꼭대기에 착지했다.
보통 신해 경지의 수도사는 두 시진 정도를 날면 땅으로 내려와 잠시 쉬어가야 했다.
즉, 진양을 노린다고 치면 지금이야말로 절호의 기회인 것이었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흑영성과 너무 가까워진다.
그곳에선 함부로 살인할 수가 없었다.
흑영성의 사람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여기서 땅으로 내려온 것이었다.
진양은 단약을 꺼내 씹으며 눈을 감고 진원을 회복하는 척 연기했다.
잠시 뒤.
진양이 눈을 번쩍 뜨며 전방을 응시했다.
한 줄기의 빛 덩어리가 이곳으로 날아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뒤로 두 개의 빛 덩어리가 뒤따르고 있었다.
“왔군.”
진양은 천천히 자리를 털고 몸을 일으켰다.
“하나는 영태 중기, 나머지 둘은 영태 후기. 아무래도 상대는 내 실력을 일 년 전의 실력으로 파악하고 있는 모양이군.”
생각해 보면 이상할 건 없었다.
일반적으로 신해 수도사가 일 년 만에 갑자기 경지가 상승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사실 진양의 실력은 이미 신해기를 이미 훨씬 뛰어넘은 수준이었다.
단지 연체와 연기의 부조화로 연체의 경지가 올라가지 못할 뿐이지, 실질적으로는 실력이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었다.
현재 진양의 힘으로는 다가오고 있는 세 사람을 가볍게 쓰러트릴 수 있을 듯했다.
거기에 닭과 호양보종, 마수의 힘까지 사용한다면 세 사람 따위는 걱정거리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