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541
541화 상황 파악이 안 돼?
수염 없는 깔끔한 얼굴의 남자는 마치 육안으로 그것을 바라보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의 표정이 한층 더 심각해졌다.
“어떻게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 종류의 힘을 가지고 있을 수 있는 거지? 말도 안 돼. 설마 풍수사 그 녀석이 내게 가짜를 준 건 아니겠지?”
눈앞에서 일어나던 현상은 갑자기 왜곡되기 시작하더니 하나의 기운으로 변하여 남자의 미간 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남자는 동쪽을 바라보았다.
“동쪽인 건가? 놀랍군. 이런 돌연변이 같은 자가 실제로 존재하다니 말이야. 아무래도 내 생각이 틀린 것 같군. 정말로 나보다 더 빠른 녀석이 있을 줄이야. 맥수 녀석도 아마 그 녀석에게 죽임을 당했겠지.”
한참을 고민하던 남자가 다시 나지막하게 말했다.
“일단 직접 가서 확인해보자.”
남자의 모습은 점점 흐려지는 듯하다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 * *
어느덧 이곳 ‘옹성’에서 지낸 지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진양은 이곳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
이곳에서 사용하는 문자도 배웠고, 공법도 배웠고, 사람들의 생활 관습 같은 것도 익혔다.
시간은 계속해서 흘렀으나 딱히 급할 건 없었기에 진양은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무엇보다 이런 곳에서 지내볼 수 있는 기회는 그리 흔한 기회가 아니기 때문에 한동안은 더 머물다 가기로 결정했다.
현재 진양이 있는 세계의 배경은 상고 시대인 듯했다.
하지만 완전한 상고 시대는 아니고, 약간 어딘가 부족한 상고 시대의 일부라는 느낌이 훨씬 더 강했다.
어쨌든 진양이 이곳으로 오기 전에 지냈던 세계와는 많은 것이 다른 곳이었다.
예를 들어, 이전의 세계에서는 비보라고 불릴 만한 물건도 이곳에서는 그저 평범한 법보에 불과했다.
또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이곳에선 주로 원기를 비보 제작이나 수련의 재료로 사용한다.
한편, 진양은 한 달 동안 열심히 고대 문자를 공부한 덕분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양피지의 내용을 알아볼 수가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다른 양피지의 내용까지 모두 알아볼 수준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가지고 있는 풍수 관련 지식까지 총동원하고 나니 양피지의 내용을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예상대로 양피지에 적혀있는 건 풍수와 관련된 공법이었다.
기의 흐름을 통해 길흉을 파악할 수 있는 공법이었다.
대략 어떤 공법인지 알아냈으니 이제 남는 건 수련하는 것뿐이다.
그렇게 진양은 매일 느긋하게 책을 읽거나 공법을 수련하며 하루를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한참 책을 보고 있는 도중 갑자기 비난령에서 은은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자란이 갑자기 방에서 튀어나왔다.
“근처에 아군이 있는 것 같아요. 우리의 위치를 파악하려고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설마 청란 소저일까요?”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청란 아니면 대제희님일 거예요.”
진양은 곧바로 비난령을 작동시켜 상대가 보내온 신호에 응답했다.
그리고 한 시진 후.
멀리서 한 줄기의 빛이 날아와 마당 위로 착지했다.
‘누구지?’
진양은 놀란 눈으로 찾아온 자들을 바라보았다.
찾아온 이들은 총 다섯 명이었다.
이들 중 우두머리로 추정되는 흑포를 두른 노인이 미소와 함께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의 뒤에 있는 네 명의 남자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갑옷을 입고 있었는데, 범상치 않은 강력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심지어 네 사람이 뿜어낸 기운이 한곳에 모이고 나니 자란의 기운을 완전히 짓누르고도 남을 정도였다.
네 사람 모두 아무리 못해도 도궁 경지의 강자가 분명했다.
노인은 겉으로는 웃고 있었으나 속으로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파악이 불가능했다.
마치 깊은 연못과 같은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진양은 굳은 표정으로 멍하게 서 있는 자란을 뒤로 물리며 앞으로 나섰다.
이런 상황이 있을 때마다 자란은 최대한 몸을 사리고 진양이 나서는 것으로 미리 합의를 해두었던 것이었다.
“어디서 오신 분들이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처음 뵙겠습니다.”
진양이 미소와 함께 포권을 취하며 물었다.
“여긴 무슨 일로 오셨는지요?”
노인은 인자한 미소와 함께 진양의 품속에 있는 비난령을 힐끔 쳐다보고는 진양에게 포권을 취했다.
“신정(神庭) 대제주(大祭酒)라고 합니다. 영제(嬴帝) 폐하의 명을 받고 멀리 다른 세계에서 온 두 분을 만나러 왔습니다.
아마 잘 모르시겠지만, 이곳엔 이곳 나름의 현묘한 규칙이 있습니다. 혹여나 이곳의 생명체가 경계를 넘어갈 수도 있고, 또 두 분의 안위에도 해가 갈 수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두 분이 가지고 계신 기억 중 일부를 지워야 할 것 같습니다. 혹여나 다른 생명체가 두 분이 가지고 계신 기억의 일부를 이용해 엄청난 일을 벌일 수도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니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대제희님은요?”
잠자코 상황을 살피던 자란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물론 대제희님께선 당연히 먼저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을 보내시는 건 불안하셔서 일부러 저희를 직접 보내신 겁니다.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큰 해를 끼치는 공법은 아닙니다. 그저 어떻게 이곳으로 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기억만 지우도록 할 겁니다.”
대제주는 여전히 의문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자란에게 한마디 더 했다.
“만약 이래도 믿지 못하시겠다면 먼저 대제희님을 만나볼 수 있도록 해드릴 수도 있습니다.”
진양은 조용히 자란을 뒤로 끌어당겼다.
“아, 대제주님이셨군요. 몰라뵙고 실례를 범했습니다. 많이 바쁘실 텐데 굳이 번거롭게 할 필요 있겠습니까? 대제주님의 말씀을 따르도록 하지요. 게다가 대제희님도 무사하시다니 안심입니다. 마침 새로운 세계에 와서 견문도 넓히고,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호쾌한 분이시군요. 혹시 존함이?”
대제주는 진지한 눈빛으로 진양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엔 한층 더 밝은 미소가 걸렸다.
“존함이라뇨. 당치도 않은 말씀이십니다. 그냥 아무개라고 생각해주시지요. 자, 바쁘실 텐데 얼른 끝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순순히 협조하겠습니다.”
“이해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럼…….”
대제주는 품속에서 옥새를 꺼내 들었다.
옥새에는 눈이 없는 이수가 새겨져 있었다.
대제주가 손을 펴자 옥새가 진양의 앞으로 날아왔다.
이어서 옥새에 새겨진 이수가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움직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복부에는 기이한 빛을 뿜어내고 있는 눈이 달려있었다.
“어려울 것 없습니다. 그저 이곳에 어떻게 들어오게 되었는지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진양은 사람 좋은 미소와 함께 순순히 상대의 요청에 응했다.
이곳까지 들어오게 된 과정을 떠올리기 시작하자 미간에서 푸른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연기 속으로 희미하게 무언가 화면이 보였는데, 바로 진양이 이곳으로 오게 되었던 바로 그 순간이 기록된 장면이었다.
미간을 빠져나온 기억들은 옥새 앞으로 날아왔다.
이어서 이수의 눈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 연기를 흔적도 없이 녹여버렸다.
그렇게 진양의 머릿속에서 이 부분에 대한 기억은 완전히 지워졌다.
모든 작업이 끝나자 진양은 꽤 놀란 얼굴로 자신의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대제주 대인, 이것 참 신통하군요. 정말로 아무것도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혹시 부작용 같은 게 있는 건 아니겠죠?”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그런 건 없으니까요. 앞으로는 자유롭게 움직이시면 됩니다.”
대제주는 여전히 자상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진양은 자란에게 눈짓을 했다.
‘걱정 말고 원하는 대로 해 주세요.’
자란은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나아갔고, 진양과 같은 과정이 다시 한번 반복되었다.
그렇게 모든 일을 마친 대제주가 다시 길을 나서려는 순간.
진양이 그를 불러세웠다.
“대인, 송구하지만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대제주가 무슨 일이냐는 얼굴로 발걸음을 멈추며 물었다.
“이제 막 이곳에 넘어온 터라 이곳에 대해 아직 아는 게 전혀 없어서 말입니다. 혹시 이곳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괜찮은 서적 같은 건 없겠습니까? 괜히 나갔다가 원석도 못 알아보고 우스운 꼴을 당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제서야 대제주의 눈에서 의심이 사라졌다.
이어서 흔쾌히 가지고 있던 서적과 양피지 등을 꺼내 하나씩 바닥에 내려놓았다.
“겨우 그 정도라면 어려울 것도 없습니다. 자, 그렇게 비싼 것도 아니니 편하게 보도록 하시지요. 돌려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대인.”
진양의 눈이 반짝였다.
노인이 꺼내놓은 책은 족히 육 층에서 칠 층 정도 건물의 높이와 맞먹을 정도로 많았기 때문이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노인은 함께 온 네 명의 부하들을 데리고 다시 빛이 되어 멀리 날아가 버렸다.
그렇게 네 사람 모두 사라지고 나자 진양은 책을 모두 챙긴 뒤 멍하게 서 있는 자란을 끌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다음 방을 완전히 봉쇄했다.
그러고 나서야 진양의 얼굴에서 미소가 싹 사라졌다.
“빌어먹을 늙다리 녀석.”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자란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러나 진양의 표정으로 보아 별로 좋은 상황은 아닌 듯했다.
“어떻게 되긴요. 분명 청란 소저 아니면 대제희님이라고 하지 않았었나요?”
순간, 진양의 머릿속을 스치며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아니라면 혹시 대제?”
“맞아요.”
자란은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비난령은 본래 대제께서 대제희님께 선물한 물건이니까요.”
이제야 모든 것이 확실해졌다.
대영 신조 대제의 본체는 이곳에 있었던 것이었다.
게다가 만약 진양이 생각하는 게 맞다면 아마 가희가 이곳에 있게 된 것도 빌어먹을 대제 놈이 벌인 짓이 분명했다.
그의 근원은 대영 신조에 있다.
가희가 돌아오는 것.
그것은 매우 큰 변수였다.
때문에, 변수를 없애기 위해 가장 무식하면서도 간단한 방법을 썼다.
바로 가희가 돌아오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가희는 대제희라는 신분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는 신조 내에 많은 사람이 알고 있었다.
때문에 대제는 가희를 죽일 마땅한 명분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차선책으로 이곳으로 데려오는 걸 선택한 것이었다.
그리고 뒤따라 들어온 자들이 가진 입구에 대한 기억도 완전히 말소시켜 이곳에 갇히게 만들었다.
설령 이 사실이 드러난다고 하더라도 대제는 충분히 변명할 거리가 넘쳤다.
가희가 이를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지만 그렇다고 이미 엎어진 물을 어찌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뭐 하고 있어요? 뭐라도 얘기해 보라니깐요. 왜 괜히 저까지…….”
답답했던 자란이 짜증 가득 섞인 말투로 뭐라고 하려는 순간.
진양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직접 보고도 상황 파악이 안 되신 겁니까? 아까 봤던 그 기분 나쁜 늙다리 녀석, 적어도 우리 두 사람의 실력을 모두 합친 것보다 훨씬 더 강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잖아요. 뿐만 아니라 함께 온 네 명의 부하들 역시 범상치 않은 실력자들이었고요. 거기서 괜히 반항을 했다간 분명 우리 두 사람 모두 골로 가버렸을 겁니다. 그러니 어설프게 반항을 하는 것보단 순순히 협조한 겁니다. 하는 김에 쓸만한 책도 좀 뜯어내고요.
더 이상 걱정할 필요는 없으니 얻어온 책들부터 잘 연구하도록 하세요. 그래도 나름 신정 대제주인 만큼 가지고 있던 책들도 평범한 것들은 아닐 테니까요. 일단은 서적 연구에 집중하시도록 하고 더 이상은 묻지 말아 주세요. 더 알아봤자 좋을 건 없을 테니까요.”
말을 마친 진양은 눈을 감으며 해안 안으로 들어갔다.